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67. 지금부터 이걸로 음악을 할 겁니다
『너희 언니 분명 음대 다닌다고 했었지? 나 과외 좀 해 달라고 말해 줄 수 있어?』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오랜만에 연락이 왔던 그 예고 준비한다던 여자애.
오랜만에 잘 지내고 있냐고 문자가 왔었고 몇 번 더 문자를 주고받다가 그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분명 예고 졸업하고 서울대 작곡과 들어갔다고 했었지.’
동생인 그녀도 비슷하게 예고를 준비하면서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원래는 한국예대의 실용음악과를 진학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부모의 극심한 반대 아래 결국 클래식 쪽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래야 나중에 의사나 변호사 남편이 좋아한다나 뭐라나. 딴따라가 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과외? 언니한테? 나 말고?』
『Re : ㅇㅇ넌 아직 배우는 도중이잖아. 언니 기타 엄청 잘 친다며.』
『그건 그런데…….』
이후 다행히 알겠다고 답장이 왔었다.
한번 말은 해 보겠다고. 그러나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었지.
최근에 또 부모님이랑 싸우고 용돈 끊긴 후 알바하느라 언니는 바쁘다고 했었나.
그래서 그 알바의 5배를 준다고 했더니 갑자기 문자 말고 전화가 띠리리 오면서.
언니라고 추정되는 분이 ‘그거 찐이지?!’라고 외치면서 바로 과외가 성사되었다.
당시 그러면서 전화 배경에 ‘언니 바보! 멍청이! 한경준 너도 진짜 미워!’ 같은 소리도 들려오기도 했었는데.
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그냥 여담이다.
“음, 살면서 기타 쳐 본 적은?”
“없습니다.”
혜화 대학로 근처의 스튜디오.
통 크게 최대 8시간 대실을 때려 버린 가장 설비 좋은 방에서 담담히 폭로하자, 음대 누나의 얼굴이 순간 팍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생이자 몇 년 뒤면 곧 사회인이 될 몸.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며 음대 누나는 내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그렇구나. 그래서 그 장기자랑 한다는 게 언제라고?”
“2주 뒤요.”
“…….”
끝내 떨궈진 고개와 함께 깊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아래를 들춰 보지 않아도 안력이 자연스레 상태 창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절망하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 주기도 했다.
“아니, 난 장기자랑 준비한다길래 가을쯤인 줄 알았지! 아니면 5월이라든가! 보통 다 그때 하지 않아? 입학하자마자 바로 3월에 장기자랑을 한다고?”
내게 그리 물어도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학교가 그렇다는데.
2두 뒤, 6주간의 홍지학교가 끝난 기념 및 신입생들을 축하해 준다는 의미로 축제를 연다고 했었다.
신입생들은 딱히 축제 준비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했었으나, 자신을 소개한다는 명목하에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씩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고도 했었고.
지금 음악 과외를 받게 된 것도 그 준비 선상 중 하나.
본래라면 그냥 애국가 하나 부르고 분위기 곱창 낸 후 적당히 빠지려고 했었으나.
퀘스트 보상이 걸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파메일 퀘스트의 희(戱) 부문. 색정 어린 양들에게 매력의 차이를 깨닫게 하라고 했었지.’
희라 함은 놀다·유희 할 때 그 희를 뜻했다.
그렇담 최고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 최고로 잘 노는 모습을 모두에게 선보여 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준비하게 된 장기자랑이었고, 그래서 받게 된 기타 과외였으니.
“코드 잡는 법은 알고? F코드 같은 거 잡아 본 적 있어?”
“들어 본 적만 있습니다.”
“진짜 한 번도 기타 만져 본 적 없는 거야?”
“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전생에도 그렇고 현생에서도 살면서 기타 한 번 손에 쥐어 본 적 없었다는 것.
그리고 2주 안에 무대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까지 부를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은하 친구, 아니, 그냥 경준이라고 부를게.”
“네.”
“솔직히 말해도 돼?”
“네.”
“불가능해.”
음대 누나는 그리 말하며 내게 봉투를 건넸다.
오늘 과외비라면서 만나자마자 미리 건넸던 배춧잎 40장이 든 봉투였다.
“적어도 5월까지라면 모를까, 2주 안에 기타 치면서 노래도 부르게 하는 건 말도 안 돼. 아무리 잘 가르쳐도 결국 악기는 연습이란 말이야.”
그녀는 심각과 진중, 그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표정으로 계속했다.
“보통 아무리 잘해도 운지법 익히는 데만 일주일이고 익숙해지는 데는 한 달이 걸려. 그때부터 그나마 원하는 노래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거고,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면서 치려면 반년은 필요해.”
예체능은 재능이란 말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노력이었다.
이건 공부나 물리와는 정반대였다.
그야 재능 있는 천재라면 남이 하는 물리를 어깨 너머로만 봐도 더 잘할 수 있는 반면.
운동이나 음악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 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특히 그것이 악기라면 더욱이.
“음악, 특히 악기엔 지름길은 없어. 끝에 가서 중요한 건 재능이라지만, 시작은 천재나 범재 모두 똑같이 끝없는 연습과 노력에서 시작해. 바짝 배운다고 해서 금방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끝없는 연습을 통해서 몸과 머리, 그리고 감각을 동기화시키는 과정.
그건 충분한 시간 투자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보죠.”
하지만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무작정 과외 해 달라고 말했을까.
다 방법이 있었다.
“대신 영상만 찍게 해 주세요. 소리랑 같이요. 저 혼자서 연습도 하게.”
“그러니까…… 후, 알겠어. 대신 2주 뒤에 어떻게 될지는 장담 못 한다? 일단은 2주 뒤에 무대에 서는 걸 상정하고 플랜을 짜긴 하겠지만…….”
