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식식당-538화 (537/613)

538화. 재앙 (1)

차원과 차원을 잇는 문, 게이트.

그 어떠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차원 이동을 위해서는 게이트를 통해야 한다.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학교에 나타나는 생명체, 외계인, 몬스터는 게이트도 없이 나타난다.

어째서 그게 가능할까.

‘게이트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차원이나 아주 먼 거리, 행성을 넘어 지구에 도착했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서로 모순될 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모순이 아니야.’

이 두 가지의 명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답은 무엇인가.

사색 끝에 승우는 결론을 내렸다.

‘답은 하나. 게이트는 보이지 않으나 존재한다.’

게이트를 타고 이동했으나, 게이트가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승우가 내린 답은 이것이었다. 근거는 이미 충분하다.

본인이 체감하고 있다. 엉망진창이 된 마나의 흐름, 차원법이 무시되는 듯한 자연환경. 이론적인 것은 뒤로하고 직감이, 육감이 그리 속삭이고 있다.

승우는 이 단계에서 직감적으로 이 사태의 원인과 범인조차도 눈치챘다. 원인은 바로 법칙이 깨졌다는 것. 차원 법의 절대적인 규율이 엉망진창으로 짓밟혔다는 것.

원인을 아니, 범인은 바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신이 세상에 누구겠는가.

“범인은 바로 나였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범인이 자기 자신이었으니, 눈치챌 수밖에 없지. 승우가 머리를 꾹꾹 눌렀다.

“문제의 시작은 그거겠군.”

사건의 원인은 열흘 정도 전. 승우의 가게에서였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직감하고 문제해결과 원인 규명을 위해서 승우는 명상했다.

고작 5분 남짓의 명상이었으나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검에 기를 두르는 것이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는 힘의 발현이라면, 검으로 현상 자체를 파괴하고는 것이 검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지.

명상 끝에 승우는 검의 극치를 뛰어넘어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경지, 삼라만상의 법칙과 대우주의 이치, 차원 법마저도 소멸시키는 극한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아무도 도달한 적이 없는 미증유의 경지에 도달했음은 축하해 마땅한 일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이번 괴사건의 원인이 발생한다.

무심코 내지른 승우의 소멸검에 지구 전역의 게이트가 소멸했다.

차원 법의 법률조차도 무시하고 발동한 소멸검은 게이트를 양단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었다.

즉. 요컨데 게이트는 발생하였으나 소멸했고,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 게이트들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조차도 명확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 게이트를 구성하고 있던 마나들은 엔트로피 법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기괴한 상태가 되었다.

갈 곳을 잃은 마나.

형편없이 뭉개진 균형.

유명무실해진 차원 법.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법칙은 붕괴하고, 법 또한 망가졌다.

수습할 신은 없었다.

누구도 이러한 현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상이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은 까닭이다.

결국 응집되고 응어리진 에너지와 마나는 공간에 수많은 균열을 만들며 이곳저곳의 게이트와 융합 아닌 융합을 거듭하여 공간 자체가 기묘하게 변한 것이다.

그러니까 범인은 승우가 맞았다. 승우밖에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예지 능력자들이 예지한 재앙이라는 것도 아마, 나겠지?”

재앙이란 글자를 보자마자 생각하긴 했다. 솔직히 재앙이라는 글자를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나를 두고 네가 뭔데 재앙이라고 칭하냐, 진짜 재앙 맛 좀 보여 줘? 라는 기분도 든다.

초마왕을 흡수한 영향으로 흉폭해져서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저 고개가 높은, 잘난 척하는 놈을 보면 고개를 꺾어 주고 싶어지는 삐딱한 마음이 승우에게도 있었다.

재앙의 신명 예비 후보자 1위는 승우였고, 그것을 점수로 환산했을 때 2위 후보자와의 격차는 사십 배가 넘는다. 그러니까 재앙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승우가 자신을 연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골치 아프게 됐군.”

승우가 뒤통수를 긁었다. 처음의 예감이 결국에는 정답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결국 이 난리의 원인이 자신이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불행 중 다행으로 원인이 자신이었으나, 해결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니, 유일한 위안은 아니군.”

