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용연향 (3)
용연향(龍涎香).
Ambergris(앰버그리스).
용의 침으로 만들어지는 향이라는 문자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수컷 향유고래의 담석을 의미한다.
“담석이요?”
담석이 뭐지?
은하가 쪼그려 앉아서 용연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승우가 대답해 줬다.
“간에 있는 소화를 도와주는 액체를 담즙이라고 하는데, 그게 굳으면 담석이 돼.”
“…….”
그거 되게 더러울 거 같은데.
깔끔쟁이 은하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고, 처음 보는 거라면 입에 넣고 보는 영식이가 앞으로 다가왔다.
은하는 서둘러 영식이를 끌어안고는 ‘지지에요, 지지!’ 하고 속삭였다.
그 모습에 승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그건 향유고래의 용연향이고 용의 용연향은 다른 거야.”
“어떻게 달라요?”
“용은 불꽃을 토하잖아. 드래곤 브레스, 용의 숨결이란 건데 이게 천천히 설명하자면…….”
마침 용의 시체가 있으니 딱 좋은 교보재가 되어 주었다.
승우는 들고 있던 검으로 용의 주둥이를 가리켰다.
“이 입을 라이터라고 보면 돼. 드래곤의 혀는 딱딱하고 돌 같아서 혀를 튕기는 걸로 불을 만들 수 있지. 그걸 텅잉이라고 해.”
“텅잉……. 라이터요? 마법이 아니에요?”
“판타지라고 해도 법칙은 있으니까. 드래곤 브레스는 마법이 아냐.”
혀로 따악 따악 튕겨서 불꽃, 발화구를 만든다.
승우가 천천히 주둥이를 지나 식도 부근으로 향했다.
“여기 식도 안에는 화낭(火囊, 불 주머니)이라는 게 있어. 여기에는 소화하기 힘든 것들을 모아두지. 골드 드래곤이면 매번 금이나 정령을 먹어야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둘 다 꽤 귀하거든.”
은하도 금이 귀한 것은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엄마 아빠가 금값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까.
실제로는 금값을 조절하느라 머리가 아픈 거였지만, 어쨌든 금이 귀한 건 사실이었다.
“정령도 부족하고, 금도 부족하면 어쩔 수 있나. 드래곤도 다른 걸 먹어. 육식도 하고 채식도 하지. 그런데 그런 것들은 소화가 잘 안 된단 말이지. 털이나 가죽은 아주 질겨서 용의 산에도 잘 녹지 않아.”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용을 잡아보고, 해부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은하가 눈을 빛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소화가 안 되는 녀석들을 끌어올려서, 연료로 쓰는 거야.”
“오바이트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지지뿌.”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악몽 같은 드래곤 브레스를 맞아보지 않은 사람뿐이겠지.
승우는 느긋하게 용의 시체를 두고 강의를 이어갔다.
용의 약점, 퇴치법, 어째서 드래곤 브레스는 위력적인가!
이야기를 끝내고 승우는 자신의 머리통 정도 되는 용연향을 가리켰다.
“용연향은 그렇게 연료로 쓰이고 남은 것들과 새로 먹은 음식이 고열에 달궈지고, 굳혀지는 걸 수백 년을 반복해야 만들어져. 골드 드래곤의 먹이인 금과 정령이 섞이기에 그 자체로 이미 보석이지.”
“맛있어뿌?”
“이건 먹는 게 아냐. 향으로 써.”
향유고래의 용연향은 결국 토사물, 담석, 똥이다.
한자로는 용연향, 내지는 용의 똥이라는 의미의 용분(龍糞)이라고 쓴다.
“웃기게도 그 향에다가 알콜을 결합하면 대단히 좋은 냄새가 나. 용의 용연향도 비슷해. 어떤 면에서는 더 좋아. 알콜과 결합할 필요도 없이 어떠한 음식에 넣어도 정말 멋진 향이 나지.”
“향……?”
드래곤이 소화 못 한 걸 태워서 냄새를 맡는다고?
잠깐.
삼촌이 어렵게 말해서 이해하는 게 늦었는데 용연향이라는 거 결국은…….
“……!”
슬금슬금, 영식이와 은하가 멀어졌다.
땡글한 영식이의 눈이 가늘어지고, 은하의 순한 눈이 미심쩍은 눈이 되어 승우의 손을 봤다.
“지지예요.”
“지지다뿌.”
“어? 어? 뭐가?”
두 어린아이의 눈에는 승우가 용의 똥을 쥐고 있는 걸로 보였다.
담석이니, 화낭이니 뭐니 어렵게 말했지만 저거 결국 똥이라는 거 아냐?
“아니, 그러니까 이건 화낭 안에서 수백 년 간 고열 처리를 한 거라고, 똥이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다이아몬드처럼 고압탄소강…….”
“똥…….”
“똥뿌…….”
