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부지부장 문선아 (1)
이정훈은 A섹터의 지부장으로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보고서를 정독하는 일이었는데, 이 보고서에는 지난 하루 동안 있었던 다양한 일을 여러 각도에서 고찰한 정보가 압축되어 들어 있다.
지부장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다는 것.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나, 커피 한 잔과 함께 보고서를 들어 올린다.
늘 그렇듯,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백강혁이었다.
“염소 새들을 활용한 미래 전략.”
염소 새들은 본래 다른 차원에 있던 주민이라고 한다.
악마를 추종하다가 자신의 몸조차도 악마가 되어버린 이들, 위험도로 치자면 레벨 A. 발견 즉시 사살 등급이다.
하지만 사살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백강혁이 그놈들을 싸고돌았기 때문이다.
백강혁은 그런 염소 새들을 활용해서 쓰는 전략안을 제출했는데, 이게 매우, 매우, 엽기적이었다.
“개종도 해본 놈이 잘한다. 배교도 해본 놈이 잘한다. 그러니까 개종과 배교를 모두 해본 염소 새야말로 포교하기에 적합하다?”
녀석들은 근본적으로 말해서 인간보다는 몬스터와 같다.
민의 관리하에 실험해 본 결과 염소 새를 두고 게이트를 닫으면 녀석들이 게이트가 연결된 다른 차원으로 이동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냥 게이트 안에서 죽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염소 새의 기도를 백강혁이 감지할 수 있다나?
어쨌든 그렇게 게이트가 생기면 게이트를 닫기 전에 염소 새들을 두고 닫아서, 녀석들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 괴식교를 퍼트리는 첨병으로 활용하시겠단다.
“좋았어. 아침부터 아주 좋은 꼬라지를 봤군. 이게 말이야 방귀야.”
이건 말려도 소용없겠다. 무조건 할 거라고 퍼스트 오더 두 명의 사인이 적혀 있는 보고서였다.
이렇게 되면 지부장으로서도 무진장 막기가 힘들다. 막을 이유도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정훈은 내가 지부장인지, 바지사장인지 모르겠구만, 하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사인을 추가했다.
“다음은… 흠.”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페로의 보고서다.
괴식 스트리트에서 새로운 메뉴가 아홉 개나 나왔고, 그게 다 호평이라는 내용이었다.
뒤에 붙은 후기로 보건대 아홉 개 모두 완식한 모양이다.
“페로 군이 항상 고생이 많아. 다음은…….”
익명의 기부자가 신체 결손자들의 기계 의수, 의족 달아주기 운동에 금괴 11톤을 기부했다?
“11톤? 이거 뭐 오타 난 거 아니냐.”
“오타 아녀요. 진짜 난리였어요.”
어떻게 생겨난 금괴인지도 모른다. 떡하니 기부금 상자 옆에 ‘잘 써주세요.’라고 적힌 편지 한 장과 같이 11톤의 금괴가 솟아 나와 있었단다. 거기까지 누가 가지고 온 것인지. 어떠한 사유로 얻은 금괴인지. 왜 이러는지도 전혀 모른다.
황지현이 견물생심이라고, 금괴 사진을 보며 눈을 빛내다가 몇 마디를 보탰다.
“어찌 된 일인지 현재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일전 오더의 일탈처럼 퍼스트 오더급 헌터의 소행으로 보는 의견이 많아요.”
“헌터가 이런 일을 어떻게 해.”
“금이 아주 넘치는 게이트를 단독 공략하여 금을 그냥 생으로 유출시키면 되잖아요. 적어도 국세청은 그렇게 보고 헌터들을 찾아다니고 있던걸요.”
“그건 또 무슨…….”
욱신 하고 관자놀이가 아프다. 하여간 만성두통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내가 더러워서 지부장 때려 치든가 해야지. 골백번도 더한 이정훈의 투정을 들으며 황지현이 웃었다.
“그래도 지부장님,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이라.”
“부지부장님이 귀환 중이시래요.”
“정말 드물게도 좋은 소식이군.”
“선물도 있다는데요?”
“선물?”
이정훈이 인상을 구겼다.
그녀의 선물은 항상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 * *
“아조씨, 내 마음을 담은 선물이야. 기쁘지?”
씩 웃으면서 다가오는 부지부장, 문선아. 그녀의 작태를 보고 이정훈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게 대체 무슨 마음인가?”
그녀가 가져온 선물은 한 트레일러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흉흉하고, 사람 여럿 괴롭혀 본 얼굴이라 척 봐도 나 범죄자요- 하는 이들이다.
