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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식당-421화 (420/613)

421화. 돌아온 괴식 (2)

괴식의 신답게, 보상은 괴식으로 하기로 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괴식을 먹일까.

자고로 헌터라는 녀석들은 스킬과 레벨이면 거의 다 만족한다. 그런데 백강혁은 보통 헌터가 아니다.

이미 레벨은 90대. 지구인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괴식을 많이 먹은 몸이라 스킬도 상당히 빵빵하다.

‘대부분 정상적인 스킬은 아니지만, 일단 스킬은 많지.’

녀석이 스킬로 기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역시 한 발자국 양보해서 괴식이 아니라 검을 주는 방법도 있지만. 성운검이라는 놈은 자아가 강하고, 그만큼 자뻑 기질도 강하다.

어지간한 아티팩트를 주면 덤벼서 부러트릴 것이고 비슷한 급으로 맞춰주면 전쟁이 터진다. 역시 괴식으로 합의를 보는 편이 좋다.

하지만 어떤 괴식을 해줘야 놈이 기뻐할까. 승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놈의 성격은 예측할 수 없고, 놈의 취향도 알 수가 없다.

TV에서 심리학자들이 놈을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했었는데, 내로라하는 의사들도 백기를 들었다.

그런 놈의 마음을 승우가 알 수 있을 리 만무. 고민하던 그는 그냥 놈에게 묻기로 했다.

“요즘 바라는 게 있다면, 뭐가 있어?”

너무 직설적으로 물었나?

아차 하는 마음에 혀를 차니, 백강혁의 반응이 이상했다.

“있어요, 있어. 그게요, 싸장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녀석이 폭포수 같은 눈물을 뿌리면서 말하는 사연은 이러했다.

* * *

싸나이, 백강혁은 애간장이 살살 타올랐다. 간단한 이야기다.

동생이 결혼한다.

한 살 터울의 동생이 부뚜막에 올라버렸다.

녀석은 얌전한 고양이와는 거리가 멀긴 했지. 하지만 공부밖에 모르고, 겁나 얌전하게 살던 녀석이 냉큼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날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할 줄은 더 상상 못 했다.

이런 상상도 못 할,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1초 만에 승낙했다.

백강혁이 턱을 쩍 벌리는 동안 전화 예약으로 벌써 식장 예약을 잡더니만 다음에는 청첩장의 디자인을 알아보고 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이 백씨 가문의 숙명이라지만 이것은 너무 빨라도 광속으로 빠른 게 아닌가.

반발하는 백강혁에게 어머니는 이리 말씀하셨다.

“너나 잘하세요.”

90렙이 넘는 헌터의 물리 방어력도 어머니의 팩트 폭력에는 버틸 수가 없다.

트루뎀으로 팍팍 박아서 내상을 입어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추가타를 넣었다.

“부러워서 그러냐?”

부러워서 그러는 게 맞았다. 빌어먹을 동생 놈은 검사 생활 바쁘다고 맨날 징징거리고, 매일같이 죽는 소리 하며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지랄하더니만 어느 틈에 저런 아리따운 처자를 만난 것인가.

동생의 여자 친구는 민속학을 연구하는 대학 조교였다. 민속학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안경 쓴 여성을 이리 가까이서 본 것은 누구 말고는 처음이었다. 아주 지적이면서 상냥한 게 어디 사는 초사이어인 부관과는 천지 차이라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대체 어디서 알게 된 건지 추궁해 보니 동생이 말했다.

“나 아침 출근은 버스 타고 다니잖아?”

“그렇지. 검사씩이나 돼서 차 한 대 안 사고 버스 타고 다니는 한심남이지.”

“쯧, 한심남이 아니라 친환경, 절약적이라고 해줄래?”

“검사 봉급이면 차 정도는 끌어줘야지.”

“어느 시절 이야기하냐? 요즘 검사 초봉은 옛날의 반도 안 돼.”

“아무튼. 그래서?”

“버스 타는 방향이 같아서 일 년 정도 같이 다니다가 친해졌어. 같은 모바일 게임 하더라고.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라고?”

