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홍룡도령 (1)
홍룡도령은 상당히 유명한 기인이다.
예지능력자가 판을 치고 사람이 하늘을 날며, 공간이 갈라지고 이세계의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시대에 대체 점쟁이, 보살, 무당이 무어 유명하고 대단할 게 있겠냐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지 능력의 정밀도는 매우 낮아서, 많은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날씨 같은 대중적인 일이라고 해도 50%를 넘지 못한다.
소소한 인간 하나의 미래?
정확도가 5%만 넘어도 그것은 대단한 예지능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5%면 예지능력이 아니라 대충 찍어도 비슷한 수치가 나올 수 있는 아주 낮은 기댓값이다.
그런 판국에 무당과 보살, 점쟁이들이 유명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당과 보살, 점쟁이라 하면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진짜로 영 능력을 가졌던 사람이거나 그도 아니면 높은 말빨로 무장한 사기꾼. 즉.
‘후후. 이른바 야부리라는 것이외다.’
대화를 통한 상대의 정보 및 인적사항 파악.
시선과 목소리의 높낮이와 심리를 읽어서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고, 하고 싶은 걸 뒤에서 밀어주는 무당은 과거보다 오히려 몇 배나 더 대접 받고 있었다.
무당쯤 되면 통밥으로 찍어 맞추는 것의 전문가가 아니던가!
‘뭐, 본인쯤 되면 이게 근거 없는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이지.’
홍룡도인은 세상에 즐비한 사기 무당 가운데 정진정명한 진짜 무당이었다.
그의 이능력은 직업형 이능력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능력자들은 하나의 능력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 능력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다.
‘무당의 이능력이 무당이라니, 하하하. 타고난 적성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는 점을 쳐서 흉복을 알 수 있으며 혼령과 대화를 하고, 부적으로 몬스터를 퇴치하는 게 가능한, 희소 능력자였다.
진짜로 영혼과 대화하고 부릴 수 있는 능력.
애기보살이라 불리며 10살부터 영업을 뛴, 올해 15년차의 엄청난 경험치.
그리고 연예인의 뺨을 후려치는 엄청난 미모와 10살부터 발음교정을 비롯해 아침저녁으로 단련해 온 꿀성대에서 나오는 멋들어진 목소리.
이 모든 것이 한 몸에 집결되었으니 홍룡도령은 그야말로 스타였다.
그가 흥에 취해서 하는 조선제일무당이라는 말도 허언만은 아니란 소리다.
“그나저나…….”
승우가 찾아오기 1시간 전.
홍룡도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봤다.
태양이 쨍쨍한 것이 빨래가 아주 잘 마를 법한 날씨였다.
“날이 이리도 밝았던가.”
날이 밝다는 건 양기가 충만하다는 뜻.
영혼은 음기를 가지고 있어서 양기가 충만하면 힘을 그리 쓰지 못한다.
홍룡도령은 혀를 차며 양 눈에 두건을 둘렀다.
눈은 마음의 창,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양기를 가릴 속셈이었다.
“그건 그거고- 어째 기운이 영 좋지가 않군.”
령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 태양이 왜 두 개지?
- 태양이 움직인다.
- 천지가 뒤바뀔 것이야.
천재지변이라도 있는 걸까.
핵폭탄이 터져도 살아남을 것이기에 저택의 방비는 이미 해두었다.
그러니 천재지변은 걱정할 것이 못 되거늘 홍룡도령은 잘생긴 이목구미를 한껏 구겼다.
“또 흉(凶)이로군.”
뽑는 점괘마다 흉이다.
령들이 이리도 공포에 빠져 있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그는 침착하게 턱을 괴고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좀 더 세밀하게 점을 봐야겠군. 홍룡님도 모셔봐야겠어.”
자리를 가다듬고 쌀알을 쥐었다.
그리고 항상 하던 대로 령을 부려 점을 보았다.
곧 점괘가 나왔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죄를 저지르면 응보가 돌아오며 모든 것은 결국 올바르게 된다는 뜻.
홍룡도령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 저지른 죄가 뭐가 있더라.
“끄응…….”
그는 스스로 생각하길 자신이 악한 사람은 아니라 여겼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도 동의하는 바였는데 실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동정심도 있었고 나름의 정의감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뒤덮는 큰 단점이 있었다.
돈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한 자작극 때문인가? 아니면 지난번의? 그도 아니면……. 에이-! 짚이는 게 너무 많군!”
홍룡도령은 돈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의 상황은 돈을 벌기 굉장히 좋은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라.
영혼을 다뤄서 이야기를 듣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알아서 돈을 가진 부자들이 줄지어 와서는 자신의 신변잡기를 미주알고주알 말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면, 혹은 미래의 상담을 도와주면 돈을 준다.
