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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이세계의 경계.
시후와 유미의 결혼식은 그 다음날 마을의 신사에서 비교적 소담하게 치루어졌다.
두 사람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아닌, 마치 중국의 전통 혼례복 같은 것을 입은 상태로 혼례를 올렸는데 의식에 따라서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새삼 부끄러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껄껄 웃었다.
…대강 그런 느낌으로 무사히 정식으로 유미와 부부의 사이가 된 시후였지만, 그 이후 들이닥친 마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후는 역시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지적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설명을 하자면.
일단 시후가 무심결에 찾아든 이곳은 마을의 비석에 새겨진 그대로 괴이의 마을. 즉, 현실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의 존재들이 모인 마을이었다.
평상시 이곳은 모종의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에, 괴이 이거나, 혹은 괴이와 관련된 직업을 지니지 않은 보통의 사람은 발견 할 수도, 발을 들일 수도 없는 곳이었지만….
그야말로 드물게 악귀라고 불리는 포악한 괴이가 모습을 드러냈었다고 한다.
덕분에 결계가 흔들렸고, 하필 시후가 그 틈을 타고 여기까지 발길을 내딛은 것이다. 그리고 듣게 된 놀라운 사실은….
‘내가 한번 죽었었다니….’
우연찮게 이끌려서 마을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날. 시후는 악귀와 전투 중에 발생한 여파에 휘말려서 목숨을 잃었었다고 한다. 하물며 당시에 악귀와 싸우던 사람이 다름아닌 유미였다고….
악귀가 만들어낸 공격을 유미는 당연하다는 듯이 튕겨냈고, 악귀의 공격은 경로가 뒤틀려서 다른 곳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하필 시후는 때마침 그 뒤틀린 경로에 정확하게 서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고서야 시후는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마을의 내부로 발을 내딛는 순간 찌잉- 하고 울리던 공명음과 온 몸으로 파고들던 이질적인 느낌. 그리고 찰나의 순간 가슴을 박살내며 관통하며 파고들었던 검은색 쐐기의 차가운 감촉까지.
모두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들은 시후는 역시 패닉에 빠졌다. 이미 마을의 정체에 부인으로 맞이한 유미의 정체까지 혼란스럽지 않은 게 없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이미 한번 죽었었다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자주 겪다보면 익숙해지는 법인가. 시후는 생각보다 금방, 패닉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어찌됬건 자신은 지금 살아있지 않은가. 물론 거기에 대한 이유를 들으면 역시 또 패닉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까놓고 말해서 현재 시후는 평범한 의미의 인간이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좀비. 좋게 말하자면 불사의 인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좀비처럼 시체가 썩어들어 간다던가 몸이 차갑고 신체 활동이 없다던가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신체가 새롭게 구성된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뒤섞인, 보통의 인간이 아닌 몸으로.
싸우던 도중 평범한 인간인 시후가 휘말려서 쐐기에 꿰뚫리는 모습을 보고 유미는 놀라서 다가왔다.
덕분에 악귀는 그 틈을 타서 결계 밖으로 도망쳐버렸지만, 난생 처음으로 괴이가 아닌 인간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유미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시후를 살라기 위해서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던 모양이었다.
그 결과 발동 된 것이 ‘사자(死者)의 술법’ 쉽게 말하면 죽은 자를 일으키는 일종의 네크로멘시 에 가까운 기술이었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분이 박살나거나, 절단 되었을 때에 마력을 집약시켜 형태를 만들어 대용으로써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력의 연결체’ 마법마저 같이 사용했던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물으면 유미 본인도 어떤 효과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어쨌든 그 두 가지 마법의 상충 효과로 인해서 시후는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언데드 이면서도 보통 인간의 생기를 머금은 이질적인 존재로써 말이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 된 것은 아니었다. 마법의 반작용인지 단순한 버프 효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후는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된 상태였다.
근육의 힘이라던가, 신체 일부분의 기능 등이 보통의 인간으로써는 낼 수 없는 수준까지 향상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미와 묻지마 섹스에 돌입 했을 때에 스스로가 보고 놀랐던 ‘거물’ 은 실은 그 버프 효과 중 하나이기도 했다.
되살아나는 마법의 반작용으로 양물이 커지다니…되는 데로 꾸며낸 쓰기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후는 새로운 삶을 시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괴이 들이 모인 이곳, 『괴이 마을』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서 말이다.
사실 유미가 전날 밤 시후와 관계를 가졌던 이유도 아직 새롭게 깨어나서 바뀐 몸에 마력이 안정화 되지 않아서,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키스를 하면서 내부를 관조하다가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즉, 시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의식을 차리자마자 때마침 벌어지고 있던 마을의 연회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술을 마시고 뻗었다. 그리고나서 일어나보니 유미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걸 운이 좋은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 운이 나쁜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시후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죽을 뻔한 목숨이 살아났고, 유미와 부부관계가 됨으로 인해서 두 번째의 삶마저 잃어버리게 될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시후가 술이 떡이 돼서 쓰러진 뒤, 마을의 유지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다고 한다.
과연 시후를 결계 밖으로 보내도 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계기야 어쨌든, 시후는 바깥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초인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런 시후가 바깥에 아무런 자각 없이 나가면 문제가 일어날 위험이 있었고, 그것은 곧 바깥에서 활동하는 퇴마사나, 악마들의 시선을 끌어서 마을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마을 유지들은 ‘시후의 기억만 제한시킨 채 보내주어야 한다.’ 와 ‘마을에 가두거나, 제거해야만 한다.’ 로 갈라져서 열띤 토론을 나누었던 모양이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에 시후가 유미와 결혼을 함으로 인해서 거기에 대한 걱정이 살아졌던 것이다.
