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괴식 스트리트 (3)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모시는 모임이라고 하면 너무 길다. 자고로 종교라는 것은 두 글자 내지는 세 글자가 국룰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전 세계 이천만 신도들은 정식 종교로 편입하기 직전 비밀리에 회의를 했다. 그것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20시간짜리 마라톤 회의였다.
“아니, 제기랄. 검과 승리면 됐지. 괴식은 왜 붙는 거요?! 괴식은 빼라니까!”
“괴식이야말로 우리 신의 본분인데 뭘 빼, 인마! 차라리 검과 승리를 빼!”
“검과 승리는 멋있잖아! 괴식은 이상하다고! 검과 승리의 신 합시다!”
“저저저저, 근본 없는 놈이 어딜 감히! 무엄하다, 개자식아!”
“갑자기 욕설을 갈기시네? 함뜨?”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신도가 이천만 명이 넘으니 배가 우주로 간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모토로 하고 있기에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고, 그러니 개판이 되는 것은 당연.
화상채팅으로는 욕설이 오가고, 실제로 만나서 회의를 진행 중인 간부들끼리도 주먹질을 하는 개판이 벌어진 건 필연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교황이 누구인가.
현직 퍼스트 오더다. 주먹 쌈이 되면 질 리가 있나.
“괴식을 빼긴 뭘 빼, 인마아아아!!!”
“떠흑!”
검과 승리가 멋있으니 검과 승리만 남기고 괴식을 지우자는 의견을 내놓은 대표 주자에게 백강혁이 비호처럼 날아가 울트라 아르헨틴 백 브레이커로 메쳐 버리고 런닝 쓰리로 내다버리니 반대 의견은 사라졌다.
“일단 검과 승리, 괴식의 신으로 등록하고 약칭은 괴식의 신으로 한다. 왜 괴식이냐고? 괴식이 근본이니까 그렇지! 요즘 것들은 진짜 겉멋만 들어서는 본질을 볼 줄을 몰라, 본질을!”
이리하여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모시는 종교는 괴식교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승우는 한숨을 내뱉었다.
“검과 승리는 멋있는데 괴식은 이상하다고 예전에 말한 놈이 이제 와서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뻔뻔한 놈…….”
어차피 진실을 아는 사람이야 승우뿐이니까 괜찮다 이거겠지.
승우가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쨌든 이러한 사정으로 이름이 정해진 후 그들은 스스로를 괴식교도라고 칭했는데, 그들 중에서도 괴식 스킬을 얻은 자는 사제라고 불렸다. 사제들은 신앙심과 괴식에 대한 창작욕으로 불타는 자들이다.
그런 사제들에게 교황이 인정한 그랜드마스터엠퍼러킹갓갓셰프의 위대한 괴식 스트리트 계획에 일조할 수 있음은 영광의 극치. 그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던졌다.
* * *
워낙 신청자가 많았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모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집중됐다. 혹자는 아예 대중적으로 접근해서 방송이나 스트리밍을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도 했지만 승우가 극구 사절했다. 더 이상의 관심은 귀찮다는 이유였다.
면접도 상당히 슬렁슬렁 진행되었다. 용사의 밥집의 주방을 빌려주고, 면접 대상자는 요리를 한다. 그것을 나비와 영식이가 차례대로 먹고 마지막으로 승우가 먹은 후에 채점과 보안책, 그리고 결론을 말해주는 식이다.
“냥. 답답해냥…….”
턱시도를 입은 나비가 주르륵 주르륵 흐르는 단안경을 추켜올리다가,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답답하다, 답답해. 차라리 풀 플레이트 아머가 더 입기 좋지 않을까?
영식이는 왕관에 수염이라는 상대적으로 단출한 차람이기에 답답하지는 않았지만, 방해가 되는 것은 매한가지. 특히 수염은 밥 먹을 때 거추장스럽다. 영식이는 시작하자마자 수염을 와구와구 뜯어먹었다. 그때였다. 첫 번째 면접 대상자가 들어왔다. 나비와 영식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냐.”
“안녕뿌!”
“안녕하세요오-”
“요오오오-”
기묘한 하울링, 말끝이 화음이 되어서 울려 퍼진다. 면접자는 손바닥 두 개 크기의 작은 요정들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의 요정은 알록달록한 인형 옷을 입고 있었는데, 크기는 비슷했지만 얼굴의 생김생김은 모두가 다 달랐다. 녀석들이 도도도 하고 달려오는데 힘 하나는 좋아 보였다. 다들 자신들보다 다섯 배는 큰 가방을 들고 있었으니까.
