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생활 실패 후 다시 사는 천재 카이스트생-78화 (78/134)

제78화

#78. 극찬이 나왔다

주말에 잠깐 빠르게 일본을 갔다 왔다.

돌아와서는 다시금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뭐? 벌써 논문이 나온다고?”

광학 테이블 앞에 허리를 숙인 채 낑낑거리고 있던 송유미가 조금 음성을 높인 채로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잠깐 사이에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왔냐며 경악하고 자지러지는 게 보통이었건만.

그녀는 계속 손을 멈추지 않고 거울을 조절해 빛의 경로를 바꾸는 데 더 바빴다.

“별로 안 놀라네.”

“너랑 있다 보니 하도 익숙해져서. 이젠 일일이 놀라는 것도 지쳐.”

실험 논문 17개, 그리고 이론 논문 102개.

말도 안 되는 수치였음에도 송유미의 반응은 담담했더라.

하지만 눈에 선했다.

아직 논문을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나중에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 그 경중을 깨닫게 되면 수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자지러지게 될 모습이.

“아, 논문이면 소논문보다 더 좋은 거 맞지? 그거 스펙으로 넣으면 서울대는 그냥 합격하는 거 아니야?”

서울대는커녕 서울대 의대도 우스웠다.

애초에 대학 입시는 물 볼 것도 없었다.

“앗, 설마 거기에 내 이름도 있다든가…….”

“아직 네가 한 게 없는데 김칫국은.”

“치, 그냥 말해 본 거뿐이다 뭐.”

PRL에 그 개수의 논문이면 사실상 교수 자리는 떼 놓고도 남는 당상.

그래도 그런 말은 굳이 하지 않고, 아직 고등학생다운 그녀의 반응에 만족하자.

“근데 이미 그 후루사 랩? 거기서 너 말 따라 이것저것 하고 있고 논문도 나오고 있다는 거잖아?”

“응.”

“그럼 여기 헬에서는 뭐 하게 되는 거야? 그냥 동아리에서 끝내려고 이런 대단한 시설 갖춘 건 아닐 거 아니야.”

“양자컴퓨터 만들지.”

“이번에 논문 나온 것도 그거야? 그 양자컴.”

“앙자컴의 전 단계의 전 단계의 전 단계의 기초를 위한 레퍼런스, 참조 용도라고 보면 돼.”

“……뭐 이리 복잡해.”

그럼 그 꿈의 양자컴퓨터로 가는 길이 순탄할 줄 알았던가.

구골, IDM을 비롯한 미국 대기업이 뛰어들어서 수십조를 들이부었는데도 근 20년이 걸렸는데.

그런데도 아직 진정한 상용화라고 보기엔 요원했던 게 당시 2030년이었다.

‘상용화의 경계선이라 불리던 1만 큐비트까진 접근했었지.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막혔었다. 하지만 초전도체도 원자도 스핀도 아닌 빛이라면…….’

2030년, 죽기 직전에 겨우 이뤄 냈던 빛의 양자컴퓨터.

그 첫 프로토타입을 훨씬 이전의 미래로 앞당기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건 이를 위한 기초 작업에 불과했다.

‘일단 기초 실험들은 후루사 교수 쪽에서 진행해서 빠르게 논문화한다. 그러면서 관련된 미래의 실험·이론 논문들에 전부 내 이름을 올려 내 걸로 만든다. 그러는 동시에 직접 창업해서 기술의 발전을 미래로 끌어올린다. 그것부터야.’

우선 공든 탑부터 쌓는 게 중요했다.

이리저리 발품 팔아서 급하게 만들어 선보여서는 안 됐다.

예전에 그렇게 했다가 끝내 중국 놈들에게, 그리고 매국노 황 교수 그 자식에게 목숨과 함께 모든 걸 빼앗기지 않았나.

‘취할 수 있는 업적은 모두 취한다. 단순히 논문뿐만 아니야. 기반 기술, 장비 특허 전부 다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면서 진행해야 해. 자본도 충분히 갖춰야 하고, 어쩌면 무력도 갖춰야 할 수 있어.’

양자컴퓨터는 그야말로 세상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뒤바꿔 놓을 거다.

그 가치와 위험성은 양자폭탄 그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갑자기 한반도의 아무런 빽도 없는 아시안이 불쑥 만들어 버린다?

‘미 함대가 북한하고 중국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상륙할 수도 있겠군.’

말도 안 되는 농담이 아니었다.

2030년 이후, 이미 양자컴퓨터가 수면 위에 오른 때면 모를까.

