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뱀 고기 (1)
미드가르드 오름은 뱀 몬스터의 대명사다. 다른 이름으로는 요르문간드라고 하는데, 그쪽 언어로 ‘엄청나게 큰 괴물’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대로 말도 안 되게 커서 한 행성을 칭칭 감은 후에 스스로의 꼬리를 깨물 수 있을 정도다.
피닉스처럼 한 개체가 유명해진 후 다른 차원에서 종종 발견되는 종족인데, 피닉스보다도 훨씬 보기 드문 녀석이다.
승우조차도 실물은 처음 봤다.
‘크라이에게 고마워해야겠지.’
크라이와 싸워 이긴 후 강탈한 전리품 중에 섞여 있었다. 녀석의 말로는 아는 마운틴 드워프에게 뱀술을 담가 달라 의뢰할 생각이었다는데, 짬이 안 났다나?
‘덕분에 내가 잘 쓰네. 아, 그럼 크라이도 불러야겠군.’
나중에 한 소리 안 들으려면 같이 먹이는 게 제일이다.
승우는 그리 다짐하며 세 번째 신명 무구인 괴식 대백과를 꺼내, 미드가르드 오름의 분석 결과를 펼쳤다.
‘통상의 독사와는 다르게 이빨만이 아니라 피부 껍질의 구멍에서도 독액을 발사할 수 있고, 독액 자체는 즉효성의 맹독. 해독을 위한 조미료의 사용은 반드시 해야겠네. 그리고 껍질은 불에 타지 않… 타지 않는다고?’
뱀 고기는 본래 구워 먹는 게 제일이다. 소금과 후추를 치고, 짚불에 던져두면 알아서 잘 구워진다.
짚불이 꺼질 때쯤 돌아와서 새까맣게 탄 뱀의 껍질을 털어내고, 잘 익은 속살만 먹으면 훌륭하다.
괴식으로서는 볼품없지만, 영양소도 충분하고 몸이 따뜻해져서 추위를 잘 안 느끼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굽는 것을 베이스로 여러 가지 기법을 동원할 생각이었는데, 타지 않는다니.
‘요리법을 바꿔야겠군.’
일단 사이즈부터 조정해야겠다.
미드가르드 오름은 너무 크다.
지구를 세 번 감아도 반 바퀴가 남는다. 괴식 대백과에 손을 올리고, 크기 부분을 터치했다. 그러고는 왼쪽으로 당겨서 크기를 조절했다.
길이 21.0m. 굵기 7.5m.
본신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작지만, 먹으려고 보면 조금 크다는 감도 있다. 하지만 먹는 놈들이 대식가다. 이만큼은 준비해야 한다.
“다들 조금 떨어져.”
승우가 손짓하자, 아이들이 물러선다. 안전거리를 확인하고, 승우는 반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크기가 조정된 미드가르드 오름이 마당에 모습을 보였다.
“뿌에!”
“꺅!”
마당에 떡하니 나타난 커다란 뱀을 보며 영식이와 은하가 소리를 질렀다. 뱀도 보통 뱀이 아니다.
무슨 닭도 아니고 벼슬 같은 게 머리부터 시작해서 꼬리까지 빼곡하게 자라나 있는데,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단하다.
머리는 어떠한가.
“무, 무섭다뿌.”
“히이…….”
죽어서도 부릅뜬 검은 눈은 흰자 하나 없이 새까맣다.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의 비늘은 사정없이 솟구쳐 있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붉은 속살이 살벌하다.
당장에라도 입을 쩌억 벌려서 은하와 영식이를 삼킬 듯한 생생함.
겉 상처가 없어서 더 무섭다.
뱀술을 담글 때는 원형을 최대한 살려야 하기에, 크라이가 정성을 담은 발경으로 처리해서 가능한 일이다.
“이건 눈일까요?”
갈색의 몸통에는 검은 눈알 같은 것이 수도 없이 박혀 있어서 무섭다. 영식이가 용기를 내서 만져보니 눈알이 아니라, 그냥 무늬였다.
은하가 기겁하며 영식이를 안았다.
“지지예요, 지지.”
“뿌. 이거 맛있을까나뿌?”
“하, 핥으면 안 돼요!”
은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식이가 길게 손을 빼서 낼롬낼롬 뱀 껍질을 핥았다. 그러다가 녀석의 손이 우뚝 멈췄다.
“뿌…….”
“왜 그래요?”
“뿌에에에에에엑-!”
짜다. 참을 수 없이 짜다.
어째서 이렇게 짜지?
소금도 핥아보고 바닷물도 마셔봤지만 이리 짠 것은 처음이다.
“쭈에에에-!”
영식이가 눈물, 콧물, 침을 줄줄 흘렸다. 결국은 슬라임의 체액을 흘리는 거다. 얼마나 짜면 이럴까.