“뭔 가방이야뿌?”
“요리 가방이에요오-”
“요오오오-”
승우가 조용히 체크리스트에 가산점을 더했다. 요리사라면 당연히 자신의 전용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지. 요리도구도 없는 요리사는 검을 두고 온 검사이며, 총알 두고 온 거너다. 요정들은 능숙하게 주방으로 들어와서 주방 시설을 확인하고는 주방에 척척척 하고 나무로 만든 보조의자들을 설치했다. 그걸 보고 문득 나비가 물었다.
“주방이 높아서 보조 의자를 쓰는 거냥?”
“맞아요오오~”
“날 수 없냥?”
“날 수는 있어요오오. 하지만 그러면 가루가 날려요오~”
“앗. 그렇구냥.”
날면 편하겠지만 요리에 가루가 들어간다. 요정의 날개가루는 아주 비싼 약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마구 들어가면 안 된다. 어떠한 상승작용을 할지도 모르고 날개가루 알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맛을 바꿀지도 모르고 가루를 싫어하는 손님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두려운 것인지 요정들은 마스크를 쓰고 비닐봉지로 만든 날개가리개로 날개를 덮었다.
‘역시 프로답군. 위생관념이 철저해.’
요정들은 이번 면접 참가자 중에서도 유독 경력이 좋았다. 다섯의 요정은 게이트 피해자라면 피해자인데, 멕시코의 숲에서 발견된 이후 ISAC가 보호하여 멕시코 지부의 식당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러다가 모스크바 전쟁 당시, 백강혁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고 괴식교에 입문했고, 단 이틀 만에 전원이 괴식 스킬을 얻었다. 어쨌든 높은 프로의식, 가산점이다.
“저희가 보여드릴 요리는~ 브리또예요.”
“브리또뿌?”
“멕시코의 요리다냥.”
옥수수나 밀가루로 만든 얇고 납작한 빵인 토르티야에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서 감싸먹는 멕시코의 국민 음식이다. 미리 만들어둔 토르티야에 아무거나 올리면 되기 때문에 패스트푸드로서도, 한 끼 식사로서도, 길거리 음식으로서도 매우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시작할게요오오-”
“요오오오-”
빨강, 초록, 하양, 보라, 파랑 요정이 일렬로 서서 요리를 시작했다. 인형 옷을 입은 인형들의 소꿉장난 같지만 실력이 꽤 대단하다. 초록 요정은 능숙하게 자기 몸보다 큰 칼로 야채를 손봤고, 빨강 요정도 한참 커다란 냄비를 이용해서 재료를 볶았다. 초록은 야채, 빨강은 불이니까 색으로 보직을 정한 것 같다.
‘좋은 방침이야. 분업은 산업화의 기본이고 요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막강한 효율을 보이지. 파랑 요정은 소스 담당. 보라 요정은 브리또의 조립과 데코레이션 담당. 그럼 하양 요정은?’
하양 요정은 다른 요정을 도우면서 간을 보고 요리의 완성도를 신경 쓰는 듯하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이 집단의 헤드셰프다. 그리고 접객도 담당하겠지. 흠 잡을 것 없이 훌륭하다.
요리는 금방 완성됐다. 브리또라는 요리가 그렇다. 토르티야를 만들고 거기에 올릴 몇 가지의 재료만 준비한다면 장난감 블록을 맞추듯이 간단하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좋은 음식이다.
“드셔 보세요오-”
“요오오~”
예상대로 하얀색 요정이 브리또를 가져왔다. 나비가 킁킁 하고 냄새를 맡더니만 수염을 떨었다. 멕시코 요리다운 자비 없는 코리앤더의 냄새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렬하다. 영식이는 냠, 하고 냅다 입 안에 넣고 브리또를 맛보다가 ‘맛없어뿌’라고 한마디의 평가를 내렸다.
“맛없냥?”
“맛없다뿌.”
“원래 그런 거다냐.”
맛있는 괴식이란 뜨거운 얼음이나 차가운 태양처럼 있을 수 없는 단어다. 그게 가능한 경우는 이전에는 승우 하나였고, 그마저도 사실 요즘에나 가능해진 일이다. 다른 괴식 요리사는 따라할 수 없다. 그러니 맛은 없는 게 당연한 일. 맛에 집중하는 영식이와는 다르게 나비는 요리의 효과와 향을 집중해서 고찰했다.
“코리앤더가 많구냐. 다른 브리또랑 비교하자면 열 배는 들어갔다냐.”
