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화. 각자의 활약 (2)
지구를 덮은 마법진은 언제 어디서라도 볼 수 있다. 하늘에 새겨진 황금을 녹여서 그린 듯한 기하학적인 문양.
룬어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마법의 이치를 모르더라도 저 문양이 어떠한 기적의 상징인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사망 처리된 레드 타이거 길드의 장예은과 그녀의 길드원 31명의 바이오 시그널이 회복됐습니다.”
“사망 처리된 에이스 오브 에이스 길드의 안희상과 그의 휘하 길드원 8명의 바이오 시그널이 회복됐습니다.”
“행방불명 처리되었던 시민 449명, 외곽지대에서 발견--”
“시체안치실에 보존 중이던 군인 8,221명이 의식을 찾았습니다.”
A섹터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러시아에서, 프랑스에서. 각지 각국의 주요 기관에는 사망했던 사람이 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연달아 들어오는 희소식에 당황하고 패닉에 빠진 이들이 많았지만, 소동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매우 알기 쉬운 기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기적을 바란다. 지구 종말이라는 최악의 재앙을 앞둔 지금, 기적이 벌어졌다.
“이건 기적입니다!”
“신이 우릴 버리지 않으셨군.”
지구는 넓고 사람은 많으며 종교 또한 다양하다. 하늘을 뒤덮은 기적의 문자가 누구의 문자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연호하며 성호를 긋거나, 대지에 머리를 묻거나, 오열하거나, 혹은 신앙심 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맡은 바의 소임을 다했다.
“좋네.”
시라노 베르그송 사령관은 맡은 바의 소임을 다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는 냉정하게 보고를 확인하고 지시를 내렸다.
“망자 소생은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후속 조치에 들어간다. 워 기어팀이 조금은 여력이 있는 거 같으니, 그들의 임무를 인명 구조 쪽으로 바꿔.”
“저, 인명 구조라 하심은?”
“원인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 돌아오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살아 돌아온 사람이 바로 죽지 않게 해 줘야지. 만약 무너지는 빌딩에 깔려 죽은 사람이 소생하면 어떻게 되겠냐.”
“다시 죽겠군요.”
“무너진 건물 지하에 고립된 사람도, 지하철도에 깔려 죽은 사람도, 소생하자마자 죽어 버려. 이런 경우가 한두 경우가 아닐 거야. 우선은 그들을 살려야지.”
시라노의 말에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시라노는 입술을 깨물면서 뒷말을 숨겼다.
그가 상정한 최악은 그냥 후속 조치의 미비로 인한 사망 정도가 아니다.
‘최악은 이 마법진의 효과가 단발성이 아닌 경우야. 아예 사람에게서 죽음이라는 과정을 빼 버리고 부활만 시킨다면, 최악의 경우 고립된 사람은 계속해서 죽고, 살아나는 걸 반복할 수도 있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또 죽는다? 그건 부활이나 기적이라고도 못 한다. 그건 고문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행위다.
시라노는 하늘 위에 펼쳐진 마법진을 보다가 머리를 긁었다.
‘이 모든 상황은 저 마법진을 설치해서 지구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거둔 신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 아니, 의도하였더라도 거기서부터는 지구인이 처리해야 할 일이야.’
죽어도 왜 살아나게 해 줬냐고 한탄해 봐야 소용없다. 그건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달라는 격이다.
시라노는 염치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을 살려 준 누군가에게 원망의 말을 하는 대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10억 이상의 사람을 살린 거요. 신에게는 신앙이라는 게 필요하다던데,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섬기게 하진 못하더라도 내 신앙은 당신에게 주리다.’
A섹터에서 사망한 사람의 총원 70,531명이 0명으로 바뀌는 걸 보며 시라노는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기도할 시간도 얼마 없다. 몇 초의 기도를 마친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게 만들지 않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적과 싸우기. 구조와 전투를 양분해서 동시에 치룬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우리에겐 신의 가호가 함께한다. 현 상황을 전 장병에게 고지하고, 사기를 올려.”
명령을 내린 시라노가 담배를 물며 실없이 웃었다.
“그야말로 God bless you로군.”
