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251화 (250/613)

251화. 뒤처리 (1)

베이징 시 방어전이 끝났다.

시라노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군권을 반납했다.

그리고 ISAC는 공식적으로 게이트의 소멸을 알렸다.

이제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SS 오버 랭크 게이트라는 공포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은 기쁨 속에서 환호하고, 자신의 삶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구는 안전하다, 그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때야말로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일은 많고도 많았다.

아이템과 아티팩트를 감정하고 관리하는 이들은 전리품을 수거해서 그것들을 조사한다.

의무관들은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한다.

사람이 움직이면 반드시 돈도 움직인다.

게이트 주변에 상주하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니 그것에 맞춰서 물가가 흔들린다.

물가를 잡아야 하는 것은 중국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것 또한 ISAC의 일이었다.

비각성자가 이렇게 돈 때문에 바쁘다면 각성자들은 자신들을 돌보는 것 때문에 바빴다.

레벨 업, 전쟁 통에 얻어진 스킬, 전리품, 보상으로 받은 아티팩트.

헌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번에는 좀 더 각별했는데, 사망자가 없었기에 죽은 동료들을 애도할 필요가 없어서 진정으로 기쁨만 있었다.

방송인들은 이번 일로 바뀔 정세를 논하고, 정치가들은 중국의 몰락을 이야기하며 그 권력의 공백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는다.

상인은 새로 돈이 될 자리로 움직이고, 누군가는 돈줄을 잡고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파산한다.

이렇듯 각자가 할 일은 태산처럼 있었다.

전쟁은 본래 전쟁하는 시간보다도 전쟁의 준비와 뒤처리가 긴 법이다.

수개월 동안 전쟁을 대비했고,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전쟁이 끝났다.

그 하루의 전쟁의 뒤처리 또한 수개월 이상이 걸리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

솔 크라이슬러는 게이트 전문가로 초빙되어 새롭게 자료를 부여받고, 중국에 도착했다.

그는 초로의 노인이었는데 나이가 무색하게도 열정을 불태우며 연구 자료를 검토했다.

마른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손이 키보드를 누른다.

자료가 빠르게 지나간다.

“정말, 새롭군.”

베이징 시에 만들어진 게이트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

SS 오버 랭크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랭크는 이제 SSS랭크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SSS 오버 랭크가 있음을 시사했다.

전략과 전술, 함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적은 단순한 몬스터를 넘어 인간 이상의 지성체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렸다.

“아주, 아주, 새로워.”

세이프티 존이라는 새로운 규칙은 더 많은 변수를 예고했고, 차원 용병 임페리얼 오크는 더 강한 적의 존재를 알렸다.

연구자들은 이 천금보다도 귀한 자료를 보며 새로운 지식의 지평이 열렸음을 알았다.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어.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이번 일을 기점으로 우리의 삶이 변할 거야.”

친구, 솔 크라이슬러의 말에 군사 학자이자 전직 군인 장성, 프랭크 밀러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정도인가?”

“그 정도야.”

“그렇다면 하, 시라노 베르그송이 부럽군.”

“왜?”

“이런 일을 했다면 역사서에 이름이 길이길이 남지 않겠는가. 훈장은 명예를 의미하지만 무덤까지 가져갈 만한 일은 아니지. 사내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 하는 법 아니겠나.”

“내 연구 결과가 있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더?”

“그래. 조금 더.”

프랭크는 남산처럼 솟아오른 배를 치며, 크게 웃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천 명을 동원한 전쟁에서 사망자 0명이야. 이거보다 더 어떻게 잘한다는 거야?”

“그건 그렇군.”

프랭크의 말에 솔은 어깨를 으쓱했다.

“시라노 베르그송의 코가 에펠탑보다 높게 솟았겠군.”

“누가 아니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남자.

기적의 지휘관.

지구 최고의 군사전문가로 시라노의 이름은 영원토록 남겠지.

프랭크는 사내로서, 군인으로서 부러움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야.”

그가 존경을 담아 박수를 쳤다.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도량만은 시라노보다도 넓었다.

”녀석은 기적의 지휘관이야.”

“그래.”

“천재 중의 천재지. 녀석은 역사서에 나올 법한 지휘관이었던 거야. 바실리 자이체프나 유진 리는 당연히 뛰어넘었고 주혁진 총장보다 대단할지도 몰라.”

