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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식당-5화 (5/613)

005화. 원 플러스 원 (1)

판타지 세계와 현대문명 세계의 차이점이란 무엇일까.

바로 마법과 과학의 차이다.

현대문명이 가지는 과학의 이점은 역시 간편함과 대량생산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휴지만 해도 그렇다.

테라에서 휴지란 소나무처럼 생긴 빙글빙글 나무라는 것에서 채취하는 고급 자원이다.

따라서 휴지는 귀족만 쓸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평민은 나뭇잎 등을 애용해야 한다.

그럼 현대문명이 무조건 좋지 않나?

그건 아니다.

“마법과 판타지는 과학이 실현 못 한 일도 가능하게 하지.”

대표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현대문명의 대결은 꽤 오래된 일이다.

인간의 음식은 염분 과다다.

따라서 음식물 쓰레기를 그대로 땅에 묻는다면 그 땅은 염분 과다로 인하여 쓸 수 없는 땅이 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현대문명은 분쇄 후 하수처리를 하는 디스포저와 미생물로 분해를 하는 디컴포저 등 다양한 수단을 써왔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하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도 처리를 위해서 상당한 재화를 소모한다.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는 해결법이 있다는 말씀.”

테라에서는 1가구당 한 마리의 푸딩 슬라임을 키우고 있다.

젤리형 몸을 가지고 있는 부정형의 몬스터.

이 몬스터는 효과적으로 음식물을 분해, 흡수, 소화한다.

많은 음식물을 소화한 푸딩 슬라임은 점차 크기를 키워 가는데, 그렇게 커진 슬라임을 적당량 잘라서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음식이 생산 과정과는 반대로 테라의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이 좋다.

즉, 이름 그대로 최고급의 푸딩 맛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되는 과정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이며.

맛이 있는 만큼 귀족에겐 금기시되는 물건이다.

“그래서 하층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지. 맛도 좋고 영양소도 풍부하고.”

특히 오랫동안 살려서 잘 키운 푸딩 슬라임은 그만큼 맛이 깊고 강해져서, 가문 대대로 푸딩 슬라임을 관리하고 물려주는 게 농가 자식의 의무였다.

300년 묵은 푸딩 슬라임의 푸딩은 정말이지, 꿀이 뚝뚝 떨어지는 품격 깊은 단맛이 난다.

현대문명의 과학기술보다 좋은 친환경 장치!

승우는 밥집을 열어보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푸딩 슬라임이 있다면 음식 쓰레기에 도덕적인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여간 그런 이유로.

“푸딩 슬라임을 키워야겠네. 겸사겸사 디저트도 제공할 수 있고 일석이조야.”

키운다면 지하실이 좋겠지.

확장공사라도 해볼까.

마침 운이 좋게도 인력이 지하실에서 자고 있었다.

식비 앤 숙박비 대신 몸으로 받도록 할까?

“큭큭.”

* * *

백강혁의 부관인 황지현은 살짝 애가 탔다.

휴가를 2일 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백강혁이 누군가?

재해복구지역 A섹터를 대표하는 헌터 중 하나다.

그가 필요한 긴급사태는 언제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비상시에도 연락이 닿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1분 1초의 연결 차이로 사람의 생사가 갈리는 세상.

휴가를 가더라도 연락은 돼야 하는 것.

그리고 그 연락망을 구축하는 게 바로 부관인 황지현의 일이다.

하지만 그가 연락이 되질 않는다.

무려 2일이나!

아주 죽은 듯이 얌전하다.

그렇게 있을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애가 타는 황지연이 구원투수를 불렀다.

백강혁의 친구이자 서포터 팀의 리더, 민 오키프다.

“친구 아니다.”

“예?”

“그 새끼랑 누가 친구라고?”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그나마 교우를 나누신 분이 민 오키프 님밖에 없어서 말이에요.”

“망할… 그래서 백강혁, 그 미친놈이 2일이나 연락이 안 된 다라?”

“예, 긴급 상황입니다. 백강혁 님이니까 어디 납치를 당하거나 구속, 감금을 당한 건 아니겠지만…….”

“당연하지. 퍼스트 오더가 어디 가서 처맞고 잡혀 있을 몸으로 보이나.”

처맞고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일이 없는 둘은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민이 뿌득 하고 이를 갈았다.

