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생활 실패 후 다시 사는 천재 카이스트생-95화 (95/134)

제95화

#95. 미국의 방식

칭화대의 교수이자 천인계획 중 한 명.

또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1회 차 땐 그곳의 양자기술위원회 부문의 의장이었던 왕우 교수.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아니, 좀 의미가 다른가. 하여튼.’

그의 실력은 1회 차 때 한번 겪어 봤던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비겁하고 썩은 나라와 조직에 속해 있다고 한들.

그래도 의장급인 놈의 실력은 이렇게 편집부까지 찾아와서 큰소리 떵떵 칠 정도는 되었다.

적어도 이런 연구 좀 하는 학부 연구생 혹은 대학원 신입생들이 쓸 법한 논문이나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 말인즉슨.

“휘하 대학원생이 한 거 그냥 당신 이름으로 제출한 거 아닙니까?”

뻔하지.

놈의 성정은 황 교수와 비슷하다.

나도 한때 대학원 다니면서 분명 내가 연구하고 실험한 건데, 나중에 보니 1저자에 내 이름이 아닌 황 교수 이름이 실린 적이 있었으니까.

다르다고 하면 황 교수 그놈보다 더 교활하고 양심 없다는 점일까.

심지어 중국이니까,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터.

“……!”

왕우 교수는 정곡을 찔렸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반박했다간 자기는 이런 대학원 신입생 수준 논문이나 쓰는 실력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꼴이며.

긍정했다간 대학원생 논문을 빼앗는 악덕 교수이자, 심지어 표절을 넘어선 남의 논문을 갈취했다는 걸 자백하는 모양새였으니.

“굳이 그런 게 아니라도 깔 건 수두룩합니다. 자, 일단 첫 페이지 초록부터 차근차근 짚어 드리죠.”

이후에도 나와 왕우 교수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오갔다.

속된 말로는 단순한 물리 지식 대결.

그리고 열에 열 전부 내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첫 페이지 끝. 아예 새로 써야 하는 수준이군요.”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

수식 전개와 증명.

그리고 그걸 글과 함께 논문으로 풀어내는 본문과 쐐기를 꽂을 예쁜 그림과 그래프까지.

“그래서 인정하시겠습니까? 자기가 아닌 대학원생이 쓴 게 맞다고. 아니면 계속 가 보죠. 자, 두 번째 페이지.”

그 어느 것 하나로도 내 것과 승부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출간하고자 하는 건 그의 상상 이상으로 훨씬 더 앞서 있었다.

말 그대로 미래의 지식이 녹아 있었기에.

“……트, 틀렸어! 방금 자네가 말한 것에는 지대한 물리학적 오류가―”

“맞아요. 잘 짚어내셨네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방금 말한 건 당신이 스스로 썼다고 주장하는 논문에서 가져온 겁니다. 굳이 틀렸다고 알려 줄 필요도 없겠군요. 알아서 깨달았으니.”

“……?!”

그가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없었다.

여태껏 일평생의 경험을 끄집어내 보아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것도 안 되면 교수로서의 권위를, 혹은 업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겁박을.

“이, 이, 이, 이……!!”

그러다가 이내 아무것도 안 되니까.

“……이 소국의 애송이 주제에!!”

끝에 가서는 자신의 뒷배를 호가호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감히 대국인 형님이나 다름없는 우리 중국에 그따위로 입을 놀리고서 감히 네가 무사할 줄 아느냐?!”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곧 사단이 정리될 전조이기도 했으니까.

“거기까지입니다, 프로페서 왕.”

지금까지의 논쟁, 사실상 나의 일방적인 지적이었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본 국장이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네덜란드 미국인답게 185는 훌쩍 넘었던 그가 왕우 교수를 내려다보았다.

이전에는 본 적 없던 매우 싸늘한 눈빛이었다.

“계속 내부 출판 과정에 간섭하실 생각이라면, 앞으로 영원토록 당신의 PRL 투고는 반려될 겁니다.”

“무슨……!”

“실제로 그런 규정이 있습니다. 아직은 상황 증거뿐입니다만, 정말로 대학원생의 논문을 갈취한 게 확인된다면 어렵지 않지요. 그렇게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싶으시다면 계속 여기서 무의미한 결백을 주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크윽?!”

순간 그의 주먹이 번쩍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앞으로 내지르지는 못했다.

나름 자기도 교수라는 걸, 그리고 지금의 행위가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 정도는 안다는 걸까.

