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총독의 눈빛은 교활한 뱀 같았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독니가 반짝거리는 것 같았고, 귓가엔 쉿쉿거리는 혓바닥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아무것도요.”
“네. 간밤에 범죄자와 마주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총독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눈빛이란. 거짓된 기색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필코 잡아내겠다는 양 매서웠다. 로는 일부러 눈을 천진한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총독이 입꼬리를 들썩거리더니, 곧 테이블을 내려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전조 없는 웃음이 번져 나가며 공기마저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거, 정말 잘된 일이군요.”
까닭 모를 웃음을 접하면, 사람은 쉽게 초조해지기 마련이었다. 로는 동요하지 않기 위해 눈을 내리깔고 접시 위의 계란을 조각냈다. 이게 총독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서. 폭소는 기습적인 시작만큼이나 급작스럽게 끝났다.
“그래도 앞으로는 어디 갈 때 꼭 제 사람을 동행해야 할 겁니다.”
“굳이요.”
“말했다시피, 범죄자가 돌아다니니까요.”
“…….”
“대답은?”
로는 험악해지는 눈초리를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러도록 하죠.”
“출항은 예정대로 이틀 뒤에 하십니까?”
“시간을 더 주실 게 아니라면요.”
총독은 특별히 맛 좋은 먹이를 앞둔 뱀 같은 얼굴을 했다. 꼭꼭 씹어 삼킬지, 한입에 물어뜯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는 눈치였다. 그 탐욕스러운 시선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역해졌다.
“뭐, 좋습니다. 출항이야 예정대로 하시죠.”
그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
“대신 선박에 짐을 실을 때나, 선원들이 탑승할 때도 제가 직접 감독할 겁니다. 혹시라도 그자가 몰래 숨어 밀항이라도 하면 곤란하니.”
“…….”
“소공작 부인의 안전을 위해서이니, 윤허하시겠죠?”
아무리 배짱 좋은 로라고 해도 저 말을 듣고는 그저 태연할 수만은 없었다. 밀항과 짐. 대놓고 그들의 계획을 알고 있다고 언질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로는 입술을 짓씹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기랄, 어디서 샜을까? 공식적으로 이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은 셋뿐이었다. 그녀, 카드리어, 그리고 가니메데스 대주교. 만약 그 밤, 문틈에 대고 귀를 기울인 사람이 없다면…….
로는 문득 총독이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대답이 길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안색이나 식기를 다루는 행동 하나까지 관찰하고 있다는 것도. 로는 침착하게 접시를 마저 비우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러시든가요.”
* * *
로는 타고 왔던 배의 잔해를 넘기는 조건으로 낡은 카락선을 저렴한 값에 구해 두었었다. 섬에 도착한 직후 처리해 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카드리어를 찾는 동안 멜빈과 선원들은 카락선을 쓸 만하게 수리하는 것에 사력을 다했다. 쓸고, 닦고, 윤을 내고, 나무판자를 덧대고, 돛을 깁는 일련의 소동 끝에 지금은 그야말로 번듯한 범선다웠다.
“선장!”
오랜만에 선착장까지 나온 로를 보고 멜빈이 갑판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마주 손을 흔들자 멜빈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갑판에서 선착장으로 뛰어내렸다. 쪼르륵 달려오는 꼴이 꼭 잽싼 다람쥐 같았다. 그녀의 앞에 선 멜빈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내밀며 외쳤다.
“이제 제법 그럴듯하죠?”
“안쪽은 어때?”
“안쪽도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뒀죠. 낡긴 해도 구조가 잘 빠져서 선원들을 수용하기에 괜찮더라고요. 창고도 넓고요.”
“잘됐네. 출항 준비는?”
기존에 가져왔던 물품들은 대부분 바닷물에 젖어 버렸기 때문에 새롭게 구해야 할 식량이며 화약들이 산더미였다.
“어디 보자. 일단 육포 5바트, 말린 과일 3바트와 포도주 2궤짝은 오늘 저녁 들어올 거예요.”
멜빈이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덧붙였다.
“술이랑 화약도 오늘 저녁에. 의약품은 보충했고, 그 나머지는 내일 새벽부터 받기로 했어요. 점심 즈음엔 얼추 다 준비되겠네요. 그때 바로 출항해요?”
“어. 곧바로.”
로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휩싸인 채로 선언했다. 총독이 그들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내색을 밝힌 뒤로, 그녀는 요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이뤘다. 간신히 잠이 든다고 해도 끔찍한 악몽을 꾸며 일어났다. 악몽의 내용은 매번 조금씩 달랐는데, 카드리어가 죽는다는 것만큼은 똑같았다.
“……장, 선장.”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별거 아냐. 왜?”
멜빈이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주변에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그때 말씀하셨던 그거 말이에요. 선장이 알아보라고 했던 거.”