“그걸로 충분해요. 좋아요.”
결국 음대 누나는 확고한 내 의지를 꺾지 못하고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돈 다시 안 가져가요?”
“됐어. 동생 친구한테 돈을 어떻게 받아. 스튜디오도 네 돈으로 미리 예약한 거잖아. 그걸로 됐어.”
“괜찮아요?”
“응. 안 그래도 스튜디오 빌릴 돈 벌려고 알바했던 거거든. 너 연습할 때 같이 이용하게 해 주는 걸로 퉁칠게. 나도 애한테 그만한 돈 받는 거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그런 계약 아래 난생처음 받는 음악 과외가 시작되었다.
* * *
카이스트엔 밴드나 춤 동아리가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걸 하면서도 봉사나 창업 동아리 등, 2동이나 3동까지 하는 애들도 허다했다.
과학고 다니면서 계속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청춘의 반작용이라고나 할까.
책과 수식에만 뒤덮여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을 그들은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중학교 다닐 적, 혹은 고등학교에 다닐 적.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때면 흔히들 보지 않았나.
무대 위에서 멋들어지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주인공이 되어 빛나던 모습을.
분명 그들도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니 그렇게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며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굳이 무급으로 행사 준비 위원회나 학생회에 들어가서 안 해도 될 일을 그리도 열심히 했던 거겠지.
-저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하지. 다 시간 낭비야.
물론 난 다르게 생각했었다.
-애초에 난 동아리 할 깜냥이 안 돼.
의미가 없다며 무시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럴 여력이 안 됐다.
적당히 공부하면 쉽게 평균점 이상을 따내던 그들과 달리.
당시 나는 종일 예습하고 복습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장짤(장학금 짤림) 위험에 내던져지기 일쑤였으니까.
‘인제 와서 보니 정말, 평생 공부만 했었구나.’
그 말대로였다.
중고등학생 때 종일 공부만 해서 일반고에서 카이스트라는 나름 업적을 이뤄 내고도.
대학교에 와서도 결국 똑같이, 남들 다 한다는 MT나 동아리 같은 것도 스스로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평범한 모든 걸 포기한 채 오로지 공부에만 정신을 쏟았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3.3이었나. 참.’
당시 동기들이 내 앞에서 직접 말을 내지는 않았지만, 눈을 보면 딱 알 수 있었지 않나.
쟤는 그렇게 매일 공부만 하는데도 왜 성적이 그냥저냥이냐고.
저 정도면 4점대는 나와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 이야기를 과방 문을 열기 전에 잠깐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정말이지 뭐 같았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냥 확 포기해 버릴까 정도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연필을 놓지 않았고.
끝내는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를 따냈고, 비록 이용당하는 처지였어도 연구 교수라는 자리까지 꿰차 낼 수 있었지.
그렇게 되면서 느꼈던 건 하나였다.
하면 된다고.
비록 노력으로 천재가 될 수는 없지만.
노력해서 적어도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는 것까지는 가능하다는 걸.
그 사실을 회귀하기도 전에, 상태 창이라는 치트 키 없이 스스로 일궈 내서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도 비슷했다.
똑같이, 하면 된다.
“어제는 운지법을 알려 줬었지? 오늘은 어제 배운 코드를 가지고 간단한 노래를 하나 알려 줄 거야. 그러면서 코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건데.”
음대 누나는 설명을 하다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연습은 해 왔어? 아직 코드 잡는 것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솔직히 이렇게 빠르게 가르치는 게 의미는 없을 거라…….”
“괜찮아요. 이제 코드는 다 쥘 수 있게 됐어요.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도 나름 되고요.”
“뭐?”
음대 누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래서 바로 보여 주기로 했다.
촥, 촥, 촤촥.
F에서 A로, D로 바꾸고 다시 F로 돌아오는데, 검지에 좀 더 힘을 줘서 F#으로.
어제 가르쳐 줬던 코드를 순식간에 바꿔 가는 광경.
그 모습을 보여 주면 보여 줄수록 음대 누나의 두 눈과 입은 점점 커져만 갔다.
“자, 잠깐……! 분명 기타는 처음 잡아 보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네, 처음 맞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익숙한 거야! 실은 기타를 배운 적이 있었다든가…….”
“그게 아닌 건 어제 누나가 직접 봤잖아요.”
어제 첫 과외 때 음대 누나의 입에서 한숨이 몇 번이나 나왔는지 모른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처음이었구나…….』 같은 말만 대체 몇 번을 들었는지.
물론 점점 빠르게 익숙해져 가는 모습에 나중에 갈수록 그녀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리기도 했다.
“어제 누나가 저보고 나름 빨리 배운다고도 했었잖아요. 손재주 좀 있는 것 같다고.”
“그, 그렇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데…….”
“소리는 여전히 이상하긴 해요.”
띠링~†
코드를 짚고 스트로크를 치자 어색한 음색이 새어 나왔다.
분명 어제 질리도록 들었던, 그리고 영상으로 번복해서 또 들었던 그녀의 소리와는 달리 어색한 음색이었다.
음대 누나는 그 알맞은 소리를 더욱 자연스럽게 가꾸고 찾아가도록 쉼 없이 연습하는 게 음악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뿐.
어제 하루를 썼으니 이젠 13일밖에 안 남은 현재.
지금 그런 정석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익힐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래서 이걸 가져왔죠.”
가져온 가방에서 무언가 전자 기기들을 꺼냈다.
음악실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빨갛고 검은 배선, 그리고 수많은 노브와 버튼들.
“그건…….”
“멀티미터하고 오실로스코프라는 거예요.”
음악실이 아닌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전자 기기들이었다.
“지금부터 이걸로 음악을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