용을 잡는 퀘스트도, 마왕을 잡는 퀘스트도 안 했다. 호수에 잠든 전설의 무기를 뽑아서 하늘의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일곱 개의 돌을 모은 것도 아니고, 램프를 박박 닦아서 지니를 부르지도 않았다. 전설의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지도 않았다.

그냥 우연히 버스 타는 방향이 같아서 친해지고, 사귀게 됐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뭔 바보 같은 소리 하냐. 그렇게 여자 친구를 얻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냐.”

망연하게 보고 있으니 부모님이 막타를 치셨다.

“누구는 스포츠카를 종류별로 사도 여친 하나 못 데려오는데.”

“니 동생은 버스를 타도 이렇게 되는구나.”

부모가 무심하게 말한 팩트.

아들이 죽을 수 있습니다.

백강혁은 정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마나 코어는 정신 감응으로 육체에 힘을 준다. 정신을 집중하면 총알을 막을 수도 있다.

바꿔 말해서 정신이 어긋나면 육신에 크나큰 대미지를 줄 수도 있다. 기혈이 역류하고 주화입마에 돌입해 입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한 줄기 각혈을 한 백강혁은 울면서 달렸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게 용사의 밥집이었다.

* * *

“귀가 썩을 거 같다.”

담담하게 밥을 먹으며 민이 그리 말했다. 승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지현이 스파게티를 돌돌 말며 냉정하게 말했다.

“오더가 인기 없는 이유가 다 나오네요. 동생이 차 좀 안 산다고 한심남이라고 부르는 인성도 그렇고, 그릇된 연애관도 상당히 문제예요. 여자 친구가 무슨 트로피인 줄 알아요? 퀘스트 한다고 보상으로 뚝 떨어지게. 와, 진짜 글러 먹은 인간이야. 어우, 정떨어져.”

“전설의 나무 아래에서 고백은 무슨. 고백이라는 건 말이다. 사실의 확인이야. 도전과제나 챌린지가 아니라고. 내지르고 나서 성공하면 OK가 아니라고. 넌 일단 연애관이나 교정할 필요가 있겠다. 상식을 배워.”

“와, 민 씨, 그거 되게 멋진 말이네요. 고백은 사실의 확인. 저 인간 뇌세포에 또박또박 새겨줘요.”

신랄한 비평이 백강혁을 찔렀다.

어쨌든 이런 놈이라도 아들이라고 사랑해 주는 부모님과는 다르게 사랑이라고는 1g도 들어가지 않은 신랄한 언어의 폭력이라 대미지는 곱절로 들어간다.

“끄오오오옹…….”

말라비틀어지는 도마뱀 같은 소리를 내며 푸슈슉 하고, 백강혁이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녀석의 뒤통수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나 코어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발열이다. 거기에 얼음주머니를 올리면서 승우가 입맛을 다셨다.

“거, 뭐시냐. 미안하다. 이건 나도 너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네.”

너무 한심 이야기라서 그렇다. 백강혁이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배신당했다는 얼굴로 승우를 바라봤다.

“됐어요. 싸장님도 다 똑같아!”

“끄음…….”

“어차피 싸장님은 제 기분 몰라요. 왜냐! 그 얼굴이니까!”

“뭐?”

“그 얼굴로 세상 편하게 살았을 텐데 제 기분은 모르겠죠!”

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있으니 민이 싸늘하게 말했다.

“네 경우엔 문제의 95%가 외견이 아니라 내면에 있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견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너의 내면의 흠을 커버 치기에는 부족하지.”

“너 이 자식, 오늘 그냥 갈 데까지 가보자 이거냐, 응? 삼도천 특급 열차 태워줘? 모의전에서처럼 또 개발라 주랴?”

둘의 모의전 전적은 민의 15전 14승 1패였다. 압도적으로 민이 이기고 있었지만, 삼 일 전에 한 판 졌다.

딱 한 판. 그걸 믿고 나대는 백강혁을 보자 민도 얼굴이 붉어졌다.

“오냐. 밥만 다 먹고 나서 함 뜨자. 아주 아작을 내주마.”

“안 싸울 건데? 개허접아? 너 삼 일 전에 나한테 졌잖아. 어차피 내가 이기니까 또 싸울 필요 없는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에베베베벱. 허접. 형편없는 딜러, 에임고자, 케밥. 붕신. 꾸엑!”

