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컬레버레이션 (3)
나비는 한 명의 어엿한 요리냥이다. 요리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평가도, 인정도 필요 없는 프로다.
그런 녀석이 칼을 갈았다. 나비는 당당하게 자신의 시리얼을 내밀었다. 황지현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인 수류탄 같은 거, 솔방울이었구나. 근데 아까 꺼낸 거랑은 크기가 다르네?”
분명 요리 시작 전에 나비가 꺼낸 솔방울은 수류탄으로 착각할 만큼 매우 컸다.
하지만 우유에 담겨서 나온 솔방울은 매우 작았다. 하나하나가 엄지손톱만 했다. 후욱- 하고 콧김을 내뱉으며 나비가 말했다.
“시리얼에 적합한 최적의 크기와 품종을 찾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냐.”
“근데 이거 솔방울 맞긴 한가? 송진 냄새가 거의 안 나네.”
솔방울에서는 송진 냄새가 난다. 소나무 냄새라고 하면 청아하고, 자연의 향기라 좋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솔방울의 송진 냄새는 악취에 가깝다.
끈적하고 끈끈한 목공소의 냄새는 취향에 따라 좋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먹을 음식에서 나면 참으로 곤란한 냄새다.
식욕을 아예 없애 버릴 정도다.
“신기하네. 무슨 열매지?”
“이건 솔방울이 아니라 잣송이야.”
“잣송이요?”
“소나무나 잣나무 둘 다 소나무과의 나무이기 때문에 열매도 비슷하게 생겼지. 하지만 솔방울이랑 잣송이는 엄연히 달라. 잣송이 쪽이 좀 더 식용으로 쓰기 좋지.”
“그런 것도 먹는군요.”
“건강을 위해서 먹지.”
잣은 해송자(海松子)라고 불리며 예로부터 약재와 식재로 즐겨 사용되어 왔다. 몸의 양기를 보충해 주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중풍 예방, 항암, 기침에 좋은 작용을 한다.
“잣송이도 잣과 비슷한 효능이 있지만, 썩 추천할 만한 맛은 아니야. 쓰고, 아려. 바레니에로 만들면 먹을 만은 한데…….”
“바레니에?”
“러시아식 묽은 잼. 그쪽에서는 과일이든 솔방울이든 일단 설탕에 넣고 푹 졸이면 못 먹는 게 없다고 해. 과일이나 열매는 대충 다 바레니에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설명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건 그냥 잣송이를 말아 먹는 걸까요?”
승우가 슬쩍 눈웃음을 지으며 나비에게 설명을 양보했다.
나비는 앞발을 불끈 쥐면서 세모난 입을 열었다.
“그냥 잣송이가 아니다냥. 이건 백잣송이다냥.”
백잣송이는 지구의 품종이 아니다. 원래는 엘프들이 키우는 특별한 잣나무다. 쉽게 자라고, 쉽게 채취할 수 있다.
대신 잣은 그리 크지 않아서 보통 잣송이를 그냥 씹어먹는다. 엘프들이 좋아하는 영양간식이다.
“갓 자란 어린 백잣송이는 초록이다냐. 그게 갈색이 됐다가, 백색이 되면 먹기 제일 좋을 때다냐. 조금 더 늦게 채취하면 검은색이 되는데, 이때는 떫은맛이 생기고 영양가가 줄어든다냐.”
“그렇구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글자가 들어가서 인상이 별로였는데, 좋은 잣송이구나.”
백강혁 죽인다.
다시 되새긴 그녀를 보다가 나비가 수염을 조금 떨었다.
“냐앙. 그냥 잣송이는 먹으면 떫고 아리다냥. 그래서 우유에 말아 먹으면 최악의 맛이 난다냥. 하지만 백잣송이는 하얗고, 부드럽고, 아무 맛도 없다냐.”
“아무 맛도 없으면 먹기가 좀…….”
“그래서 그 백잣송이에 블루베리 잼을 섞었다냐.”
블루베리의 효과는 유명하다. 눈에 좋고, 노화를 예방한다. 그리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다.
“블루베리의 효과가 백잣송이와 만나면 효과가 곱절이 된다냐. 맛은 좋아지고냥냥.”
“그러니까…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 건강에 좋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냥.”
황지현이 말릴 새도 없이 바로 수저를 들어 시리얼을 머금었다. 블루베리 잼에 절인 백잣송이가 부드럽게 씹힌다.
식감은 죽순에 가까웠다. 하지만 맛은 우유와 잼을 한껏 머금은 탓인가 고소하면서 달았다.
졸음이 깨는 듯, 톡톡 튀면서도 깔끔한 맛이다.
“…굉장해.”
