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화. 강혁, 다시 테라로 (2)
퍼스트 오더들의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 헌터를 치열하면서 꾸준한 솎아내기 끝에 선정한 100인.
천재가 아니고서야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아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백강혁은 천재가 아니다.
윤은형처럼 천재적인 싸움의 감각이나 반사신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처럼 침착하게 전황을 조율할 지휘관적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퍼스트 오더인가?
강혁의 장점은 바로 이능력에서 비롯된다.
그의 이능력인 슈퍼스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수록 다양한 효과를 발휘’하는 특수한 능력이다.
하지만 이 이능력이라는 게 특정된 힘은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육체에 대한 강화로 발현될 뿐이다.
ISAC의 연구진의 따르면, 관심종자인 백강혁이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 그게 백강혁의 힘으로 치환되는 과정이라나?
이 말은 백강혁의 마음먹기에 따라 다양한 효과로 증명될 수도 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어디까지나 빡강혁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불안정한 부분을 제거하고 보면 단순한 육체강화 능력자다.
관심을 모아야 한다라는 불편한 조건이 달린 육체강화 능력자.
상위권에 있는 몇몇 육체강화 능력자는 그런 조건 없이도 강혁보다 강하다.
윤은형만 하더라도 부상이라는 대가를 제외하고 보면 평균 능력 상승폭이 강혁보다도 높으니 말이다.
결국 강혁은 ‘남들보다 월등하게 좋은 장점’이 없다.
그리고 강혁은 그것을 잘 알기에 스스로를 단련했다.
총기를 사용하는 기술은 훈련으로 몸에 새겼고, 탄환에 마력을 담는 건 헌터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결과적으로 강혁이 익힌 것은 누구라도 단련한다면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이정훈이 말한 ‘너를 위한 팀 전술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라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내심 신경 쓰고 있던 걸 아주 정곡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아플 수밖에!
‘대머리-! 두고 보자!’
단순히 총이나 빵빵 쏘는 슈터에게는 미래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배운 게 검술이었다.
윤은형과 싸우기 위해 배운 기사 검술!
무려, 그 승우에게 전수 받은 검술이다.
이 검술은 백강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굉장해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윤은형과 호각을 이룰 정도였다.
물론, 강혁은 이능력을 사용한 상태였고 윤은형은 사용하지 않았다.
동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등했다는 건 어찌 보자면 굴욕이었지만, 윤은형은 검사가 본직이며 강혁보다 상위 랭커다.
그러니 그것이 하위 랭커인 강혁에게는 최선의 결과였던 셈이다.
‘단, 그걸로 만족할 수는 없지.’
예전과는 다르다.
강혁의 장점은 이제 여러 개가 있다.
사격과 검술을 조합한 사각이 없는 올라운드 타입의 전투 방식.
작지만 각종 도구를 넣어 의외성을 노릴 수 있는 인벤토리.
통역마법으로 인해서 몬스터나 동물과도 대화가 가능하단 차별성까지!
그리고 지금 백강혁이 조금 더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몬스터나 동물을 활용하는 테이밍?!
그리고 테이머의 기본은 자신의 몸을 지키면서 동료들을 지휘하는 것.
하지만 백강혁에게 지휘는 글렀다.
‘다음 생을 기약한다!’
그럼 다른 부분을 화끈하게 강화하면 된다.
‘테이머의 전투력은 어디서 오는가?’
C급 테이머와 S급 테이머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테이밍한 동료!’
동료가 강할수록 테이머는 강해진다.
아무것도 없다면 뭐, 쥐뿔도 아니지.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강혁의 이능력은 테이밍이 아니다.
상대에게 호감을 사는 스킬이나 이능력 따위는 없다.
그러나 그런 게 있건 없건 간에 백강혁은 인간 외의 존재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포섭해서 동료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테라까지 온 이상 가볍게 할 생각도 없었다.
한다면 끝장을 본다.
목숨을 걸고 갈 때까지 간다!
그게 바로 남자 백강혁.
슈퍼스타 백강혁이다.
강혁은 목을 풀면서 연설을 준비했다.