홍룡도령이 열성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거기서 끝났으면 인과응보라는 점괘가 뜰 일은 없다.
홍룡도령의 일탈행위는 선을 훌쩍 넘었다.
“악령을 써서 일을 해본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말이지.”
무당 일을 하다 보면 안 좋은 일도 생긴다.
가끔 가다가 보면 말을 안 들어먹는 령도 생기게 마련이다.
사람도 가르치고 경험이 쌓으면 가끔 벽을 넘지 않는가.
악령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경험을 쌓다 보면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를 하곤 했다.
어떤 녀석들은 남을 몰래 따라다니는 방향으로 진화하여 그림자에 녹아드는 령이 되기도 하고 목소리를 흉내 내는 령이 되기도 했다.
까놓고 말해서 이러한 악령은 혼령이 몬스터화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양놈들이 사티로스, 인큐버스, 서큐버스, 스펙터, 레이스라고 불리는 건 다 악령이란 말씀.’
몬스터는 퇴치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재활용이 가능했던 거다.
‘악령 = 몬스터 = 재난 = 돈.’
헌터들이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벌듯이, 악령이 붙은 고객님들에게 악령을 떼주는 건 좋은 비즈니스가 된다.
그 점에 착안해서 홍룡도령은 큰 판을 짜보았다.
밑 준비로 악령이 된 령, 즉 몬스터를 부적에 가둔다.
그리고 그걸 고객에게 팔아치운다.
시간이 지나면 그 고객이 홍룡도령에게 다시 의뢰를 한다.
해결책을 가르쳐 주고 해피엔딩.
악령도 제거하고 돈도 받고 일타쌍피다.
‘지금까지는 잘 해결됐었는데 말이야.’
요놈의 악령은 의외로 제거하는 일이 굉장히 번거로운 게 사실이었다.
부적을 쓰자니 원가도 안 나오고, 여간 진이 빠지는 일이 아니라 홍룡도령이 처리하자니 끝도 없었다.
하지만 방식을 바꿔보니 아주 간단했다.
용사의 밥집이라는 곳을 운영하는 사장이 있다.
그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다.
이세계에서 얼마나 굴러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산전수전공중우주차원전을 다 겪은 자다.
이쪽 바닥말로 보자면 곤륜이나 어디 산맥에서 수백 년 정도를 수행한 선인 내지는 도인 같은 사람!
그래서 그런지 양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주 태양 같았지.’
양기가 어찌나 강한지 어지간한 악령은 그가 있던 곳에 다가가기만 해도 살살 녹았다.
수비(隨配, 질 낮은 잡귀신)는 그의 기운이 닿기만 해도 그냥 성불해 버릴 정도로-!
그래서 종종 해결책이랍시고 제시하는 게 의뢰자를 그 사장의 근처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버섯을 먹는 곳으로 가보라고 한다던가, 달달한 사골국을 먹어보라고 한다던가, 커다란 고양이에게 가보면 좋을 거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말이다.
쨍쨍하게 태양이 떠있을 때 눈이 오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녹는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승우가 있는 것만으로 잡귀는 그냥 사라진다.
그러니 완전 범죄일 터였는데-!
‘점괘가 더러워. 두 개의 태양, 움직이는 태양이라면 아무래도 그 사람 정도밖에는 연상이 안 되는걸?’
이거 걸린 거 아냐?
뒤통수가 알싸해졌다.
그 한기를 느끼며 홍룡도령이 몸을 추슬렀다.
일이 힘들어질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는 일이다.
듣기로는 그 사장은 상당한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 했으니 잘 어르고 달래면 물러서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자신의 변설에도 눈썹 하나 까닥 안 하고 천천히 인사하는 유승우를 볼 때까지는.
* * *
홍룡도령은 유승우의 눈빛을 보며 예전 일을 떠올렸다.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서에 출두했을 때 말없이 자신을 보며 눈빛으로 ‘난 네가 지난여름 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레이저를 쏘아 대던 형사의 그 눈!
승우는 보기 드물게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홍룡도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시오. 본인은 그런 쪽의 취미는 없소이다.”
“눈을 가렸는데도 제 눈이 보입니까?”
“조선제일무당이니 당연히 마음의 눈 정도는 열려 있게 마련이오. 심안 모르시오, 심안.”
“심안이라…….”
당연히 심안이 아니었다.
그냥 령들의 시야를 빌려서 보고 있었을 뿐이다.
홍룡도령이 노심초사하며 그를 관찰하고 있을 때.
유승우도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심 깜짝 놀랐다.
