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247화 (246/613)

247화. 크라이 워몽거 (5)

소란스럽게, 그리고 다급하게 어른들이 뛰어갔다.

무기를 들고 표정을 굳힌다.

싸운다. 전쟁이 시작된다.

아까까지는 서로 재밌게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레벨은 높지만 전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비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영식이와는 다르게 은하는 상황을 잘 알았다.

“모두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요.”

재난 대처, 긴급 상황 발생 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유치원에서 배웠다.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어른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그렇구냐.”

나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ISAC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나 더.

용사님의 당부도 떠올랐다.

[싸우면 안 돼. 지구에서의 싸움은 지구인이 주인공이야.]

지구를 노리고 오는 침략자는 많다.

하지만 그 침략자와 싸우는 것은 오롯이 지구인이어야 한다.

적어도 차원법을 지키지 않은 싸움이면 모를까, 규칙을 지키는 싸움이라면 하늘에서 떨어진 초인인 승우 자신은 물론이고, 준신격인 나비가 싸울 자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잠깐 싸우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은 좋지 못한 일이었다.

스스로 싸우길 포기하고 승우와 나비에게 모든 싸움을 맡겨 버리게 될 테니까.

나비는 그런 관념을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용사님의 말을 따르면 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안전구역의 위치는 여기예요.”

은하가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지휘통제실에는 비전투요원도 있다.

전투가 발생하면 안전구역으로 도주하게 지침이 내려 와있다.

안전구역으로 향하니 하나둘 사람이 보인다.

그들이 아이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길을 양보했다.

“빨리 이쪽으로 오렴!”

“예!”

은하와 나비가 대답하면서 몸을 틀었다.

그런데 영식이가 손을 흔들었다.

“가기 싫어뿌.”

“가야 해요. 여기 있으면 모두에게 방해돼요.”

“뿌. 나도 도와주고 싶어.”

“안 된다니까요. 애초에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뿌?”

세이프티 룸, 안전구역에서도 비전투원은 할 일이 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분석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공용 데이터베이스에 올린다.

전자기기 수리가 가능한 인력은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둥.

사소한 일, 아주 조금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아이들이 괜히 아이들인가.

“우리가 할 일이 없어요.”

은하의 전투력은 어지간한 헌터 이상이다.

그러나 은하가 싸울 일은 없다.

아이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군의 사기가 떨어진다.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한눈을 팔지도 모르지.

그리고 은하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신분도 문제였다.

이 꼬마 숙녀는 총장의 하나뿐인 딸이다.

만약 은하를 일선에 내보낸다면 그 뒷감당을 할 사람은 없다.

영식이가 몸을 부풀렸다.

“그런 거 몰라. 뿌.”

“우, 우우. 왜 오늘따라 고집을 부려요?”

“도와줄래뿌.”

“정마알-!”

“나 이거 있어뿌.”

주섬주섬 인벤토리를 뒤져서 무엇인가를 꺼내든 영식이가 뛰어갔다.

녀석이 꺼내든 것은 호떡을 구울 때 썼던, 융합의 마법이 각인된 마법 철판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비와 은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냐-!”

저거라면 도와줄 수 있다.

나비와 은하는 서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저 가라고 양보해 주던 어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영식이를 따라 달렸다.

목표는 주방이다-!

* * *

그렇게 셋이 호떡을 부쳐왔다.

한가득-!

“이… 이게 그 마법 철판으로 만든 호떡이란 말이지.”

“뿌! 호떡 머겅.”

시라노의 눈이 떨렸다.

사전에 정보를 얻어서 이 철판과 호떡은 알고 있다.

그 엄청난 효과에 반해서 A섹터의 지부장, 이정훈에게 반출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물론 거부당했다.

당연한 일이다.

시라노가 같은 입장이었어도 절대 주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철판은 하나만 존재하는 아티팩트가 아니지. 그렇지, 그래. 귀환자라면 몇 개라도 만들 수 있는 거였어.”

“뿌?”

A섹터에서 애지중지하는 보물이지만 유승우는 그냥 만들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집에 몇 개 더 있을 수도 있고, 이 파란 슬라임을 위해서 하나 더 만들어줬을지도 모르지.

시라노가 손가락을 튕기며 안톤을 불렀다.

“보고대로라면 즉효성, 최고급 포션에 가까운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안톤! 부상자에게 호떡을 보급하도록. 부상이 심한 사람에게 공급하고, 진통제를 준비해.”

“진통제 말입니까?”

“그래. 이 호떡을 먹어서 재생될 때는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쇼크사 할지도 모르니까 진통제는 반드시 추가 처방해.”

“알겠습니다!”

황급하게 안톤이 영식이가 건네준 호떡을 받았다.

