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난리 났다!
마취가 풀렸다.
“으음…….”
전신 마취가 아닌 수면 마취.
전신의 감각을 소실시키는 게 아닌, 단지 의식 수준을 수면 상태로 떨어트리는 것이었기에.
국왕은 큰 부담 없이 치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치료는…… 벌써 끝난 겐가?”
국왕은 이상하리만치 고통이 없었다.
복부 뒤쪽에 미약하게 아리는 감각은 있었지만, 그것도 아직 남아 있는 마취 기운에 고통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술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야 그럴 게 옥체에는 단 하나도 칼 댄 흔적조차 없었으니까.
“특수 레이저로 치료해서 그렇습니다.”
멍하니 주변을 살피는 국왕의 시야에 한 소년의 모습에 들어왔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폐하의 몸을 손상 없이 통과하게 해서 원하는 위치에서만 반응하게 하는 특수한 상태의 레이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국왕도 레이저의 원리는 몰라도, 그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야 동맹국인 미국이 레이저포를 이용한 저대공 미사일 방어체계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사우디도 나중에 그 기술을 사 와서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지키는 구축함에 달면 좋지 않을까 하고 고민도 하고 있었으니.
“네. 자연의 근본 원리를 극한까지 적용한 기술이에요. 미시 세계의 원리죠.”
경준은 물리에 문외한인 국왕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거시 세계인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매우 자그만 입자 크기의 세계에선 두 입자가 마치 운명의 빨간 실로 엮인 것처럼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를 인질로 잡아서 다른 하나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식이죠.”
“그건 마치…… 귀신 같은 존재로군.”
거짓말이었다.
뜸을 들이던 중, 단어를 중간에 바꾸었다.
그건 마치 신과도 같지 않은가.
비록 인간이 아닌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운명을 한데 엮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니.
그것이야말로 신의 힘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국왕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소년에게 들었던 설명이 기이해서가 아니었다.
‘몸의 고통이 거의 사라졌다…….’
치료는 진짜였다.
자신의 몸인 만큼, 그리고 한 번 생사의 경계선에서 헤매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마취가 들어 수마에 빠지기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었던 감각.
단전에 가시 쇠공이 박혀 있는 것만 같았던 고통.
그것이 귀신같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단지 그런 게 있었단 흔적만이 남아 은은히 아려 오는 것 말고는, 오히려 병에 걸린 걸 알기 전보다 훨씬 쌩쌩해진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왜 그대만이 있느냐?”
주변을 둘러보니 소년뿐이었다.
자신의 전담의였던 아민도, 그리고 소년을 데려온 장본인인 왕세자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마취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셋 다 보였던 것 같은데.
“아민은 거의 한 달간 제대로 못 자고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요. 치료가 끝나고 바로 쓰러졌어요.”
소년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가장 혈안이 된 게 아민이었죠. 폐하를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당일치기로 한국도 갔다 올 정도였다니까요. 연구소가 있는 제 본국에.”
“그렇군……. 아민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짐이 피의 대군주라 불렸을 당시에도 건강에 누가 된다 싶으면 거침없이 직언했던 자였으니.”
왕세자가 철혈의 대군주라 불렸던 것의 원전.
30년 전 당시 치열했던 승계를 피와 총칼로 잡아낸 후, 신하와 국민 모두가 숙청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적에.
오로지 아민 그만이 자신에게 직언할 수 있었던 신하였다.
그것도 특히 건강과 관련된 문제라고 한다면, 짐의 목숨을 제 목숨처럼 생각했었으니까.
“그래, 그땐 그랬었지. 그렇다면 왕세자가 여기 없는 이유는 알 것 같구나.”
국왕은 침소의 바깥을 보았다.
드넓은 창문 너머로 구름 한 점 없는 사우디의 하늘이 보였다.
‘사실 이대로 죽고자 했거늘.’
그는 철혈의 대군주. 그 원전이라 불렸던 존재.
죽음이야 두렵지 않았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이 손에 묻혔는가.
오히려 벌을 받자면 달게 받아야 했다.
다만 미련이라면, 휘하의 자식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만들었다는 점일까.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러나 실제로 현 왕세자인 장남이 그렇게 결정됐다.
왕세자의 탓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렇게 가르쳤었으니.
제왕학이란, 그런 법이었다.