코리앤더의 어원은 코리스로, 테라의 말로는 빈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빈대 냄새가 나는 풀이라는 의미에서 코리앤더라는 이름이 됐다.
한국에서는 이 풀을 고수라고도 하지만, 재밌게도 예전에는 빈대 냄새가 나는 풀이라고 해서 빈대풀이라고 했다. 빈대향은 결코 좋은 향이 아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냄새가 역한 이 풀은 설상가상으로 요리에 들어가서 열이 가해지면 극적으로 냄새가 바뀌는데 그게 하필이면.
“세제 냄새가 난다냐.”
주방용 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인간은 후각도 맛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코리앤더, 고수가 많이 들어간 음식은 세제 섞인 맛으로 인식한다.
“이 향은 호불호를 엄청나게 탄다냐. 한국인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한다냥.”
“하지만 뺄 수는 없어요오오. 코리앤더가 괴식 효과의 중심이에요오.”
“효과가 정확히 뭐냥?”
“피부가 좋아져요오오.”
별로 좋은 효과는 아니지 않나?
나비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생각해 보면 나쁜 효과는 아닌 것 같다.
털이 없는 인간들은 피부 미용을 위해서 이상한 액체나 기름을 덕지덕지 바르기도 하니까, 괴식으로 때울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시냥?”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맛도 이 정도면 봐줄 만하게 맛없고.”
먹자마자 바로 피부에 윤기가 흐를 정도로 효과가 좋지는 않지만 화장품보다는 몇 배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맛도 이만하면 괴식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간식거리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고, 처음 먹는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고 한두 번 토하면 익숙해지겠지.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았다. 괴식 초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다.
“무엇보다 나는 프로다운 자세와 준비성에 높은 점수를 주겠어. 포장지부터 자작이잖아. 일하면서 자기 가게를 가지기 위해서 준비해 왔겠지.”
요정들이 차례차례 고개를 흔들었다.
“맞아요오오.”
“월급 많이 모았어요오오.”
“우리들의 가게를 꼭 만들 거예요.”
“햄버거 가게처럼 체인점을 내고 싶어요오.”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 영어, 중국어, 한국어도 배웠어요오.”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대환영이다.
영식이가 맛의 점수를 매겼다. 5점 만점에 2점이다. 높을수록 맛이 없다는 의미니까, 괴식으로서는 딱 좋은 맛없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비는 5점 만점에 4점을 줬다. 승우가 브리또를 한 입에 먹고는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개선점이 없는 건 아니야. 일단 코리앤더가 너무 많아.”
“하지만 양을 줄이면 효과도 줄어들어요오.”
“코리앤더의 양을 반으로 줄이고, 토핑에 코리앤더의 씨앗을 쓰는 건 어때?”
“씨앗도 효과가 줄어요오.”
“그냥 씨앗을 쓰면 그렇겠지. 코리앤더를 일단 믹서로 갈아서 즙을 만들고, 거기에 약간의 마늘과 씨앗을 넣어서 볶은 후에 써봐. 향과 맛은 줄어들지만 효과는 오히려 늘어날 거야. 뭐, 효과가 늘어난 만큼 과정이 늘어서 요리는 힘들어지겠지만.”
다섯 명이 분업을 하니까 괜찮겠지. 하양 요정도 같은 결론이 나왔는지 쪼그마한 손가락으로 숫자를 새보더니만 콧김을 내뱉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개선할게요오오!”
“좋았어. 그러면 계약하자.”
스무디 가게 옆에 브리또 가게인가, 첫 시작이 좋다.
* * *
한국에는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말이 있는데, 처음 시작은 좋았지만 나중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다. 딱 그런 상황이었다.
“11팀을 더 봤는데, 다들 별로구냐.”
“뿌뿌. 평범하게 맛있었다뿌?”
“맛있기만 한 요리를 찾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맛 이전에 효과.
효과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상식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승우의 활약이나 활동으로 괴식에 대한 거리감은 꽤나 좁혀졌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조금 전에 면접을 봤던 팀은 코끼리의 똥을 활용한…….
“후.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쏘, 쏠린다냥.”
“뿌? 맛있었는데뿌?”
“그만하자, 영식아. 제발.”
소독 마법과 물리적인 청소를 동원하여 주방을 정리하다 보니 상당한 시간이 지체됐다.
이제는 13번째 팀을 반길 때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승우는 차마 반길 수가 없었다.
13번째 면접 지원자는…….
“앗. 녹색 존마이다뿌! 안녕뿌!”
퍼스트 오더 랭킹 13위, 리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