“이 개자식. 설마 사고 치고 감당 안 되니까 숨은 거 아냐?”

“미국에서 일어났다던 그 사건이 진짜인가요?”

“진짜야. 정말로 이능력을 남용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룰렛을 돌리다가 마피아들을 적으로 돌렸지.”

“하, 하하하.”

“그 다음에는 미연방 경찰들이랑 마피아가 싸우도록 유도하고 자기는 10일이나 숨어 있었다니까.”

“…한국에서는 굉장히 얌전히 있으신 거군요.”

“모국이다 이거지.”

민은 담배 필터를 씹으며 투덜거렸다.

“그때처럼 뭔가 감당 안 되는 사고를 치고 튄 거 같은데…….”

“곤란합니다. 민 오키프 님이 예고하신 보스 출현까지 앞으로 하루잖아요.”

“여차하면 놈 없이도 싸울 수 있게 편성을 해야겠지만…….”

백강혁 하나가 빠진 자리를 채우자면 몇 명의 헌터가 필요할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일이다.

애초에 이곳의 전투 방식은 퍼스트 오더인 백강혁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의 이능력인 슈퍼스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과 관심’의 정도가 높을수록 다양한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현실에서 타인의 관심을 받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그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만큼 ‘망상’에 가까운 능력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상주 헌터들은 모두 그 이능력을 보조하기 위해 훈련해 왔다.

“관종 새끼 한 명을 위해서 편성된 팀인데, 그 관종 새끼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

민의 직위는 세컨드 오더이자, 팀의 리더.

이것은 퍼스트 오더 다음가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세컨드 오더는 퍼스트를 보조해서 ‘전투 능력’은 적지만, ‘보조 능력’은 뛰어난 헌터들.

퍼스트 오더를 보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고위 헌터였다.

재해복구지역 A섹터의 전담 헌터 중 백강혁을 보조하기 위해 모인 세컨드 오더는 모두 5명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백강혁의 빈자리를 대신할 퍼스트 오더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외에도 실력이 있는 네임드를 찾아야 한다는 소린데.

“그런 실력 있는 녀석이 지금 와서 찾아지면 헌터 협회가 처놀고 있다는 소리밖에 더 되나. 젠장할. 나 하루 휴가 잡아.”

“아, 설마.”

“설마는 뭔 설마야? 그 새끼 잡아올 테니까 준비해!”

황지현은 안심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민 오키프, 세컨드 오더로서의 이명은 샤프 슈터.

이능력은 탐지계 능력으로 반경 250m 내의 모든 것을 정밀 분석할 수 있다.

그가 수색한다면 제 아무리 백강혁이라고 해도 하루 이상 숨어 있을 수는 없다.

민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거리로 나섰다.

연이은 야근으로 눈이 조금 감겨오는 것이, 아무리 헌터라지만 피곤하다.

백강혁 그 개자식은 딜러만큼 피곤한 포지션이 없다고 툴툴거리고 다닌다는데, 헛소리다.

가장 피곤한 클래스는 탱커도 딜러도 아니라 서포터다.

그리고 그 피곤한 클래스인 서포터 중에서도 탐지계 능력자가 제일 피곤하다.

“아, 어질어질한데. 4일 야근 후에 탈영병 잡기라니, 빡세.”

탐지 능력은 인지 능력을 강화하는 능력이다.

시각, 촉각, 청각을 비롯한 오감.

그리고 제6감까지 포함하여 모든 감각을 강화시킨다.

그렇게 예민해진 상태로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함정의 위치를 간파한다.

파악한 걸 토대로 전략과 전술까지 유능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탐지계 능력으로만 치자면, 서포터인 세컨드 오더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게 민 오키프다.

거기에 전략 전술을 구사할 수 있으며 자기 한 몸을 지킬 만큼 무력까지 갖췄다고 가정하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그런 만큼 너무 유능하다 보니 쉴 시간이 없다.

협회와 정부는 유능한 사람을 갈아서 세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날선 태도와 외모를 하고 있더라도 본디 성실한 성격이라 일을 거절 못하는 문제도 있다.

아무튼 감각을 강화하는 능력이다 보니 신경과민과 스트레스로 인한 위염은 기본이다.

