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370화 (369/613)

370화. 데빌 서바이브 (3)

백강혁은 한 섬에 떨어졌다. 섬은 불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불이 넘실거린다.

멸망한 세계라는 감각이 확 와닿는 풍경이다.

하지만 민이 떨어졌던 세계보다는 훨씬 나았다. 문명이 없어진 불타고 있는 섬이지만, 문명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상하수도는 비록 녹이 슬었지만 물을 내뿜었다. 시꺼먼 색의 물은 먹으면 죽겠지만, 적어도 불을 끄는 데는 쓸 수 있다.

그리고 ISAC에서 제공한 기초 도구 팩의 하나. 정화 장치로 여과한다면 좋은 물이 된다.

강혁은 오자마자 주거지를 대충 정했고 운이 좋게도 거기서 컨테이너를 찾았다.

음식은 썩어 버렸지만, 거기에는 많은 생활 잡화가 있었다.

“쵸 럭키★”

이게 다 평소의 신앙생활 덕이리라. 강혁은 땅에 반쯤 묻힌 컨테이너를 주거지로서 개조했다.

빠른 주거지 확보.

빠른 식수원 확보.

출발이 좋다.

만약 민이었다면?

바로 주거지의 안전을 챙겼겠지.

하지만 강혁은 민이 아니었다.

서바이벌 전문가도 아니었고.

그리 세심한 성격도 아니다.

그는 컨테이터의 생활 잡화 중 하나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조각용 정과 끌이다.

“이 세계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라울 슈나이너의 상황으로 보건대 여기서 오래 있어야겠지. 그렇다면 일단 랜드마크부터 올리고 보자.”

신앙생활에서 랜드마크는 매우 중요하다. 예로부터 우상숭배를 금지한 까닭은 그것이 포교에 너무 효과적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강혁은 굳게 믿고 있었다.

조각해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보자의 솜씨라 어쩔 수 없지.

“이게 아냐!”

과감하게 깨고, 다음의 조각을 시작한다.

쩡, 쩡, 쩡.

바위를 깎아 신의 모습을 새긴다.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가였다.

하지만 이곳은 이세계.

인간은 살 수 없는 멸망한 차원.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에 몬스터들이 모여든다.

바위를 깎는 소리는 숨길 수가 없는 강렬한 소음이다.

이곳 또한 악마의 차원.

몰려오는 몬스터들은 또 브로였다.

커다란 염소 대가리.

하반신은 새의 형상이었다.

악마상서(惡魔尙書) 카임은 개똥지빠귀 새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그의 추종자는 이런 모습이 된다.

집중한 강혁은 몬스터들이 모이는 것을 몰랐다.

카임의 추종자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날 수 있다.

남몰래 다가와서 적을 공격하는 타고난 암살자다.

수백 마리의 추종자들이 하늘로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입에서는 불을 토한다.

날개 깃털은 강철의 칼날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

하늘에서 내려치는 칼날.

모든 것이 강혁에게 집중된다.

그때였다.

강혁의 옆에 놓인 검이 떠올랐다.

별똥별을 벼려 만든 전설의 검.

성운검이다.

[예의와 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 예술과 창작 활동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지.]

“……!”

[짜부라져라.]

천지가 뒤집히며, 중력이 일그러진다.

불과 깃털과 브로가 뭉개진다.

중력을 조작하는 검 중에는 별운검과 더불어 최강이라 불리는 성운검은 자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후아아, 이번 거는 감이 좋아.”

그래서 창작 활동에 여념이 없던 강혁이 땀을 닦으며 허리를 폈을 때는 이미 수백 마리의 악마 추종자가 사라진 후였다.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자신의 솜씨에 만족하며 성운검이 몸을 흔들었다.

임시 주인이 씩 웃었다.

“네가 봐도 이 조각은 감이 좋지?”

-부르르르

“맘에 든다 이거지? 으하하하!”

성운검과 백강혁은 별나게 사이가 좋았다. 에고 소드-를 써보는 일은 처음이지만, 때로는 형 같고 때로는 동생 같으며 때로는 친구 같은 이 검은 백강혁이 처음으로 갖는 진정한 친구였다.

첫 친구가 에고 소드라니.