“그건 너무 후하군.”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지. 사상자 0명은 그만큼 대단한 거야.”

* * *

“이해를 못 하겠다.”

시라노가 다리를 꼬며 시가를 물었다.

긴 한숨에 뭉게구름처럼 연기가 퍼졌다.

그 모습을 보며 화상통화 속 주혁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 왜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지휘관 양반.

“내가 지휘를 해서 하는 말이야. 내가 낸 결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수천 명의 병사가 싸우고, 25명의 퍼스트 오더가 싸웠다.

차원 용병이라는 임페리얼 오크의 대군을 상대로 박 터지게, 치열하게 싸웠다.

성난 파도처럼 공격하는 오크를 정신없이 방어했다.

시라노가 펼치는 수성과 농성 작전에 조금의 미숙함도 실수도 없었다.

그럼 완벽(完璧)이라는 어원에 걸맞게 한 조각의 허점도 없이 전략을 구사했는가?

“그건 아니라고. 나는 전략전술의 신이 아니야. 내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 사기 떨구기 싫어서 작전 중에는 아가리 싸 물고 내 전략대로다, 예상대로다, 라고 허풍을 떨었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사망자 0명?”

- 정말 0명이더군.

“호떡으로 부상자를 회복시켰다고 해도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내가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런 평가를 받는 걸 내가 어떻게 인정하겠냐.”

- 의외로 겸손하군.

“시뮬레이션 결과는 어때?”

주혁진이 네모난 큐브를 빙글 돌렸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이 담긴 초 A.I 아서 시스템의 코어다.

- 아서 시스템으로 해당 전투를 9만 번 이상 복기해 봤어.

가상현실 기술의 응용이다.

원한다면 같은 조건으로 몇 번이라도 전쟁을 재생할 수 있고, 변수를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날 때마다 가상현실 기술로 몇 번이나 전쟁을 복기한다.

지구가 빠른 시간에 강해진 비결이었다.

시라노가 아서 시스템의 코어를 보다 나지막이 물었다.

“결과는?”

- 이렇게 전투의 양상이 갖춰질 가능성은 3%.

“3%…….”

- 그리고 사상자가 0명으로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다.

“제로!?”

- 그래. 제로.

0과 0.000000001은 다르다.

조금의 확률이라도 있는 것과 아예 제로는 무와 유,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가 있다.

확률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수억 번을 반복하다 보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필 지금의 그 순간이 그 수억 번의 한 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라노는 진짜 기적의 지휘관이 된다.

- 하지만 제로. 0%다. 불가능해. 1억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같다는 시스템의 경고가 있었어. 그러니까 모든 조건을 갖게 해도 지금의 상황은 나올 수가 없다는 소리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결과가 나왔다. 이건 무슨 일이지?”

- 지금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주혁진이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 폈다.

- 전장 재구성 데이터에 중요한 것이 누락되어 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까지 데이터가 누락된 적이 있던가?”

- 그 처음이 지금일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야.

“그렇군…….”

-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고, 데이터화 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을지도 몰라.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마법 효과 같은 거.

“그럴듯하군. 두 번째는?”

- 기적.

시라노가 잠깐 입을 벌렸다.

시가가 떨어졌고, 그는 깜짝 놀라며 시가를 다시 잡았다.

“네 입에서 기적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의 남자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

“그 별명은 관둬라. 진짜 부담스러우니까.”

- 뭐, 진짜 기적의 남자가 아닌 것은 네가 가장 잘 알 테니까 이런 말은 그만하도록 하지. 어쨌든 기적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글쎄. 요즘 세상에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절대 있을 수 없지.

“그럼 기적이 사실이다? 뭐 내 뒤에 승리의 여신이라도 붙어 있었다?”

승리의 여신이라, 나이키- 아니, 니케였지.

시라노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실소를 내뱉었다.

“원인은 당연히 데이터 누락으로 정해져 있잖아. 굉장히 어이없는 농담이로군. 여전히 유머센스가 나빠.”

- 농담이 아니야.

“하. 승리의 신이 있다면 발가락을 빨아서라도 섬기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딴 건 없어. 차라리 백강혁을 따라서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라도 모시고 말지.”

- …….