비행기 타고 중국에서 미국으로 날아와서 이런 난리까지 쳐 놓고서, 정작 일을 완전히 그르칠 배짱은 없는 듯 보였다.

쾅!

왕우 교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이 나갔다.

아쉬웠다.

회귀 전에는 도통 보질 못했던 그 재미난 얼굴 좀 더 구경해 보려고 했더니만.

일단 회귀 전 인생에서 만났을 때는 공산당 내에서도 꽤 높은 위치라고 들었고.

그래서 항상 뭔 어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흑막이라도 된 양, 맨날 새빨간 화면으로 자기 얼굴만 가린 채 목소리만 들려줬던 그였는데.

이렇게 오늘 처음으로 직접 얼굴 보니까 뭐.

“짱깨 먹고 싶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인상이었더라.

* * *

한바탕 사달이 오갔지만, 경준을 최우선으로 보고 가자는 토마슨 국장의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하다.’

오히려 이번 일로 더욱 확실해졌을 뿐이었다.

이 코리안 소년의 실력을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며,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상대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걸.

‘아니, 안 꿀리는 정도가 아니지. 훨씬 정도를 뛰어넘었다. 마치 폰 노이만의 재림이다.’

폰 노이만.

아인슈타인의 사후,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물리학, 수학, 암호학, 전자공학, 정보학 등 온갖 분야를 섭렵했으며 문명을 1세기 앞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어쩌면 응용과학 쪽에서는 아인슈타인보다도 뛰어났던 사람.

그야 그가 있었기에 집적회로가 있고, 지금의 컴퓨터가 있었으며, 정보화 시대라는 것이 열리게 되었으니까.

‘그때와 똑같아. 다만 컴퓨터가 양자컴퓨터가 되었을 뿐.’

PRL 특집 저널에 들어갈 총 126가지의 논문.

그중 제일 마지막인 126번째 ‘유니버셜 퀀텀 알고리즘’ 논문.

그건 현대의 전자회로 컴퓨터처럼 일반적인 ‘코딩’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었다.

‘아직은 이론의 단계일 뿐이야. 하지만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된다면…… 어쩌면 반도체 컴퓨터가 아닌 양자컴퓨터로 게임을 하게 되는 날이 정말로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렇기에.

토마슨 국장은 코딩의 가능성을 제시한 126번째 논문보다, 실은 그 이전 번호들이 더욱 가치 있다고 보고 있었다.

‘111번부터 125번까지의 논문.’

전부 광자칩(Photonic Chip)에 관한 내용이었다.

회의실 책상 크기의 광학 테이블을 손바닥보다도 작은 칩의 크기로 소형화시킬 수 있는, 그 가능성과 구체적인 방법과 이론이 담긴 논문들이었다.

‘집적회로로 전자공학 신시대의 포문을 쐈던 폰 노이만과 똑같다. 무서울 정도야.’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건물 한 층 넓이의 컴퓨터에서.

집적회로의 발명 덕에 손바닥보다도 작은 반도체 칩으로 컴퓨터가 소형화되었듯이.

경준, 그는 그 두 과정을 동시에 선보이고자 했다.

전자와 전류로 움직이는 고전 컴퓨터에서.

광양자(光陽子)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로.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앞으로 일에는 전혀 지장 없을 겁니다, 미스터 한.”

국장은 헛기침과 함께 이야기를 정리했다.

“괜히 미국까지 오게 해서 안 좋은 경험만 시켜 드린 게 아닐까 싶군요.”

“괜찮아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으니까요. 덕분에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몰랐던 의심도 벗겨 냈고요.”

소년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토마슨 국장의 두 눈이 화등잔만치 커졌다.

‘좋은 기회였다고……? 설마 일이 언젠가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는 건가?’

생각해 보니 아까도, 그리고 왕우 교수가 떠난 지금도.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조금도 당황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호기롭게 대적했으며 교수 상대로도 대담하게 이겨 보이지 않았었나.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준비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알았는데, 설마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요.”

저 말이 바로 그 증거였다.

저렇게 몰랐다고 한다는 건, 반대로 알지 않고서는 못 하는 말이었으니까.

“차이나 칭화대의 응용물리학과의 왕우 교수, 안 그래도 저희 PRL뿐만 아니라 다른 자매지에서도 자주 말이 나오는 교수였습니다. 심지어 여기 APS(미국 물리학회) 말고도 네이처나 사이언스에서도 유명했지요. 안 좋은 의미로.”

“뭐, 중국이니까요.”

