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화. 글로사 (1)
TV속 기자가 말했다.
[준석 씨 길드에는 준석 씨를 포함해서 차기 퍼스트 오더가 세 명 있다고 명성이 자자합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여!]
[준석 씨 맞잖습니까?]
[내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것은 준석 씨 이하의 다른 헌터를 비하하는 발언입니까? 내가 대단한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무능할 뿐이다, 그런 뜻입니까?]
[아, 아녀! 그런 뜻이 아닌데!]
[그럼 해명 부탁드립니다!]
[에, 에잇-!]
[앗, 도망간다-!]
TV는 준석의 하청 길드원들이 도망가고 있는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아이고, 고생하시네.”
승우가 혀를 찼다. 저들이 능력 재검사를 위해서 서울시청을 방문한 건 좋았지만.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고 있는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지금 실검 1위가 게이트 생환자고, 2위가 백강혁이며, 3위가 별똥별 3발 맞았을 때 대미지다.
온 세상의 관심이 저들을 향해 있다. 그러니 경솔하게 시청에 온 건 실수였긴 했다만.
“그래도 그렇지 일부러 자극적인 언동만 골라서 하다니, 기레기가 따로 없군. 저래도 돼?”
“괜찮아요. 저런 기레기는 저희가 잘 나중에 잘 처리한답니다.”
“처리? 죽이는 거야?”
“아뇨. 특별 관리 명단에 넣어 뒀다가 고소 풀세트를 먹여 주지요. 합법적으로 곤란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건 다행이군.”
승우의 말에 대답한 황지현이 태연하게 크림 스튜를 한입 물었다. 노란 크림 스튜는 다른 크림 스튜와는 조금 다르다.
무려 찹 스테이크 비프 크림 스튜다. 소고기가 왕창 들어가서 맛있다. 다른 가게에서 이렇게 먹으려면 한 그릇에 몇 만 원은 받겠지만, 여기선 고작 만 원이다. 이 합리적인 가격은 정말이지 최고다.
정신없이 먹은 황지현이 입가를 닦았다.
“한 그릇 더 주세요.”
“알았어.”
“근데 부탁하신 거 말이에요. 조금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오래 걸리면 곤란해. 최대한 빠르게 부탁하고 싶다만.”
“저희도 사장님 마음은 알아요.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하고 있는데, 일이 쉽지 않아요.”
“그런가?”
“애들이 많이 상처 입었나 봐요.”
승우가 곤란한 듯, 볼을 긁었다.
얼마 전 승우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유망주 아이들 모아놓고 공포를 가르친다고 살기를 아주 쬐금 방출했다.
그리고 그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이 죄다 울어 버렸다.
울어 버리고, 집에 가서 헌터 때려친다고 해 버렸다.
“애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
“사장님의 살기라니, 생각만 해도 오싹하네요.”
“알아. 알아. 내가 잘못했어.”
“의도는 잘 알겠지만요. 의도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기도 하고요.”
헌터 학원이나 아카데미는 의도적으로 공포심을 거세시킨다. 공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중에 누가 성장이 빠를까.
단연코 공포를 모르는 사람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모르는 게 복이라는 말도 있다. 공포는 모르는 게 이득이다.
“공포를 모르면 겁 없이 몸을 들이밀고, 결국 성장하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성장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건 또 잘 모르더군.”
“맞아요.”
헌터들은 로우 레벨에서는 확실하게 공포를 모르는 편이 성장도 빠르며 다루기도 좋다.
공포를 아는 사람은 위험한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하니 성장이 느리다. 하지만 대가는 빠른 죽음이다.
“막상 하이 레벨이 되는 사람은 공포를 알고 이겨 낸 사람이지요.”
“보통 공포를 모르는 사람은 레벨을 올리기 전에 비명횡사하니까.”
“예. 그러니까 사장님의 의도는 옳다고 봐요. 총장님도 찬성하셨고요. 법적인 문제는 없을 텐데요? 굳이 애들을 봐야겠어요?”
“그래도 뒷감당은 해야지. 나 때문에 헌터 생활을 접은 아이가 있으면 다시 한번 봤으면 해.”