그러고는 달렸다.

한시름 놨다는 듯 시라노가 긴 숨을 내뱉었다.

“살았다. 아니, 빈말이 아니라 진짜 살았다. 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구나.”

“뿌!? 나 잘했어?”

“그래. 아주 잘했다. 네가 최고다. 훈장 줄까?”

“뿌뿌!”

“살다 살다 이렇게 도움도 받아보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급한 불을 끈 정도가 아니다.

영식이가 가져온 호떡으로 몇 명이 살 수 있을지는 추산이 안 될 정도다.

“죽을 부상이 나을 사람도 있고, 경미한 부상이 완치되어 다시 전선에 나갈 수 있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 그 사람이 활약하면 마찬가지로 부상자가 줄고, 적도 줄겠지. 한 명의 아군을 살린다는 것은 그런 거야.”

“뿌~ 모르겠다뿌?”

“그냥 네가 최고라는 거만 알면 돼!”

“뿌~!”

물론 호떡은 무조건 좋은 물건은 아니다.

저 호떡은 포션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단점은 호떡이라서 싸우는 중에 먹기가 힘들다.

대충 상처 부위에 뿌리면 되는 포션에 비해서 불편하다.

장점은 압도적인 연비. 생산력.

몬스터의 기름과 다 쓴 마석, 그리고 호떡을 구울 사람의 마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지.

“응?”

그러고 보면 저거 마나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만들었지?

시라노가 의문을 가지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영식을 봤다.

“너 안 지쳤니?”

“뿌? 호떡 굽는 걸로는 안 지친다뿌?”

“…….”

지치는 게 당연한 건데 이 녀석은 마나가 어떻게 되먹은 거지?

보기보다 레벨이 높나?

시라노는 조심스럽게 품에서 스카우터를 꺼냈다.

그리고 영식이를 보는 순간 시라노의 턱이 쩍 벌어졌다.

“뭐, 뭔 놈의 마나량이 이래!?”

영식의 추정 마나 수치는, 시라노의 400배 이상이었다.

퍼스트 오더급 헌터인 시라노를 아득하게 상회하다 못해서 비교조차도 불허하는 마나량!

놀랄 일은 더 있었다.

“호떡 더 부쳐왔어요! 시라노 삼촌! 이거 어디에 두면 될까요!”

은하가 들어왔다.

양손 가득히 호떡을 담은 쟁반을 들고.

그런데 녀석의 마나량이 범상치 않았다.

“내 50배?”

쟤 얼마 전에 각성했다고 하지 않았나?

내 마나량도 동급 헌터와 비교하면 엄청 높은 편인데, 실은 나 낮았나?

녹색 존만이 앞에서만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먹이사슬 가장 아래의 개미 수준이었나?

시라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망연자실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 고, 고맙다. 앞으로는 가져오진 말고, 우리가 주방에 가지러 갈게.”

“예! 그럼 더 만들게요!”

은하가 활기차게 웃으면서 달려갔다.

“400배? 50배?”

뭘 먹고 살면 저렇게 되는 거야?

시라노는 물론 답을 알고 있었다.

녀석들이 먹고사는 거야 뻔하다.

자리에 앉은 시라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도 밥집에 취직할까.”

분명히 주혁진이라면 ‘강한 헌터는 많지만 한 방면을 맡길 사령관은 다섯도 안 된다. 당신이 현장 뛸 일은 없으니 쌉소리 말고 지휘나 해라.’라고 하겠지.

하지만 남자가 태어났으면 강해지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 아니던가.

괴식식당에 취직하면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시라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생각하다가 스스로의 머리를 때렸다.

“아, 집중, 집중.”

지금은 전쟁 중이다. 뻘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는 다시 상황판으로 눈을 돌렸다.

미련이 없어져서일까.

그의 지휘봉은 한결 더 날카롭게 움직였으며 목소리를 한층 더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

“좌측이 비었잖아!”

시라노가 기분 좋게 소리쳤다.

* * *

뇌검 케라우노스가 승우의 손에 쥐어지자 모습을 바꿨다.

하얀색으로 빛나는 에너지 덩어리.

주신 제우스가 가진 힘의 근원인 벼락이다.

아스트라페 또한 모습을 바꿨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에너지 덩어리, 제우스의 신명인 하늘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제우스가 사용할 때만 모습을 바꿔야 하건만, 이미 이 두 검은 승우를 주인으로 인정했다.

“자아- 휘몰아쳐라!”

승우는 회전하며 두 개의 에너지 덩어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이 갈라지며 수억 발의 낙뢰가 떨어졌다.

크라이의 시야 끝, 아니, 행성을 뒤덮는 천둥 벼락!