‘뭐야, 저 녀석…….’
「이름: 한유성
성향: 질서적인 악(惡)
기벽: 돈의 망자, 자기애
능력: 무당」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상태였다.
악은 악인데 질서적인 악이라는 건 절제가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범죄를 저질러도 우발적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저지르는 확신범이라는 뜻!
헌법에서는 충동범죄보다 계획범죄가 더 높은 처벌을 받는다.
그런 만큼 아주 질이 나쁜 성향이다.
그런데 성향도 개판인데 기벽은 더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돈의 망자라니.’
자기애, 그리고 돈의 망자.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종류의 사람이다.
이게 어떤 면에서는 리비보다도 더 싫었다.
리비는 흔히 볼 수 없는 유형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내지는 군용살인병기라는 느낌이었다면 이 녀석은 TV를 보다 보면 가끔 나오는 질 나쁜 범죄자 같았다.
그러니까 50억쯤 사기치고 2년 정도 형을 살다 나오는, 다단계로 자석요나 파는 사기꾼 같은 느낌!
유승우는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조금 딱딱해졌다.
그리고 그 표정을 읽고 홍룡도령, 한유성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눈치채고 왔군. 눈치채고 왔어!’
듣기로는 상당한 인격자라고 알고 있다.
보자마자 그냥 갑자기 인상을 팍 쓸 법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딱딱해졌는가.
사람이 표정을 굳힐 때는 여러 경우가 있는데 가장 흔한 경우는 놀라서고 그 다음은 적의의 표현이다.
대뜸 놀랄 이유는 없으니까 적의를 가졌다는 것!
15년간 단련된 표정 읽기 능력과 상황파악 능력이 지금의 상황을 두고 신나게 경고음을 울렸다.
‘악령을 보낸 게 걸렸나? 아냐! 아직은 몰라!’
일단은 발뺌이다.
유성은 느긋하게 부채를 펼치며 말했다.
“날도 더운데 그래 무슨 용건이 있어서 본인을 찾은 게요. 내 구차하게 말하지는 않겠소만 내 시간은 상당히 비싸다오.”
“쓰읍…….”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지만 그건 진짜로 물질적인 가치로 보라고 있는 격언이 아니다.
그런데 저놈은 누가 돈의 망자가 아니랄까 봐 돈 돈 타령을 하다니-!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드니 절로 표정으로 감정이 흘러나온다.
승우가 한층 더 인상을 썼다.
그러자 홍룡도령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허미, 진짜 걸렸나 보네.’
아주 대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다.
이거 잘못하면 한 대 치는 게 아닐까.
아무리 A섹터가 잘 정비되고 법도가 잘 지켜지는 곳이라고 하지만 상대는 선인이다.
법은 멀고 어퍼컷은 가깝다.
장담컨대 이 집은 핵폭탄이 터져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된 곳이지만 유성의 턱은 저 사람의 핵펀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자기애의 화신인 한유성은 눈을 살살 굴리며 승우의 심기를 살폈다.
승우가 말했다.
“박달수 사장님의 일로 왔습니다.”
“아, 박달수 사장님. 좋은 분이시지요. 본인이 지난달에 박 사장님의 부인과 아들의 건강을 비는 부적을 썼었는데 아주 가족 사랑이 끔찍하더이다.”
“몽마 관련 일이더군요.”
“몽마 말이외까? 하하, 이거 무당이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사실 그런 몬스터는 없소. 다 생기가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오. 아침에 따뜻한 햇살을 받아서 비타민 C도 보충하고, 적절하게 운동해서 땀도 흘려주고 좋은 거 먹고, 좋은 생각 하고 좋은 사람 만나면 푹 자게 돼 있소이다.”
“…….”
“하지만 박달수 사장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구려. 그리고 다 좋은데 그놈의 튀김이랑 맥주 안 끊으면 내가 나중에 큰 사고를 칠 거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 말이지, 도통 끊을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원-!”
말이 끊이지를 않는다.
일방적으로 할 말만 하고 말을 못 하게 한 후에 쫒아내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승우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떠올랐다.
“…야.”
“야라니-! 무례하구려-! 내 무례한 사람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으니 썩-!”
“야.”
살짝 톤이 올라간 화난 목소리.
너스레를 떨던 한유성이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다년간 다져진 눈치 스킬이 요란하게 위기 상황을 알렸다.
“네, 형님.”
한유성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았다.
승우가 혀를 찼다.
“쓰읍.”
“말씀하시옵소서.”
“길게 말할 거 없고 짧게 줄여서 말해라.”
“예, 형님. 제가 부적에 몽마를 담아서 보냈습니다.”
“……?”
얘가 지금 뭐라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