그리고 이번처럼 퍼스트 오더가 사고를 치면 수습하는 것도 대부분 팀의 리더 직책을 맡고 있는 세컨드 오더의 몫이다.

“이 개자식이 자기 홈그라운드에서 탈영을 할 리가 없으니까, 무조건 사고를 쳤다고 봐야겠지.”

힘자랑하다가 사람을 다치게 했을까?

아니, 무례하고 맛탱이가 간 관심 종자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막나가진 않는다.

그 관종이 고국에서 대형 사고를 쳤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여자인가?”

언젠가 그랬었지.

세계평화는 사랑하는 여인에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나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세계도 버릴 수 있어.

…라고 퍼스트 오더님이 씨부리셨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민은 어질어질한 머리로 이능력을 전개했다.

그의 이능력 이미지는 물이다.

세상을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로 보고, 자신이라는 한 방울의 물을 떨군다.

그러면 강물에는 파문이 생기고, 파문은 일렁거리며 이물질을 찾아낸다.

한참을 걷던 그는 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용사의 밥집?”

팻말은 분명 닫혀 있다고 걸려 있지만, 지하실에서 격렬하게 상하운동을 하는 건 분명 백강혁이다.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장작패기? 아니, 곡괭이질인가.

현대사회는 쉽게 보기 힘든 동작이다.

상체와 허리 근육 단련으론 최고라서 트레이닝에도 종종 추천된다고 하지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튼 찾았다.”

밤이라서 그런가.

문이 잠겨 있다.

하지만 이런 문쯤이야, 1초면 해제하지.

민은 능숙하게 손목에 있던 락픽 툴로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서포터라는 건 이런 잔재주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또 문이 열리고야 말았다.

“질문 하나만 할게. 여기 사람들은 클로즈드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 거야?”

“!?”

민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이프를 꺼냈다.

탐지계 능력자인 자신이 눈치 채지 못했다?

각성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던 이가 하품을 하며 다시 물었다.

“주거침입죄라고 알아? 형씨, 이건 정당방위다?”

* * *

“아따, 시바, 뒤지겠네.”

2일 야근 후 2일의 휴가다.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으로 향했던 휴가 마차가 도착한 곳은 아오지 탄광이다.

어떻게 이렇게 됐냐라고 하면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다.

하루 10시간의 노동과 2시간의 도덕 교육.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을 재워주니 다행이다만, 식사가 진짜…….

“염병…….”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게 안 나온다.

진짜 맛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작정하고 맛없는 걸 만들어내는 건 뭔 재주인지 모르겠다.

더 분한 건 귀환자 자식이 자기 거 만들어 먹을 때는 멀쩡한 걸 만든다는 점이다.

아니, 분명 멀쩡함을 넘어선 맛이다.

그가 딱한 눈으로 한 점 나눠준 연어 호일 구이는 천상의 맛이었다.

“왜 일부러 맛없게 만드냐고…….”

토하고 싶은데 와, 진짜 음식물이 안 토해진다.

무슨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알아서 목구멍을 타고 들어간다.

환청인지 모르겠지만 귓가에 ‘난~나나나~난나~ 나나~나나나~’ 하는 노랫소리까지 들린다.

이 망할 음식들은 자기들이 맛없어서 뱉어질 걸 아는 걸까?

자기 발로 걸어서 위장까지 간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미쳤나 싶은데, 뭐 현실이 미치긴 했다.

밥집 아저씨한테 뚜띠 맞고 지하실에서 노동하는 퍼스트 오더라니?

개그 소재로는 좀 선을 넘지 않았을까.

그러던 와중이었다.

밤 노동 시간에는 잘 열리지 않던 지하실의 문이 열렸다.

지금까지 저 문이 열리는 이유는 딱 하나뿐인데…….

“서, 설마 또 간식인가. 싫어…….”

“…….”

“어? 민? 역시 넌 나의 둘도 없는 친구였구나!”

털레털레 걸어 들어온 건 둘도 없는 친구.

민 오키프였다.

그가 발끈했다.

“누가 친구야!”

“오~ 브라더. 역시 민이야. 믿고 있었다고! 날 꺼내줘!”

민은 타박타박 계단을 걸어오더니 조용히 곡괭이를 들었다.

“민?”

“나도 잡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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