아이들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폭넓은 지식을 전하기 위해 고래의 용연향 이야기를 해준 게 역효과였는가!
“이런…….”
애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승우가 한숨을 쉬며 용연향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 * *
드래곤의 고기는 훈연을 통해서 소시지로 만들기로 했다.
훈연이라는 건 만들고 요리하기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았으며 시간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승우는 당장은 드래곤의 고기나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요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있으면 써보고 싶은 것.
용연향이라는 보물을 얻었으니 당장에라도 활용해 보고 싶었다.
따라서 승우는 가볍게 할 수 있는 국물 요리를 만들기로 정했다.
“스튜로 할 것인가, 스프로 할 것인가.”
스튜는 고기와 야채를 넣고 푹 끊인 간편하면서도 오래 팔 수 있는 멋진 국민 요리고, 스프는 코스 요리의 일부라는 이미지지 식당의 일품요리 메뉴로는 맞지 않았다.
그러니 기왕이면 스튜지만, 스튜는 지난번에도 해봤었다.
“음, 뭐 다른 거 없을까.”
승우가 턱을 괴고 고심하는 동안 나비가 주방에 들어섰다.
나비는 머리 위로 한 아름의 빵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달콤하면서 푸근한 빵 냄새가 확- 풍겼다.
“냐~ 오늘은 빵이 잘됐다냐~”
“어디, 맛 좀 볼까.”
따뜻한 호밀빵과 식빵.
식당에서 주로 파는 빵들은 하나같이 나비가 만들었는데, 빵의 전문가답게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다.
승우가 한 개를 대강 찢어서 먹어보니 오늘도 최고의 맛이었다.
“나비야, 혹시 그리시니 만들 줄 아니?”
“그리시니냥? 할 줄 안다냐.”
그리시니는 이탈리아의 빵인데, 연필처럼 생겼고 속은 텅 빈 빵이다.
다른 빵과는 다르게 간식풍이고, 바삭바삭하기 때문에 과자를 먹는 느낌으로 먹을 수 있다.
만드는 법은 일반적인 빵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렵지는 않다.
나비가 흘러내리는 요리 모자를 다시 고쳐 쓰며 말했다.
“근데 그리시니는 간식이다냥?”
“음. 만들 줄 알면 됐어. 대략 20인분 정도의 그리시니를 부탁해.”
“알았다냥!”
나비는 허둥지둥, 그리시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든다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반죽을 조금만 쳐서 1차 발효만 시킨 후에, 약간의 숙성마법을 더한다.
그 후에 막대로 밀어가면서 2차 발효를 시키고 뚝뚝 끊어서 오븐에 넣으면 끝.
나비가 그리시니를 만드는 동안 승우는 손을 풀었다.
그리시니는 어디까지나 간식, 혹은 곁들여 먹는 빵이다.
거기에 같이 먹을 전채 요리가 필요하다.
‘바냐 카우다로 해볼까.’
바냐 카우다는 이탈리아의 쿠치나 포베라(서민 음식) 중 하나로 만들기도 쉽고 아주 맛있다.
물론 승우가 만들 바냐 카우다는 승우가 멋대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테라식의 오리지널 괴식이다.
승우는 냄비를 꺼내서 불을 올리고는 드래곤의 내장 기름을 짜 넣었다.
‘드래곤 내장 기름의 끊는 온도는 다른 기름보다 높았지.’
물은 100도, 기름은 대략 180도 정도 선이 요리에서 사용하는 온도다.
하지만 드래곤의 내장 기름은 400도가 넘어야만 끊기 시작한다.
시판되는 냄비는 그런 고열을 견딜 수도 없을뿐더러, 드래곤은 내장 기름조차도 약간의 산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요리할 수 없다.
미스릴 냄비가 아닌 한 말이다.
‘좋은 냄비야.’
승우가 흔드는 미스릴 냄비는 아테네의 보물 창고에서 찾아낸 보물 중 하나였는데, 헤스티아의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허풍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지만 좌우지간 보기 드문 미스릴로 냄비를 만들었으니 호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가스불로는 그 온도에 도달할 수 없으니 살짝- 마법을 더해서 가열했다.
그러자 부글부글하고 드래곤의 기름이 끓어올랐다.
‘여기에 보통은 안초비를 넣지.’
안초비, 이탈리안식 삭힌 멸치젓.
이탈리안이 사랑해 마지않는 대표 젓갈!
그러나 그것에 환장하는 건 이탈리안이지 한국인이 아니다.
삭힌 정도에 따라서 심하면 괴식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게 안초비다.
그렇다면 그냥 삭힌 안초비를 넣어도 충분히 괴식이지 않을까.
하지만 승우는 고개를 흔들고는 다른 젓갈을 꺼냈다.
예쁘장한 유리병에 들어가 있는 파란색의 젓갈은 영롱하게 반짝였다.
한유성이 기가 막혀서 물었다.