자조할 법도 하고, 민이었다면 비웃을 법도 하지만 어쨌든 둘은 정말 우애가 좋았다.

성운검과 낄낄 웃으며 대화를 하던 강혁이 뺨을 치며 소리쳤다.

“좋았어. 그럼 마저 해볼까.”

배가 고프면 싸장님이 챙겨준 도시락을 먹는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창고에 쌓인 물을 꺼내 마신다.

졸리면 담요를 덮고 자면서 조각에 열중한다.

유유자적한 창작의 나날이다.

지켜보던 카임이 이를 갈았다.

“저게 무슨 서바이벌이야……!”

민의 정글 서바이벌과 비교해서, 강혁의 무인도 서바이벌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 * *

석상은 점차 정교해지고, 크기를 키워갔다. 강혁은 바보라고 한다면 바보였지만, 때때로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그는 완전히 몰입하여 예술과 창작에 전념했다.

보름이 조금 넘었다.

그의 실력은 물이 올랐다.

이제는 전문가 같은 실력이다.

“역시. 커야지.”

강혁은 이번에는 규모를 크게 하여, 불타 버린 폐아파트를 소재로 삼아 거기에 괴식의 신을 조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자면 스케일이 커졌을 뿐, 보름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카임은 시선을 내려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카임의 추종자들이 어째선지 강혁이 만든 석상들을 보고 있었다.

삼삼오오 열을 맞춰서 공손하게 올려다보는 모습은 마치 기도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설마?”

저 망할 지구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장이 아파지는지라, 될 수 있으면 외면하고 다른 세계에서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본진을 그리 정밀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실수였다.

“신앙 수급이 멈췄잖아?!”

추종자로부터 수거돼야 할 신앙심, 신력이 모이지 않는다.

이 말인즉슨, 저 많은 추종자가 개종했다는 뜻이다.

“개, 개종했다고?!”

그것은 강혁의 포교 활동과 예술혼이 낳은 환장하는 시너지의 결과였다.

놈이 가진 스킬의 절반은 정신 조작계다. 그래서 놈의 주둥이를 통하여 나오는 말은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며, 근거도 없는 여러 말에 설득력과 개연성을 부여한다.

백강혁이 진심으로 펼치는 광언(狂言)은 정신 방어력과 정신 내성으로 버텨야 하는 엄연한 정신 공격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 추종자가 개종하다니, 말도 안 돼!”

카임의 추종자들은 그리 정신 방어력이 낮은 편이 아니었다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섬기는 악마, 카임은 강혁이 꼴 보기 싫다고 차원에서 모습을 감췄다.

악마 추종자들은 주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공백을 느끼고, 서운함과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강혁은 놓치지 않았다.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있는 악마 추종자들을 향해서 그가 말을 걸었다.

승우가 걸어둔 번역 마법은 여기서도 작동하여,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강혁의 정신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마 추종자들의 신앙이 흔들린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타가 들어간다.

예술적이며 아름다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문화 공격.

랜드마크, 우상.

화려하게 만들어진 수제 승우 석상이 악마 추종자들에게 하나씩 쥐어졌다.

손 풀이용으로 만든 작은 석상은 이미 수백 개가 넘는다.

[♚♚검과 승리, 괴식의 신♚♚]

[$$개종 시$$]

[전원☜☜]

[1/12 스케일석상]

[100%증정※]

[♜선착순♜콜라 증정 ¥]

[§§ 입구에서 §§]

[★§§카임개새끼★§§]

[★§§외치고 입장§§★]

[★초상화 획득 기회@@]

이상한 찌라시가 돌아다녔다.

환장하는 것은 이 찌라시가 통했다. 앞다투어 개종은 이뤄졌다.

그게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백강혁의 창작 활동을 보며 기도를 올리는 악마 추종자들.

“우우, 소듕해.”

“멋져.”

악마 추종자들은 석상을 품고 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경건하게 신앙 활동에 집중한다.

“…….”

카임이 가지고 있는 이 세계의 영향력이 약해진다. 주인이 바뀌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주인이 카임에서 강혁이 되어 간다.

악마 왕이 죽은 것을 순식간에 잊을 만큼 모골이 송연한 모습이다.

