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12화 트러블 메이커(1)
퍽퍽퍽.
죽지는 않고 날아가는 작은 장난감들.
그들을 죽이지 않는 방법은 간단했다.
“잘한다! 돌아! 더 돌아!!”
붉은귀 오크가 1성 밤비를 잡아 들고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아 버리면 됐으니까.
1성의 공격력에 맞고 죽을 녀석들도 아니고, 제대로 된 공격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픽픽 날아가기만 할 뿐.
다만 문제라면 어지러운지 자꾸 경로를 이탈한다는 게 문제.
“뇌를 속여! 너는 어지럽지 않아! 넌 더 돌 수 있어!!”
『쿠어엉!!』
무슨 소린지는 몰랐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밤비와 붉은귀 오크는 보스가 뜨면 써먹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얼마간 휠 윈드를 돌리고 나서야 등장하는 보스 몹.
“큰놈부터 족쳐!”
『알았어!』
『알겠습니다.』
빠르게 달려가 보스 몹을 난자하기 시작하는 카론과 카드들.
아무리 분노하지 않았다지만 보스는 보스라 그런지 제법 강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런 버프를 받지 않은 상태.
다소 시간이 들 뿐이지, 클리어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10층(보스)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000P, 500C, 랜덤 카드 조각×10, 랜덤 카드×1을 획득하였습니다.
-11층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
-랜덤 카드를 사용해 ‘2성 쓸 만한 대장장이’를 획득했습니다.
-제작 카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제작으로 아이템 및 고유 아이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뭔 개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일레븐 나이츠에는 그딴 카드는 없다.
아니 애초에 제작이란 콘텐츠 자체가 없다.
상자 깡이 있는데 왜 필요하단 말인가?
카드의 무기나 고유 아이템을 획득하는 건 오로지 현질로 상자 깡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쓸 만한 대장장이]
등급 : ☆☆
유형 : 제작
일일 제작 가능 : 2회
제법 쓸 만한 대장장이다.
이능 : 없음
공격력과 방어력이 없다.
그렇다면 덱에 넣어도 전투할 수 없다는 소리.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카드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쯧……. 모르는 것투성이네. 오늘은 여기까지!”
모르는 것투성이였지만 일어나서 물어보면 될 일이다.
이미 이곳에 있었는지도 하루가 훨씬 넘어갔다.
즉, 지칠 대로 지쳤다는 소리.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카론은 곧바로 거대 동굴에서 나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제작은 어떻게 해?”
『재료가 필요합니다. 재료가 없이는 제작할 수 없습니다.』
인벤토리에는 수많은 아이템 박스들이 존재한다.
모았다가 한번에 까려고 여태 동안 쓰지 않고 모은 것.
이것들을 다 쓴다면 재료 정도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알았어, 소환 해제.”
카론은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고통스러운 수련과 운동을 참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맛있는 음식 때문!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단 먹는 게 우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양고기와 사이드디시들.
고소한 향기와 마이야르 반응이 남긴 특유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분명 입에 넣으면 혓바닥을 강타하고 춤을 추겠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한입 베어 무는 카론.
찌릿!
혓바닥에서 강렬한 전기가 왔다.
이 얼마나 강렬하고 풍부한 맛이란 말인가!?
고기의 잡내를 없애 주는 이 향신료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아…… 천국이로다!
역시나 ‘절제’라는 단어는 잊고 폭풍 흡입하는 카론.
어차피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않는다.
그것도 배부를 때까지 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한번 먹을 때 최대한 맛있게 먹어야 했다.
“아…… 오늘도 훌륭했다.”
그렇게 황홀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들려오는 니아츠의 뾰로통한 음성.
“먹는 것도 추접스럽게 먹기는.”
“너,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지?”
“난 사과 따위 안 해.”
“그래? 그럼 퉁 치자.”
그에 황당한 표정으로 카론을 바라보는 니아츠.
카론은 그런 니아츠를 보여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다른 애들도 놀리려고 그러지, 아무도 안 믿잖아? 너도 가문에 알릴 생각 없고.”
카론의 말에 밝은 미소를 지어 보는 니아츠.
여태 동안 보아 왔던 그 어떤 미소보다 선량한 미소였다.
느낌대로라면 그녀 역시도 응할 것처럼 보였다.
“싫은데?”
“뭐?”
“말했잖아. 내가 더 손해 보는 것 같다고. 그리고 오라버니가 그 소문을 들어 버려서 말이야.”