의도가 어떻든, 아이들은 헌터 생활을 접었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헌터를 하려고 했던 이유가 자신의 소질이던, 부모님의 강권이던, 돈이 필요해서든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헌터 생활을 포기한 원인이 승우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그 뒷감당을 하기 위해 승우는 아이들을 다시 한번 보려고 했다. 그렇게 지현에게 부탁했지만, 아이들이. 정확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대답을 미루고 있다.
“왜?”
“아이들이 무서워하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사장님 살기를 정면에서 받으면 저도 헌터 때려 칠 거 같은데요.”
“내가 장담하지. 자네는 그럴 사람은 아냐.”
“으으, 왜 장담하고 그래서요. 한번 해 보실래요?”
“핑계로 은퇴하려고? 어림없지.”
“윽.”
이 핑계로 일 때려 치고 스무디 가게의 사장님으로 재빨리 전직하려고 했거늘, 정곡을 찔렸다.
황지현이 한탄했다.
“으으으, 일이 너무 많아서 죽을 거 같단 말이에요. 퇴직하고 일은 하나만 하고 싶어요.”
“그래그래. 수고가 많아.”
“으음. 위로에 성의가 없네요. 어쨌든. 최대한 애써서 애들이랑 연결해 볼게요.”
“응. 고마워.”
“하지만 괜찮겠어요? 이번에도 같은 결과면 곤란한데요.”
우려 섞인 황지현의 말에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괜찮아.”
힘숨찐 놀이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으나, 큰 교훈도 주었다.
다시는 이딴 짓 안 한다는 게 첫 번째 교훈. 두 번째 교훈은 평범한 사람의 상식이다.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우수함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승우의 감각은 크게 어긋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습이 끝났다.
이제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진짜로요?”
“아, 아마도…….”
“아직 애매한 거 같은데…….”
“괘, 괜찮을 거야.”
아직도 긴가민가해서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는 없긴 하다.
승우가 말꼬리를 흐렸다.
* * *
지현은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잡았다.
“이틀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틀 후에 아이들이 온다.
승우는 주방에서 서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보자.’
승우의 시선으로 본 아이들의 재능은 제외하고, 세간의 상식으로 비추어 보면 아이들의 재능은 분명히 뛰어난 재능이다.
동시기에 활동하는 동갑내기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재능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살기를 한 방 발사해서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애들은 헌터를 때려 친다고 했다.
분명한 민폐였으니 승우의 손으로 봉합을 해야 했다.
그럼 어떻게 봉합할까.
첫 번째 아이디어.
무작정 레벨업시킨다.
‘할 수는 있지만 해서는 안 돼.’
이번에 승우는 우연히 놀라운 발견을 했다. 검술 중에 망아격(忘我擊)이라는 기술이 있다.
스펠 유저들, 마법사들을 공격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마법 주문의 캐스팅을 방해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응용해서 뇌를 직접 가격하고 마나를 불어넣으면 상대의 기억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발견.
두 번째 발견은 이렇게 넣은 마나를 상대가 소화하면 레벨이 오른다는 것이다.
‘이걸 괴식에 응용하면 레벨 부스트 괴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고 레벨로 만들면 어떨까?’
곧 상상이 갔다. 수많은 매체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졸부의 아들, 딸들이 왜 인격 파탄이겠는가.
‘그게 다 어린 나이에 큰 부와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지. 레벨이 권력과 같은 말인 지금 세상에 어린 나이에 높은 레벨을 가져봐야 제대로 된 사리 구분이 될 리가 없어. 오히려 내가 부여한 레벨 때문에 길을 잘못 갈 가능성이 더 커.’
그러니까 기각.
두 번째 아이디어.
뭐가 됐든 강하게 만든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아이들의 강함이 아니야. 정신력 문제지.’
이것도 아니다. 기각.
세 번째 아이디어.
공포를 알고도, 그걸 이겨 낼 수 있도록 성격을 개조한다.
‘성격을 개조해서 강제로 냉정 침착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인격 말살과 뭐가 다른데. 이건 최악이야. 기각 기각.’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하던 승우가 마지막 해법을 떠올렸다.
네 번째 아이디어.
정확하게 공포만 이겨 내게 한다.
‘이것밖에 없겠군.’
아이들은 지금 패닉에 빠져 있다. 쉽게 말해서 공포 상태 이상이다. 이 공포 상태 이상을 낫게 만들어 줘야 한다.
