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커져라-! (2)
나비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레벨 99 아일루로스인 자기가 4성 요리를 못 먹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4성 요리 정도는 간식으로 먹을 수 있다냐.”
일전에도 다이어트를 위해서 4성 요리를 먹지 않았는가.
괴롭고 아프고 짜증 나서 그렇지 꾹 참는다면 먹을 만한 것이 4성 요리다.
은하를 위해서라는데 못 먹을 이유가 없었다.
나비가 그렇게 말하자 승우가 씩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사정 봐줄 필요가 없겠군. 만들어 봐도 되겠어.”
“냐? 냐냐?”
뭐지, 불안하게시리?
나비가 움찔움찔 귀를 세웠다.
승우가 파라라락 하고 헤스티아의 서를 확인했다.
그의 손이 한 부분에서 멈췄다.
기간토마키아.
승우는 그 글자를 보면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 *
테라의 신들에게는 두 종류의 적이 있었다.
하나는 이세계에서 건너온 악마들, 즉 마왕군.
신들은 마왕군이라는 문제를 이세계에서 데려온 용사들을 사용하여 봉합했다.
나머지 하나의 적은 기간테스였다.
기가스, 태초부터 있었던 거인들.
기간테스들은 신의 직계자손이었기에 태어났을 때부터 레벨 70 이상을 보장받는 종족이다.
그들은 매우 강한 힘을 가졌으며 반항적이었다.
그러니 주신인 제우스에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반기를 들었다.
그렇게 기간테스들과 테라의 신들은 싸웠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신이 죽었지만 테라의 신들은 승리했다.
이 싸움을 기간토마키아라 한다.
기간토마키아는 두 번에 걸쳐서 있었다.
한 번은 테라의 신이 연합해서, 두 번째는 제우스가 뿌린 영웅의 씨앗들이 성장하여 헤라클래스를 중심으로 뭉쳐서 싸웠다.
두 번 모두 테라의 신들이 이겼다.
싸워서 이기고 기간테스를 무간지옥에 가뒀다.
하지만 테라의 신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두 번째가 있었다는 건 세 번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테이레시아스라는 유명한 예언자도 ‘세 번째 전쟁’을 예언했다.
신들은 공포에 빠졌다.
“기간테스는 점점 강해졌어.”
기간테스는 태어나자마자 레벨 70이다.
녀석들은 단련과 수련을 몰랐다.
타고난 힘과 소질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레벨 99의 신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졌고, 패배를 경험하고 수련의 필요성을 알았다.
그들은 단련을 했다.
그 결과 첫 번째보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가 더 격렬했다.
세 번째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겠지.
그래서 신들은 각자 나름의 수단으로 제3차 기간토마키아를 대비했다.
제우스는 씨를 뿌리는 것으로.
아테나는 정예 천사들을 육성하는 것으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아레스는 테라의 인간들을 육성했다.
여기에 헤스티아가 양념을 뿌렸다.
괴식.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는 최악의 음식.
괴식을 통해서 인간을 육성하고 천사를 육성한다.
제우스가 뿌린 신족의 피를 이은 귀족이 괴식을 먹으면 더 강해지겠지.
이 기적의 육성법 덕에.
“왕족은 거의 생물병기란 말이야.”
승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건 하층민뿐.
맛없는 걸 먹는 것이야말로 귀족의 의무.
그 귀족의 정점에 있는 왕족들은 정말 괴식을 아주 달고 살았다.
삼시 세끼를 맛없는 괴식으로 해치우고, 여가시간에는 단련을 한다.
마치 수행자, 고행자와 같은 삶이다.
그렇게 미친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커다란 왕국의 왕자나 공주, 왕이나 여왕쯤 되면 레벨 80도 우습게 찍었다.
“그렇게 귀하게 키운 전력을 마왕군 따위에 낭비할 수가 있나.”
“듣고 보면 그런 것도 같다냥.”
“기형적인 테라의 구조는 거기서 나온 거야.”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다.
지구의 사람들이 도시계획을 짜고 합리적으로 신도시를 설계하고 건축할 때.
테라의 신들은 대륙 자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전투훈련장으로 꾸몄다.
“우, 우냥. 처음 듣는 소리다냐.”
충격적인 비화였다.
테라의 무수한 악습과 관습이 기간테스의 전쟁을 대비한 것이었다니!
승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봐야 헛수고였겠지만.”
“냥?”
“기간테스들은 이제 없거든.”
기간테스들은 승우가 지구로 귀환할 때 생긴 차원의 균열을 통해 지구 침략을 노린 적이 있었다.
승우가 발견하고 싹 쓸어버렸다.
생존한 기간테스 따위는 이제 한 명도 없다.
결론적으로.
“테라의 신들은 헛고생한 거지. 테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제3차 기간토마키아는 없었다.
승우가 다 죽였으니까.
“천 년 뒤를 예언하는 건 그 어떤 예언자에게도 불가능하다는 예시가 될 수 있겠네.”
“예언은 잘 안 맞으니까냐.”
“어쨌든 제3차 기간토마키아가 있을 거라는 예언에 헤스티아는 요리를 만들었어. 그것이 바로 이 하기오스라는 요리야.”
