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대왕 조개 (1)
슬슬 준비한 식재료가 떨어졌다.
인벤토리에 저장된 식재는 일반인에게 팔기 힘든 테라의 최고급 식재만이 남았다.
그래서 오늘 갈 곳은 시장이다.
예전에 이곳이 재해복구지역 A섹터가 아니라 서울이라고 불리던 시절.
이곳의 이름은 창경궁로였다.
“그때도 시장이 있었는데, 여전히 시장이 있으니 감개가 무량하네.”
9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승우는 재래시장을 보며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승우 개인의 호불호를 빼고 보더라도 이 시장이 꽤 좋은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시장을 보면 문화 수준과 치안을 알 수 있다.
유통량으로 보급의 상황을.
그리고 이용하는 고객들에 대한 보호로 치안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재해복구지역 A섹터의 한 켠에 있는 시장을 보자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 했다.
사람들은 활력이 넘치고, 과하게 숫자가 많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장은 청결했으며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의 배치도 적절하다.
행정 처리가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개막장 일보 직전인 테라의 시장통을 구르던 승우로서는 진하게 풍기는 문명의 향기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승우는 핫도그에 케첩과 머스터드 소스를 뿌리며 나비에게 물었다.
“더 먹고 싶은 건 없어?”
“냥, 일단 핫도그를 먹고 생각하겠다냐.”
“좋아, 착한 아이군.”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하늘을 봤다.
어째 9년 전보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
미세먼지가 없는 탓인가?
“그럼 뭘 사볼까.”
꼭 사야 할 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특선 요리 10인분의 재료.
그리고 오늘부터 제대로 팔, 헌터를 위한 요리 재료다.
양쪽 모두 미리 계획한 요리는 없다.
오로지 현장에서의 직감과 기분을 우선시한다.
승우는 계획보다는 기분에 따라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기분파다.
그렇게 기분대로 움직이려면 대형 마트보다 이런 재래식 시장이 더 낫다.
“대형마트는 쫌 별로란 말이지.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이 열린다고 해도 문명 수준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재해복구 어쩌고 해도 대형마트가 없어진 건 아니란 말이다.
A섹터에는 대형 마트가 무려 4개나 있는데, 9년 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반파됐던 도시가 이렇게나 복구됐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세계에 떨어지기 전에도 대명 마트는 많았는데, 사실 아직도 있다는 게 신기하네.”
“대명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서 보인다냐.”
승우가 이세계에 떨어지기 전, 그러니까 9년 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대명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여전히 대명이다.
듣자하니 가장 먼저 몬스터의 사체를 유통하기 시작했다던가?
“깡도 좋으시지. 아니,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 되나.”
몬스터의 사체는 인체에 다양한 효과가 있다.
대명은 몬스터의 사체를 적극적으로 매입하여 식용 가능성을 확인.
그리고 그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대중에게 선보였다.
그것이 아직은 선입견과 고정관념 때문에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못한다만, 결국 그것도 시간문제다.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하니, 언젠가는 대중도 알아줄 것이다.
“그러니까 대명의 대형 마트를 가면 괜찮은 몬스터 식재료가 있긴 할 거야.”
“그럼 시장보다 거기가 나은 거 아니냥?”
“그렇지.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
대형 마트는 이미 분석이 될 만큼 되고, 식용 허가가 떨어진 재료만 취급한다.
그야 어떤 몬스터의 고기에서 독이 발견될지 모르고, 그걸 먹고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부와 기관이 관리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식품위생과 심사를 철저하게 거친 고기만이 대형 마트에서 판매된다.
그럼 시장은?
정부에서 나름대로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노력해도 한계는 있다.
도전 정신이 강한 상인의 불타는 혼은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은 되는대로 팔고 가치를 몰라도 일단 팔고 본다.
그게 바로 상인이다.
“재래식 시장은 재미있어서 좋다니까.”
“보물 찾기다냐~”
핫도그로 요기를 마친 둘은 시장을 거닐었다.
진열대에는 다양한 것들이 놓여 있었데, 원래부터 지구에 있던 과일과 야채 사이로 새롭게 보이는 신종도 눈에 띄었다.
상인 본인도 모르기 때문에 ‘이름은 모르지만, 맛은 있습니다’라고 적힌 고기도 있었다.
대부분은 승우도 아는 것이었으며, 역시 나름의 조사를 하고 올라오는지 인체에 해가 되는 식품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알이 없었다.
알!
알은 영양소의 보고이기도 하며 여러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만능의 식재료다.