“별 상관없지 않아요?”
그때였다.
하늘을 향했던 왕의 시선이 무심코 소년에게로 갔다.
“형제끼리 서로 치고받았든 죽였든 뭘 했든, 어차피 왕궁 내에서의 일이잖아요. 딱히 관련 없는 일반인을 죽인 것도 아닌데. 솔직히 국민들은 아무 생각 없을걸요.”
“뭐라……?”
“오히려 최근엔 금융 위기로 기름값이 떡상했잖아요. 역시 산유국이라고 할까요. 어디 북쪽 나라처럼 고난의 행군을 시키고 막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정말로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듯.
마치 타인처럼.
그런 무심한 목소리.
“원래 나이가 들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해서 감수성이 높아진다고들 하죠. 예컨대―”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내 대의 죄는 이 늙은 몸인 내가 전부 쥐고 돌아가야 한다.”
소년은 마치 왕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 계속 말했다.
“―아버지라는, 아들에게 결코 왕위를 물려줄 생각 없는 욕심 가득한 군주로서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칼날이 적어도 짐을 향해 올 뿐 적어도 서로를 향해 가지는 않을 테니.”
국왕의 췌장암을 치료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전부 정리하면서.
탁.
소년이 노트북을 덮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둬요. 차라리 그냥 깔끔하게 왕세자한테 직접 왕관 물려주고 요양이나 하시는 게 나아 보이세요.”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년의 눈이 왕을 향했다.
아까와 같은 무심하고도 무감정한 눈빛.
그러나 감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왕은 느꼈다.
“마침 아드님이 목숨도 살려 줬겠다, 그냥 지금 바로 승계 확정 짓고 왕관 씌워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소년이 미소 지었다.
“좋게 좋게 가자고요. 저로선 유력자 두 분 다 살아 계시는 게 더 이득이니까요.”
그 미소와 방금 한 말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정말로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보아 그냥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을 적당히 말한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이 기분은 뭔가.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뱃속을 잠식해 가던 굳은 때를 레이저로 단숨에 태워 준 것도 그렇고, 방금 쓸데없는 걱정 역시 가볍게 날려 준 것도 그렇고.
정말이지 신비한 소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푸하핫!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사우디의 국왕, 압둘라 빈 아지즈 살리만 알시드는 결국 껄껄 웃어 버리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경을 헤맸던 게 거짓말과도 같은 모습.
이내 그가 후련해진 표정으로 소년에게 물었다.
“짐의 생명의 은인인 그대에겐 어떤 보답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그러니 다시 묻겠네. 무엇을 바라지?”
그러자 소년은 기다렸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기왕 무례가 되지 않는다면 영상까지, 경준은 그리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 * *
몇 달 전 사우디의 국왕이 췌장암으로 드러눕고 그 왕세자가 국무 대행을 맡았다는 뉴스들.
일반인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던 사안이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국제 정세에 쓸데없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정부 부처, 그것도 외교 쪽 관련된 사람 말고는 머릿속에 넣어두지도 않았다.
애초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 사우디는 어디서나 기름이 철철 나오는 산유국, 더 나아가면 미국과 친한 중동 나라? 이게 전부였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그러나 그 인식이 완전히 바뀌는 뉴스가 폭탄과도 같이 떴다.
『폭탄 발언 이후 한 달간 잠행, 그런데 알고 보니 사우디에?』
『천재 물리 소년 한경준 군, 사우디 국왕과 단둘이 인증 샷에 양국 발칵』
『해외 동영상 사이트 채널에 왕세자와 친근하게 밥 먹고 있는 영상까지 외교부 왈 ‘출국 기록 없어’』
갑자기 뜬 경준의 행방에 대한민국은 아주 난리였다.
그야 대통령하고도 멀찍이 떨어진 의전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그랬었는데, 그런 왕세자하고 무척이나 친근하게 사적인 식사 자리를 가지다니.
“이건 우리 대한민국 정부를 패싱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여권도 비자도 없이 왕세자의 전용기에 타서 사우디로 갔다는 사실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선 불법 출국이기도 했고, 사우디 입장에서는 불법 입국이기도 했으니까.
“우리나라 인재를 멋대로 납치한 것이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장관의 말대로, 대한민국 정부를 패싱하고 국민 납치로까지 볼 수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별수 없지 않나. 그런 걸 빌미로 했다간 저번 달의 자원 외교 성과를 수포로 돌리자는 얘기밖에 더 되겠나?”