그 전에 내가 먼저 그걸 이뤄 버린다?

그리고 펜타곤의, 연준의,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은행을 단 몇 초 만에 해킹해 버릴 수 있는 계산력을 가지게 된다면?

전쟁이었다.

물론 미국의 방식이라면 미국에 양자컴퓨터 기술을 공유케 할 테고.

중국이라면 다짜고짜 북한을 통해 군대를 진격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며.

미국이 사이에 있다지만, 일본도 비슷하게 안심할 수 없었다.

“레이저 건이라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응? 뭐라고? 새로운 레이저 만들게?”

“아마도? 뭐, 나중의 일이야. 신경 쓰지 마.”

“그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나중의 일을 미리 고민해 봤자 의미는 없었다.

역설적으로 일단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놓고 나면 다 해결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튼,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최선이었으니.

“그럼 나 하나 부탁해도 될까?”

“뭔데?”

“기타 연습할 거면 좀 다른 데 가서 해 줄래?”

띠링. 띵기딩.

헬 래버래토리의 실험실.

거기서 송유미가 실험하는 모습을 지도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계속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야 바로 며칠 뒤면 학교에서 장기 자랑 하기로 한 축제 날이 오지 않나.

“집중 안 되거든?”

송유미가 실험 집중에 방해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스킬 티켓으로 원하던 그 스킬을 얻기 전이니, 멀티태스킹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건 필요가 아닌 필수였으니.

“그래? 그럼 노래까지 곁들여 주지.”

“아니, 이게!”

참고 참던 송유미가 드디어 허리를 펴 고개를 돌렸던 순간.

~♬

청아하고도 봄 느낌이 나는 운율이 실험실 내부를 울렸다.

어느새 화를 내려던 송유미도 넋을 잃고 가만히 연주하는 모습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약 1분하고도 절반의 시간이 지나가고, 곧 침묵이 찾아왔다.

“어때?”

“…….”

며칠 뒤 장기 자랑 용도로 연주할 곡이었다.

송유미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겨우 말을 골랐다.

“……너 왜 물리 하냐?”

극찬이 나왔다.

* * *

그대여~♪ 그대여~♬

연주가 끝났다.

기타를 내려놓은 소년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뻑적지근한 손가락을 풀었다.

근 2주간 수도 없이 코드를 잡았던 터라 이미 그의 손가락 곳곳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와…….”

경준의 연주를 들은 유성은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순수한 의미의 감탄.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저게 정녕 2주 만에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이 맞나.

분명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기타 초크 한 번 쥐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런데 벌써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으로 일취월장하고, 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완벽하게 숙달해 내다니.

―이런 것들은 전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방금 노래 네가 직접 작곡한 거야? 이거 당장 음반으로 내도 바로 차트 100위 안에 들 것 같은데…….”

소년이 이번 장기 자랑 때 직접 연주하겠다고 가져온 노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던 노래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익숙하고 또 정감이 가는 멜로디.

거기에다 악기로 정한 통기타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음색은 그가 알려 줬던 노래 제목처럼, 정말로 곧 다가올 봄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지는 것만 같았더라.

“음, 제가 직접 작곡했다기보다는.”

일단 이 노래를 알고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엔 그밖에 없다는 건 맞았다.

그야 이 노래는 상태 창의 능력으로 미래에서 가져온 히트곡이었으므로.

그것도 노래가 출시된 이후 10년이 지나서도 매년 봄이면 잊지 않고 회자되는 곡이었으니.

음대 출신인 유성은이 유달리 저렇게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냥 조금 운이 좋았죠.”

“이쯤 되면 그건 겸손이 아니라 기만이야 기만 요놈아. 에휴, 증말.”

인제 와서는 허탈감보다는 그저 웃음만이 나왔다.

매일 아침 스튜디오에서 볼 때마다 질리지도 않게 자신을 놀래키던 그였지 않나.

뭔 물리학으로 초짜가 음악을 평정했던 것부터 해서, 어제는 하루아침 만에 음치를 고쳐 왔고.

오늘은 당장 음악 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꿀리지 않을, 박수갈채 받아 마땅할 직접 작곡한 곡까지 가져와 버렸으니.

이쯤 되면 재능에 질투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경외심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데 소년은 그런 자신에 전혀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그저 담담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정말로, 지금 자기가 선보인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누나라면 분명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인사치레 비슷한, 그냥 듣기 좋은 근거 없는 덕담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 왔던 소년의 행보와 지금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저 깊디깊은 눈동자를 보면.

