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100. 어떻습니까, 아름답죠?
“……손을? 위험한 거 아니야?”
“괜찮아요. 사장님 손에는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
굳이 자기 손에 ‘는’이라는 조사를 붙인 게 매우 수상했다.
그렇지만 계속된 재촉에 일단 살짝 새끼손가락만 슥 내밀어 보는 그녀였다.
이 정도라면 만약 잘못돼서 화상 입어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광섬유부터 샘플까지 5.38미터쯤 되니까, 17.95나노초 뒤로 측정하도록 설정하고…… 자 끝났어요.”
“뭐, 뭣? 벌써?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야 테라헤르츠니까요. 손가락 정돈 가볍게 통과하죠.”
유주희의 새끼손가락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래도 분명 영향은 끼쳤어요. 테라헤르츠 파의 위상이 새끼손가락을 통과하면서 바뀌었고, 그걸 분석하게 되면 주희 씨의 손가락 내부 구조가 어떤지 두께가 어떻게 되는지 등등. 그런 걸 다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아하, 이렇게 해서 몸에 아무 손상 없이 암 진단을 하겠다는 거구나…….”
“아니요, 이건 암 진단 용도가 아닙니다.”
경준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암을 표적으로 해서 죽이는 용도죠.”
그때였다.
“……탄 냄새?”
갑자기 탄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것도 단백질이 타는 묘하게 기분 나쁜 냄새가.
“……?!”
냄새의 진원지를 파악한 유주희는 순간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야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가볍게 통과해, 정확히 5.38m 떨어져 있던 샘플이.
“대, 대체 어떻게…….”
새까맣게 타 버렸으니까.
* * *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
양자압축(Quantum Squeezing).
“결국엔 모든 빛의 양자 기술은 이 두 가지 기술로 귀결됩니다.”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그리고 양자측정.
빛으로 해내는 모든 양자 기술은 전부 저 두 가지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우선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부터 보자면.
“역대급 천재라고 불렸던 아인슈타인조차도 그 말도 안 되는 현상 앞에선 무릎을 꿇고 말았죠.”
EPR-역설.
100년 전, 아인슈타인(E)은 당대 저명한 과학자인 포돌스키(P)와 로젠(R)과 함께 양자얽힘을 부정했었다.
그야 현실(Realism)로 정의되는 이 세계에 양자얽힘이란 개념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양자적으로 얽힌 물체는 제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영향을 끼치고 간섭할 수 있다.”
정말 거리는 아무 상관 없었다.
일단 양자얽힘이 유지만 될 수 있다면.
지구와 화성이든.
안드로메다와 우리은하든.
혹은 우주의 양 끝에 버금가는 거리라고 할지라도.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물체는 빛의 속도를 넘어 서로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상식선에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서울에 있는 고양이가 죽음으로 관측되는 순간, 얽힌 부산의 고양이도 죽어 버린다는 뜻이니까.’
그건 마치 일심동체의 운명을 타고난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론으로, 실험으로 밝혀진,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현상 중 하나입니다.”
비록 둘 사이에 그 어떠한 힘도 작용하지 않았고.
빛의 속도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날 때부터 서로 ‘얽힌’ 두 물체는 결국엔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
그리고 모든 양자 기술은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활용하느냐로 요약될 수 있었다.
“양자컴퓨터란 그 운명의 빨간 실을 인공적으로 수없이 엮어서 계산으로 승화시킨 작품.”
말로만 들어도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작업이었다.
인간의 이지를 넘어서 신의 영역에 감히 도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려운 기술이죠. 양자컴퓨터가 상용화가 계속 안 되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쉽게도 양자얽힘이라고 불리는 그 운명의 빨간 실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가냘픈 연결이었기에.
조금만 온도가 튀어도 바로 깨졌다.
살짝 툭 치기만 해도 그 진동에 실은 끊어졌다.
“초전도체 기반의 양자컴퓨터가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유지해야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빛은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
초속 299,792,458미터.
“빛의 속도. 빛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모든 건 멈춰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아무리 온도가 높아도.
물이 펄펄 끓어 증기가 넘치는 환경에서도.
