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269화 (268/613)

269화. 가족 (2)

공간 이동 능력자, 텔레포터는 이능력이 인간의 소망으로 발현한다고 한다면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어디론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쉽게 움직이고 싶다.

일상을 탈출하고, 비일상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람이다.

그래서 공간 이동 능력자는 예지 능력자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능력자가 확인됐지만, 애석하게도 강한 능력자는 굉장히 적다.

이동거리가 단 1미터만 넘어도 쓸모가 많지만 그 1미터를 확보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 적은 능력자, 1미터 이상의 도약이 가능한 텔레포터 중에서 이동할 때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나 입고 있는 옷을 같이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만 명 남짓.

그중에서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수 있는 능력자는 천 명 이하.

거기에 타인을 끼워서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백 명 이하.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열 명 남짓이며 그중에서 ISAC가 확보한 능력자는 고작 다섯 명.

ISAC가 확보하지 못한 나머지 다섯 명 중의 하나, 아슬란 미하일로프는 천천히 스스로의 머리를 짧게 깎았다.

머리카락은 텔레포트를 할 때 거슬린다.

꼭 손질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아슬란이 가진 일종의 루틴이었다.

후드득 하고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아슬란의 눈이 번뜩였다.

“민. 오키프.”

증오가 가득 담긴 눈.

하나뿐인 동생을 잃은 형의 눈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고 폭력을 행사한 인간에게도 아끼는 것은 있다.

아슬란에게 동생은 그 하나뿐인 소중한 가족이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놈을 죽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슬란뿐이 아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다 레드마피아에서 소집한 이능력자다.

그들의 태반이 이번에 가족을 잃었다.

A섹터는 치안이 좋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세계 3대 마경이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상의 일이다.

ISAC가 사력을 다해서 유지하는 안전 때문에 러시아의 대부분의 토지보다 A섹터의 지하수도가 더 안전하다.

그렇게 가족을 안전한 곳에 보내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

“민 오키프……!”

민 오키프, 샤프슈터에 의한 전면 소탕전.

과거의 지구는 강력 범죄자라고 해도 체포를 위주로 범죄 단속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강력 범죄자는 대부분 강한 능력자이고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조금만 하자가 있다면 현장 사살 권한이 인정된다.

민 오키프는 그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조금만 저항 의사를 비치면 사살한다.

그 결과 가족을 잃은 사람이 백 명 이상 탄생했다.

“모두가 모였다, 아슬란.”

“몇 명이지?”

“109명. 정말로 다 이동시킬 수 있나?”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장담은 못 해. 텔레포트는 컨디션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공간 이동 자체가 100% 성공하는 기술이 아냐.”

예를 들어, 이동하는 경로에 파리가 있다면?

커다란 털이라도 하나 있을 수도 있고, 위성사진이나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오브젝트가 있을 수 있다.

벌레라도 한 마리 있다면 큰 참사가 벌어진다.

공간 이동으로 A를 옮겼는데 만약 그 자리에 B가 있었다고 치자.

이렇게 된다면 십중팔구는 B가 살고 A가 죽는다.

나머지 하나는 B와 A가 불운하게 뒤틀린 채 융합하는 경우고 또 다른 경우엔 둘 다 죽는다.

“그걸 각오하고 모인 녀석들이다. 걱정할 것은 없어.”

남자가 나이프를 쥔 손을 떨었다.

공포로 떠는가? 아니다. 흥분과 기대다.

빨리 한시라도 한국으로 가서 녀석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싶다.

복수하고 싶다.

남자가 흥분한 만큼 아슬란도 흥분과 기대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괜찮겠지.”

백 명 중 몇이나 이동에 성공할까.

실은 이미 난민들을 대상으로 연습을 해봤다.

20명은 성공했고 30명이 됐을 때는 반이 죽었다.

백 명이라면 열 명도 성공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 바는 아니다.

자기 목숨들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거고, 눈이 뒤집힌 아슬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가자.”

아슬란은 위성사진을 토대로 텔레포트 지점을 정했다.

우선은 국회의사당으로 간다.

그곳에서 돈을 받아먹은 주제에 제 일을 하지 못한 썩어빠진 정치가 놈들을 죄다 죽여 버리고 건물을 불태운다.