문선아가 씩 웃으며 긴 머리카락을 묶었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건전한 마음이지.”
“나 엿 먹이려는 마음이 아니라?”
“아조씨가 그렇게 나오면 내가 조금 쓸쓸해.”
“아무튼 정말이지. 항상 가져오는 선물이 이 모양이니 선물이라는 말만 들으면 내가 경기를 일으키는 거야.”
“파하하하.”
훤칠한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단련되어 탄탄한 몸과 거침없는 걸음걸이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올해로 마흔이 되는 주제에 아직도 이십 대의 젊음이 느껴지는 외모는 아름다웠다.
마나가 넘쳐흐르는 체질 덕에 노화가 완전히 정지했다던가?
예전에도 부러웠지만, 여전히 그녀의 젊음이 부럽다. 짐짓 부러움을 누르며 이정훈이 물었다.
“그래서 이게 웬 범죄자 모듬 세트인가?”
“샤프슈터 꼬마가 지난번에 범죄자 청소를 했었다며.”
“그랬었지.”
“꼬마의 괴롭힘을 못 견뎌서 대부분은 서해안으로 도주 경로를 잡았잖아? 그때 몰래 동해안으로도 도망친 녀석들이 있었더라고.”
서쪽과 동쪽으로 쪼개져서 도망이라. 현명하다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서쪽은 치안이 확실하고, 동쪽은 괴물의 소굴이다.
한국의 헌터를 상대하느니 괴물 쪽이 더 도주 확률이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겠지.
한국 최고의 헌터가 대규모 공략 중에도 짬짬이 범죄자를 잡는 취미를 가진 부지런한 사람일 줄은.
“레드 마피아도 있고, 삼합회도 있고, 야쿠자도 있어.”
“잘도 이렇게 모아왔군그래.”
“응. 겸사겸사, 동해안 청소하다가 찾아서 싹 쓸어 담아 왔지.”
“여전히 힘이 넘치는군.”
“그러는 아조씨는…….”
문선아가 호오, 하고 이정훈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이정훈의 배를 쿡쿡 찔렀다.
“어, 어허! 어딜 만져!”
“똥배가 사라졌네? 운동했어? 아니면 좋은 거 먹었어?”
“그래. 엄청 좋은 거 먹었다.”
승우의 괴식을 먹고 뺀 배다.
실은 똥배도 아니었고, 병이었지.
그때의 그 드러운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자네에게도 꼭 먹여주도록 하지.”
“기대하면서 기다릴게.”
“좋아. 그럼 업무 이야기로 넘어가서, 동해안 정리는 다 끝난 건가?”
“끝났어. 내가 나설 필요 없는 자잘한 게이트는 아직 몇 개 있지만, 요즘 하청 길드들 일 잘하더라. 핑크 펭귄 있는 길드가 진짜 마음에 들던데, 아무튼 내년 여름에는 동해안에서 해수욕도 할 수 있어.”
지난 수년간 봉쇄되어 있던 동해안의 국도가 열렸다. 각지의 지하 벙커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영토를 되찾았다는 뜻이다.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이정훈이 넥타이를 풀었다.
“잘해주었네.”
“아조씨까지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 나 부끄러운데.”
“쯧쯧. 그럼 내일모레 있을 대통령 훈장 수여식까지는 자유시간이니, 여독을 풀고 푹 쉬게.”
“오, 휴가야?”
“전투 정비 시간으로 치지.”
전투 정비 시간은 연차가 까이지 않는 유급 휴가라는 말이다.
문선아가 이정훈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날 챙겨주는 건 아조씨뿐이라니까. 으으으, 고마워.”
“누가 볼까 두렵군.”
“결혼도 한 양반이 뭐래.”
“끄응, 자네는 아직 미혼이잖나. 그리고 솔직히 내 딸뻘로 보인다고.”
“노처녀라고 괄시하는 거?”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겠군. 휴가 중에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나. 안내원을 붙여주지.”
“동해안 전선에도 전파는 통하고 방송도 나오는걸. 가보고 싶은 곳은 당연히 있지.”
동해안 전선은 전선이라는 이름답게 전쟁터였다.
다년간 해결하지 못해서 쌓인 게이트에서는 끝없이 몬스터가 나오고, 그중 지혜가 있는 몬스터는 요새를 건축하고 자신들만의 문명을 꽃피운다.
지구인과 침략자 간의 전쟁이다.
그런 전쟁터에서의 낙이라고는 방송을 통해서 들리는 각국의 승전보와 재밌는 소식 정도다.