그런 알이 하나도 없다니!
“부화하여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이겠지.”
제 아무리 불타는 상인의 혼도 법으로 금지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도 위험하기도 했다.
알이라는 건 대부분 따뜻하게 품어줘야 깨어나지만, ‘그냥’ 깨어나는 알도 있긴 하니까.
알을 제외하고 보자면 결국 다 비슷했다.
“고기, 야채, 과일뿐이군. 식재료라는 게 넓은 의미로 보자면 이게 거의 다긴 해.”
품질은 좋지만 마음에 와 닿는 건 없었다.
그런데 나비가 ‘도도도’ 하고 한 쪽으로 뛰어갔다.
“이건 어떠냥?”
“이건… 조개로군. 아주 크고 훌륭해.”
어찌나 큰지 나비보다도 컸다.
승우보다는 작지만 거의 1.6m는 됐다.
대왕 조개?
“아니, 대왕 조개보다는 더 크군. 잠깐 이거 본 적 있는데?”
혹시 이거 헤라기가스 아냐?
거인, 기간테스들이 심심풀이 땅콩 삼아서 맨날 까먹는 조개!
“저기, 사장님. 이 조개 말인데요.”
“아, 그 조개 말이야. 나도 몰라. 남편이 주워온 거라.”
“이걸 주워 와요?”
얼핏 봐도 무게가 200㎏은 넘어 보이는데?
승우가 황당해하니 주인이 씨익 웃어보였다.
“내 남편이 좀 천하장사긴 하지.”
“하하하.”
바깥양반이 각성했나 보군.
승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개의 거대한 패각을 만졌다.
만지자마자 세월이 느껴지는 웅혼한 패각이다.
이런 둘도 없는 패각의 느낌을 가진 건, 분명 헤라기가스가 맞았다.
“제가 살게요.”
“괜찮겠어? 뭔 수를 써도 입을 안 열던데… 소금으로 해감해도 안 되고 그냥 둬도 안 열고. 하루 종일 씨름했는데 뭘 해도 안 되더라고.”
그래서 장식용으로 둔 조개다.
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승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생선을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고등어 10마리, 그리고 이 조개 하나. 이렇게 살게요.”
“10마리라니! 손이 큰 양반이네!”
“음식점을 하거든요.”
“그럼 손이 작은 양반이군. 음식점을 하면서 10마리 가지고 누구 코에 붙여!”
“작은 가게예요.”
“그럼 기왕이니 이것도 가져가고, 이것도. 이것도…….”
사장님은 손이 크시네요.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승우는 이것저것 챙겨주는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가볍게 대왕 조개를 들어 올렸다.
사장님은 ‘내 남편보다 장사네 그래!’ 하고 호쾌하게 웃었다.
* * *
“사장님이 이것저것 챙겨주신 덕에 일이 편해졌네.”
오늘의 특선 메뉴는 고등어 백반이다.
잘 손질한 고등어를 굽는다!
그리고 반찬과 하얀 쌀밥!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메뉴다.
이거라면 아침 공복에도, 그리고 점심 허기에도 대응할 수 있다.
“냐아, 생선 손질이나 굽는 건 자신있다냐.”
“그럼 오늘의 셰프는 나비가 하게 되겠군.”
“맡겨 달라냐!”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건지.
나비를 보러 오는 손님이 점차 늘고 있다.
대체로 반응은 귀엽다가 반, 털이 안 빠지는 거로 놀라는 손님이 반이다.
오늘은 나비의 요리 실력을 뽐낼 테니, 손님이 더 좋아하겠지.
“그럼 문제는 이 헤라기가스인데!”
이건 이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조개다.
도검을 튕겨내는 강력한 껍질.
그리고 이 크기!
틀림없다.
“일단 입부터 열게 해줄까.”
기간테스들이 먹는 모습만 봤지, 실제로 녀석 입을 벌려보는 것은 처음이다.
예로부터 전통적인 조개의 해감은 소금물이다.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가 되면 알아서 입을 벌리게 돼 있다.
하지만 어패류를 취급하는 전문점의 사장이 그런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못 했을 리가 없다.
그녀가 해서 안 된다면 안 되는 거다.
승우가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겠지.
따라서 승우가 선택한 건.
“흡!”
그냥 기간테스처럼 손에 힘주고 여는 것이었다.
승우는 패각이 으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힘을 주며 조개를 벌렸다.
공업용 크레인보다도 훨씬 강력한 승우의 완력이다.