* * *
로프트기우스의 국왕, 아론 6세는 문을 두들기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신관장님.”
“아론 씨? 무슨 일이신가요.”
레나토가 싱긋 웃으며 반겨줬다.
상대는 전설의 4용사이자, 가이아의 신관장이고, 현생에 존재하는 신.
아무리 국왕이라고 해도 이 사람 앞에 서면 작아지는 걸 느낀다.
국왕, 아론은 침착하게 용건을 말했다.
“이번 신탁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피차 할 말은 많았다.
상황이 요상하게 됐다.
올림포스의 신들로부터 지구 출신의 모험가, 용사들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언을 받았다.
한 번에 모두 보내는 일이 아니라 언질은 해줬지만, 이건 대형 프로젝트다.
이 모든 사람의 인선을 파악하고 귀환 여부를 확인하면서 그들이 빠진 공백까지 고려해야 한다.
레나토가 먼저 물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습니다. 의외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남아준다고 했습니다. 이탈자는 대략 10% 미만 입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군요? 아론 씨의 선정 덕분입니다.”
아론은 머쓱하니 웃었다.
로프트기우스는 확실히 말해서 다른 나라보다 이탈자가 적었다.
모험가와 용사들에게 평소에 잘해준 덕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지 않으려 하니까요. 특히 아일루로스를 받은 용사들은 아일루로스 없는 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고 안 돌아간다더군요.”
“잠깐, 설마 아일루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숨겼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승우의 요구조건 중 하나는 아일루로스도 귀환할 때는 같이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그러나 아론은 몰래 그 조약을 숨겼다.
귀환할 거라면 아일루로스는 두고 가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니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가 있나!
레나토는 난처해졌다.
“그건 속이는 겁니다.”
“그만큼 제가 앞으로 잘해보겠습니다. 여차하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네?”
이건 승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착하고 좋은 리더지만 항상 신과 왕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한 번 싫다고 정하면 ‘분명히 싫은’, 그 대쪽 같은 성정이란!
‘이 부분은 승우 씨와 잘 상담을 해야겠군요.’
레나토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아론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는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 일로 검과 승리의 신 유승우가 화가 난다면 기꺼이 자신의 목을 내어주면 그만이었다.
아론에게는 든든한 후계자가 있으니 로프트기우스의 미래는 아직 밝다.
극단적이라고 해도 이 일로 국방에 구멍이 생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레나토가 한층 더 표정을 구겼다.
“책임을 진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건 선정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디 다른 세계의 사람을 귀환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일조를 하다뇨? 공백을 걱정해서, 그들이 갈 수 없게 하는 거 아닙니까?
아론도 약간의 죄책감으로 표정을 굳혔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국왕은 왕국의 이득을 위해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자.
소소한 협잡은 필수적인 소양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레나토는 뭐라고 말해도 아론의 결심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확실히 아론의 마음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레나토에게 말하니 조금은 양심의 가책이 덜어졌다.
그렇게 조금 마음이 편해진 아론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어조를 바꿔 말했다.
“그나저나 도시에 풍문은 들으셨습니까?”
“풍문이요?”
“마을에 예언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예언자 말입니까?”
예언과 미래 예지 스킬은 의외지만 드물지 않았다.
이능력은 사용자의 심상이나 욕망에 영향을 받아 발현하는데, 미래 예지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흔한 능력이라면 흔한 능력이라 발현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이번 예언자도 아주 엉터리라더군요.”
“그렇겠지요.”
예지 능력에서 중요한 건 스킬이나 능력의 등급이었다.
등급이 낮으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최하급과 하급 예지 능력자는 발에 채일 만큼 있지만, 중급 예지 능력만 돼도 나라에 한두 명이나 있을까 말까 한 것이 현실!
레나토가 되물었다.
“낮은 등급의 예언자는 흔하게 있는 일이지요. 그게 소문까지 퍼질 일입니까?”
“그게 말입니다. 이 예언자가 꽤 재밌는 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아주 웃기는 놈이라고 하네요.”
가끔 있는 일이다.
예언 스킬은 없지만 재밌는 말재주나, 바보 같은 짓으로 동냥을 유도하는 집시들.
