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272화 (271/613)

272화. 괴식학원 (2)

레이첼과 헬렌의 고민은 이러했다.

학원을 만들려는데 이리저리 간섭하는 사람이 많다.

요구하는 것도 많다.

그런데 뭘 원하는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둘을 더 미치게 하는 일은 괴식 스킬 자체다.

이걸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히지 않는다.

“배우긴 했지만…….”

“어떻게 배웠는지도 사실 모르겠고…….”

“이걸 남에게 가르치자니…….”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셈이라 괴로워요.”

둘 다 배우긴 했지만 자기가 어떻게 배웠는지, 익혔는지를 모른다.

스킬 자체가 어쩌다 보니 얻어진 우연의 산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둘은 익혔다.

그렇다면 일은 간단하다.

될 때까지 쪼고 괴롭히면 누군가는 익힌다.

못 익히면 버리면 그만이고 익히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괴롭히면 된다.

본래 요리란 그렇게 배우는 것이다.

레이첼과 헬렌은 괴식만이 아니라 그냥 요리도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그대로 하려고 했는데 김해찬이란 사람이 명치를 때렸다.

[야만인들 같으니. 그래서야 야만 용사 훈련소랑 다를 게 뭐요?]

[돈 받고 싶으면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고 제대로 된 방법을 제시하시오.]

이런 말까지 들었으니 어쩔 수 있나.

천천히 아이를 대하듯 가르치는 법을 연구할 수밖에.

“반나절도 안 돼서 포기했지 뭐예요.”

“하하하.”

그런 이유로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온 건가.

둘의 고민을 듣고 승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고민될 만하네.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한달음에 올 만한 고민이야.”

“저희끼리는 어떻게 해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렇겠지. 흐음, 그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풀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다.

괴식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괴식의 신이 대답할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어이가 없는 일이지.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해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승우가 싱긋 웃었다.

“좋아. 일단 뇌물부터 확인할까.”

무엇이라도 공짜로는 해주지 않는다.

그의 그런 기질을 알고 있었기에 레이첼은 미리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 준비는 정말로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부분의 물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전부 최고급에다가 어디서도 보기 힘든 품질로.

그러니까 승우의 구미에 맞는 선물은 찾기가 힘들다.

요리사에게는 좋은 식재료나 도구를 주면 된다.

하지만 레이첼이 구할 수 있는 물건 중에서 승우가 쓸 법한 물건은 없다.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그는 베이징 시 게이트의 식자재 유통권한까지 가졌었던 인물이다.

그가 가지지 못한 식재를 찾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는 격!

그리고 따지고 보면 사실 칼, 도마, 냄비 따위의 도구는 선물해서도 안됐다.

요리계에서 그런 선물을 주는 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는 일이다.

학생이 선생에게 도구를 선물하면 절대 안 된다!

많은 고민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우회 전략이었다.

장수를 공격하기 전에는 말을 쏴라.

승우를 공략할 수 없다면 주변 인물을 공략해라.

그렇게 생각하니 공격할 부분이 많았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캐리어에서 짐을 꺼냈다.

“이건 영식이 줄 선물.”

“이건, 나폴레옹 모자?”

“예. 기념품 상점에서 사왔어요. 마침 모자 모으시나 봐요?”

“요즘 취미야. 나폴레옹 모자라 아주 귀엽군.”

“이건 나비 줄 선물.”

“빨간 리본?”

“파리의 유명 메이커 본점에서 사온 거예요. 꼬리에 매면 귀엽겠죠?”

“그래. 엄청 귀엽겠군.”

“그리고 이건 마스터가 쓸 넥타이. 같은 메이커예요.”

“넥타이는 좀…….”

“매번 흰 와이셔츠에 대강 입는데. 그렇다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죠. 정장도 한 벌 사왔어요.”

“으, 으음.”

“이건 은하가 쓸 구두. 이건 가게에 둘 에펠탑 기념 트로피. 이건…….”

끝도 없이 선물이 나온다.

하나하나가 싼 물건은 아니다.

아무래도 엄선한 유명 메이커의 물품이니까 꽤 가격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나게 비싼 물건은 아니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승우에게 선물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가져온 면면을 보면 아티팩트거나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고가, 혹은 백화점(백화점 물건이 아니라 백화점이다.) 같은 부동산이거나 수 억짜리 커스텀 카 같은 거였다.

그것들과 비교하면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부분이 바로 먹힐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는 이런 거 잘 안 사잖아요.”

“흠……. 그렇지.”

승우는 패션에 관심이 없다.

이것은 인간 개인이 가진 성격이나 취향, 기호의 영역이 아니라 실리의 영역이다.

그는 용사였고, 전사였기 때문에 디자인보다는 성능을 본다.