다른 게 굉장한 게 아니다. 정말로 칼같이 계산된 시리얼이다.
효과가 바로 몸으로 느껴졌다. 안약을 넣은 듯 눈이 시원해진다.
이 정도라면 아주 강력한 5단계의 점안액을 넣은 것과 비슷하다.
황지현은 오랜 시간의 사무 업무 덕에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아주 강력한 점안액이 아니면 눈이 뻑뻑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눈이 이렇게 시원해졌다? 이건 대박 효과다.
“어떠냥, 배는 부르냥?”
“응응. 엄청 배불러.”
“우냥냥냥. 잣송이는 보기보다 포만감이 강하다냥. 고단백이고, 영양소도 많다냐. 하지만 칼로리는 낮다냥.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냐. 심지어, 지방을 분해하기도 한다냐.”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먹으면 눈이 시원해지고.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시리얼.
먹으면 먹을수록 진짜로 살이 빠지는 시리얼.
“마법처럼 쫙쫙 빠지진 않지만냥. 오래 먹으면 확실히 빠진다냥.”
“…….”
황지현은 이 한 그릇의 시리얼에서 엄청난 돈 냄새를 맡았다.
킬러맨시 에이드를 처음 먹었을 때 느낀 그 돈 냄새! 그 강렬한 돈 냄새가 이 시리얼에서도 느껴진다.
탐욕, 탐욕의 눈으로 뚫어져라.
빈 그릇을 본다.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승우도 한 그릇을 끝냈다.
“이건 내가 손볼 것도 없다. 재료 선정, 효과 조절, 맛까지 완벽해.”
“냥냥냥.”
“하지만 단점도 있어. 이건 괴식이라고는 안 느껴지네.”
“우냥?”
나비가 분홍 코를 벌름거렸다.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다. 적재적소에 재료를 사용하고, 두 가지 이상의 재료가 갖는 특성을 조합시켜서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강한 효과를 갖는 건 괴식 요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괴식이 아니라고?
“괴식 컬래버레이션으로 사용되려면 조금 장난기가 있어야 해. 흥미 본위로 소모될 수 있도록 말이야. 하지만 이건 너무 상품성이 높아서 감탄이 나오면 나왔지, 웃음이 나오질 않는걸.”
“냥? 냥?”
“재료 선정이 참 기가 막혀. 이거 상품화까지 고려한 거 맞지? 백잣송이는 싼 재료고, 블루베리도 그리 특이할 거 없는 재료니까. 원가가 거저나 다름없네. 대량생산도 쉽겠어.”
이것은 칭찬인가. 아닌가.
나비의 눈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승우가 아차 하고 나비의 이마를 살살 긁었다.
“칭찬이야, 칭찬.”
“부냥!”
칭찬이 맞았구나. 나비가 폴짝 뛰어올라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승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로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았다.
‘이 정도면 거의 몇 년 전의 내가 만든 수준인데?’
마법 같은 기상천외한 효과가 있는 식재료는 대체로 마나가 담겨 있다. 용의 고기, 이세계의 몬스터의 부속. 마나를 머금은 자연의 보물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 백잣송이나 블루베리나 마나가 전혀 없는 식재다. 거기에 마나를 안 쓰는 조리법을 써서 마법 같은 효과가 깃들게 했다.
비결은 바로 자로 잰 듯 정확한 측량과 재료 선정.
블루베리 잼에 들어간 유청이 0.1㎎이라도 덜 들어가거나, 더 들어갔다면 이 같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잔 재료의 비율이 조금만 틀리면 이 시리얼은 평범한 시리얼이 되고 만다.
물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리얼의 효과는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대단한 효과도 아니긴 하다.
하지만 일반인이 먹어도 괜찮으며, 맛도 적당히 좋은 요리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괴식의 전문가로서 요 조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고심하고, 열심히 연구했는지 느껴진다.
“확실히 이건 컬래버레이션용으로 쓰기는 아깝네.”
“맞아요. 그건 남 좋은 일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승우가 황지현을 봤다.
“이것도 해볼래?”
“제가 살면서 받아본 유혹 중에서 제일 세네요.”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수 있죠.”
킬러맨시 에이드 사업을 위해서 확장해 둔 사업망이 있다. 킬러맨시 에이드 사업은 호황이다.
지금에 와서는 황지현이 과로사 직전까지 몰리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만, 성공은 좋은 일이다.
CEO 겸 공무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는 좋은 타이틀이기도 하다.
내친김에 시리얼계까지 출사표를 던져봐? 매력적인 이야기다.
황지현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사장님, 예전에 도박 근절 광고 중에서, 바보 같은 광고 있던 거 기억해요? 로열스트레이트 플러쉬 들고 도박하지 말라고 하던 거요.”