학교에서 교사 생활 하는 일 자체는 꽤 재밌어서 좋았다. 그래, 기왕이면 이런 즐거운 기분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지.

“며칠만 더 힘내 볼까.”

이렇게 대명 고등학교에서 끝도 없이 몬스터가 나오는 사건의 정체가 밝혀졌다. 한 번 정체를 알았다면 그 후를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엔트로피의 법칙은 계산의 영역이야. 없던 에너지와 마나가 튀어나올 수는 없어. 따라서 내가 처음에 제거했던 지구권 전역의 게이트 에너지를 전부 합친 것만큼의 몬스터가 대명 고등학교에서 나온다는 뜻이지.’

미증유의 사태이기에 정확한 이론을 세울 수 없으나, 몬스터의 등급이 지나치게 높았다.

아마츠미카즈치나 아마츠이카즈치같은 지팡구의 풍뢰룡은 지구의 몬스터 등급 분류표로 등급을 나눠보면 SS+ 인 국가 재해급 몬스터다. 월드 레벨이 낮은 지구에는 아직 이른 몬스터인데도 대명 고등학교에는 나왔다.

‘몬스터의 숫자로 보면 이거의 천 배는 많아야 하는데, 몬스터의 숫자는 정작 적었어. 아마도 몬스터의 레벨이 압축된 듯하군.’

그렇다면 승우가 소멸검으로 소멸시킨 게이트의 에너지 총량을 구하고, 지금까지 발견해서 축출한 몬스터의 에너지 총량을 빼면 남은 에너지의 총량이 나온다.

단순한 산수의 영역이다.

곧 승우가 계산을 마쳤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신명 두 개급. 여차하면 창조신 급이 오겠네.”

그런 신이 직접 강림하는 일은 지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월드 레벨이라는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칙을 어긴 것은 승우였으니 불평할 수는 없다.

이레귤러에는 이레귤러로 응수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만이 아니라 차원 법 또한 상정하지 못한 법외의 규정에는 그리 대응한다.

“운이 없군.”

창조신급의 강력한 신이 지구에 강림하기까지 이틀도 남지 않았다.

물론. 운이 없는 건 지구나 승우가 아니었다. 지구에 강림할 신 쪽이 운이 없었다.

이틀이 지났다.

과연, 창조신급의 재앙신이 지구에 강림했다.

* * *

창조신급의 강력한 신은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 친족결혼, 남매결혼, 동성결혼 등 다소 드문 결혼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유를 따지고 본다면 신화의 발생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현대의 관점으로 보기엔 굉장히 비상식적이며 비정상적인 결혼의 형태가 흔하기 때문이다.

지팡구의 창조신은 이자나미와 이자나기였는데, 이들은 디에우스와 디오나처럼 남매였고 동시에 부부였다. 이 둘이 결혼해서 낳은 수십의 아이가 지팡구의 만신이 되었으니 둘은 훌륭한 창조신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언젠가 끝나는 법.

불행의 시작은 불도마뱀의 신인 카구즈치의 출산이었다

카구즈치를 낳다 그 화기에 그만 이자나미는 죽고 만다. 신의 죽음은 필멸자의 죽음과는 다르다

죽어도 신력이 있다면 살 수 있다. 이자나기는 이자나미의 죽음에 슬퍼하여 카구즈치를 죽이고, 카구즈치의 신체(神体)에서 나온 부속물을 팔고, 자신의 재산을 모아 신력을 마련하고 이자나미를 살리기 위해 저승의 문을 두드렸다.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저승에서는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애석하게도 이자나미는 저승의 음식을 먹어 버렸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래도 신은 신이고, 신력은 신력이다.

신력으로 일이 해결이 안 된다면 신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더 많은 신력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겠지. 이자나미는 그리 생각했고 저승의 신들에게 급전을 빌리기 위해서 애를 썼다.

이때 그녀를 위해서 나선 신이 야쿠사노이카즈치노카미(八雷神)였다. 야쿠사노이카즈치노카미는 이자나미에게 이리 말했다.