충격과 공포 전략이다.

상층부를 마비시키고 백 명의 전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모조리 도륙을 내버린다.

아슬란은 A섹터를 망가트리고 동생의 영전에 바칠 생각이었다.

녀석도 분명히 기뻐할 거다.

그렇게 텔레포트가 시작됐다.

텔레포트는 자신의 몸이나 사물을 분해하여 별빛 하늘에 내던지는 행위다.

산산이 찢어지고 조각나 흩어진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빛줄기를 헤엄쳐서 목적지까지 힘겨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면 다시 몸을 추슬러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텔레포터 본인에게도 이해가 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몸을 던지고 영혼을 던진다.

광신의 영역이다.

레드 마피아와 아슬란의 몸이 빛의 먼지로 변했다.

별빛 하늘은 이들을 A섹터로 인도했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다.

백 명이 약간 넘는 이들을 전부 옮길 수 있을 거 같다.

이것은 분명히 동생이 지켜봐 주는 것이다.

아슬란이 그렇게 기뻐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자식들은.]

살짝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에 아슬란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

목소리가 다시 한번 말했다.

[야. 너 일로 와봐.]

심기 불편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별빛 하늘이 흔들린다.

빛이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처럼 뻥 뚫린 구멍으로,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아슬란을 끌어들인다.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었다.

압도적인, 감당할 수 없는 힘 앞에서 아슬란은 너무나 무력했다.

* * *

승우는 묘지 관리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당을 빌렸다.

평소에는 연예인들이 공연을 하고 추모행사를 하는 곳이다.

지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엉덩이가 높다.”

“으. 으으으.”

스킨헤드, 모히칸, 드레드.

평소에는 정말 보기 힘든 머리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110명.

그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원산폭격 중이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라 묘지를 관리하는 직원이나 관광객, 추모객이 오며가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딱히 출입을 통제하지 않은 까닭이다.

“옴마야, 저게 뭐야?”

“행사야?”

“이벤트 같지는 않은데…….”

그들의 당황을 뒤로하고 승우가 걸었다.

오와 열을 맞춰서 머리를 박은 레드 마피아 사이로 걷는 모습이 느긋하다.

그의 손에는 고리가 들려 있었다.

동그랗고 하얀 고리.

신급 아티팩트, 시간의 고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읽어낼 수 있는 도구로,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것으로 한 명의 인생을 쭉 훑어본 승우가 말했다.

“음, 이 녀석도 아웃.”

“엇!”

그렇게 또 한 명이 사라졌다.

아슬란이 식은땀을 흘렸다.

신속의 텔레포트, 행선지를 읽어낼 수도 없다.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텔레포터라고 자부하는 아슬란조차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보다 아직도 당황하고 있다.

‘우리가 제압되는 데 1초가 걸리지 않았다고……?’

레드마피아의 109명.

거기에 추가로 아슬란이 있다.

자그마치 110명이다.

전쟁은 공격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기습을 당하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A섹터를 전부 불태울 수 있는 전력이 1초 만에 제압당했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다.

“너도 아웃.”

“아앗!”

“너도.”

“악!”

“와, 어째 사람 새끼가 없냐.”

하나둘씩 배제해서 50명이 사라졌다.

솎아낼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본 50명이 다 최악이었다.

하나같이 끝장나는 범죄자들이다.

승우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정은 알겠어. 복수, 복수. 나도 복수는 좋아해. 짜릿하지.”

가족의 복수. 얼마나 매력적인 울림인가.

승우는 복수를 긍정하는 부류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것도 복수라고 불러야 할까.

“이 염치도 없는 놈들아. 네놈들이 망치고 부순 가족이 몇인데 그러냐. 적반하장이란 말 알아?”

새까맣다.

테라에서 지구로 돌아온 후, 이렇게 시꺼먼 놈들은 처음 봤다.

리비라는 희대의 소시오패스가 있긴 했지만 녀석은 인종이 틀렸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안드로이드.

몇 개의 로직으로 돌아가는 기계라는 인상이었다.

몇 가지 감정이 누락되어서 그런 인간이 된 거겠지.