로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살폈다. 항구를 빈틈없이 살피는 군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총독이 보낸 감독관도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하품이나 쩍쩍해 대고 있었다. 그들에겐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양. 그녀는 멜빈의 팔을 붙잡고, 나무 상자들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뒤로 몸을 슬쩍 숨겼다.
“말해.”
“진짜 닉이었어요. 어제 새벽에 몰래 출항하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배는? 놈이었으면 본선이 들어온다고 소동이 있었을 텐데, 요 근래에 큰 배가 들어온 걸 본 적이 없잖아.”
“본선은 근처에 숨겨 두고 몸만 온 모양이더라고요. 타고 나간 게 쪽배였어요.”
로는 한 번에 몰아친 정보를 수용하기 위해 입술을 짓씹었다.
“……놈이, 진짜였다고?”
“총독이 뒤를 봐주는 것 같더라고요. 아니지, 그놈이 총독의 뒤를 봐주는 건가? 하여튼 총독 놈이 어지간히도 굽신대더라고요.”
몬트로사도 두려워하지 않는 총독이 굽신거린다고……. 그러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닉은 표면적으로는 틸센에 붙어 사략선의 대장 노릇을 하면서, 황태자의 밀명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뒤가 구린 일일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염병할, 하지만 닉을 무슨 수로 붙잡는단 말인가. 그는 그녀만큼이나 바다의 해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키르고스의 후계자로서 해적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에스페란다의 해군이라고 해도 해적들을 일망타진하지 못하는 건 그들의 은신처가 빌브론 해역의 사천 개 군도, 그 곳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닉이 마음만 먹는다면 제국 해군의 추격을 백 년은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우호적인 해적이 있다는 가정 아래. 물론 키르고스의 인장이 없다 보니, 그가 모든 해적들의 비호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거기까지 떠올리자, 좋은 생각 하나가 그녀의 머릿속을 번뜩 스쳤다.
“멜빈.”
“난 선장이 그렇게 부르면 불안하더라.”
“너 아직 어망에 접촉 가능하지?”
“정보 수집하고 다니는 놈이라면, 하나 알기야 알죠.”
“거기 정보 하나 팔아 봐.”
“어떤 걸요…….”
멜빈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망’은 바다 위의 온갖 소문을 모아 돈을 받고 파는 집단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내륙으로 따지자면 정보상 정도일까.
그러나 ‘어망’은 내륙의 정보상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흉악하고, 어두우며, 잔인한 집단들이었다. 어망에 판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때는 가격에 따라 신체의 일부로 갚아야 했다. 어느 때는 신체의 전부일 때도 있었고.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팔 정보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였다. 로는 경계하는 멜빈의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
“키르고스의 인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고,”
“선장, 설마…….”
어둠 속에서 로의 청록색 눈이 기이한 빛으로 번뜩였다.
“그걸 아주 비싼 값에 팔고 싶어 한다고.”
* * *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상자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전날 미처 못다 채운 건량과 밧줄, 모포, 예비 돛, 부서진 배를 수리할 새 판자들과 못, 망치, 대포알과 럼주 통…….
사병들을 대동한 총독은 시원한 그늘 의자에 지루하다는 듯 기대앉아 있었다. 눈은 반만 감고 있었는데, 잠에 취한 것처럼 나른해 보였다. 언뜻 보기엔 카드리어를 검거하는 일에 대한 열의나 책임감 따윈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로는 꾸며 낸 겉모습에는 조금도 속지 않았다.
이윽고 저 멀리서 신전의 깃발을 단 짐마차가 내려오고 있었다. 가니메데스 대주교가 직접 이끄는 무리였다. 대주교가 하얀 당나귀에서 내리자, 총독이 드디어 그 무거운 엉덩이를 간이 의자에서 떼어 냈다. 그가 모자를 벗곤 과장되리만큼 큰 동작으로 인사를 올렸다.
“아, 대주교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편히 지냈습니다.”
“이게 말씀하셨던 그 사탕수수들인가요?”
“그렇습니다.”
대주교의 눈짓에 사제들이 마차에서 상자를 내리기 시작했다. 로는 초조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꾸 그쪽으로 가는 시선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소공작 부인.”
대주교가 그녀의 팔을 무례하지 않게 붙잡고는 총독의 시선에서 교묘히 가렸다.
“선적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데우스의 신도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 순간, 건장한 사제 셋이 짐마차에서 커다란 상자 세 개를 덜컹거리며 수레에 얹었다. 소리가 제법 요란해서 모여 있던 시선이 일순 그쪽으로 쏠렸다. 그 순간, 로는 가니메데스 대주교와 재빨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상자의 크기나 모양, 묵직한 무게, 숨구멍을 위해 윗면을 가죽으로만 덮어 놓은 것 하며…… 그들이 계획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상자를 잔뜩 쌓은 수레가 덜컹대며 범선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내내 가만히 있던 총독이 검집을 쭉 빼내 짐꾼의 앞을 가로막았다. 실쭉 웃는 얼굴이 교활했다.
“잠시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