한 발 한 발이 드래곤조차 즉사시키는 벼락이다.

위력도 숫자도 제우스가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크라이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땅을 박찼다.

진각, 대지를 부술 듯 내려치는 발 구르기.

“흡-!”

크라이의 몸 안에 흐르는 가공할 만한 기(氣)가 주먹을 통해서 발산된다.

수억 발의 벼락을 뚫고 한줄기의 권풍이 불었다.

그러자 지면이 까뒤집어지며 대기권까지 토사가 치솟았다.

낙뢰는 토사에 막혔다, 크라이는 그 순간 내지른 주먹을 거두며 왼발을 들었다.

그것은 돌려차기였다.

아무런 기교도 없는 단순한 돌려차기.

하지만 그 궤적을 타고 공간이 갈라진다.

크라이의 특기, 선풍참이다.

본래는 바람의 칼날을 만들 정도의 돌려차기는 이제 공간을 자르고, 행성을 자른다.

그런 필살의 공격을 승우가 막았다.

아주 간단하게 검을 같은 궤적을 따라 휘둘러 같은 기술로 무마해 버렸다.

뒤늦게 충격파가 사방에 퍼진다.

열풍이 불고 중력이 뒤집힌다.

둘의 모습이 사라졌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동경로를 따라 공기의 장벽이 뚫리는, 소닉붐을 만들어낸다.

원형의 소닉붐 주변으로는 빛과 충격파가 번쩍였다.

검과 주먹이 수도 없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장관에 구경꾼은 없었다.

구경꾼이 아니라 이제는 문명의 흔적도 없었다.

파괴된 지면과 사방에서 뿜어 나오는 지열, 증기뿐.

둘의 싸움은 한 세계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런 파괴의 현장에서 승우가 살짝 칼을 털었다.

“좋은데. 간만에 제대로 싸우는 거 같아.”

“동감이다. 역시 싸움은 이래야지.”

크라이가 지상 최고의 행복을 느끼며 광소를 흘릴 때, 승우 또한 웃었다.

잠자코 있었던 내면의 야수가 깨어난다.

사람의 착함, 도덕관념을 떠나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무엇이든 자신이 잘하는 일은 즐겁다.

승우의 경우는 교사이기도 하고, 요리사이기도 하다.

자신은 그것이 스스로의 본질이라 믿었지만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은 싸움이었다.

승리의 신은 무엇보다 싸움을 좋아하는 법이다.

그는 검의 신이었고, 승리의 신이었으니까 검을 쓰는 이 싸움이 재밌는 것은 당연한 일.

오랜만에 자극을 받아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흥분했다고도 할 수 있다.

“포세이돈조차 내 일검을 받아내지 못했는데 말이야.”

“생선 잡는 거나 할 줄 아는 그런 비전투신과 나를 비교하는 건가?”

“말이 그렇게 되나?”

포세이돈도 두 개의 신명을 가진 신 중에서는 굉장히 상급이었지만, 역시 크라이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전투 경험도 의지도 기술도 패기도.

그리고 꺾이지 않는 마음도 차원이 다르다.

“나의 첫 번째 신명은 투쟁-!”

투쟁-!

어떤 대상을 이기고 극복하기 위한 싸움.

누구를 위한 투쟁이고 무엇을 위한 투쟁인가.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았지. 나는 너를 이기기 위해서 태어났음을!”

“그건 좀 부끄러운데, 사랑 고백 같잖아.”

“하하-! 그럼 벗이여! 내 숙적이여! 내 사랑을 느껴봐라!”

크라이가 웃으면서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의 양팔에 붉은 건틀렛이 끼워졌다.

승우의 눈썹이 반달을 그렸다.

“오랜만에 보는걸.”

투쟁의 신명 무구, 광전사의 수갑.

능력은 강한 의지에 반응하여 힘이 강해진다.

실로 간단하면서 강력한 능력이다.

크라이가 쾅- 하고 주먹을 부딪쳤다.

본격적으로 싸워보자는 신호였다.

“언제까지 그런 무기를 쓸 거냐?”

케라우노스와 아스트라페는 강력한 신명 무구다.

하지만 승우의 신명 무구인 아이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이온을 꺼내라.”

당당하기까지 한 그 요청에 승우가 씩 웃었다.

“그거 부탁하는 거야?”

“뭐?”

“부탁하는 거라면 들어줄 수도 있지만…….”

“…….”

아이온을 꺼낼 정도의 일은 아니라는 말인가.

모욕적이군.

크라이가 미간을 모았다.

“꼭 꺼내게 만들어주지.”

“그렇지. 그래야지.”

크라이가 붉은 탄환이 되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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