“아, 그거. 상당히 바보 같았지.”
“지금 그 상황이에요. 승률 99%짜리 패를 들고 안 들어가는 게 바보란 말이에요.”
이 시리얼은 팔린다.
무지막지하게 팔린다.
반칙적인 효과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일거리가 따따블이 된다.
나비가 만든 시리얼은 공장의 자동화 기계가 만들 수 있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연구가 필요할까.
투자와 관리가 필요할까.
생각만 해도 숨 막히는 일이다.
하지만 황지현은 각오를 굳혔다.
“할게요.”
“하지만 힘들지 않겠어?”
“괜찮아요. 다 방법이 있어요.”
퇴사하고.
백강혁 죽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겠다.
황지현이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을 굳혔다.
“퇴사하면 되죠.”
내일.
대머리의 면상에 퇴직서를 던진다.
그리고 백강혁을 조진다.
그녀의 결심을 보고, 모든 상황을 짐작한 승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귀환자들을 위해서 배포된 변화한 한국법 요약본이 들려 있었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앞날을 떠올린 승우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그럼 맡기마.”
“예. 맡겨만 주세요!”
* * *
황지현이 출근했다.
그녀의 출근은 항상 생기가 없었다만, 오늘은 다르다.
어깨는 쫙 펴져 있었고, 걸음걸이마다 패기가 느껴진다.
마치 수양대군의 등장 씬처럼 위풍당당하다. 패기에 짓눌린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하지만 A섹터의 최고의 돌아이는 백강혁이고, 가장 강력한 자는 문선아다.
그녀가 황지현의 패기를 이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지현아,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어, 언니, 티 나요?”
“응. 주식 대박 터진 날의 정훈 쒸 같아. 주식 대박 터졌나 봐.”
“주식 대박은요, 무슨. 하지만 좋은 일은 맞아요. 저 퇴사할래요.”
“잉? 퇴사?”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며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하다.
퇴사하고 시리얼 사업 한다는 말에 문선아가 빵 터졌다. 너무 빵 터져서 배를 잡고 숨도 못 가눈다.
“흐에, 흐에. 나 살려. 아, 웃다가 죽겠어. 으으으. 미치겠네.”
“언니, 그렇게 나오면 저 기분이 좀 나쁜데요. 시리얼 사업 대박이거든요? 안 망할 거거든요?”
“아니아니, 우리 귀여운 지현아. 그런 게 아냐. 그냥, 그냥. 승우 씨 진짜 나빴다. 우리 착한 지현이 어쩜 좋아.”
“언니.”
“그래. 이, 일단 설명부터 해줄게. 지현아, 너 법 확인 잘 안 하지?”
“하거든요.”
“민법 말고, 전시특례법 말이야.”
“…그걸 왜 확인해요.”
현재의 지구는 전시 상태다.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는 이세계의 존재들과 끝나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전시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변칙적인 법 조항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시특례법이라는 이름으로 매번 새로운 법이 생긴다.
“1년 전부터 말이야. 강제 소집 부분의 특례법이 바뀌었거든?”
“가, 강제 소집……?”
“요약하자면 말이야. ‘레벨이 높은 각성자가 ISAC의 소속이 아니거나, 국가의 인정을 받은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경우, 국가의 사정에 의하여 강제 소집 명령을 내릴 수 있다.’라는 이야기야. 우리 지현이 레벨 몇?”
“52…….”
“강제 소집 대상이라고 여겨지는 고레벨 각성자의 커트라인은 21레벨이거든요?”
“…….”
“두 배 넘었지. 초고렙 각성자네.”
휘청하고.
황지현의 다리가 풀린다.
“그, 그렇다면…….”
“응. 너 ISAC 관두면 바로 한국에서 강제 소집 당함. 만기 전역일도 없는 군 생활 시작이지.”
“…….”
“그런데도 퇴직서 던질 거야?”
“…….”
던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ISAC 소속이 국가 소속보다는 확실히 덜 피곤하니까.
풀썩 하고 황지현이 무릎을 꿇었다.
“그럼 나는…….”
“응. 축하해. 일복 터졌다, 얘.”
이대로 일은 일대로 다 하면서, 퇴사는 못 하고, 시리얼 사업까지 하게 생겼다. 영혼 없는 눈으로 황지현이 창밖을 보았다.
푸른 하늘과 태양.
뭉게구름과 눈 고래.
그 옆으로 상쾌하게 웃는 승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지금쯤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활짝 웃고 있겠지.
“낚였다.”
그렇다. 사디스트 대마왕에게 낚인 것이었다. 지현이 바닥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