중국이 특히나 학계 쪽에서 계속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이유는 명확했다.

대학 혹은 연구소의 제한된 연구비로 겨우 논문을 내는 다른 나라들과는 그 성정이 아예 달랐다.

공산당의 무지막지한 자본과 지원으로, 온갖 합법과 불법을 오가며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기지와 아이디어를 발휘해서 업계의 누군가가 논문을 내면, 그걸 그대로 가져와서 단순히 크기와 볼륨만 불려서 성과를 뽑아낸다. 그리고 그걸로 논문을 찍어내는 방식이지요. 왕우 교수는 특히나 거기에 능했고 그래서 말도 많았던 연구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중국발 논문을 리젝할 수도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게, 학계에서 스케일을 늘리는 것도 논문을 내는 하나의 방식에 속했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물리와 아이디어는 없다.

“스케일을 늘리는 것도 분명 과학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왕우 교수는 그걸 역으로 노렸죠.”

하지만 오로지 스케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급의 논문을 따내는 건 중국이라서 가능한 일.

공산당의 압도적인 지원과 자본 때려 박기가 없다면 감히 시도도 못 할 방법이기도 했다.

매년 매달 매일, 중국 이름으로 된 논문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여기 APS에서도 윗선 중 중국에 로비받은 위원들이 있다. 그것도 꽤 많이.’

학계에서 중국의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일은 단순히 로비 말고도 많았다.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온갖 더러운 술수를 부리기 일쑤였다.

‘괜찮은 아이디어의 논문이 있다면, 그것을 쓴 랩의 대학원생을 노려서 솔깃할 만한 금액으로 직접 사람을 빼 오는 건 기본. 교수에게 직접 접근해서 돈 줄 테니 공동 연구 하자며 꼬드기는 건 너무나도 흔하지.’

그리고 나중에 쓸모없어지면 토사구팽하는 건 국룰.

실제로 그렇게 기술 유출했다가 버려진 기술자나 중국에 돈 받아먹은 교수들이 뉴스에 간간이 나오지 않던가.

‘특히나 양자기술에 있어서 더욱 심해. 이야기 들려오는 게 너무 많아. 오늘 일도 그렇고.’

반도체나 자동차로는 너무 늦었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 중국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기술에 미래를 걸었다.

기술 특허가 중요한 반도체 하드웨어가 아닌, 인력을 갈아 넣고 잘 베끼면 따라잡을 수 있는 IT 소프트웨어에.

이미 200년 역사 속에서 고도의 기계공학 기술이 축적되어 온 내연기관 엔진이 아닌, 비교적 최근 기술인 전기 차 기술을.

그리고 전자공학 그다음 세대의 미래 기술인 양자 테크놀로지까지.

옛 중화사상을 아직도 꿈꾸며, 향후 언젠가 미국을 따라잡고 뛰어넘기 위해서.

중국은 사활을 걸고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신기술에 투자하고 있었다.

‘작년에 느닷없이 부시 정부에서 양자 기술에 1조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분명 중국을 의식한 거겠지. 임기 말이었는데도 문제없이 국회에서 바로 통과됐고.’

미국과 중국의 대결.

아직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은, 업계 사람들만 아는 그 전초전.

그 한창인 와중에 같은 아시안에서, 하지만 미국의 동맹인 곳에서.

갑자기 이런 천재가 나타나는 건, 과연 어떤 운명의 여신의 장난일까.

‘앞으론 유럽과 아메리카가 아닌, 태평양.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이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기에 자유와 정의를 표방하는 세계의 경찰인 미국인으로서.

그리고 미국 물리학회 소속의 PRL 저널 국장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특집 저널은 문제없이 최우선순위로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장으로서 한 연구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떡고물을,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안겨 주는 것.

그리고 그와 든든한 동맹이자 훌륭한 친구가 되는 것.

비록 그 대상이 전혀 학계에서 본 적 없는 소년이라고 할지라도, 실력만 있다면 인정하고 최고의 대우를 해 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스터 한.”

그것이 미국의 방식이었다.

* * *

공산당 중앙조직부 소속 인재유치위원회.

그곳에서 자연과학기술 부문을 담당하는, 중국에 단 370명밖에 없다는 중앙위원 직함을 달고 있는 자.

-최근에 실적이 저조하더군, 왕우 교수.

“…….”

지직, 지지직.

얼굴 없이 새빨간 화면만 보이는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왕우 교수는 굳은 채로 마른침만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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