“미, 미, 미친.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이냐!?”

악마 왕은 홀리-도시락에 죽었다.

그리고 카임은 이제 추종자를 모두 뺏기고 차원의 소유권까지 빼앗길 처지가 되었다.

어느 쪽이 웃긴 일인지, 어느 쪽이 비웃음당할 일인지 차마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카임 일족의 장남으로 태어나 꽁지깃이 돋아난 이후로 이런 황당한 경험은 처음이다.

지구인은 모두 저런가?

모두가 저런 미친놈이라면 확실히 지구인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

“어쩌지?”

악마 중의 악마, 모두가 존경하는 악마 왕은 홀리 도시락을 먹고 타죽었다.

차원법을 악마 중에 가장 잘 안다고 하여 달변가, 책략가로 유명한 이면공작 단탈리안은 검신에게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의논할 사람이 없다.

카임은 예지력이라고 한다면 서열 3위의 바사고 다음가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지만, 예지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추종자가 없어져서 그만큼 신력을 잃었다.

악마도 대단한 권능을 쓰려면 신력이 있어야 한다.

인간, 생명체, 지성체가 만들어내는 신앙심은 악마에게조차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신력이 고갈됐으니 예지를 할 수가 없다. 신력이 없으니 저 망할 지구인을 강제로 퇴출시킬 수도 없다. 애초에 강제 퇴출은 막대한 신력이 필요하다.

지구에 연결된 게이트를 없애는 일도 마찬가지.

연결된 후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게이트는 소멸시킬 때 엄청난 신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 하나 들어온 후에라면? 그때 소멸시키면 100분의 1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뭔가 하나 들어온 후에야 게이트의 입구를 소멸시킨다. 이게 평범한 대응책이었다.

“차라리 그때 백배의 지출을 각오하고, 저놈이 오기 전에 게이트를 소멸시켰어야 했어.”

한국에는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카임은 앞으로 악마 사이에 페넥스처럼 막을 거 카임처럼 막는다는 신조어가 생길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페넥스처럼 가볍게 막을 수 있는 일을, 카임처럼 존나게 어렵게 막는다는 뜻이다.

“크윽.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미 손해는 크게 보았다.

손해를 메꿀 방법은 저 강혁이라는 인간을 찢어 죽이고, 추종자들을 다시 흡수하는 방법뿐.

하지만 그랬다가는 존재가 위험하다. 검신이 온다. 살고 싶다면 못 본 척하고 다른 차원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인간에게 추종자를 빼앗긴 천하의 멍청이가 되느냐.

홀리 도시락에 타죽은 악마 왕 바엘처럼 죽느냐.

손절하느냐.

덤비느냐.

참 어려운 선택이지만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름에 튀긴 양고기가 좋다네.”

“맛없으니까 양고기가 좋다네.”

“기름에 튀긴 양고기가 좋다네,”

“양고기가 좋다네.”

“양고기가 좋다네.”

“가세, 동지여, 가세, 동지여.”

“가세, 가세, 가세.”

“기름에 튀긴 양고기 단 하나.”

“양고기 단 하나면.”

“우린 용이 되네.”

악마 추종자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마녀의 사바트처럼 환희에 찬, 쾌락의 찬 집회는 아니다.

절도가 넘치고, 마치 군인의 군가와도 같은 노래를 부르며 녀석들이 몸을 흔든다.

춤을 추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도수체조인가.

카임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집회는 노래와 율동이 전부였지만 광기만은 마녀의 사바트에 뒤처지지 않았다.

적의가 느껴진다.

삼천세계를 뒤덮는 전쟁의 노래. 싸움의 노래다.

“하지만 빌어먹을 악마 놈들에게 줄 양고기는 없다네~”

“악마 같은 개자식들에게 줄 고기는 없다네~!”

광기.

광기가 카임의 세계를 덮는다.

카임은 자신이 조금 늦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신 ‘백강혁’이 신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성전을 선포했습니다.]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옷깃만 스쳐도 성전을 건다는 희대의 깡패. 전 차원을 통틀어 최악의 약탈자. 가진 재물을 모조리 빨아먹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신.

괴식 공갈단이 성전을 개시했다.

“마,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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