***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쉽게 죽지도 못한다. 치명상을 입은 자가 3초 만에 언제 다쳤냐는 듯 벌떡 일어난다.
자칫 잘못 설명하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주인들 어떠리. 당장 한 명의 손이 아쉬울 때다.
군인 하나가 되살아 돌아오면 열 명의 민간인을 지킬 수 있다.
A섹터의 부 지부장이자, 현역 육군 각성자 부대의 총대장이기도 한 문선아는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듣고 입가를 올렸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 우호적인 신도 있긴 하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뭐, 지구가 저주받은 행성인 줄 알았지 뭡니까.”
육군 각성자 부대의 부관이 그리 말하며 히죽 웃었다. 다른 부관이 이어 말했다.
“쉬지 않고 게이트가 나오고 멋대로 브레이크하고, 악마가 나오는데 저주받은 행성이 맞긴 하지요. 전 저희가 신의 저주받은 백성. 소돔과 고모라의 죄라도 저지른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저주받은 만큼 축복도 받았으니 밸런스가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밸런스, 좋은 말이죠. 평생 살면서 밸런스라는 게 맞는 꼴을 본 적이 없긴 합니다만.”
문선아가 손을 들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그럼 지금은 죽을 수 없는 게 사실인 거지?”
“네. 머리가 파괴돼서 죽은 부대원 하나가 2.75초 만에 재생했습니다. 사망 전의 기억은 온전히 가지고 있고, 부서진 머리 또한 완전히 재생됐습니다만. 재생된 머리에 예전에 수술한 임플란트까지 고스란히 있더군요.”
“새롭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완전히 죽기 전의 상태로 부활했다고 봐야겠군. 좋았어.”
망자 소생에도 단계가 있고 등급이 있다. 죽은 자가 어떻게든 싸울 수 있게끔 육신만이 부활하는 네크로라이징, 좀비화나 스켈레톤화 같은 것이 최하급.
그다음이 어떻게든 움직이는 육신에 혼이 아슬아슬하게 남은 듀라한과 리치다. 그리고 다음이 육신을 새롭게 구성하여 거기에 혼을 안착시킨 단계였고, 가장 높은 단계가 생전의 육신을 그대로 재생한 완전한 부활이다.
지금의 부활은 완전한 부활이었으니 상황이 좋아도 너무 좋다.
“이봐, 죽어도 3초 만에 살아날 수 있다면 너희들만으로도 여기를 지킬 수 있겠지?”
“물론이죠, 대장님. 저희 못 믿으십니까?”
특수부대원들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했다. 문선아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특수부대 몇을 데리고 특수 은폐 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임무는 본래 성격에 맞지 않는다. 특수 은폐 지역 따위를 지킬 시간에 시민을 지킨다.
돈도 군사 기밀도 생명 이상의 무게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은폐 지역은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 은폐 지역 수비를 명령한 것이 ISAC의 총장, 주혁진의 명령이라서가 아니다. 문선아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희들이 지키는 건 20억의 생명이야. 쉽게 생각하지 마라.”
“잘 알고 있습니다.”
A섹터 외곽의 지하 벙커. 이정훈조차도 모르는 곳에 지어진 이 벙커의 지하에는 데이터 서버가 있다. 데이터 서버가 기록한 것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의 영혼 정보다.
ISAC의 전신인 사이버다인이란 기업은 가상현실 게임과 의학을 접목한 특이한 회사였는데, 그들의 지상과제가 바로 사람의 영혼을 데이터화하는 것이었다.
영혼을 데이터화하여 죽음을 이긴다. 데이터화한 영혼을 다시 안드로이드에 주입하여 영생을 얻는다. 사이버다인은 이미 10년 전에 그 기술을 완성했다. 그러니 이곳의 있는 20억 명의 영혼 데이터는 20억 명의 생명과 같다. 또한 이게 바로 주혁진 총장의 원죄였다.
‘주혁진 총장의 원죄. 그건 죽음을 극복해 버렸다는 것.’
예전의 지구에는 게이트라는 게 나타나지 않았다. 게이트가 나타나려면 문명사회가 발달해서 벽을 넘어야 한다.
지구라는 문명이 벽을 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데이터화된 영혼이었다.
데이터화된 영혼과 기계로 만든 인조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가상의 다중차원을 만들어 실험할 수 있는 기술까지.
