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464화 (463/613)

464화. 제우스 (3)

200m 이상의 수심에서 사는 물고기를 심해어라 한다.

물고기와 심해어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빛이다.

어떠한 힘을 간절히 바라서 얻어낼 수 있는 건 인간만이 아니다. 빛이 투과되지 않는 깊은 수심이기에 녀석의 진화는 기묘하게 이뤄진다.

승우는 그 깊은 곳에서 살다가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의문사를 당한 심해어를 내려다보다, 중화식도로 놈의 머리를 툭툭 쳤다.

찰박찰박하고 점액이 튄다. 마치 시럽 같은 점액질이 끈적하다.

‘이거 보통 점액이 아닌데?’

점성이 높고, 비리다. 어찌나 끈적한지 키친타올로 닦아도 잘 닦이지 않으며, 닦아도 금세 다시 스며 나온다.

물에는 녹지 않고 씻겨나가지도 않는다. 승우는 중화식도에 묻은 점액질을 휙휙 흔들어서 가시성을 확인했다.

생각한 대로 이 녀석의 생명줄은 이 점액질이다. 이걸로 자신의 모습을 덮고, 냄새도 덮는다. 그리고 숨어서 톱날 같은 이빨로 콱- 깨무는 게 필승전략이겠지.

모든 모습은 필요로 정해진다. 동그란 추가 달린 더듬이는 길고 유연해서 마치 모닝스타 같다.

단단하기도 철구처럼 단단하다. 정말로 무기로 썼을지도 모르겠다.

점액질로 숨고, 깨물고 모닝스타로 때린다. 겸사겸사 점액질을 두른 녀석의 몸은 비리고 맛이 없기에 먹기에도 부적합하다.

제우스의 벼락이 떨어져서 죽기 전까지는 심해의 무법자처럼 살았으리라.

민이 혀를 내둘렀다.

“잘 숨고 잘 싸우는 데다가 맛까지 없다니, 이 무슨 이기적인 물고기인지…….”

“자연은 원래 이기적인 거라고 해도, 이 녀석은 조금 과하군.”

“마치 스컹크 같네요. 아, 아니다. 예시가 부적절했군요.”

스컹크는 고약한 냄새로 위협적인 공격을 가하고, 그 냄새가 고기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천적조차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모피가 워낙 부드럽고 털 색이 좋아 인간이 대량으로 밀렵한 터라, 예시로는 부적절했다. 말을 고르던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강혁 같은 물고기군요. 이 심해어의 이름은 백강혁 생선이라고 등록해도 괜찮겠습니까?”

“…….”

농담인가, 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한 눈이다. 실제로 그럴 권한도 있다. 승우는 잠깐 미간을 누른 후에 모른 척 넘어갔다.

“맛있게 먹고 싶다면 손질을 해서 먹어야겠네. 이 알록달록한 껍질 중 갈색 부분의 땀샘에서 점액이 나오는 듯해. 여기를 중점으로 손질하면 되겠지.”

“그, 이미 한 번 요리사들에게 시켜보았습니다만. 손질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껍질 자체도 두껍고, 쉬지 않고 스며 나오는 점액 때문에 칼질이 잘 안 된다. 누구나 승우처럼 중화식도로 강철을 썰고, 폭포를 가르지는 못한다.

“일반인에게는 힘들겠네. 적어도 칼로 슬라임은 가를 수 있어야겠군,”

검으로 철을 자른다. 참철의 경지.

그다음의 경지가 검으로 부정형 몬스터를 가르는 경지.

이른바 참형(斬刑)의 경지다.

소드 마스터의 중간 단계쯤 된다.

“그걸 요리사에게 요구할 수는 없지. 다른 방식을 써야겠구나.”

“다른 방식도 있습니까?”

“요리란 오픈 월드 RPG 같은 거라고. 길이 하나만 있지는 않아.”

예시가 좀……?

민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자, 은하가 격하게 긍정했다.

“맞아요. 아빠가 길이 많을수록 좋은 게임이라고 그랬어요!”

“응, 요리는 게임처럼 창의성이 중요하지. 즐기는 마음이 중요해. 그럼 다들 이 심해어에서 점액질을 빼는 방법을 하나씩 말해보자.”

느닷없는 이야기에 모두가 주의 깊게 심해어를 봤다.

제일 먼저 민이 말했다.

“그냥 안 스며 나올 때까지 키친타올로 닦는 건 어떻습니까?”