“방사능 폐기물이오?”
“헤라기가스의 내장으로 담군 젓갈이다. 방사능이라니, 무례하기는.”
“몸에 무지하게 안 좋은 색을 하고 있소만…….”
그 말에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헤라기가스의 내장은 맹독 중의 맹독.
극독 중의 극독이라 먹으면 죽는다.
“괜찮아. 안 죽어.”
“아니, 죽을 거 같은데?”
“안 죽는다니까.”
“당신이 뚜껑을 연 다음부터 내 눈알이 쪼개질 듯이 아프오! 그게 맹독이라는 데 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소이다.”
자식, 눈치만 빨라서는.
승우는 유성의 악쓰는 소리를 무시하며 헤라기가스의 젓갈을 큼지막하게 덜어냈다.
맹독인 헤라기가스 젓갈을 쓰면서도 승우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해독제를 타서 중화?
그런 건 필요 없다.
미스릴 냄비에 가득 담긴 드래곤 내장 기름과 젓갈이 만나니 요란한 소리가 났다.
“캬아아아아-!!”
내장 기름에 깃든 정령이 맹독을 만나 격렬하게 비명을 질렀다.
싸운다. 기름과 젓갈이 싸우고 있었다.
끓는 기름이 용처럼 솟구쳐 올라서 젓갈을 마구 때렸다.
“역시 갓 잡은 녀석의 기름이라 싱싱하구만.”
기름이 맹독인 젓갈에 대항해 독성분과 싸우고 있었다.
승우의 의도대로 드래곤 기름의 저항력이 헤라기가스의 독보다도 더 강하다.
아마 곧 해독되겠지.
“세상에, 저게 다 원령인가!?”
유성의 눈에는 수많은 혼이 기름에 뭉쳐서 저항하는 게 보였다.
승우가 빠르게 정정해 줬다.
“정령이다.”
“차라리 원혼이 낫지 정령이 깃들 정도면 신물이 아니오까?! 저거 대체 뭔 기름이오!”
“골드 드래곤 기름인데.”
“…….”
유성이 턱이 빠지건 말건, 재빨리 승우는 몇 가지의 재료를 더했다.
우선은 한국인의 소울인 마늘, 아주 대량의 마늘.
마늘만은 테라산보다 지구산이 좋았다.
향도 좋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나는 못 본 걸로 하고 빠져야겠군. 여기 있다가는 용신님의 저주를 받겠어.”
“나중에 아쉽다고 하지나 마라.”
바냐 카우다의 요리법은 이게 전부였다.
기름에 젓갈을 넣고 부드러운 크림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저어주는 것.
완성된 것에 그리시니를 찍어먹으면 멋진 한 끼 식사가 된다.
승우는 몇 가지의 향신료를 더 더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가 안 빠지는걸.”
헤라기가스의 젓갈 냄새가 생각보다 강하다.
정령들의 분투에 독성분은 많이 빠졌지만 냄새, 냄새만은 빠지지 않는다.
“그럼 여기에 용연향을 넣어볼까.”
“요, 용연향? 용연향이라고 했소?”
“빠지는 거 아니었냐?”
“용연향이라면 그거 한 덩어리가 6억쯤 하지 않던가.”
“고래의 용연향은 그쯤 할 거다.”
고래의 용연향은?
한유성이 살짝 의아해했다.
“고래 말고도 용연향이 나오는 생물이 있소이까?”
“용연향이잖아. 이름 그대로 용에게도 있지.”
“…….”
드래곤의 용연향?
“그거 얼마쯤 하오?”
“팔렸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렇겠지. 나도 처음 들어봐.
아무튼 무지 비싸겠지?
유성은 조용히 자리를 잡고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고, 말없이 기다렸다.
그 얄팍한 속내를 읽으며 승우가 용연향을 1g 정도 떼어다가 냄비에 넣었다.
그러자 마법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 오오.”
연기는 향기의 덩어리였다.
그것이 유성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신이 맑아지고, 의식이 또렷해진다.
동공이 수축되면서 엄청난 양의 카페인을 한 방에 혈관에 주사한 것처럼 사물이 뚜렷하게 보인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알싸한 향기는 정말…….
“멋지구려.”
“으음, 이게 참 좋은 데 말로는 못 하겠네.”
무작정 달콤하며 좋은 냄새는 아니다.
하지만 의식을 맑게 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냄새다.
그러니 이건 좋은 냄새가 아니라, 멋진 냄새다!
유성이 감탄하고 승우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
조금 멀리서 둘을 보고 있는 한 꼬마 숙녀와 슬라임이 있었다.
“똥 냄새 맡고 좋아한다뿌…….”
“어른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영식이와 은하는 서로를 보다가 한 발 뒤로 물러서서는 문을 꼭 닫았다.
자신들의 소중한 방에 똥 냄새가 나는 건 싫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