“너희 오빠가 설마 이 아카데미에 있는 건…….”
대답 대신에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니아츠.
그리고 그때 아니나 다를까 시스템 소리가 들려왔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VVip 특전이 발휘됩니다. 보상을 2배로 획득합니다.
-칭호 ‘핵과금러’로 인해 퀘스트 클리어 시 랜덤한 포인트, 캐시, 마일리지를 획득합니다.
[위기를 탈출하자.]
베나 니아츠의 오빠가 소문을 들었다. 서로의 관계를 해명하고 위기를 벗어나자.
(보상 : 450P, 악화성의 카드 파편×2, 일반 뽑기 상자(카드)×1)
말없이 두 눈을 감았다.
아직 학년 초인데 벌써 선배에게 찍히게 생겼다니.
그것도 악화성의 친족이라면 성격도 비슷할 터.
눈앞이 깜깜하고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해서 묻는데…… 진짜 나랑 사귈 건 아니지?”
“내가 미쳤어!? 그러니까 먼저 사과하고 내게 고개를 숙이라고!”
미안…….
그러고 싶어도 이제 늦어 버렸어.
왜냐하면…… 퀘스트를 깨야 하거든.
그것도 특전과 핵과금러가 걸린 퀘스트라서 말이야.
그래서 죽어도 사과는 못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뒤로하고 식기와 함께 터덜터덜 이동하는 카론.
“야!!”
뒤에서 그녀의 부름이 들려왔으나 쌩 깠다.
타협점은 없었으며, 이미 퀘스트가 떠 버렸으니까.
그렇게 식기를 반납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시작되는 근육 교관 아스타의 수업.
“지방이 아닌 근육으로! 알겠나!?”
“아니, 그러니까 왜 제 귀에 대고 말하는지…….”
“네놈이 땡땡이쳤으니까!!”
“혹시 살 뺄 때까지 계속 그러실 겁니까?”
“당연하지! 내 수업에 그런 나태한 몸은 볼 수 없다! 지방에 힘을 주는 게 아닌 근육에 힘을 줘야 한다! 알겠나!?”
“아니, 그러니까 지방에는 힘을 못 준다고!”
이어진 말이 있었으나 무시했다.
또 헛소리할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아스타 교관.
“오늘은 본격적인 훈련에 임하기에 앞서 한 가지 팁을 알려 주마. 바로 안구 단련법이다.”
“예? 안구 단련이라뇨? 그건 또 무슨 훈련…….”
“적의 기세를 꺾고 위압감을 줄 수 있으며 시력까지 향상될 수 있다.”
눈알에 힘을 빡 주며 아이들을 노려보는 아스타 교관.
그래, 인정했다.
저렇게 무서운 얼굴로 힘을 주며 노려보면 기가 죽을 만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수련의 효과인지, 아니면 흉포하게 생긴 얼굴 때문인지는 분간이 안 갔지만.
“블래디아 카론, 넌 우선을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를 1만 회씩 5회 반복해라.”
“설마…… 눈 주변 지방을 빼기 위해서?”
“혹시 아나? 지방이 빠질지. 거기까진 안 해 봐서 모르겠군.”
미친놈이다.
정말 미친놈이다.
그럼 밥 먹을 때도 턱 근육과 볼 근육은 쓰는데 왜 얼굴 지방이 빠지지 않는가?
아니,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그러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서 그러는 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눈 아픈데요.”
“그냥 근력 운동이나 하죠.”
결국, 다수 아이의 불만으로 사라진 안구 단련법.
해 보지도 않고 단번에 거절하는 아이들이었다.
굳이 해 보지 않아도 쓸모없는 게 확실했으니까.
“오늘은 하체를 조진다!”
“어제 하체 했는데요?”
“그럼 등 근육을 조진다!”
“…….”
모든 아이가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이자가 교관으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제대로 가르치고 있기는 한 것인지.
“흔히들 팔근육과 복근, 가슴 근육을 신경 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등 근육이다! 단순한 힘겨루기면 팔 힘에 따라 달라질지 모르나, 발검이나 타격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
“팔은 그저 전달체일 뿐, 힘은 등 근육에서부터 시작되어 팔로 이어진다.”
설명과 함께 훈련 내용과 각각의 아이들을 지도해 주는 아스타.
조금 이상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틀린 내용을 교육하는 것 같진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불만 없이 수업에 따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근력 강화 수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후흡, 후흡! 그유우우욱!!”
“하…… 뭐 하십니까?”
