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화. 낚시터 (3)
용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강, 내지는 최악의 몬스터로 알려져 있다.
ISAC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용은 딱 한 마리.
구 S랭크 오버 게이트이자, 현 추정… SS랭크의 게이트.
미국 오하이오 주를 소멸시킨 최악의 용인 바하무트다.
ISAC의 지부장쯤 되는 위치에 있다 보니, 관련 자료를 수도 없이 읽은 정훈이다.
용의 무서움과 강력함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용을 잡는 요리라고?
‘귀환자식 농담인가?’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우선 그 사람이 너무 취한 게 아닌지 확인했을 거다.
취한 게 아니라면 ‘예끼 이 사람아! 농담이 심해!’ 하고 면박을 줬을 테지.
슬라임을 요리로 잡는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다만, 용은 더하다.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며 들을 가치도 없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 말을 한 게 누군가.
‘귀환자 유승우.’
추정 SS랭크의 게이트를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소멸시킨 초월적인 강자.
알 수 있는 건 ‘건드리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 폭탄’이라는 것뿐인 귀환자 유승우의 말이다.
그게 단순한 허풍이나 농담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혹시 진짜 가능할지도?’
정훈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지부장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다.
공정하게 판결하고 판단하기 위해서 사적인 만남은 거의 갖지 않는다.
귀환자 유승우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급적 이 귀환자와는 말을 섞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는 사적인 자리이며, 그에게 있어서는 추억의 낚시터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진짜 요리만으로 슬라임을 잡을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아주 간단합니다.”
“아…….”
무슨 세X코가 바퀴벌레 잡는 것처럼 간단하다고 단언하는 저 자신감이란!
정훈은 홀린 듯이 승우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까 용도 잡는 요리라는 소리를 잠깐 했는데요. 애초에 용이란 건 말입니다. 생각만큼 똑똑하지가 않아요.”
“예? 용이 말입니까?”
“본능적으로 마법을 쓰고, 생물을 위협하는 기운을 타고나서 그렇지. 지능은 그다지 높지 않단 말입니다. 인간이랑 비슷해요.”
승우는 태연하게 미끼를 끼웠다.
또 한 마리가 잡혀 올라왔다.
“용이나 인간이나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깁니다. 따지고 보면 신도 마찬가지예요. 전지전능 어쩌고 하는데, 그렇게 썩 대단한 지능은 없습니다. 그냥 힘 좀 센 인간이죠.”
“허, 허허.”
이 귀환자 놈, 신이 뉘 집 개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군.
정훈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승우는 이어서 말했다.
“아무튼 용이란 놈들은 본질적으로 힘이 세다 보니 그만큼 자제심이 없습니다. 욕망도 강하고, 생각난 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죠. 그러니까 미끼에 굉장히 잘 걸립니다. 그냥 뭐, 붕어 수준이에요.”
“부, 붕어…….”
“먹을 거로 유혹하면 대번에 낚입니다.”
사실 용과 드래곤은 엄연히 다른 종이지만, 따지고 보면 비슷한 놈들이다.
차이라면 용은 동방에서 말하는 구렁이가 승천한 경우고, 드래곤은 서양 속의 날개 달린 공룡을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둘 다 지능 면에서는 비슷하지.
레드 드래곤의 엘더, 마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카일레우스도 별거 없었다.
놈은 분명 강했다.
용사 파티도 애를 먹을 만큼!
하지만 먹을 거로 유혹하자 바로 낚였다.
어지간한 요리라면 카일레우스가 움찔도 안 할 테지.
하지만 그게 6성 요리라면 어떨까?
그 요리를 유승우가 얻어서, 신이 될 준비를 마쳤다는 정보를 카일레우스가 얻었다면?
‘욕심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카일레우스는 정보를 얻은 그날 밤 바로 날아왔다.
그리고 뺏기는 척 연기를 하니 눈이 뒤집혀서 냉큼 먹어버리는 모습이란.
‘거짓 정보에 농락당하는 모습이 유쾌했지.’
좋은 추억이다.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되물었다.
“하지만 용이라면 어지간한 건 먹어도 괜찮은 거로 압니다.”
“그렇죠.”
슬라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독에는 면역이다.
그런데 용씩이나 돼서 뭘 잘못 먹으면 죽는다고?
믿기 힘든 이야기다.
“그럼 뭘 먹인 겁니까?”
“필살 요리. 간단하게 말해서 먹으면 반드시 죽는 요립니다.”
“그게 요립니까?!”
“그러니까 말했었잖아요?”
승우가 매력적으로 웃었다.
“요리지만 무기라고.”