그걸 보고 승우가 곤란하다는 듯이 다가와서, 녀석에게 사과주스를 먹였다. 짠 맛이 사라지자, 살았다는 듯이 녀석이 콜록거렸다.
“뿌엑뿌엑.”
“많이 짰어?”
꾸물텅, 꾸물텅. 영식이가 몸을 털었다.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짰다.
승우가 녀석의 볼을 잡아당기면서 웃었다.
“녀석, 아무거나 핥으면 안 돼.”
“뿌에에… 잘못했다뿌.”
미드가르드 오름의 껍질에는 독을 발사하기 위한 땀샘이 있다.
영식의 독 내성은 최상급.
미드가르드 오름의 독도 별문제 없이 해독한다.
문제는 이 녀석의 독은 해독할 때 엄청난 짠맛이 난다는 것이다.
“독도 단맛이 나는 독이 있고, 짠맛이 나는 독이 있고, 매운 독이 있어. 이 뱀은 짠맛이었구나.”
“아직 짠맛이 느껴진다뿌우…….”
그야 그렇겠지. 진저리치는 영식이를 은하에게 안겨주고는 승우가 팔짱을 꼈다.
불에 강하고, 짠맛이 강한 껍질.
괴식 대백과의 분석에 의하면 안의 고기는 상상외로 부드럽고 비계와 지방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서 맛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고기와 껍질을 따로 요리하는 게 좋겠지.
“좋아. 시작할까.”
단숨에 방침을 정했다. 승우가 요리 설비를 소환했다. 이번 요리는 조금 손이 많이 갈 듯하다.
* * *
미드가르드 오름의 껍질은 도검불침. 불에 타지 않고,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한다.
따라서 검사, 격투가는 이 녀석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법사라고 해서 잘 먹히는 것도 아니다. 불을 사용하는 화염 마법사는 아예 면역.
마법도 마력 자체로 공격하는 에너지 블라스트 형식의 공격만이 통하고, 물리법칙을 동반한 공격, 충격파를 발산하는 종류의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
신화급 괴물, 신을 여럿 잡아먹은 괴물다운 막강함.
녀석을 요리하기 위해, 승우가 검을 들었다. 평소처럼 중화식도로 요리할 수는 없다.
알리스터의 중화식도는 명도였지만, 한계가 있다. 검이 통하지 않는 설화로 무장한 녀석을 검으로 썰려면 그것보다도 아득하게 윗선의 격이 필요하다.
힘으로 찍어 눌러 어거지를 부리자면 신문지로도 가를 수 있지만, 그래선 요리가 아니다.
그래서 그가 뽑은 것은 자신의 첫 번째 신명 무구, 아이온이었다.
“우선은 껍질.”
미드가르드 오름의 콧잔등에 아이온을 찔러 넣는다. 두부라도 써는 듯 가볍게 들어간다.
작게 만든 미드가르드 오름의 껍질 두께는 약 1m.
정확하게는 98.82㎝.
작게 만들어도 어지간한 방탄 문보다도 두껍다. 승우는 그것을 한 번에 갈랐다.
코부터, 꼬리 끝까지. 참격이 번쩍였다. 그리고 다음은 회전이었다.
내부로 파고든 검기가 회전하며 미드가르드 오름의 껍질을 본체로부터 완벽하게 분리했다.
껍질만 해도 상당한 양이다. 그것을 일단 공중에 고정해 두고, 나무 욕조를 꺼냈다.
이런 일도 있을까 해서 알리스터를 시켜 만들게 한 신목으로 만든 욕조다. 가득 식초를 부었다.
장 폴 베넷이 와인을 만든답시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식초였는데, 물푸레나무와 포도, 블루베리, 황금을 사용한 식초다. 금이 들어간 까닭은 금값이 싸다는 이유였다.
욕조의 반을 채운 식초. 거기에 유자 껍질을 대량으로 쏟았다.
유자 껍질에 포함된 성분인 헤스페리딘은 혈관을 강화하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마력이 더해지면 연화제의 효과를 낸다. 저것은 도검불침의 껍질이다. 당연히 이빨도 불침이다.
씹어 먹으려면 부드럽게 만들어 줘야 한다.
껍질을 넣으니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껍질이 부드러워지고, 맛이 스며드는 과정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가, 30분쯤 후에 건져서 빨래 짜듯이 껍질을 짠 다음 식초를 배출시키고, 채를 썬다.
그리고 어린 채소 싹과 같이 라이스페이퍼에 감아 먹으면 훌륭한 뱀 껍질 월남쌈이 된다.
“채소는 먼저 손질해 두겠다냐.”
“그래, 잘 부탁해.”
옆자리에서 나비가 채소를 썬다.
당근, 피망, 아스파라거스, 오이와 죽순, 호박, 토란, 바질.