“정성이 필요하구나. 그렇게 하려면 일주일은 닦아야 할걸.”

“윽.”

크라이의 의견.

“그냥 먹어.”

“손질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라이.”

“그럼 대패 같은 걸로 밀어버려.”

“먹을 부위가 거의 없어지잖냐.”

“으, 귀찮군. 통째로 씹어먹으면 될 것을.”

“이래서 오크랑 요리법 이야기하는 거만큼 한심한 일이 없지.”

은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이대로 구워요!”

“그 또한 놀라운 해결책이지만, 구워 먹으면 맛이 없을 거야.”

“우우? 이거 맛없는 생선이에요?”

맛없게 생겨서 그럴 줄 알았다.

은하가 턱을 호두처럼 만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승우가 파하, 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점액이 문젠데, 점액이 나오는 곳까지 불로 익히려면 아마 까맣게 탄 잿덩이가 되겠지? 그렇다고 설익히면 점액질이 그대로 남을 거야. 맛이 없을 수밖에 없지.”

“앗.”

은하가 입을 다물고, 이번엔 나비가 앞발을 들었다.

“밀가루나 빵가루로 덮어서 튀기면 어떻냥?”

튀기면 어떠한 음식이라도 먹을 만해진다. 일부 사람은 극단적으로는 가죽구두를 튀겨도 먹을 만하다고도 한다. 그만큼 튀김이라는 조리법은 우수하다.

구태여 생선이라고 찜, 회, 탕만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튀겨서 심해어까스를 만든 후에 거기에 소스를 대량으로 때려 박으면 점액이고 뭐고 먹을 만해질 것이다.

승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현재로서는 제일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부냥.”

“하지만 재미가 없군,”

“부냥?! 재미까지 따져야 하는 거였냥!”

“하하하. 하지만 다른 사람도 흉내 낼 수 있어야 하니까, 재미까지 추구할 수는 없겠지. 나도 네가 말한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나비가 땡글한 눈을 반쯤 감으며 승우를 봤다. 부냥, 하고 콧수염을 흔들면서 묻는다.

“용사님이 하신다면 어떻게 할 거냥?”

“나라면… 그래.”

승우가 싱긋 웃었다.

“동양의 의학을 보여주겠어.”

“냥?”

“예?”

“네?”

생뚱맞은 이야기에 모두가 물음표를 띄웠다.

* * *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은 심해어가 상당하기에, 그 양을 모두 소화하려면 간단한 조리법과 적당한 맛이 필요하다.

즉, 노력 대 성능비.

그리고 가격.

푸드 코스트. 가성비란 녀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심해어까스는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한 번만, 딱 한 번만 가게에서 팔 거라면 승우는 다른 방법이 낫다고 말했다. 그 방법을 보여주겠다고 승우가 가져온 것이…….

“??? 이게 뭐예요?”

“부냥??”

“뿌?”

은하와 나비, 그리고 자다가 깬 영식이가 승우가 가져온 것을 보았다. 투명한 반구형의 작은 플라스틱 컵이다. 컵인데 어째 컵의 중앙에는 젖병 꼭지 같은 게 달려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민이나 크라이는 이걸 알고 있기에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부항 컵 아닙니까?”

“맞아.”

부항(附缸, Cupping).

부항 컵을 피부에 댄 후에, 공기를 빼내서 피부 아래의 혈관과 조직에 압력을 가하는 의료 행위다.

이리하면 혈관과 조직이 파열하여 손상이 가는데, 일부러 손상을 가해서 혈액의 흐름을 도우며 림프순환을 촉진시키는 게 부항의 원리다.

“아니, 근데 너도 부항을 알아?”

“헌터라면 다 부항은 뜰 줄 압니다. ISAC의 의무실에도 전부 배치되어 있고요.”

“어? 그건 의외네. 이거 사이비 의학이라고 욕 많이 먹었는데…….”

“부항의 근육통 경감 효과에 대해서 총장님이 직접 쓴 논문도 있습니다. 특히 습식 부항에 관해서는 권위자시기도 합니다.”

그냥 압력을 가하는 것을 건식 부항이라고 하고, 란셋이나 침으로 피부에 구멍을 뚫은 후 거기에 부항을 떠 피를 빼는 걸 습식 부항이라 한다.

승우가 피식 웃었다.

“그럼 뭐,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네.”

“설마 선생님, 심해어에게 부항을 뜰 생각입니까?”