너무 말 그대로라 정훈은 입을 다물었다.
용도 죽이는 음식이라면 슬라임이 버틸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정훈이 담담한 눈으로 물었다.
“제가 뭐 도와드릴 일 있습니까?”
“강준치가 모자랍니다. 앞으로 60마리쯤 더 필요합니다.”
“60마리라…….”
요리 하나를 만드는데 많이도 들어간다.
하지만 슬라임을 죽이는 요리다.
여기에 헌터들을 투입하는 시간과 예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싸게 먹히는 거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정훈은 낚싯대를 불끈 쥐며 저수지를 노려봤다.
* * *
신들의 요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신의 음료, 넥타르는 신의 꿀벌이 세계수의 꿀를 모아서 만든 벌꿀주.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는 물과 대지와 하늘과 지하의 정수를 모아 만든 정찬이다.
이것들은 모두 불로불사를 상징하는 음식이며 같이 섭취 시 인간조차도 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거야 뭐 구전이고, 승우조차도 신의 부탁을 들어주고 받기로 했는데…….
다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런 요리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용사에게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인 신은 없었다.
‘신화에서 보면 그냥 밥 먹듯이 먹드만, 분명 남아 있을 텐데……?’
이미 두 요리 모두 만드는 방법이 소실된 지 오래.
그럼 구할 수 없는 저 두 요리가 아니면, 신이 될 수 없느냐?
아니다.
괴식 중에도 그런 요리가 있는데… 은밀하게, 아주 은밀하게 존재하는 6성 요리가 있다.
그 이름은 ‘라그나로크’.
던전을 모험하던 중에 얻은 고문서에 적혀 있는 환상의 6성 요리다.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
이 요리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좋은 요리가 아니다.
신을 죽이거나, 신을 초월할 자를 만드는 요리였다.
게다가 레드 스타 6성의 요리.
전설에나 나오거나, 주방과 가정, 음식의 신인 헤스티아가 친히 내리는 음식과 같은 등급!
실존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신조차도 죽이는 필살(必殺) 요리, 무기다!
‘초마왕 타도의 실마리라고 생각하고 연습했는데…….’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그나로크’를 먹고 더더욱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의 제조법은 너무 난해해서 아무도 재현할 수 없었다.
승우조차도 말이다.
재료의 태반은 구할 수 없었고, 술식은 난이도가 높아서 얼치기로 따라 하는 게 한계였다.
결국, 먹는 것은 포기하고 먹일 생각으로 만들어 봤다.
‘그것만 해도 카일레우스를 유인하기에는 충분했지.’
처음 느껴보는 음식의 향기, 그리고 모습.
카일레우스의 눈을 현혹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본래 요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음식이었겠지만, 엘더 레드 드래곤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기에, 그때 만들었던 아류 라그나로크를 떠올리며 승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
테라의 음식은 그 재료 자체가 특별하다.
아무리 요리사가 대단해도 재료 자체의 숨겨진 맛과 힘이 없다면?
만들어지는 요리는 평범하게 맛없는 요리에 불과하다.
화염의 정령이 남긴 결정이나, 앤트의 싹 같은 판타지적인 재료를 써야만 제대로 된 괴식이 나온다.
하지만 개중에는 특별한 조리법도 분명히 있다.
일전에 승우가 쓴 검투 가문의 비전 요리법처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비법이고, 마법인 경우다.
‘이쯤 되면 요리라기보다는 연금술 내지는 연단술, 연성술에 가깝지.’
6성 요리 라그나로크는 6성 요리답게 재료도 요리법도 모두 다 특별한 비법에 속했다.
승우가 궁금한 건 이 부분이다.
특별한 재료와 특별한 비법이 있어야 라그나로크다.
그럼.
‘라그나로크의 조리법을 가지고, 평범하게 맛없는 생선을 요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강준치가 맛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맛없음은 어디까지나 지구에서 있는 상식의 영역이다.
눈이 까뒤집혀질 정도로 맛없는 재료까지는 아니다.
효과도 없고!
‘강준치 자체에 버프 효과는 없는 만큼 다른 조치는 없어도 되겠지. 예상대로라면 딱 적당한 위력이 나올 거야.’
라그나로크의 지구 민물고기 버전.
‘강준치의 파멸’ 정도로 이름 지을까!
평소 요리로 장난을 치지 않는 걸 신조로 삼는 승우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마음속에서 영감과 충동이 샘솟아 올랐다.
그것은 오랜만에 느끼는 ‘발전’해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6성 요리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 기분!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벌써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갔다.
낚시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집중하라는 듯이 찌가 흔들렸다.