“그러고 보면 놈이 모시는 신의 이름에 승리도 들어가는군. 이거 다 백강혁의 덕인가?”

- …….

시라노의 말을 들으며 주혁진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단어와 단서가 스쳐지나갔다.

직감과 육감만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전략가, 전술가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주혁진이다.

그의 직감이 논리를 무시하고 정답을 이끌어냈다.

그의 입술이 살짝 호선을 그렸다.

- 그렇군. 백강혁 덕분일지도 모르겠어.

“뭐?”

- 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 중에서 미확인 데이터는 딱 하나뿐이다.

“뭔데?”

누가 설치했는지, 누가 거기에 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깃발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갑자기 솟아올랐다.

“깃발?”

- 그래. 날개가 그려진 깃발. 네가 통신기로 마지막을 선언하는 순간 사라졌다.

아서 시스템은 이 깃발을 변수로 지정하고 있었다.

이 깃발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인지는 아서 시스템도 모르고 주혁진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 밥집 아저씨가, 지구를 구해준 보상으로 대체 뭘 받아야 기뻐할까?

논리, 사고를 뛰어넘어서 직감이 저 깃발의 주인이 유승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시라노가 쓰게 웃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사고력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고하듯이 말하는 것은 시라노도 마찬가지만, 역시 주혁진의 사고력이 더 빨랐다.

그는 잠깐 안톤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나마 사고력을 따라간 것이 안톤보다 낫다는 걸까?

주혁진의 뜻을 이해한 시라노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오. 제기랄. 일이 그렇게 된 건가?”

- 그렇게 된 거 같아.

“그 깃발, 버프 템 같은 거야? 사랑스러운 귀환자님이 설치한 거고?”

- 치료 효과가 있는 호떡을 만드는 철판을 그냥 찍어내는 사람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신급 아티팩트를 주기도 했지. 전장 전체에 버프를 주는 아티팩트가 존재한다고 쳐도 이상하지 않지.

주혁진의 직감은 맞았다.

승우가 계곡에 두고 간 깃발은 보통의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승리의 신 니케의 신명 무구, [약속된 승리의 날개].

아군의 모든 능력을 상승시키며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준다.

또한 아군에게 유리하도록 전장의 우연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재채기가 나와서 공격을 피한다던가, 우연히 내지른 공격이 적의 심장에 맞는 둥 이기기 위한 행운이 계속해서 생기는 권능!

전쟁의 신 아레스가 유승우를 죽여서라도 가지고 싶어 했던 무구다.

모든 걸 이해한 시라노가 탄성을 내질렀다.

“망할! 그렇게까지 해주다니!”

자신이 기적의 남자가 아닌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거듭되는 이해할 수 없는 행운에 당혹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 다 귀환자의 배려였다니!

“이 빚을 대체 어떻게 갚지!?”

- 곤란하군.

“그래. 미치게 곤란하다.”

대가 없는 노동은 없다.

시라노와 주혁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상이다.

유승우는 시라노가 해준 것의 수백 배, 수천 배의 일을 해줬다.

그렇다면 그것에 맞춰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SS 오버 랭크를 사상자 0명으로 완벽하게 극복하게 해줬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

주혁진이 인상을 구겼다.

- 지난번에 딸 일 때문에 백화점을 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거부당했었지. 물질적인 것은 원하지 않는 모양인데 대체 뭘 줘야…….

“원하지 않기는! 수억 주고 산 차를 주니까 그냥 받더라! 비싼 거 줘!”

- 내 생각에 그 사람은 그게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도 안 했을 거야.

“그럼 안 비싸 보이는데 비싼 걸 줘야겠구만! 항공모함 어때? 거기에 집을 하나 지어서 주는 거지! 덤으로 헬기랑 탱크 주고 말이야. 남자들은 그런 거 다 좋아한다고!”

- 그건 척 봐도 비싸 보여. 하지만 그 정도 가격이 되는 걸 줘야 대가가 비슷하긴 하네.

“항공모함 가격이 대충 14조 정도던가?”

- 아무래도 각성자가 있는 지금은 예전보다 병기 값이 싸. 신형으로 새로 뽑아도 6조 정도야.”

“그럼 좀 부족한데…….

- 아니면…….

“그거보다…….”

- 차라리…….

“혹시…….”

둘의 대화는 꽤 오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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