일국의 왕이 되어서 그런 이야기에 휘둘리지는 않겠지만 저리 소문을 좋아해서야.
레나토는 마흔 살이나 넘은 아론이 아직도 애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흐음, 뭐라고 말합니까?”
“우선은 조만간 검과 승리, 그리고 괴식의 신이 강림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하, 검과 승리의 신인 유승우 님이 계신데 말이죠….”
“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기습적으로 나온 아는 사람의 신명에 레나토의 동공이 커졌다.
* * *
“위대하신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시여! 무결하신 신이시여! 공고하신 그대여!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헥헥.”
“저희는 스스로의 죄 속에서 꿈틀거리는 한낱 우민일 뿐이옵나이다! 하나 당신은 승천하시어, 이제는 별들 사이에서 걸으시옵나이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한때 인간이셨나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말씀하시길, ‘괴로움에 빠진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와 검과 승리의 힘을 보여주리라. 내 이제 신으로서 숨쉬며, 내가 한때 사랑했던 이 나라를 다시 만들어 내리라. 너희들 로프트기우스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 하리니, 이는 내 너희를 사랑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나이다!”
“말씀하셨나이다, 헥헥.”
강혁은 열정적으로 말하는 한편 곁눈질로 그의 친구인, 코볼트 쿠제에게 신호를 보냈다.
‘야, 추임새에 혼이 없잖아. 좀 더 잘해봐.’
‘백. 나는 받은 만큼만 한다. 고기 껌 다섯 개는 너무 적어.’
‘세 개 더 줄게!’
‘헥헥, 좋아!’
강혁은 수도 광장에서 열정적으로 기도와 연설을 반복했다.
이러길 벌써 3일째였다.
한바탕 연설을 마치고 나니 오늘도 약간의 동냥이 있었다.
동화를 세면서 쿠제가 말했다.
“근데 백, 연설 잘하더라. 그거 즉흥으로 하는 거야?”
“아니, 누가 한 거 따라하는 거야.”
정확히는 그가 즐겨하던 게임에 나오는 멍청이가 하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강혁은 그가 하는 일이 멍청한 일이라는 걸 꽤 잘 알았었다.
그야 게임에서 나온 그 녀석도 멍청이 소리를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은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일단 내가 유명해질 수 있어.’
강혁은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강해지는 이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칼 들고 던전 가서 레벨 업 하는 것보다 그냥 유명해지는 게 더 빨리 강해질 수 있다.
‘한 번 해본 거니까, 두 번째는 더 쉽지.’
테라에서는 이미 괴도왕으로서 한 번 유명세를 떨쳐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뽕 맛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TV도 SNS도 인터넷도 없는 세상이라 유명세를 떨치려면 이런 짓 정도는 해야지.’
괴도왕 시절에 얻은 유명세는 이미 사라졌다.
레나토가 보낸 화신에 의해서 죽었다는 게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가면을 쓰고 활동하던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뭐 아무튼 이렇게 가짜 예언자를 자처하며 광대 짓을 하면 남을 꼬실 때도 좋아.’
종교인으로 위장하는 것만큼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없다.
단련된 현대인이야 워낙 내성이 쩔어서 ‘얼굴이 선하게 생기셨습니다’라던가 ‘손금 봐드릴까요’나 ‘심리테스트 중입니다~’ 따위의 우회 전략을 쓰는 거지.
자고로 모르는 사람에게 접근할 때 잘 통하는 건 종교 권유였다.
‘도를 믿으십니까’보다 ‘혹시 검과 승리와 괴식의 신을 아십니까?’라고 접근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거기에 이리 유명세를 떨쳐주면 상대도 강혁을 알아보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번 얼굴을 트면 그때부터는 미치광이 광대 예언자가 아니라 아주 냉철한 심리상담가 겸 종교 연구가 강혁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강혁의 정신상태는 워낙 특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A섹터에 있을 때 수도 없이 심리감정을 받아봤다.
하도 받다 보니 강혁은 이제 심리상담사를 흉내 낼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신을 위해서 이게 최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