전자와 이온이 요동치는 초고온의 플라즈마 속에서라도.
결국 빛의 입장에서 보자면 멈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빛에겐 모든 게 멈춰 있었기에, 차갑게 얼어붙은 것과도 같았다.
“그래서 빛은 그 어떤 물질보다도 양자얽힘이 강하게 유지됩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운명의 빨간 실을 엮어내고 짜낼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바로―
“―양자압축(Quantum Squeezing).”
경준이 만들어 낸 아주 위험한 레이저라는 것이 바로 그 기술들의 집약체이자 정수였다.
『양자압축』
서로 다른 방향으로 쥐어짠 두 빛을 하나로 합치면서.
『양자얽힘』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의 실을 엮는다.
그 강도는 얼마나 빛을 쥐어짜 내어 압축시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 수치적인 척도는 약 마이너스 10데시벨.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가지는 요동보다 10배 가까이 노이즈가 작도록 빛을 압축시켰죠. 그렇게 짜낸 두 빛을 하나로 엮어서 서로 얽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준이 만든 테라헤르츠 레이저는 일반 레이저와 다르게 2개의 빔이 발사된다.
하나는 유주희의 손가락을 통과해서 샘플을 향해 쏘아졌고.
그리고 반대로 쏘아진 다른 하나는 캐리어 속 발진기 안을 돌고 돌았다.
“발진기 안에 돌고 있는 다른 하나의 빛을 ‘측정’함으로써 바깥 샘플로 쏘아진 빛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날 때부터 그 두 빛은 운명의 빨간 실로 얽혀 있었으니까요.”
측정은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위치를 측정할 수도 있고, 운동량을 측정할 수도 있었다.
“이 실험에서 사용한 측정은 위치입니다. 발진기 안에 돌고 도는 빛이 정확히 5.38m 진행하도록 시간 딜레이를 둬서 측정하게 되면, 바깥으로 쏘아진 빛의 위치도 정확히 그 위치로 결정되게 됩니다.”
경준이 한 손을 뻗어 광학 테이블 위의 샘플을 소개했다.
샘플은 이미 테라헤르츠 레이저에 지져져서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러나 레이저가 방출된 팁과 타 버린 샘플 사이에 비치된 돼지고기는 날것 그대로였다.
테라헤르츠의 특성대로 큰 영향 없이 그대로 투과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해서 통신에 쓰면 양자통신, 측정에 활용하면 양자측정, 연산으로까지 발전시키면 양자컴퓨터가 되는 거죠. 그리고 방금 보여 드린 기술은 측정이 되겠네요.”
테라헤르츠 세기를 매우 강하게 해서 측정하면 암을 표적으로 조져 버릴 수 있는 기술이 됐다.
반대로 본래 목적대로 테라헤르츠 세기를 약하게 해서 측정하게 되면 암 위치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특정할 수 있었다.
“물론 측정된 데이터를 보고 어떤 방법론으로 암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건 그렉, 당신의 이론과 연구가 필요하겠지만요. 하지만 할 수 있을 겁니다. 진공 요동(Vacuum Fluctuation)보다도 10배 가까이 압축된 빛이 기존에 방해됐던 노이즈를 전부 집어삼켜 줄 테니까요. 자, 한번 봐 보세요.”
경준은 방금 측정해서 A4로 뽑은 데이터를 그렉에게 건넸다.
“허억…… 헉…… 허억…….”
건네받은 데이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거친 숨이 몰아쉬어 나오며 전신이 전율로 떨렸다.
MIT 광학 팀이 초기에 측정했던 데이터와 똑같은 데이터.
“이, 이렇게 선명한 데이터는……. 저, 정말로 이게…… 테라헤르츠…… 라고……?”
“방금 직접 보셨잖아요?”
똑같은 데이터였지만, 보이는 그래프가 완전히 달랐다.
뿌옇게 분산되어 마구잡이로 찍혔던 수많은 점이 깔끔하게 한 곳으로 압축되어 하나의 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하나의 점은 쭉 이어져 말끔한 곡선을 그렸다.
그토록 원하던 노이즈가 완전히 제거된 그래프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짝!