하기오스는 실로 무서운 요리였다.
섭취한 자를 거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의도는 너무나 투명했다.
심혈을 기울여서 육성한 고레벨의 왕족에게 먹여서 거인으로 만든다.
즉, 인간을 기간테스로 바꿔서 기간테스들과 싸우는 병사로 쓴다.
“가정의 신인 헤스티아가 만들기엔 너무 악랄한 요리야. 본인도 만들면서 꽤나 번민한 모양이지만…….”
그런 헤스티아의 독한 결심도 결국에는 의미가 없었다.
제3차 기간토마키아는 없었고 테라 신들의 시대는 승우의 손에 의해서 막을 내렸다.
그 어떤 예언가도 승우 같은 기형적인 힘을 가진 용사의 탄생은 예측하지 못했다.
‘하긴 이번에 나를 상대로 왕족을 못 쓴 이유도 이해는 가.’
승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레시피를 다시 한번 정독했다.
이 요리는 확실히 엄청나게 귀한 재료를 썼다.
그리고 난이도가 말도 못 하게 높았다.
이걸 재현할 수 있는 요리사는 테라를 전부 뒤져봐도 없으며 신을 포함하더라도 승우 정도일 것이다.
왕족에게 먹여서 전투병기로 쓰려고 해도 요리사가 없는데 어쩌겠는가.
“헤스티아가 고안한 그대로 이 요리를 만든다면 레드스타 6성의 요리가 된다.”
“애, 애옹!”
6성 요리는 먹어 본 적도 없다.
실존하는지조차도 의문인 요리니까 당연하다.
먹고 나면 몸이 성하지 않겠지.
나비가 분홍색의 코를 벌름거렸다.
승우는 나비의 시옷 모양의 입을 검지로 톡 누르면서 웃었다.
“당연히 너를 기간테스로 바꿀 생각은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마. 요리에 깃든 여러 가지 효과를 제거하면 4성 정도 될 거야.”
“놀랐다냐. 너무 무섭게 하지 말라냥…….”
“하지만 안심해선 안 돼. 4성 중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맛없을 거니까.”
“우냐!”
나비가 도톰한 앞발로 승우의 팔을 팡팡 쳤다.
무섭게 했다가 안심시켰다가 무섭게 하다니!
아무리 용사님이라고 해도 너무 심술덩어리다.
승우는 그런 나비의 항의를 받으면서 녀석의 볼을 잡아당겼다.
볼이 치즈처럼 죽죽 늘어났다.
* * *
6성 요리를 4성 요리로 바꾸는 작업은 본래라면 수십 년은 해야 할 작업이다.
재료를 바꾸고 술식을 바꾼다.
필요 없는 효과를 덜어내고 필요한 효과만을 남긴다.
요리 레시피를 완전히 분해해서 자기의 입맛대로 재해석을 하려면 적어도 요리의 창조자와 대등한 수준의 식견과 기술이 있어야겠지.
창조자가 헤스티아인 만큼 이 요리의 재해석은 테라 최고의 요리사들 수백이 모여서 수십 년을 고생하며 머리를 싸매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단한 작업을 승우는 1시간 만에 끝냈다.
‘이게 되긴 되네.’
승우는 자신의 성장을 실감했다.
될 거라는 막연한 감은 있었지만 6성 요리를 4성 요리로 이토록 쉽게 재구성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제 확신이 들었다.
요리의 신인 헤스티아보다 ‘요리’라는 면에서는 뒤처지지만 그녀가 창시한 ‘괴식’이라는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승우가 더 위였다.
괴식의 신으로서 조만간 신명 무구도 얻을 수 있을 테지.
뭐, 그때는 그때의 일이다.
지금은 우선 스스로의 성장을 축하하자.
승우는 불끈하고 주먹을 쥐며 잠시간의 성취감을 만끽했다.
이제 머릿속으로 구상은 끝났다.
만들기만 하면 된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냄비에 기름을 부었다.
평범한 포도씨유다.
몬스터 소재의 기름이나 테라의 특수한 기름은 너무 강해서 쓸 수 없다.
찰랑찰랑하게 기름이 흔들렸다.
잠시간 열을 가하자 조금의 기포가 올라왔다.
아직 열이 부족하다.
손가락을 튕겨 마법으로 열을 보충하자 튀김을 하기에 딱 좋은 온도가 됐다.
그럼 이제 튀겨보자.
무얼 튀길까.
튀기는 것은 한 나무의 순이다.
승우의 몸통만 한 커다란 양파 모양의 순.
이건 테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커지는 속도가 빨라서 산처럼 치솟는다는 의미로 투아라고 불린다.
이 나무는 빨리 자라는 만큼 순을 먹을 수 있는 시기도 아주 짧다.
두 시간.
땅에서 두 시간만 묻어두면 단숨에 어린아이 키 정도로 자란다.
그 속도 때문에 테라에서는 빠르게 잘 큰다, 키가 크다라는 말을 투아처럼 자란다, 투아만큼 크다고 한다.
“아슬아슬한데.”