쿵, 하고 승우의 신문지가 작렬했다. 승우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네가 왜 인기 없는지는 지금 다 확인한 느낌이다.”

“끄으으응…….”

“에휴. 그래서 일단 소원이 있다면 그거야?”

“예. 잘생겨지고 싶어요.”

승우가 눈가를 만지면서 백강혁을 봤다. 객관적으로 봐서 백강혁은 못생기지 않았다.

사실 헌터는 못생기기가 힘들다. 사람의 잘생김은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몇 가지만 의식하면 잘생겨질 수 있다.

첫째는 위생이다.

깨끗한 두피 관리와 모발 관리.

의복의 청결함. 좋은 냄새.

상식에 해당하지만, 이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

둘째는 패션 센스.

과한 패션 센스는 오히려 독이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입지 않는 정도면 충분하다.

셋째는 피부 미용.

깨끗한 피부는 사람을 잘생겨 보이게 한다. 적절한 세안과 몇 가지의 화장품 사용으로도 충분하다.

넷째는 체형.

근육빵빵한 몸은 일부 취향의 사람들에게만 먹힌다.

적당한 몸으로 충분.

“아주 심각한 얼굴이 아닌 한, 이 네 개만 잘 챙겨주면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그건 그거대로 되게 기만자의 말이네요.”

“나도 이런 외모지상주의적인 말을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네놈 때문에 별말을 다 해보는구나. 이런 건 나도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건데… 아무튼 그렇게 객관적으로 너를 보면, 음.”

돈을 처바른 만큼 백강혁의 피부는 괜찮은 편이었으며, 헌터이니만큼 다부지고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근육이 많아 의학적으로는 과체중에 속하지만, 보기에는 비만의 비도 보이지 않는다.

합격점은 훌쩍 넘었다.

“근데 왜 저는 그런 소리를 못 듣죠?”

“그건 민이 말한 대로 너의 내면의 단점을 덮을 만큼 외모가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야.”

“싸장님이 담담하게 그리 말씀하시는 게. 저 두 명이 험담으로 후려친 거보다 아픈데요.”

철심이 뾰족뾰족하게 난 모닝스타로 등짝을 후려치는 느낌이다. 백강혁의 머리를 신문지로 꾹꾹 누르면서 승우가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바라는 게 잘생긴 얼굴이라면, 내 괴식으로 이뤄줄 수 있어.”

“정말요?!”

“정말요!?”

“정말!”

“진짜로?!”

반응이 거셌다. 식당에 있던 손님들 전부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있는 것은 민뿐이었다.

손님들의 요란한 소리에 창가에서 자던 나비와 영식이가 슬며시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다. 승우는 손님들을 돌아보고는 턱을 긁었다.

“반응이 너무 쎈데.”

“잘생겨질 수 있다는데 당연한 반응 아닐까요. 그럼 그게 이제 정식 메뉴가 되나요?”

황지현이 돈 냄새를 맡고 눈을 빛냈다. 잘생겨지는 괴식에서 돈 냄새를 못 맡을 사람은 없다. 킬러맨시 스무디 이상의 대박 예감!

하지만 승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귀한 재료를 쓰는지라 팔 생각은 없어.”

“그럼 그 귀한 걸 왜 저 놈팽이에게 먹이는데요?!”

“그건 내가 저 놈팽이에게 조금 신세를 졌기 때문이지.”

정신승리 스킬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 참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여러 의미에서 백강혁은 구국의 영웅, 구세의 영웅이라고 불려도 될 업적을 세운 참이다.

“잘생겨지는 괴식 정도면 오히려 값을 싸게 치르는 거라고 생각해.”

“저 놈팽이가 대체 뭘 했길래…….”

“아무튼 그건 넘어가고. 그럼 진짜로 잘생겨지는 괴식으로 해주면 되는 거지?”

뭔지 몰라도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 백강혁이 번쩍 손을 들었다.

“네!”

보기 드문, 세상 모든 걸 손에 넣은 자의 미소였다. 아니꼬운 얼굴을 하는 민을 뒤로하고 승우가 다시 앞치마를 둘렀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인벤토리를 뒤져서 승우가 이상한 것을 꺼냈다.

긴 대나무 대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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