그런데 옷이라는 게 성능이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세상이 미치기 전에 옷의 효과는 디자인이 전부였다.

가끔 방한, 내열 따위를 추구하는 옷은 기능성 옷이고 그것은 극한 상황에서 쓰는 거지 보통 옷에 요구되는 기능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승우는 패션을 모른다.

좋은 옷을 모르고, 좋은 메이커를 모른다.

최근에는 그래도 영식이나 나비, 은하에게 옷이나 모자를 사서 입히는 재미를 느끼나 보지만 그래 봐야 패션에서는 초보자!

“헬렌이 골랐어요. 쟤는 디자인 전공이거든요. 이런 일이 아주 빠삭해요.”

“디자인 전공? 좋은 전공이군. 요리사가 디자인을 전공하면 좋은 점이 아주 많지. 요리는 눈으로도 먹을 수 있는 거니까.”

“마스터가 말하니까 조금 의미가 다르게 들리네요. 눈으로 먹일 거 같아……. 아무튼, 어때요?”

수북하게 쌓인 선물.

통했는가?

승우가 피식 웃었다.

“전부 괜찮네.”

“이만하면 합격이죠?”

백화점으로도, 항공모함으로도 안 움직이던 그의 무거운 고개가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합격이다. 가르쳐 주지.”

“아잣!”

레이첼과 헬렌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영식이가 흑립을 벗고 나폴레옹 모자를 썼다.

“뿌.”

매우 마음에 드는지 녀석이 으쓱거렸다.

* * *

“그럼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보자고. 우선은 남에게 괴식 스킬을 가르쳐 준다는 거는 솔직히 말해서 어려워.”

괴식 스킬의 습득 난이도는 A.

백강혁이 익힌 SSS랭크의 검성기 스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A랭크 스킬이면 일반적인 헌터에게는 거의 종결급 습득 난이도다.

“저희는 익혔잖아요?”

헬렌이 파란 눈을 깜빡이면서 되물었다.

자신을 숭상하는 눈으로 보는 금발벽안 미녀의 시선이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승우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첫째로는 둘 다 괜찮은 요리사라서 그래. 일단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칭찬 감사합니다. 헤헤.”

“두 번째는 둘 다 굉장히 선입견이 없어.”

이것은 제법 놀라운 일이다.

한 직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방식이 생기고 고집이 생긴다.

“프랑스 요리를 예로 들어보지.”

뫼니에르라는 요리가 있다.

생선을 버터에 굽는 요리인데, 굽기 전에는 반드시 밀가루를 묻힌다.

그래야 맛과 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를 쓰는 건 어때?”

“쌀가루? 어, 조금 거부감이 들지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죠. 해봐야 알겠네요.”

“그런 점이 둘이 괴식 스킬을 얻기 적합한 인재라는 거야.”

정통 프렌치 요리사가 들었다면 장난하냐고 칼을 들었을 것이다.

정통이라는 것은 전통을 준수하고 지키는 자라는 의미.

“프렌치 요리사만큼 머리가 굳은 요리사도 없지. 그런 사람들에게 괴식 스킬을 가르친다니 엄청 어려울 거야. 밀가루를 쌀가루로 바꾸는 것도 그리 싫어하는데, 알잖아? 괴식 스킬은 쌀가루로 바꾸지 않는다고.”

밀가루나 쌀가루나 정통요리사가 봤을 때나 그리 차이 나지 일반인의 관점으로 보면 그게 그거다.

하지만 괴식 요리사는 일반인이 봐도 어? 저거 좀 그런데?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으면서 파격적인 가루를 쓴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만약 뫼니에르를 만든다면 그 가루를 밀가루가 아니라 동충하초의 가루를 쓸 거야.”

“동충하초라면 그, 벌레 같은 거요?”

“겨울에는 벌레, 여름에는 풀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실제로는 벌레가 아니야. 벌레를 양분으로 해서 자라나는 기생 버섯에 가까워. 여름에 제대로 채집해서 곱게 빻으면 훌륭한 가루가 돼. 해산물과 섞으면 그 효능이 10배가 되지.”

그런 것도 있구나.

프랑스에서 정통파 프렌치 스타일을 고수하던 레이첼과 헬렌이 신선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승우가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요컨대 그럴듯하게 요리 실력을 갖춘 요리사에게 상식의 벽을 깨부수고, 이런저런 변화와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줘야만 괴식 스킬을 얻을 수 있어.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아?”

“때려서 말을 듣게 만들어요!”

“될 때까지 괴롭혀요! 맘을 바꿀 때까지 굶겨요!”

레이첼과 헬렌이 차례대로 말했다.