‘망아격으로 때려서 기억을 날려 버릴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레벨도 레벨업이고. 애들을 때리는 사람이 된다. 애들은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교육자로서 할 짓이 못 된다.
‘그렇다면 괴식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럼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괴식을 만들어야겠군.’
먹고 나서 스탯이 오르면 안 되고, 불필요한 스킬이 생겨서도 안 된다. 공포 상태만 지워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되는 괴식이 되겠네.’
승우가 연구해 온 괴식은 어떻게 하면 더 강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거부감 없이 괴식을 먹일 수 있을까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공포 상태 이상만 절묘하게 없애고 아무런 효과도 탈도 없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의 변용이면 될까’
새로운 시작은 상태 이상을 낫게 해 주고,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반동을 준다.
일전에 화상을 낫게 하려고 먹었던 김귀남은 화상을 낫게 하는 대가로 하늘을 날았고, 방귀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말이지 고약한 대가다.
이번에 아이들에게 새겨진 공포의 근원은 승우였으니 먹고 난 후에 반동은 정말 엄청나겠지
아이들의 몸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상태 이상만 예쁘게 사라지게 해야 한다. 겸사겸사 미안하니까 맛있는 것도 해 줘야겠지.
지옥 같은 맛을 가진 새로운 시작은 패스. 공포를 보여 주고 극복하면 큰 힘을 주는 시련 계통의 요리도 패스다.
그냥 심플하게 공포만 지워 주고,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잠깐 고민해 본 승우는 금세 답을 찾았다.
“별거 아니네. 글로사를 먹여 줘야겠군.”
글로사는 테라식의 치즈를 의미한다. 이 치즈는 무지막지하게 맛있다. 글로사라는 말은 ‘혀’라는 뜻으로 제우스가 처음 글로사를 먹고 ‘이 음식을 먹기 위해 혀가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서 글로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글로사를 먹으면 그 강렬한 맛에 근심 걱정을 잊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예전에 승우도 먹어 보았고, 잠깐만이나마 신들에 대한 분노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럼 문제는 하나군. 이걸 어떻게 먹인다냐…….”
글로사는 치즈다. 그냥 치즈가 아니라, 벌레 먹은 치즈다.
지구에도 비슷한 게 있다. 카수 마르주(Casu Marzu)라는 치즈다. 이름의 뜻은 ‘썩은 치즈’.
카수 마르주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치즈 덩이를 일부러 치즈 파리가 사는 곳에 두면 치즈 파리는 치즈를 먹고, 치즈 덩어리에 파고들어서 거기에 알을 깐다.
치즈의 발효열과 넘치는 영양을 공급받아 알에서는 구더기가 깨어나고, 구더기는 치즈를 먹으며 성장한다.
이 기괴한 숙성과정을 마치면 치즈는 점차 부드러워지고 풍미가 강해진다.
“여기까지는 숨길 수 있어. 구더기를 치우면 치즈니까. 하지만 치즈의 눈물은 못 속이지.”
치즈의 눈물. 군데군데 구더기가 치즈를 먹고 싼 똥이 섞이며 흰 길을 남기는데 이를 치즈의 눈물이라 한다.
이 치즈의 눈물은 최고급 카수 마르주의 증표라, 발견하면 다들 아주 기뻐한다.
“하지만 그건 이탈리아와 테라의 이야기. 다른 사람은 당연히 싫어하겠지. 구더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글로사, 카수 마르주는 맛있다. 진짜 맛있다.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 내성이 쌓인 사람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진짜 제대로 먹으려면 구더기까지 씹어 먹어야 하는데, 이 구더기는 하나하나가 1~8㎜ 정도 된다. 그게 수백 마리가 살아 있다.
그렇다, 살아 있다.
본고장 사람은 죽은 채로 먹는 게 아니라 산 채로 먹는다.
“고개를 돌리고 말이지.”
본고장에서 카수 마르주를 먹을 때는 고개를 돌리고 먹는다.
구더기가 워낙 싱싱한 까닭에 10~20㎝는 가볍게 뛰어올라 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걸 애들한테 먹이면 트라우마가 하나 늘어날 뿐일 거야.”
뭔가 수작이 필요해. 승우가 다시 고민하다가, 음흉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까 그냥 형태랑 구더기만 안 남으면 되는 거잖아?”
모른 척, 평범한 요리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