그러니까 이기적이지만 사연이 있는 이기심과 악이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냥 새까맣다.

사연도 없다. 그냥 악하다.

아주 글러먹은 쓰레기 같은 놈들이다.

전과가 30범 이하는 없었고, 그 전과 내용도 다들 화려하시다.

강도, 살인은 기본 옵션.

카니발리즘을 즐기는 놈도 있었고 이상성욕이나 욕망도 빠짐없이 달려 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썩을 지경이라 환멸이 든다.

“그래. 어디 가도 너희 같은 놈은 있지.”

어느 현자가 사람이 다섯이 모이면 하나는 쓰레기라고 말했다.

승우가 본 인간의 20% 정도가 그랬으니, 얼추 맞는 이야기다.

테라에서도 그랬다.

좋은 사람이 넷 있으면 하나쯤은 반드시 쓰레기가 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가 이상한 일이었다.

와서 본 사람들 중에 악인이 더 드물었으니까.

“포세이돈이 기뻐하겠네…….”

염전 노예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만하면 소금 생산량을 늘려도 되겠어.

하지만 이렇게 막 처벌해도 되나?

‘생각해 보면 흠, 지금 나는 지구인이고 한국인이란 말이지.’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은 다르다.

승우는 할 수 있는 걸로 친다면 못 하는 게 더 적다.

하지만 그도 지구인이고 한국인이라면 그 나라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

군림하고 지배하고, 종횡하는 것이 절대자의 특권이라지만 그 특권을 쓰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여기서 멈춰야겠네. 너희들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

먼저 게르니아로 사출당한 50명은 포세이돈의 뒤를 이어 염전 노예가 된다.

하지만 나머지 50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국법으로 보자면 이들은 불법 능력 사용으로 인한 국경 침해와 테러 용의자들이다.

전원이 다 폭약이나 총탄, 도검을 소지하고 있다.

국제법 위반인 무기도 있으니 실형을 피할 수는 없겠지.

“종신형 내지는 사형이겠지. 쯧쯧.”

교육자로서 교화하고 싶은 마음과 용사로서 죄인을 처벌하고 싶은 마음이 싸운다.

대부분의 경우는 교육자로서의 마음이 이기지만 이번에는 용사로서의 마음이 이겼다.

이런 녀석들을 교화시키려고 들어가는 품이 아깝다.

그 시간에 나비에게 한 번의 빗질을 더 해주는 게 좋고, 영식이와 영화를 봐도 한 편을 더 볼 것이며 은하에게 맛있는 식사를 한 번 더 해주고 만다.

요약하자면 시간이 아깝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흔들고 있으니 밖이 요란하다.

마치 스타 연예인이 온 것처럼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런 와중에 문을 박차고 민과 백강혁이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황은? 상황은 어때요?”

“보다시피.”

승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어깨의 뒤로 원산폭격 중인 테러 용의자 60명이 보인다.

강혁이 질린다는 듯이 혀를 내밀었다.

“이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싸장님 진짜 사기 캐네요. 2분 만에 도착했는데 싹 정리됐네.”

“역시 더 빨리 왔어야 했어.”

“이 이상 어떻게 빨리 오냐?”

“어떻게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나참. 빨리 정리하자.”

강혁이 손짓을 하자 사람들이 다가왔다.

손에는 다들 수갑을 가지고 있었다.

민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별거 아니야.”

“아닙니다.”

러시아의 레드마피아에 의한 A섹터 테러라는 미증유의 재난이 터질 뻔했다.

이리 쉽게, 이리 간단하고 신속하게 제압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가 아니라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선생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민이 살짝 표정을 풀면서 웃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답지 않게 조금 방심했다.

숙련된 암살자는 공격할 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민 오키프를 봤을 때부터 살기를 갈무리한 아슬란이 공간을 도약하며 민의 뒤로 접근했다.

독이 잔뜩 발라진 나이프가 빛을 반사하며 민의 목을 향했다.

물론 닿을 일은 없었다.

아슬란이 다음으로 느낀 것은 목을 꿰뚫는 나이프의 감촉이 아니라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바위처럼 단단한 손아귀였다.

“얘는 다른 애보다 조금 더 악질이네?”

승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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