소설리스트

결혼생활 실패 후 다시 사는 천재 카이스트생-25화 (25/134)

#25. 지금 당장 연구 때려치십쇼

#25. 지금 당장 연구 때려치십쇼

띠링!

[메인 퀘스트 『날개를 펼치다』]

[▶내용 : 회귀한 지 어언 반년, 이제는 날개를 펼칠 때가 되었다. 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도래했음을 증명하라.]

브뤼셀에 온 내 진짜 목적.

한때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던 과거의 기록.

그때의 분함과 설움을 안고 분골쇄신하여 이제야 겨우 그 날개를 펼친다 싶었다.

그러나 그 직전에, 날개는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새는 분명, 날개가 부러지면 그 삶을 다한 것이리라.

하지만 다시 날아오를 기회가 주어진 지금.

딱히 그에게 원한이 있던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구골은 내 발돋움을 위한 희생양이 될 수밖에.

* * *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간 플랫폼은 단연코 고체였다.

“2008년, 미국은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수립해 이번 년만 100억 달러(약 10조 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선봉에 선 것이 바로 우리 구골의 초전도체 기반 양자컴퓨터 플랫폼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고체가 아니라.

영하 200도보다도 훨씬 낮은, 거의 절대영도에 가까운 온도로 냉각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한 고체.

바로 ‘초전도체’.

“다음 그래프를 보십시오. 이미 우리 구골은 초전도체 플랫폼에서 2큐비트를 훨씬 넘어선 5큐비트의 양자 소스 생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시작일 뿐이며, 구골은 10년 내로 1,000큐비트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를 향후 상용화를 목표로 만들어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PPT에서 보이는 거대한 냉각장치와 수많은 배선.

그리고 그곳에 붙어서 복잡한 파형을 띄우고 있는 전자장치들.

그 사진만으로도 구골이 양자컴퓨터에 얼마나 진심인지 대번에 느껴졌다.

발표에서, 그리고 그의 PPT에서 느껴지던 그 진심은 청중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현재 5큐비트에서 향후 1,000큐비트라고 하심은 저 플랫폼은 그만큼 스케일러블(Scalable)하다는 뜻입니까?”

“5큐비트라고 했으니 같은 고전컴퓨터인 5비트와 비교했을 때 이론적으로 적어도 3배는 좋아야 하겠군. 그쪽에서 만든 저 프로세서가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는지 한번 묻고 싶네만.”

“안녕하십니까. 일본 도쿄공과대학의 후루사와 교수 밑에서 연구하고 있는 박사 연구생입니다. 고체 기반의 다른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귀사의 초전도체 플랫폼이 어떤, 그리고 얼마나 이점을 가지고 있는 건지 말씀해주시면······.”

지금껏 그 어떤 발표들보다도 많은 질문이 오갔다.

보통은 발표 다 끝나고 관심 있는 몇 명만 묻거나, 예의 치레 상 진행자가 질문하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다들 도중을 못 참고 너도나도 에릭 무세로를 향해 손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하. 예상했던 것보다 질문이 너무 많군요. 영광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밤새 질문을 받아도 끝나지 않겠군요.”

멈출지 모르는 질문 세례에 에릭 무세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구골의 연구에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따로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오프 레코드로 말입니다. 그러니 다음 질문을 마지막으로 이만 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전에.”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맨 뒤쪽으로 옮겼다.

그곳은 거의 사람이 없는, 빈자리 사이에 단 몇 명만이 모여 앉은 곳이었다.

“위대한 근세기 물리학자, 파인만의 명언이 있지요.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다. 저 역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친구분께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릭 무세로.

그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입술을 낼름 핥으며 말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물리학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저 기특한 친구들이 보이십니까?

그의 이어진 말에 청중들이 시선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물론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친구들입니다. 정말일 수도 그냥 농담 삼은 칭찬일 수도 있습니다만, 무려 저보다 똑똑할지도 모르는 친구니까요!”

그는 마치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있었다는 양 기분 나쁘게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파인만의 말대로 제가 잘했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실험물리학자입니다. 그러니 한번 물어보도록 하지요.”

그는 그렇게 되지도 않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더니.

“어땠습니까. 발표는 괜찮았습니까?”

이내 나를 콕 찍어 부르며 물었다.

“저보다 똑똑하신 동양의 소년분?”

마치 뱀과 같은 혀놀림으로 하여.

* * *

“하하······.”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쓰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들려고 했던 손을, 다시금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마지막 질문밖에 안 받는다고 하길래 얼른 손들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나서서 친히 자리를 만들어줄 줄이야.

마다치 않지.

“안녕하세요. 한, 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성만 소개했다.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이름까지 말해봤자, 외국인들은 다 잊어먹기 마련이거든.

애초에 짬빱이 쌓이고 대가가 되기 전까지는, 이름을 말해도 아무도 기억 못 한다.

다들 어디 연구실 그룹, 어느 나라, 그리고 누구 지도교수인지.

그런 것들만 기억하지.

애초에 그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

“······.”

“······.”

미래이자 과거였던 제30차 회의 때,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이목을 받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정반대로 그들 전부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시선을 맞대고 있었다.

기특한 아이들이라고, 그들이 곱게 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었다.

신성한 학문의, 물리의 장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녀석을 데려오다니.

다들 그런 눈치로 끌끌 혀를 차고 있지 않나.

물론 몇몇 청중들 사이에서는 너무 짓궂은 장난 아니냐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야, 뭐해! 그냥 땡큐 베리 망치하고 끝내!)”

옆의 송유미는 어찌할 줄 모른 채 경악하고 있었다.

“······.”

천하의 그 유설하 역시 조금 불안한 눈치였다.