마녀인 유미와 부부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괴이의 주민으로써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는 뜻.
해서 마을 주민들은 기뻐하며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었던 것이다.
축복을 해주는 주민들 모두가 악마라던가-(연회 때 항아리 째로 술을 마시던 사람은 실은 악마였단다.)-, 구미호, 갓파, 네코마타 등 인간이 아닌 사람들뿐이었지만.
여하튼, 시후는 축복 속에 한 마을의 인정을 받으면서 유미의 공식인증 남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유미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기억을 잃고 밖으로 나가거나, 혹은 강압적으로 이곳에 갇힌다거나 다시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결국 시후는 꽤 운이 좋았던 셈이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잠정적 사건들을 생각하면 그건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시 설명을 이어가자면, 괴이들이 모인 마을. 이곳 괴이 마을은 이 세계의 차원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문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요괴의 세계, 마계, 천계, 귀신의 세계, 타차원의 세계, 공허의 세계 등등 수많은 차원계들이 하나로 겹쳐져 있는 입구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런 위험한 게 하필 한국. 그것도 강원도 산골 깊숙한 곳에 생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이 생긴 것은 약 2000년 전.
그리고 당시 이 문을 통해서 처음 넘어온 것은 요괴의 세계에서 건너온 구미호였다고 한다.
이미 5000년이라는 삶을 살아서 거의 신급에 필적한 이능을 지녔던 그 구미호는 우연찮게 요괴의 세계에서 발견한 통로를 통해 몸을 던졌는데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로의 도착에 그는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을 금새 파악해내고서 고민했다. 과연 이 문을 그대로 둘 것인가? 이미 신급의 이능을 지닌 그는 문의 상태에 대해서 확실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단순히 요괴의 세계와만 통로가 뚫려 있었지만, 혼란스럽게 휘돌고 있는 문의 상태로 보아하건데 조만간 다른 세계로의 문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자명한 사실.
그대로 문을 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늘어난 문의 너머에서 나오는 존재들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이나, 요괴의 세계에 조차 들지 못하는 약한 요괴들만이 살아가는 이곳 세상은 순식간에 멸망해버릴 것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인과에서도 벗어나 모든 것을 초탈한 그로써는 이런 세상이 망하던 말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순간 변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처음 발견 했으니, 이곳을 그의 영토로 삼고서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곳 괴이 마을의 시초였다.
처음에는 요괴 세계에서 데려온 부하들과, 근처를 떠돌던 요괴들을 모아서 시작되었던 자그마한 마을은, 예정대로 늘어나기 시작한 문을 통과해오는 이세계의 존재와 만나서 그들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싸워서 없애버리거나 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갔고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신급 구미호이자, 마을을 세운 시조였던 구미호. 아리는 지금 동면중에 있다고 했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동면은 아니고, 단순히 삶을 지내는 게 지루해서 잠들었을 뿐이라나?
어쨌든 그런 그. 아니, 그녀 아리의 존재감 때문에라도 마을에는 정말로 단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신이나 마신급의, 그런 거대한 존재는 접근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리 역시도 그에 가까운 이능을 지닌 존재. 보통 그 정도의 힘을 지니면 필멸자를 떠나서 불멸자에 가까워지지만, 비슷한 힘을 지닌 이들끼리 겨루게 되면 결국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굳이 먹을 것도 없는데 괜히 건드려서 위험을 초례할 필요는 없기에, 문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들만이 통과해 나오고 있었다.
여기까지에서 그렇다면 일반적인 존재들은 왜 오는 것인가? 그렇게나 거대한 힘을 지닌 아리에게 겁을 먹어서 오히려 오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리가 지닌 거대한 힘을 ‘적’ 으로써 인식 할 수 있는 강한 존재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괴이들은 아리의 힘을 하나의 원천과도 같이 여긴다는 점이었다.
강대한 마력의 본산. 그에 이끌려서 이계의 주민들은 홀린 것처럼 때때로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서 대화가 통하고 우호적인 존재는 마을의 주민으로써 받아들여지거나 교류만 나눈 뒤에 다시 문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지만, 이성이 없는 파괴본능만을 지닌 ‘악귀’ 라고 불리 우는 존재들.
즉, ‘공허의 괴물’ 이나 ‘원령’ , ‘악성향의 요괴’ 등등 이 세상에 해를 끼칠게 분명한 이롭지 못한 존재들은 제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마을의 법칙이자 순환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시후는 5년 만에 생겨낸 새로운 주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계속 살아가는 건 역시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시후에게는 단 한명 뿐이지만, 여동생이라는 가족도 있었고, 게다가 아직 학업에 신경을 써야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 여동생까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에서 마을에 묻혀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해서, 어떻게든 사정을 이야기하고 밖으로 나가야지…라면서 고민하고 있는 찰나,
“여어~시후님. 촌장님이 부르신다네.”
연회 때 항아리 째로 술을 들이키던 악마인 마을 주민. 스스로를 중급 악마라고 밝힌 지하크가 말을 걸어왔다.
촌장이 부른다는 이야기.
안 그래도 마침 촌장에게 할 말이 있었던 시후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아, 넵. 지금 바로 갈께요.”
시후는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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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연참!
구미호 이름이 신경쓰인다면 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