즉, 쉽게 말해서 초 과학기술.
이 과학기술이 있기에 지구는 문명의 벽을 넘어 버렸고 그 결과 게이트가 나와 대재앙이 일어났다.
주혁진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에겐 벽을 넘게 한 책임이 있다.
문선아는 그 진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전폭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판국이니 너희들만으로도 이 데이터 센터를 지킬 수 있겠지?”
“얼마나 저희가 못 미더우면 몇 번이나 물으십니까. 할 수 있다니까요. 좀 믿어요.”
“그럼 믿고 난 간다.”
“다녀오십시오.”
특수부대원들이 좌우로 갈라져 경례를 올렸다. 문선아는 최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곧 인너컴으로 부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적지는 어디로 하실 겁니까?”
“A섹터 전역은 전력 과잉이야.”
“과잉이라고요? 과잉까진 아닐 텐데요. 거기 둘이나 행방불명이잖습니까.”
“백강혁이나 민의 행방불명을 빼고도 이미 전력은 충분해.”
악마왕 페넥스와 그를 지지하는 다른 악마들. 아스모데우스와 싸우느라 봉쇄되었다고 해도 윤은형은 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검사다.
다른 곳보다도 훨씬 많은 하청 길드와 첨단의 장비.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의 존재는 A섹터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
“우리에게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선 충분히 막고도 남는 전력이지.”
“그렇다면 대장님의 목적지는?”
“난 남하한다.”
전력이 부족한 건 오히려 지방 소도시 쪽이었다.
방어 인프라가 확실하게 빈약하다. 동해안처럼 재해복구가 덜 끝난 곳은 더 부족하다.
퍼스트 오더는 전 세계에 고작 백 명이었고, 한국에 있는 퍼스트 오더는 고작 다섯 명이 전부였으며 그중 셋은 A섹터에만 있고 나머지 둘은 인천과 부산에 있다.
나머지는 그냥 자구책으로 버텨야 한다. 죽지 않는다고 쳐도 약하면 그게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부관이 난감해했다.
이유는 지극히 속물적이다.
지방이 왜 지방인가.
지방에서 활약해 봐야 썩 지지도나 지명도, 유명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왕이면 큰물에서 노는 편이 좋다.
A섹터는 지금 역대급의 게이트 사고가 연달아 터진다.
문선아는 한국의 대표자 격인 영웅이고 그만큼 강하기에 A섹터에서도 충분히 중심에 설 수 있다.
악마왕 페넥스 이상의 활약도 할 수 있을 터. 그런 그녀에게 작은 물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관의 말에도 문선아는 번복하지 않았다.
“지방은 그래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만? 응? 내 귀가 잘못됐나?”
“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다음에도 그런 말 하다가 걸리면 조인트 까이는 걸로 안 끝나.”
“예, 옙!”
“지원 신청 올라온 것 중에 제일 급한 거부터 불러.”
지상에 올라온 문선아가 하늘을 보았다. 황금의 마법진이 별자리처럼 늘어져 있다.
그녀는 가볍게 다리에 마력을 모았다. 한국 최고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문선아지만 비행 능력은 없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할 수 있다.
그녀의 능력은 마력 방출. 다리로 마력을 방출하면 날 수 있다. 새처럼 날 수도, 비행기처럼 날 수는 없다. 하지만 로켓과 미사일처럼은 날 수 있다.
“승우 씨에게 받은 이 선물은 참 좋아.”
문선아가 어깨를 풀며 승우가 준 팔찌를 매만졌다. 형상을 바꿀 수 있는 이 팔찌는 팔찌에서 활로, 활에서 망치로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마력을 더하면 더할수록 커지는 기능 또한 있었다.
문선아가 다리와 팔찌에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었다.
“내 기분이 무기에 그대로 전해지거든.”
웅웅하고 다리가 폭발할 듯 떨린다. 그리고 망치도 계속해서 크기를 키웠다.
커지고, 커지고, 커진다. 대형 트럭만 하게 커진 망치를 들고 문선아가 호흡을 골랐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부관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청주에서 지원 요청, S+ 게이트 브레이크라고 합니다!”
“알았어. 내가 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선아가 발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