그리고 파인애플.
월남쌈에 파인애플을 넣어 먹는 것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매우 어울리는 조합이다.
놀랍게도 괴식 조합도 아니다. 본가에서는 정석적인 조합이다.
“아무리 그래도 월남쌈에 파인애플은 이상할 거 같은데요.”
저걸 먹으면 입천장이 아파.
파인애플을 노려보던 은하가 까치발로 서서 토마토를 추가했다.
토마토는 은하가 제일 좋아하는 채소다. 나비가 콧수염을 움찔했다. 승우도 움찔했다.
토마토 월남쌈은 꽤나 난도가 있는 조합이다. 질퍽거리는 식감으로 학을 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씨를 발라내고 과육 부분만 먹는 사람이 많다.
실은 승우가 그렇다. 다른 과일은 몰라도 토마토는 조금 취향에 안 맞는다.
“맞아, 너 토마토 싫어하지.”
테오가 히죽 웃었다.
은하가 깜짝 놀랐다.
“삼촌이 토마토를요? 왜요?!”
“식감이 취향이 아니라서.”
“토마토 맛있는데.”
“나도 토마토 먹긴 먹어.”
익히거나, 볶은 거지만.
승우는 볼을 긁다가 아이온을 빙글빙글 돌렸다.
“어쨌든 고기는 자잘한 준비하고 구워 먹으면 그만이니까, 슬슬 크라이를 불러야겠네.”
“내가 부를게. 와, 크라이도 되게 오랜만이다.”
“좋아, 그럼 나는 굽고 있을게.”
미드가르드 오름의 속살은 새빨간 색이다. 혈액의 구성 성분이 인간이나 통상의 뱀과는 달라서 산소가 닿자 급격하게 산화(酸化)하여 붉게 됐다.
시시각각 신선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니 당장 굽는 게 낫다.
두께는 3㎝ 정도, 뱀의 모습 그대로 원형으로 자른다.
잘린 단면이 지나치게 매끈해서 마치 CD 디스크 같은 모양이다.
승우는 거기에 두 개의 쇠꼬챙이를 엇갈린 형태로 찔러 넣었다.
솜씨 좋게 고기를 정리하고, 이번에는 화톳불을 준비했다.
화톳불을 만들 숯은 참나무 숯.
게르니아에서 만든 수제 숯이다.
철처럼 단단하고 좋은 향을 내기에 화톳불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마당에 화톳불을 지피고, 주변에 고기를 놓았다. 껍질은 불에 대한 면역이 있지만, 고기는 없다.
참나무 숯불로도 충분히 고기가 익는다. 치익 하는 좋은 소리를 내며, 뱀 고기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예상대로 고깃기름에도 약간의 독이 있다. 해독할 필요가 있다.
“소금이면 되겠지.”
포세이돈이 만든 신의 소금은 해독의 효과가 있다. 효과가 뛰어나서 아주 미량의 소금으로도 충분한 작용을 한다.
양 조절이 관건이다. 안 그래도 해독되면 짠맛을 내는 미드가르드 오름이다. 해독 효과를 내겠다고 소금을 넣으면 상승 작용으로 아예 짠맛밖에 안 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스에 금강호두를 넣어야겠군.”
금강호두는 금강석같이 단단한 껍질을 가진 호두인데, 그 단단한 껍질을 부수면 야들야들한 속살을 맛볼 수 있다.
속살은 적당히 달고, 고소하다.
옅은 미숫가루의 맛이다.
갈아서 소스에 뿌리면 짠맛을 휘어잡아 맛의 균형을 지켜준다.
‘간장 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금강호두 가루를 넣으면 되겠다.’
간단하게 소스도 정했으니 남은 것은 굽는 정도다.
미드가르드 오름의 고기는 적절한 지방이 있어서 육향이 진하다.
슬쩍 맛을 보니 악어 고기와 비슷한 맛이다. 악어 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는 좀 더 담백해서 닭고기에 가까운 맛이 난다.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구우면 질겨지는 성질이 있다. 약한 불로 차근차근 오래 구워야 한다.
불에 소금을 뿌리며 세심하게 조정하고 있으니 초대를 받은 크라이가 왔다.
녀석이 보자마자 바로 장탄식을 내뱉었다.
“내 뱀술이 될 녀석이 기어코, 한 끼 식사가 되어버렸군.”
“아까워서 그래?”
“당연히 아깝지. 술로 만들면 백 년은 마셨을 거다. 잘도 이렇게 축소시켜서 한 끼 식사로 만들다니, 너는 아깝다는 마음이 안 드냐?”
“안 아깝냐고?”
원래 남의 것이라서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화내겠지?
승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니 건데, 내가 왜 아까워.”
“야-!”
화낼 줄 알았지만.
역시 참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