과연 친구답게 생각하는 게 똑같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희는 어디 가서 교사 하겠다고 말하지 마라. 윽박지른다고 교육이 되겠냐.”

“우…….”

“우선은 동기, 그리고 확실한 목표 제시가 필요해. 어째서 이런 재료를 썼는가를 납득시키고, 다양한 시도 끝에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전통의 파괴가 익숙해지도록 결과를 계속 보여줘.”

“어떻게요?”

“요리사는 요리로 말해야지. 지금부터 내가 만들 요리의 레시피를 외워. 그리고 할 수 있게 연습해.”

승우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오픈 스타일의 주방이라 안이 훤하게 보였다.

그가 냉장고를 열고 손질된 물고기를 꺼냈다.

적당히 토막 쳐진 물고기, 아마도 가자미.

“방금 말한 뫼니에르로 시작하지. 자, 이건 평범한 가자미야. 전통적으로 이걸 요리하려면 소금과 후추로 살짝 밑간을 한 후에 밀가루를 묻히지. 하지만 나는 아까 말한 대로 동충하초의 가루를 쓰겠어.”

“그 후추 같은 색의 가루가 동충하초의 가루인가요?”

“그래. 주의할 점은 동충하초의 가루라고 해도 그 종류는 무수히 많아. 기생한 벌레도 중요하고 어떤 균을 썼냐도 중요하지. 한국에서 제일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큰번데기동충하초인데, 이건 별로 효과가 안 좋아.”

“그럼 그건 무슨 동충하초예요?”

헬렌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동충하초가 매우 마음에 든 눈치다.

“이건 테라에 자생하는 거대 거미인 페카를 숙주로 써서 와이번 디시라는 균을 배양한 동충하초야. 대충 한 마리에서 150㎏ 정도의 가루가 나와.”

“많네요. 그쪽 문화권에서는 싼 가루겠군요.”

“싸다고 해야 하나……. 불법 가루야.”

“불법 가루!”

헬렌과 레이첼이 깜짝 놀랐다.

불법 가루라니! 어감이 엄청나지 않은가.

“그, 그렇고 그런 가루예요?”

“너희들이 생각하는 가루는 아니고, 우리로 치자면 MSG야.”

“MSG?”

“일단 먹어보고 이야기하자. 금방 끝나니까.”

승우가 프라이팬에 버터를 둘렀다.

그리고 밀가루 대신 동충하초의 가루를 묻힌 가자미를 올렸다.

지글지글하는 소리를 내며 가자미의 살이 노르스름하게 익는다.

작은 스푼으로 녹은 버터를 계속해서 가자미 위에 뿌렸다.

뒤집고, 뿌리고, 뒤집는다.

요리법도 그렇고 겉보기도 너무나 평범한 뫼니에르였다.

괴식이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외형, 흡사 전통파 프렌치 요리사의 요리.

이게 괴식의 창조자라고 불리는 마스터 유의 요리라고?

헬렌이 의구심을 가지고 가자미를 노려봤다.

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둘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어느새 요리를 끝내고 승우가 접시를 내밀었다.

“먹어봐.”

“예, 음. 네.”

미심쩍지만 시키는 대로 하자.

두 학생은 얌전히 포크를 들었다.

노랗게 익은 가자미를 살짝 가르니 하얗게 김이 올라온다.

눈부시게 빛나는 속살은 확실히 아름답다.

일류 셰프의 실력이 느껴진다.

탄력 있는 속살을 찍은 포크가 입으로 향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으으…….”

“아으…….”

어떠한 소스를 쓰지도 않았는데 가자미에서 레몬의 향이 난다.

싱그러운 향, 그리고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혀를 감싸 안아주는 버터의 맛.

단단하고 탄력 있는 속살은 이를 기분 좋게 해주며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났다.

선명하고 뚜렷한 버터와 가자미의 맛.

요리 본연의 맛이다.

승우가 동충하초의 가루가 든 병을 흔들었다.

“해산물과 이 가루가 만나면 맛이 좋아져. 너무 압도적으로 좋아져서 테라에서는 금지 상품이 된 녀석이야.”

맛있는 것을 먹으면 안 된다.

테라의 법은 그러했다.

“하지만 이 가루를 만드는 법은 어때? 너무나 괴식답지?”

괴물 거미에게 균을 기생시킨다.

한 해가 지나고, 기생당한 괴물 거미가 죽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라난 버섯을 딴다.

프렌치 요리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고작 가루를 뿌리는 것뿐인데 맛있단 말이야. 몬스터를 활용한 재료는 맛없다는 선입견이 무색하게도 터무니없이 맛있어져. 그러니까 시작은 이거야.”

괴식은 맛없다.

지구의 음식이 더 맛있다.

“그놈의 전통과 선입견을 부수는 게 첫걸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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