또 한 마리가 걸렸다.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낚싯대를 당겼다.
어김없이 강준치가 낚였다.
이걸로 기준치는 거의 채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이정훈이 말했다.
“신기할 정도로 강준치만 낚이는군요.”
“슬라임이 지능이 없다고 해도 좋고 싫은 건 가립니다.”
“슬라임조차도 먹기 싫어한다, 이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거 먹고 싶겠습니까?”
안 먹지.
낚시꾼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저건 먹을 게 못된다.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훈에게 승우가 물었다.
“이 낚시터는 자주 오십니까?”
“자주는 아닙니다. 이곳은 9년만이군요.”
“9년만이라…….”
“예전에는 즐겨 왔었죠. 그때는 이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정훈에게는 눈감으면 선명하게 보였다.
아름답고 깨끗했던 그때의 여울 낚시터가!
하지만 눈을 뜨면 보이는 건 더럽고 냄새는 저수지.
그리고 어망에 가득 찬 강준치뿐이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그게 정훈을 더 슬프게 했다.
“예전에는 강준치가 아니라 메기나 잉어가 많았습니다. 그걸 잡아 오면 가끔 관리인 아저씨가 매운탕을 끓여주시는데 그게 최고였죠.”
“허? 관리인님이 요리도 해주십니까?”
“그분이 예전에는 유명한 숙수셨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실력이 아니시겠네요.”
“물론이죠. 제가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먹어봤지만, 매운탕으로는 그분이 최고십니다.”
슬라임만 잡는다면 이곳은 금방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종종 올 수 있을 것이고, 매운탕도 먹어볼 수 있겠지.
그럼 이제부터는 요리 시간이다.
“그럼 강준치도 다 잡은 거 같으니, 시작해 보겠습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정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낚시 도구를 정리했다.
귀환자가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하는 게 뭐가 대수겠냐만, 그게 귀환자의 요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무기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요리가 아니라 마법.
그것도 연금술의 경지일 것이다.
정훈의 기대에 찬 시선을 받으며 승우가 인벤토리에서 요리 도구를 꺼냈다.
꺼낸 것은 솥, 국자.
그리고 알리스터에게 받은 식칼이 전부였다.
‘무기를 만든다더니, 그냥 요리하는 거 같군?’
승우가 커다란 솥에 물을 부었다.
1.5리터짜리 물병으로 10개나.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의 불꽃이 타올랐다.
이제야 좀 연금술사 같다 싶었는데, 그다음에는 그저 강준치를 손질하고 솥에 넣을 뿐이었다.
그리고 조미료를 좀 뿌리더니만 휙휙 국자를 휘저었다.
그게 전부였다.
“정말, 그냥 요리만 하는 겁니까?”
“요리한다고 했잖아요. 아무튼 이제 집중해야 하니까 조금 조용히 해주세요.”
승우는 깊게 숨을 쉬며 정신을 집중했다.
고문서에 적혀 있던 요리, 라그나로크.
신을 죽이고, 신을 초월할 자를 만드는 요리.
주요한 술식은 ‘불’과 ‘영생’
그리고 ‘죽음’이다.
‘이른바 모순의 주문이지.’
영생과 죽음은 양립될 수 없다.
불, 불은 파멸이며 그와 동시에 재생이다.
타오르고 재가 되고, 그 재에서 부활하는 불사조의 술식이다.
라그나로크를 먹은 자는 그 모순 속에서 영원토록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 과정을 겪으며 본래의 육체를 버리고 새 육체로 재구성된다.
환골탈태와 신화(神化)의 과정을 거쳐서 신조차도 초월하는 것이다.
‘버티면 말이야.’
못 버티면?
부활하지 못하고 죽는다.
백이면 백, 죽는다.
그러니 라그나로크는 필살 요리다.
누구도 먹고 살 수 없다.
‘지금의 나조차도 먹은 후에 살 거라는 확신이 없어.’
승우가 알고 있는 최고의 적.
초마왕 바알이라면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녀석이 라그나로크를 먹은 후였을까?
이제 와서는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다.
승우는 정훈이 보는 가운데 천천히 국자를 저으며 술식을 새겨 넣었다.
술식의 태반을 차지하는 ‘영생’을 지우고, ‘죽음’도 지운다.
남길 것은 그중에서 가장 자그마한 술식인 ‘불’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보통의 마법사와 요리사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미친 듯한 난이도!
승우에게도 조금은 힘든 술식이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난 후.
“됐다.”
강준치 100마리로 만들어진 소형 라그나로크.
‘강준치의 파멸’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