“응. 부항을 떠서 점액을 배출하고, 맛있어지게 세포를 촉진할 거야. 겸사겸사 기공술로 도수치료까지 할 건데?”

부항으로 점액을 빼고, 혈액 순환을 촉진해서 맛있게 만든다. 덤으로 기공술로 기를 불어넣고, 맛있어지게 안마까지?

“그거 요리 맞습니까?”

“음식이 맛있어지게 하면 다 요리야.”

“……!”

엄청난 설득력!

민이 입을 다물자, 크라이가 일리가 있다는 듯 말했다.

“가능은 하겠군. 못 할 거야 없지. 아니, 오히려…….”

“응. 기공술의 전문가인 네가 나보다 더 맛있게 할 수 있을걸?”

“…그래.”

승우의 전문은 마나 컨트롤과 검.

기공술의 활용은 분명히 말해서 크라이가 몇 수나 위였다.

“그러니까 부항은 내가 뜰 테니까, 기공술과 도수치료는 네가 한번 해봐.”

“알았다. 재밌을 것 같군.”

3m짜리 거대한 심해어가 도마 위로 올라간다. 갈색의 부분에서 점액이 스며 나온다. 흘러나오는 곳을 닦고 거기에 작은 침을 찔러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부항컵을 붙였다.

사십 개가 넘는 부항컵이 올라가고, 승우는 거기에 펌프로 음압을 가했다.

주욱주욱 점액질이 차오른다. 생각보다 점액질의 양이 많다.

부항컵을 특대자로 바꾸고(이종족용부항이 있었다.) 다시 펌프를 하자, 이번에는 더 많은 점액질이 나왔다.

“많이도 나온다.”

“다 나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인정사정없이 펌프질했으니까 5분 정도 걸리겠지.”

사람에게 이렇게 펌프질을 했으면 살가죽이 벗겨질 정도였다만, 심해어의 껍질은 두꺼워서 이렇게 강하게 해도 문제가 없었다.

멍하니 지켜보는 동안 5분이 순식간에 흘렀다. 부항 컵을 열세 번이나 비웠다.

민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 녀석, 몸무게의 삼 분의 일이 점액이네요. 이걸 닦아내려고 했으면 진짜 오래 걸렸겠습니다.”

“응, 역시 내 생각대로 부항이 좋네. 빨리 점액도 뽑아내고, 혈액 순환도 좋게 해서 고기가 연해지니까 일거양득이야.”

딱딱한 심해어의 고기가 약간이지만 물렁물렁해졌다. 크라이가 깨끗하게 손을 닦으면서 다가왔다.

“이젠 내 차례군.”

기공술이란 기(氣)를 다루는 기술이다. 자연의 힘, 세상을 구성하는 힘을 마나라고 한다면, 기는 생명체 자신의 힘이다.

마나를 흡수하고 여과하여 자신이 소화한 힘. 크라이는 기를 끌어올려 심해어에게 불어넣었다.

기를 공격으로 쓸 때는 보통 경파, 기파, 발경처럼 기의 파문을 이용한다.

하지만 기의 치유적인 활용은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 상대의 기와 공명하여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활기공이라 한다.

치료마법이나 신성마법처럼 조건 없이 살릴 수는 없지만, 크라이의 활기공은 다 죽어가던 부상자조차도 내재된 생명력이 있다면 단번에 정상으로 돌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리고 심해어의 생명력 또한 강했다. 제우스의 벼락 따위가 아니었으면 수백 년을 더 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생명력이 남아 있었다.

그 생명력이 크라이의 활기공에 자극받아 생명 운동을 시작한다.

지친 근육에 활기가 돌고, 축 처졌던 꼬리와 아가미가 빳빳하게 솟아오른다.

이미 숨을 거뒀기에 되살아나지는 못했으나, 심해어의 육신은 살아생전보다도 오히려 건강한, 최상의 신선도를 얻었다.

거기에 크라이가 직접 도수치료를 시작했다.

바위를 으깨고 용의 뿔을 꺾는 우악스러운 오크의 손놀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세심한 손동작.

정점에 이르는 권신의 반달뼈와 갈고리뼈를 통해 활기공이 펼쳐지고, 능숙한 마사지가 이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권투사, 체술사, 권사는 부상이 잦다.

치료법과 마사지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는 게 당연한 것이다.

크라이의 손놀림에 민이 감탄하여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백강혁이 말하던 오크 마사지인가…….”

아아, 오크 마사지.

오크 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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