그녀를 비롯한 동해안 전선의 헌터들은 다사다난한 올해의 소식을 들으며 대부분 같은 생각을 했다.
올해의 키워드, 1위.
“괴식.”
“뭐?”
“괴식 먹어보고 싶어.”
* * *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는 영국의 속담이다.
지나친 호기심은 몸에 좋지 않다는 뜻이겠지만, 어째서 고양이일까.
이곳저곳을 찔러보고 만져보고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고양이의 성미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문선아는 딱 고양이 같은 여자였다. 에너지는 넘치고, 활기차고, 호기심은 넘치며 그 넘치는 에너지로 힘 있게 허리를 세우고 걷는 사람.
호기심 때문에 죽기도 딱 좋다는 뜻이다.
“언니,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가다가는 큰코다쳐요.”
황지현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문선아를 봤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칼같이 부지부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석에서는 그냥 언니다.
친하기 때문이다.
친하니까, 괴식을 얕보는 그녀에게 경고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문선아는 직장 동생의 충고를 듣고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다.
“안 가벼운데? 완전 던전 갈 때처럼 긴장하면서 가고 있는데?”
“언니, 예전에 저한테 던전은 테마 파크 같다고 한 적 있잖아요.”
“헤헤.”
“지금 살짝 흥분한 거 알죠?”
“하지만, 하지만 그 괴식이라구. 나 진짜 먹어보고 싶었단 말이야.”
얼마나 흥분했는지 찰랑찰랑하고 머리카락이 계속 흔들린다. 마치 고양이의 꼬리 같다. 아니, 비글의 꼬리인가. 쉬지도 않고 흔들린다. 대체 뭔 에너지가 이렇게 넘치는 걸까.
“왜 굳이 먹어보고 싶어 해요?”
황지현이 진심을 담아서 물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게 괴식이다.
먹어봐야 하등 좋을 게 있… 지만, 먹지 않을 수 있다면 먹지 않는 게 옳다. 아프고 괴로우니까.
선아가 씩 입꼬리를 올리더니만 깔깔 웃었다.
“사람들이 막 괴롭게 사지를 비틀면서 구르잖아. 그런 모습 보기가 쉬운 줄 알아? 예전에 티비에서는 자주 봤는데, 요즘은 못 본 지 정말 오래됐단 말이야.”
“아니, 예전에는 그런 게 티비에서 나왔다고요?”
“까나리 액젓 먹이고 그랬지.”
“자극적이네…….”
하지만 자극적인 것으로 치자면 괴식과 까나리 액젓은 레벨이 다르다.
까나리 액젓을 먹은 민간인이 괴로워하는 것과 헌터들이 사경을 헤매는 것이 같을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도.
“언니는 먹는 걸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먹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야~ 먹어봐야지 남들 괴로워할 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거잖니.”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이건 관리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해. 내 눈으로 직접 괴식을 보고, 혀로 괴식을 느끼고, 그 효과를 몸으로 체험해야 남에게 강요도 할 수 있고 관련 법안도 입법시킬 수 있는 거야. 서류와 보고서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관리자는 꼴사나워.”
황지현이 입을 다물었다. 내내 정신 사납게 굴던 언니가 갑자기 정론을 말한다.
왈왈거리면서 소란을 부리던 비글이 갑자기 이족보행을 하면서 ‘방 좀 깨끗하게 치우고 살아.’ 하고 엄마처럼 훈계하면 이런 느낌일까.
“에라, 모르겠다.”
먹고 후회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황지현은 그리 판단하고, 식당의 문을 열었다.
평일 오전 10시. 점심시간치고는 조금 이른 시간, 카운터에 앉아서 신문을 보던 승우가 이쪽을 봤다.
“오늘은 어째 상당히 빨리 왔는걸. 식사야, 차야?”
“식사예요. 평범한 점심 식사 1인분, 안 평범한 괴식 1인분.”
“백강혁을 쏙 빼닮은 뺀질이가 점심부터 괴식을 먹지는 않겠고, 옆에 계신 분이 괴식을 드시는 건가?”
“맞아요. 언니, 이분이 유승우 사장님이셔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뭔가 이상해서, 옆을 봤더니 문선아가 멍하니 승우를 보고 있었다.
“언니?”
“…었어.”
“언니?”
뭐라고 하는 거지?
조용히 귀를 기울여 봤다.
그러자 똑똑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대박 잘생겼어.”
“…….”
“완전 내 취향. 대박.”
아니, 이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