그렉이 힘차게 허벅지를 때렸던 것도 동시였다.
“이 기술이 있다면 그간 엄두도 내지 못했던 DNA를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것도 꿈이 아니야……!”
단지 두 빛 사이에 운명의 실을 하나 엮었을 뿐이었다.
이보다 많은 정보를 다뤄야 하는 『통신』은 힘들었으며, 복잡한 연산까지 병행해야 하는 『컴퓨팅』은 요원했다.
그래서 아직은 『측정』이 한계.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분명…… 가능하다……!! 지금 당장 암세포의 생리와 특정성을 판별해 내는 게 가능하다고!!”
지금, 이 순간.
이 시대의 과학은 수십 년 진보했다.
* * *
『크하하! 공산당을 얕본 넌 큰일 난 거다! 천인계획은 성공한다! 중국몽은 도래한다!』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눈을 떴다.
“……헙?!”
주변을 둘러보니 5성급 최고급 호텔방.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명물.
페타스코 강과 바다가 이어지는 내셔널 아쿠아리움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드높은 창문 앞에서.
타닥, 타다닥.
한 남자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건 논문의 초고였다.
‘아름다워…….’
노이즈 하나 없는 깔끔한 그래프가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심플하고 독특한 광학 실험 셋업이 3D 프로그램으로 작성돼 화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너머, HDMI 선으로 연결된 TV에서는 특허 출원서로 보이는 서류가 띄워져 있었다.
거기에는 논문에 나와 있지 않은 세부 그림들이 복잡하지만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건…… 뭐지……? 알아볼 수가…….’
저게 어떤 실험이고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 것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수십 년 전 처음 물리학과에 입학했을 때, 당시 첫 전공 책을 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
과연 내가 이 어려운 학문을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 비롯된 두려움과.
난생처음 보는 복잡하고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이는 수식들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설렘.
‘아아, 그래……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물리학…….’
멍한 정신 상태로 그렇게 생각했을 때.
탁.
야경 앞의 남자가 가볍게 엔터를 눌렀다.
그러자 데이터가 저장됐다는 표시와 함께 화면은 새까맣게 어둠으로 꺼졌다.
“어떻습니까, 아름답죠?”
드디어 남자가 의자와 함께 몸을 돌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던,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누구의 얼굴보다도 뇌리에 확실하게 박혀 버리고 만.
‘한……!!’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애송이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읍, 으읍! 읍?!”
당장 욕지거리를 내뱉으려고 했지만, 입이 봉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음, 보아하니 제대로 이해 못 한 표정이네요.”
핏발 선 자신을 앞두고도 그는 태연자약하게 연기하듯 턱을 괴었다.
그게 더 화를 돋워 온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입과 마찬가지로 몸도 똑같이 봉해져 있다는 사실만 더욱 확실해질 뿐이었다.
“솔직히 실망이네요. 천인계획으로 뽑힌 인재가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다니.”
몸을 던질 각오까지 하고 날뛰려고 했던 전신이 순간 굳고 말았다.
그야 눈앞의 애송이로선 결코 알 리 없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까.
“이래 가지곤 양자기술위원회의 의장 자리는 꿈도 못 꾸겠는데요?”
게다가 단어보다 더한 그 안의 내막까지 자신이 아닌 다른 입에서 들어 버렸으니.
무언가 상황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하게 꼬여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만이 계속해서 뇌리에 맴돌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이어진 그의 말에서 지금 건 약과에 불과했다는 걸, 싫어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민웨이, 제융, 타오쥔. 당신이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 잡아먹으려고 계획하고 있는 연구자들. 슈란, 구젠화, 위슈전. 당신의 훌륭한 후원자들. 그리고.”
저벅.
소년이 한 발짝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이내 그가 무릎을 살짝 굽혀 일부러 눈높이를 맞췄다.
눈앞의 소년은 이미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왕우 교수 당신이 『그분』이라고 부르는 공산당의 중간위원.”
아니, 파악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다들 적잖이 실망하겠어요. 안 그래요?”
“읍, 으읍……! 읍읍……!!”
이미 눈앞의 소년은 『그분』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