“스쿼트! 하체를 조지고 있지!”
“아니, 그러니까 쉬는 시간에, 그것도 왜 하필 제 옆에서…….”
“네놈의 지방을 자극하기 위해서지! 보라! 출렁대는 게 나의 근육에 벌벌 떨고 있군!!”
결국, 한숨과 함께 그냥 무시하는 카론.
아무래도 이틀이나 땡땡이쳐서 단단히 삐진 모양.
아니, 화난 거라 해야 하나?
아무튼, 원래 이상한 인간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한편 그런 카론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류토, 손 좀 봐야 하는 것 아냐?”
“그래, 류토! 저 새끼 나대는 것, 진짜 극혐이야. 서자면 서자답게 쭈그려 살 것이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아오…….”
“리리스에게 치근덕대는 것도 재수 없는데, 이젠 니아츠까지. 주제도 모르고.”
아이들의 말에 말없이 카론을 노려보는 류토.
확실히 나대기는 너무 나댔다.
마법사라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오자마자 클래스를 들었다 놨다, 온통 녀석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게다가 교관들까지 녀석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은가?
녀석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조금씩 짜증이 올라왔다.
“류토!”
“그래서 어쩌자고.”
“당연히 밟아 줘야지! 못 나대게끔!”
“뭐, 두들겨 패자고?”
“당연하지! 열받잖아! 제깟 놈이 뭔데 네가 좋아하는…….”
“야!”
“아, 아무튼!”
폭력을 쓰는 건 좋다.
솔직히 재수 없는 얼굴만 봐도 패 주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한 아카데미의 징계나 벌점은 귀찮다.
그리고 그 체벌조차 귀족으로서 수치인 것들 아니던가?
찌푸린 눈매로 카론을 노려보고 있는 그때였다.
교관의 곁을 떠나 자리를 옮기는 카론.
그에 류토와 그 일행 또한 자리를 옮겨 그의 옆으로 갔다.
“야, 나대지 마라.”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리에 무심히 돌아보는 카론.
단 한 번도 말 섞어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나?”
“마법사면 마법사답게 골방에나 박혀 있든가. 왜 이렇게 나대지? 살 빼러 왔으면 살만 빼든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처음 말을 섞는 학우와의 첫 대화가 ‘나대지 마’라니.
아니, 솔직히 좀 나대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들으니 또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흠…… 그래서 뭐 때문에 열받은 건데?”
“너 때문에 클래스 전체가 떠들썩한 것 안 보이냐? 시끄럽고 거슬린다고, 니가.”
아하, 그제야 곧바로 이해가 갔다.
이놈들이 저쪽 세계의 일진인 것을.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놈들의 정체를 알아챈 카론.
그때는 돈으로 매수해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돈도 없을뿐더러 돈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애초에 귀족에게 돈이 먹힌다는 생각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이것 참……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할까?”
“그냥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다녀라. 낄 데 못 낄 데 구분은 해야지.”
“앞에 건 이해가 가는데 뒤에 건 무슨 말인데?”
“병신……. 서자가 귀족이냐? 천한 평민과 다를 게 없지.”
“아하! 내 출신이 천하다?”
“그래, 그러니 처신 잘해라. 죽여 버리기 전에.”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는 카론.
그에 류토와 아이들의 기세가 더욱더 높아졌다.
더욱더 험한 말을 내뱉으며 카론의 기를 죽이려 드는 그들.
한편 카론은 그런 그들을 보며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얘들아! 잠시만 이것 좀 봐 봐!!”
주먹 쥔 양손을 모으는 카론.
그리고 왼쪽 손을 낚싯대의 릴을 감듯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치켜세우는 그의 중지.
그의 중지가 고개를 뻣뻣이 세웠을 때, 류토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뭔데 그게?”
“엿 처먹으라고.”
“뭐?”
“꼬우면 손수건 던지든가.”
그 말을 끝으로 피식 웃으며 자리를 뜨는 카론.
돈으로 해결할 때는 싸움을 못 하고 힘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
힘도 있고, 싸움도 너무 재미있다.
왜 만화책이나 그런 것들 보면 그런 내용 있지 않은가?
전학생이 와서 학교 일진들을 모두 박멸하는 내용.
아주 흔하디흔한 내용이었지만, 까짓것 자신도 하면 될 것 아닌가?
시스템이 있고 카드가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크…… 멋있었다. 이 맛에 일진 퇴치하는 거지.’
아무래도 자신은…… 트러블 메이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