조개가 으드득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우악스럽지만 이게 거인족, 기간테스들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승우는 열린 조개의 안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관자가 나비보다 크네. 이러니까 이렇게 힘이 좋지.”
껍질과 껍질을 잇는 근육, 관자의 굵기가 대단했다.
이만한 굵기라면 회를 쳐서 먹어도 볼륨이 굉장하겠는 걸.
“관자라면 일단 회지!”
관자는 근육이다 보니까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보통 지구에서는 회로 먹거나 구워서 먹는 경우가 많지만, 테라에서는 구워 먹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걸 구우면 답도 없이 질겨질 테니까.”
구우면 질겨진다.
이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관자를 구우면 질겨지는 수준을 뛰어넘어 인간이 씹을 수 없는 물건이 된다.
애완 악어를 위한 껌이나 만들 때 쓸 수 있을까?
어쨌든 조개 하나에서 나온 거 치고는 엄청난 양이다.
관자는 회를 쳐서 서비스로 오늘 오는 모든 사람에 줘야겠다.
승우는 시험 삼아 가볍게 회를 쳐봤다.
그리고 초장에 찍어서 가볍게 한 입을 먹었다.
혀를 감싸는 이 감칠맛!
“크읍… 소주 당기는걸?”
영업 중이 아니었다면 당장 한 잔 했을 거다.
지구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상등품의 조개다.
관자 자체에서 풍부한 감칠맛과 바다의 깊은 맛이 난달까?
별다른 조리도 없이 생식해서 이렇게 맛있다면 이건 정말 좋은 조개다.
“맛있는 조개야. 거인족들이 미식가긴 했구나.”
그렇게 미식을 좋아하니, 테라에서는 죄인으로 낙인찍히지.
거듭 말하지만 테라에서 맛있는 음식은 죄악이다!
“그럼 이 엄청난 양의 조갯살과 내장으로는… 클램차우더나 만들까?”
클램차우더는 북미식 조개 수프다.
조갯살과 크림, 감자 등의 구황작물을 넣은 스프로 차분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식!
아침으로 좋고 저녁으로도 좋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스프지만 어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도 좋았다.
“의외로 해장용으로 끝내주지.”
저녁은 관자 회와 소주. 내일 아침은 클램차우더로 해장이다.
푹 끓이는 데 하루 정도 걸릴 테니, 내일의 특선 요리는 클램차우더로 결정!
“그리고 헌터에게는… 후후.”
승우는 자신의 몸통만 한 검은 조개 내장을 꺼냈다.
이 부위는 바로 ‘독낭’이다.
본래 조개류를 그냥 섭취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조개는 흔히 말하는 패독(貝毒).
정확히는 색시톡신(saxitoxin)이라 불리는 독을 가지고 있다.
조개 자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조개의 주식인 플랑크톤이 품은 독이다.
이 독은 끓여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
그런 위험한 맹독이 독낭 안에 고스란히 모여 있다.
“이 독낭이 그리 고급 식재라지.”
테라에서 고급식재의 기준은 효과다.
헤라기가스 독낭의 효과는 독에 대한 내성!
먹고 죽지만 않는다면 거의 만독불침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크으, 보고만 있어도 눈이 찌릿찌릿한 게 효과가 끝내주겠어.”
거인족도 이 독낭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먹으면 죽으니까.
하지만 테라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식재다.
당연히 승우는 이 독낭을 사용한 요리법도 알고 있다.
“끓이고 데치는 요리법은 유통기한이 짧아.”
아직은 가게에 들려주는 헌터가 민과 백강혁뿐이다.
민은 몸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천천히 맛없음의 강도를 올려 가야지 레드 스타 2성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헌터 손님은 백강혁 하나!
그런데 그 뺀질이는 맨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도망간다.
“그런 뺀질이도 먹을 수 있게 보존식으로 만들자. 아주 더럽게 맛없는 게 나오겠어.”
백강혁이 아주 좋아하겠군.
그렇게 승우가 독낭을 말리며 요리 준비를 할 때였다.
조심스럽게 가게의 문이 열리고 항상 오는 그 남자.
민 오키프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아침!”
“예, 좋은 아침입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특이한 일을 하시는군요.”
“그냥 조개 손질인데 특이한 일까지야…….”
“그거 하천에서 발견된 조개죠? 먹을 수 있는 거였습니까?”
하천에서 발견된 조개?
헤라기가스가 하천에서 발견돼?
승우는 호기심이 동한 눈으로 되물었다.
“재밌을 거 같은데 자세히 이야기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