[그대의 백옥 같은 피부와 사과 같은 고기를 사겠소.]

피부와 고기를 팔아 신력을 마련하고, 지상에 올라와 상처를 치유하면 되겠다.

이자나미는 그리 생각하고 제안을 수락했다. 그런 동시에 남편이 받을 충격을 떠올리고는 이자나기에게 ‘절대로 저승에서의 내 모습을 보면 안 됩니다’라고 경고했다. 이자나기는 ‘절대로 보지 않겠소’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신화에서도 이러한 약속이 지켜진 예는 없다.

이자나기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를 보고 말았고, 아내는 야쿠사노이카즈치노카미가 보낸 팔천 마리의 구더기를 전신에 뒤덮고 있었다.

피부와 고기를 뜯어 먹는 구더기와 아내. 이자나기는 그 구역질이 나오는 광경을 견디지 못하고 이자나미로부터 도망쳤다.

[너 같은 흉물은 내 아내가 아니다! 다가오지 마라!]

믿었던 남편이자 오빠의 말이 이것이었으니 이자나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이자나미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피육을 사 간 야쿠사노이카즈치노카미에게 이리 말했다.

[너에게 받기로 한 신력으로 네 구더기 병사를 사겠다. 전액 일시불이다!]

그리하여 구더기 병사들이 이자나기를 쫓았고, 이자나기는 그래도 창조신이었던지라 제법 강해 어떻게든 그 병사를 물리치고 저승을 떠나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구더기 병사들은 받은 신력이 있으니 일을 해야 했다. 딱히 이승이라고 일을 못 할 이유가 없다.

저승을 벗어나 구더기 병사들이 몰려오는 걸 본 이자나기는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저들이 올라오면 큰 전쟁이 날 것이다. 막아야 한다.]

그래서 이자나기는 천 명의 신이 모여야만 들 수 있는 요모츠도노오오카미(泉門塞之大神)라는 바위로 저 구더기 병사와 아내가 다시는 이승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저승의 문을 막아 버렸다.

이런 판이니 부부 관계가 남아날 리가 있나.

[야이, 개새끼야. 그렇다고 문을 막아? 네가 그러고도 신이냐!]

[너 같은 거 모른다!]

[야, 문 열어. 안 열면 저승에 내려온 네 백성을 하루에 천 명씩 소멸시킬 거야.]

[소멸시킬 거면 시켜라. 하루에 천오백 명을 낳으면 그만이다.]

[이런 개 쓰레기 새끼.]

[구더기 냄새 난다. 입 닫아.]

[너 같은 거랑은 죽어도 못 살겠다. 이혼하자.]

[내가 할 말이거든?]

이렇게 둘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마니, 지팡구를 요란하게 만든 이자나미, 이자나기 이혼사건은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그건 나도 들어서 알아.”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나미와 이자나기의 이혼은 보기 드문 창조신의 정식 이혼이다. 드문 판례다 보니 차원법의 표준 판례로서 두고두고 조리돌림 당하는 형편이다.

차원법 책을 섭취, 아니, 암기한 승우였으니 판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승우가 천천히 위아래로 성검을 흔들었다. 황금빛 잔광이 이자나미의 눈동자에 어른거렸다.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황천(黃泉)과 천살(擅殺)의 이자나미. 지팡구의 두 창조신 중 하나이자, 뭇 신들의 어머니였으며 비틀린 균형을 다시 바로잡고자 지구에 강림한 재앙신이었고…….

“그런 사연이 있으니까 정상참작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승우의 성검 내려찍기 한 방에 제압된 불쌍한 신이었다. 살려달라는 듯 양손을 비비는 그녀의 모습에 승우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재앙신답게 행동해 줬으면 하는데…….”

“재앙신답게라뇨?”

“오자마자 저주도 뿌리고, 살벌하고 웅장한 배경음악. 그 뭐냐, 라틴어 음악 같은 거 깔고 싸워야 재앙신다운 거 아니겠어?”

“하하하, 농담도 심하시군요.”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잘도 네 앞에서 재앙신같이 굴겠다.

이자나미는 목젖까지 올라온 욕설을 꿀꺽하고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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