캐오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투아 순의 맛이 변질될 뻔했다.
아마 이걸 캐온 알베르트의 부하들은 채취 숙련도가 부족한 모양이지.
승우는 녀석들에게 투아 순의 처리법을 따로 나중에 가르쳐 주던가, 책을 건네주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껍질을 벗겼다.
투아 순은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크기지만 대부분은 먹을 수 없는 껍질이다.
다 다듬고 나니 주먹만 한 크기만이 남았다.
“다섯 개 정도면 될까.”
1.2m 정도의 아일루로스가 눈 고래보다 커져야 한다.
다섯 개면 충분히 그거보다는 커지지 않을까.
네 개의 순을 더 꺼내서 다듬었다.
다듬은 순에 마법을 걸 차례다.
하기오스의 술식은 ‘성장, 강화, 증폭’이라는 평범한 술식에 대자연으로부터 마나를 강제로 끌어서 흡수하는 ‘강탈’과 한계를 부수는 ‘무한’의 술식.
거기에 ‘예정된 파멸’이라는 죽음을 담보로 한 한시적인 모든 술식 증폭 효과다.
먹고 죽든지 말든지 하는 막장 술식이다.
승우는 대부분의 술식을 지우고 성장과 무한의 술식만을 남겼다.
그렇게 딱 두 개만을 남겼음에도 이 요리는 4성이었다.
성장과 무한의 술식은 그만큼 무거운 술식이다.
퐁당, 마법이 새겨진 순이 기름 안으로 던져졌다.
순의 녹색 표면이 기름에 익어서 노랗게 변했다.
색이 변하는 찰나, 승우는 그것을 재빠르게 건졌다.
그러고는 탁탁 하고 기름을 턴 후에 그릇에 올려놨다.
다섯 개.
다섯 개의 순이 그렇게 겉만 튀겨졌다.
이러면 아주 바삭한 튀김이 된다.
그러나 승우가 원하는 튀김은 바삭하게 맛있는 튀김이 아니다.
밀가루에 계란을 풀어서 튀김옷을 만들었다.
한 번 튀겨진 순에 튀김옷을 입혔다.
그 후에는 어째선지 보석을 꺼냈다.
붉은 보석, 홍옥(紅玉).
카벙클이라 불리는 보석이다.
보석 마법학에서 홍옥은 결의와 확신.
성공과 전쟁의 유혈을 의미한다.
보석을 꾸욱 하고 쥐자 가루가 되었다.
승우는 손을 높게 하고 가루를 천천히 조금씩 튀김옷에 뿌렸다.
소금을 뿌릴 때 손을 높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리해야 고운 입자가 전체적으로 고루 퍼진다.
그렇게 보석 가루를 뿌린 후 다시금 순을 기름 냄비에 넣었다.
두 번 튀기기.
다만 두 번째 튀기는 것은 조금 오래 튀긴다.
이렇게 하면 순은 바삭해지고 튀김옷은 눅눅해져서 입 안에 있을 때 아주 더러운 식감을 낼 수 있다.
맛이 더러울수록 괴식의 효과는 상승한다.
헤스티아의 진짜 하기오스 식대로 조리한다면 이것의 횟수를 올려서 무려 11번이나 튀긴다.
두 번, 딱 두 번 튀기는 게 4성 요리로 만드는 마법의 숫자다.
그렇게 투아 튀김, 하기오스(개량형)가 완성됐다.
“완성. 그럼 먹여볼까.”
승우는 요리를 가지고 마당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향했다.
“냐아…….”
나비는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투아 튀김을 보고 고양이세수를 했다.
설명을 다 들은 은하는 조심조심 그릇 위의 요리를 봤다.
어째 멀쩡해 보인다.
평소에 유치원에서도 종종 나오는 야채 튀김 말이 같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그, 그럴 리가 없다냐.”
4성 요리 중에서도 최악으로 맛없을 거라고 겁주지 않았나.
하지만 진짜로 맛있어 보인다.
애초에 튀김은 뭘 튀겨도 맛있지 않은가.
아니, 아니야.
생각해 보면 용사님이 그냥 심술을 부린 걸지도 몰라.
실은 맛있을지도?
나비는 주저주저하다가 포크를 들었다.
“먹어봐야 알겠다냐……. 우냥.”
푹 하고 튀김을 찍어서 입에 넣었다.
효과는 빨랐다.
입에 넣고 씹자마자 나비의 몸이 들썩들썩하더니 쑥- 커졌다.
한 번 씹을 때 승우만큼 커졌고, 두 번 씹을 때는 그 두 배는 커졌다.
승우는 만족스럽게 ‘효과 좋고.’ 하며 웃었고 은하는 그 모습에 방긋 웃었다.
그런데, 그 맛은?
나비가 소리쳤다.
“우냐아아앙-!!!! 맛없다냐!”
너무 맛이 없어서 그만 나비는 울음을 터트렸다.
커다란 고양이가 흘리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승우는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요리의 이름은 고양이의 눈물 정도로 할까?”
눈물이 쏙 나오게 맛없는 튀김.
고양이의 눈물.
좋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