왠지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묘한 기시감에 유성은은 잠시 넋을 잃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이지…… 나이는 중학생 주제에 어른스럽기는.”

결국 유성은은 평소의 그처럼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자신보다 10살은 족히 어린 꼬꼬마 소년에게 이렇게 위로받고 인정받게 될 줄이나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체 누가 과외를 받고 음악을 가르쳐 준다는 건지.

이미 주객전도는 한참을 넘어서도 완전히 뒤집힌 지 오래였다.

“동생 남친만 아니었더라면 누나가 콱 가로챘을 텐데.”

* * *

“네?”

헤어짐을 앞둔 유성은이 한 말은 아무리 회귀한 나라도 조금 소름이 끼쳤더랬다.

아마 이게 그녀가 유일하게 역으로 나를 놀래킨 한마디였을 정도니.

“왜. 우리 은하가 너 엄청 좋아하는 것 같은데. 눈치 좋은 네가 그런 걸 몰랐을 것 같지도 않고.”

“이제 겨우 중 1, 아니, 중 2잖아요. 자기감정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를 시기죠.”

그러면서 일단 동생 남친이라는 표현부터가 말도 안 된다며 쓰게 웃어넘기니.

“그래? 아쉽네.”

유성은은 자기 동생만 불쌍하게 됐다며, 오히려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원래 여자에게 처음 짝사랑한 남자가 첫 기준이 되는 법이야. 아무래도 이후엔 처음하고 계속 비교하게 되니까. 그런데 한국과고 출신에다 머리도 좋고 키도 크고, 훤칠하고, 음악도 잘하고 다재다능하니, 우리 은하 나중에 참 고생하겠다.”

그렇다면 내 전 아내는 대체 어떤 대단한 첫 번째와 날 비교했기에 탁란이라는 결말로 그 사달이 났을까.

이제 와 생각해 봐도 별 의미 없는 고민이었다.

이미 당시 이혼과 고소로 복수는 충분히 했고 위자료도 두둑이 챙겼으니까.

그게 회귀해서 없던 돈으로 된 게 문제였지.

“하여튼, 만나서 즐거웠어!”

유성은은 마지막 과외 날답게 살짝 아쉬움 담긴 미소로 활짝 웃어 보였다.

“다음엔 동생이랑 같이 한번 만나자! 네 말대로 정말 나중에 모두가 날 인정해 줄 정도로 유명해지면, 정말 크게 한턱 쏠게!”

으레 그렇듯 흔한 인사치레 같은 감사에 나 역시 비슷한 인사말로 그녀를 보냈다.

하지만 저게 어쩌면 빈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나만은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 뮤튜브 천만 구독자.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음악 뮤튜버.’

본명, 유성은.

서울음대 중퇴에다, 아직 안 정해진 미래의 예명과 채널 이름은 『K-Fla』로.

미래에 뮤튜브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1천만 구독자를 돌파할 대중음악계의 초신성.

‘설마 그게 유은하 언니일 줄은 몰랐지.’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혹시나 싶었고.

이후 안력이 띄워 주는 상태 창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논문 읽을 때 노동요로 자주 들었었는데.’

알고 보니 무척이나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바로 유은하의 언니인 유성은이었을 줄이야.

그런데 그게 또 대중적으로 뜨기 전인 재야의 그녀였으니.

안면을 트는 걸 넘어 꽤나 유의미한 관계를 구축해 버린 지금, 어쩌면 내 인맥은 이번에도 또 한 단계 발돋움한 걸지도 몰랐다.

재계와 학계, 그리고 이제는 연예계까지.

이렇게 되니 앞으로는 정계도 뚫어야 하나 그런 생각마저도 들었다.

‘혹시 모르지. 분야 막론하고 일단 내 영향력을 넓히는 게 미래의 내게 도움이 될지.’

하여튼 유명 인맥을 미리 만들어 놔서 나쁠 게 없다는 건 학계의 정설.

게다가 재능이라는 것에 고심하던 내 한때나마를 떠올리게 해 줬던 그녀이지 않나.

게다가 나름 공짜로 음악 과외도 받았고.

“Q-Fla가 좋겠네요.”

그러니 이 정도 오지랖은 날 회귀시킨 신께서도 기분 좋게 지켜봐 주시리라 믿는다.

“응? 큐…… 뭐라구?”

“Q-Fla요. 나중에 예명 정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 주세요.”

“플라는 플랫, 플라워에서 따온 거 같구…… Q는 뭐야?”

“퀀텀, 양자요.”

“……진짜 싫은데.”

이래서 음악 하는 사람들은 안 돼.

낭만을 모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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