그런데 그중 그 어떤 것도 대중 사이에선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실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었기 때문.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애초에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죠. 지금 여론을 보십시오. 국민 중 아무도 그런 건 관심 없어 하고 있습니다.”
『췌장암 말기 판정받았던 사우디 전 국왕 오늘로 정식 완치 판정!』
『대한민국 언론이 무시했던 천재 소년 결국 사우디에서 직접 증명해내』
『사우디 국왕 자리 물려받은 전 왕세자 “한경준은 우리 사우디의 최고 은인이자 내 절친. 그에겐 사우디 왕가 직통 다이아몬드 카드 제공할 예정.” 왕자급 극빈 대우』
『대한민국 인재 또 빼앗기나? 10년간 국내 석·박사급 인력, 국내 처참한 대우에 계속 해외로 유출돼』
여론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있었다.
그간 온갖 전문가들과 언론 패널에서 대차게 깠던 경준의 폭탄 발언.
감히 지금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마저 모욕하는 거냐며, 그런 비방의 수준까지 갔었던 말이 지금은 완전히 쏙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여론에 맞추어, 언론들도 어느새 태세를 바꾸어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다.
이대로 대한민국의 인재, 한경준이 떠나가는 걸 두고만 볼 것이냐며.
“크윽…… 언론사에 손을 써서 그에게 나고 자란 나라인 한국을 버릴 거냐는 여론을 주도하는 건…….”
“매국노 프레임으로 몰고 가자는 겁니까? 그건 우리 정부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높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도 최저 투표율로 탄생한 정권, 씨알도 안 먹힐 겁니다, 분명.”
“지금 대통령 각하 앞에서 무슨 무례한……! 자네가 그러고도 비서실장이라고!”
갑자기 뜬 충격 소식에 대통령, 비서실장, 과기부·외교부 장관 등 여러 높은 의전들이 모인 자리.
그러나 이야기는 통일되지 않고 고성이 오갈 뿐이었다.
그야 이번 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크나큰 실책이 될 게 분명했으니.
아직 임기가 2년이 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지지율 30% 선이 무너지며 레임덕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마 여대야소 상황이라 탄핵까지는 안 갈 거라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을 뿐.
‘아니, 현 여당의 계파가 둘로 나뉘어 있는 걸 생각하면…….’
“……다들 진정하게.”
대통령이 그리 화두를 꺼내자 오갔던 고성이 겨우 가셨다.
그러나 흉흉한 분위기는 그대로.
대통령은 정말로 골치 아픈 상황이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가 불만을 표출한다면, 우리나라 국민인 한경준 군을 우리 정부에 말 한마디 없이 데려간 사실뿐이네. 그것도 단순히 유감 표출까지가 한계겠지.”
그 누구보다 기회와 약육강식의 논리를 잘 파악해 이 자리에 오른 그답게, 대통령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해냈다.
실제로 그 능력으로 1년 만에 곧바로 친미 관계를 되돌려 놓고 중동 여러 나라와 자원 외교까지 따냈던 것 아니었나.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던 걸 알고 있었던 만큼.
“중요한 건 우리의 의사도, 사우디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아니야.”
지금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로 한경준의 암 치료 기술을 명실상부한 사실로 인정하고, 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 줄 수 있도록, 아니, 총력을 다해서 그를 사수해내게.”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만약 경준을 사수해내지 못한다면, 이번엔 분명 광우병 시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지금 발등에 떨어지고 만 건 단순한 불이 아니라, 핵폭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폭파 버튼을 쥐고 있는 사람은.
“다들, 내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정권이 넘어가서 나가리되는 건 싫겠지?”
단연코 경준이라는 것까지도.
* * *
사우디에 축제판이 열리고, 대한민국의 발등에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당연히 난리가 난 건 한국만이 아니었다.
암이, 그것도 최악의 암이라 불리던 췌장암이 정복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전 세계는 난리가 났다.
특히.
“……흥, 우연히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섬세포암이었겠지. 나처럼.”
스테판 잽스.
에이폰의 CEO이자 스마트폰의 창시자.
“……한번 연락해 볼 수 있겠나?”
그와 같이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유력자라면, 더할 나위 없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