둘의 반응대로, 보통의 중학생이라면 긴장을 넘어서 말이라도 꺼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좋은 발표 잘 들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마치 사전에 이미 준비한 것 마냥.

“이렇게 따로 질문할 기회도 만들어주시고 따로 소개도 해주시니, 정말 영광스럽기 그지없군요.”

지금까지 학회에서 발표했던 그 어떤 어른들보다도 술술 말을 이어갔다.

“일단 파인만의 명언을 인용해주셨는데, 일단은 저희는 초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이라고 리비전을 요청드리고 싶어요. 물론 아시안이 어려 보인다는 건 알지만, 이건 마이너를 넘어선 메이저 리비전, 거의 리젝에 해당되는 수준입니다.”

내 어이없는 농에 회장에선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저 어린 친구가, 그것도 학계의 비주류인 아시안이 저리도 당돌하게 굴고 있다니.

게다가 말의 내용도 마치 어디 논문 하나 써본 사람 같은 투였으니, 신기할 수밖에.

그렇게 에릭 무세로, 온전히 그에게만 가 있던 페이스 중 일부를 내게로 챙겨왔다.

“하하······ 역시 무시하면 안 되는 친구가 맞았군요.”

그의 표정에 예상치 못했다는 당황이 깃들었다.

“하여튼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에릭 무세로는 곧 쓰게 미소 지으며 무마하려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저를 레이시스트로 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우리 구골에 아시안 연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동료들 중 태반이 아시안이랍니다.”

“인디안을 잘못 말씀하신 게 아니고요?”

능글맞게 혀를 굴리며 영어로 그렇게 농담 같은 반박을 했다.

“푸흡······.”

“그렇지.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죄다 인도인 아니던가.”

“저 당돌한 동양의 소년은 어느 나라 출신이지? 재팬?”

아까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에릭 무세로의 웃고 있던 눈가가 잠깐 파르르 떨렸던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농담을 가장한 신경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참고로 전 재팬이 아니라 코리안입니다. 뭐, 말씀대로 농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질문이 뭐였죠? 아, 나보고 질문하라는 거였지.”

예능 시트콤 호응석 같은 웃음소리 사이에서 에릭 무세로의 표정이 이제는 완전히 구겨졌다.

페이스가 완전히 이쪽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Anyway(어쨌든).”

그러니 지금부터는 농 없이 오로지 공세뿐.

“굳이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셨는데, 아쉽게도 딱히 질문이 없네요. 일단 저로선 전혀 이해가 안 가서.”

“하하, 그랬군요. 역시 내가 괜한 짓을 했군요. 그렇담 다음 기회엔 미들스쿨인 당신도 이해할 수 있도록······.”

“아뇨, 그럴 필욘 없을 것 같은데요?”

정색하며, 아무런 전조도 예측도 없이.

“솔직히, 그쪽 구골의 연구에 별 관심이 없거든요.”

달아올랐던 회장에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 속에서도 나는 결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제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건, 에릭 무세로. 당신이 이 연구를 왜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말의 앞뒤가 맞지가 않아요.”

애늙은이처럼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저 멀리 단상에 멀대같이 서 있던 그를 내려다보듯이 하여.

“좋은 연구죠. 물론 좋은 연구예요.”

말했고, 계속 내뱉었다.

“하지만 질문, 아니, 감히 조언 하나를 드리자면, 당신이 정말로 진지하게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렇게 나는, 가라앉은 회장의 한복판에서.

아예 쐐기를 꽂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당장 그 연구 때려치십쇼.”

당당히 폭탄 하나를 떨궜다.

* * *

2019년.

구골은 전 세계를 향해 양자컴퓨터 시대의 개막을 여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54큐비트 초전도체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시카모어』.

단 54개의 양자소자만으로 1경 개 이상의 반도체 소자를 장착한 기존의 슈퍼컴퓨터의 속도를 현격히 뛰어넘었다.

단순히 적은 소자의 수로 비슷한 계산을 해냈다는 게 아니다.

슈퍼컴퓨터로 무려 1만 년 이상 걸리는 일을, 구골의 양자컴퓨터는 단 3분 만에 풀어냈다.

완전한 승리.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

하늘과 땅에 비할 바한 유례없을 초격차.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고.

기존의 반도체 기술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양자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따라올 슈퍼컴은 없었다.

그들의 연구 결과가 담긴 본문 7장, 그리고 부록 54장.

당시 구골은 총 61장으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를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는 이미 달성됐다고.

“구골의 연구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당신들이 향후 10년 안에 분명 양자우위를 달성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구골은 단지, 첫 번째로 양자우위를 달성했을 뿐이었다.

“물론 로지컬 5큐빗이 아니라 피지컬한 5큐빗이니 에러 보정까지 생각하면 컴퓨팅 능력 자체로는 아직은 형편없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건 맞습니다.”

방금 자기를, 우리 구골의 연구를 무시하는 거냐며 버럭 언성을 높였던 에릭 무세로.

반면 나는 그런 그에게 조금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오히려 물리학의 관점으로 보자면 무척이나 대단한 일이 맞아요. 항상 큐빗, 큐트릿에서 넘지 못하고 막히던 벽을 뚫고 무려 5큐비트의 양자 소스(Quantum Source)를 생성해냈고, 제어까지 성공했으니까요. 한 10배 정도, 5큐빗을 50큐빗 정도로 늘리면 충분히 양자우위도 보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아까 연구 때려치라고 했던 말은 뭐지?! 결국 애송이 너도 인정한 것 아니냐!”

“양자우위는 인정했죠. 하지만.”

고개를 차분하게 가로저었다.

“상용화는 아니죠.”

무감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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