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25화 절정을 향해
차랑, 차자자장-
찢겨나가는 마물의 육체.
그런 마물을 뚫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리리스가 나타났다.
“베고 짓이겨라. 소닉 버스터.”
거대한 풍압.
그것은 거대한 와류를 생성하며 무수한 칼날들로 변해갔다.
찰나의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쏘아져 나가는 바람의 칼날.
그녀는 이미 예전의 리리스가 아니었다.
잠시 본래의 주인을 뒤로하고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칠현위의 리리스.
그녀를 비롯한 칠현위들은 풍부한 전투 경험으로 서로 간에 연대를 이루며 마물들을 처리해 나갔다.
피 칠갑을 한 채로 온몸이 은은하게 빛나는 칠현위.
그들은 어둠 속을 밝히는 빛처럼, 절망 끝에서 나타난 용사처럼 휘광이 감쌌다.
단순히 느낌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밝은 빛을 내뿜기도 했고.
“붙잡아 파쇄하라. 천의 사슬.”
“통제하라. 무의 금형.”
쏘아져 나가는 칼날과도 같은 사슬.
그것들은 회전하며 마물들의 발을 묶고 그 살을 짓이겼다.
각자의 판단으로 적재적소에 개입해 힘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칠현위들.
그리고 그를 보는 작열의 현자 아그네스는 제법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것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싸움터의 구석에서 군인들과 함께 힘들게 사냥하고 있던 아이들.
그래서 딱히 저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족을 쫓은 것은 메르샤의 꼬마 그 하나로 보였으니.
그런데 마물들을 상대로 구석에서 어렵사리 상대하고 있던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이런 변화를 가져오다니?
전투 중에 깨달음을 얻어 갑작스럽게 강해질 수는 있다지만 이건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던가?
“재미있군, 재미있어. 시대가 변하는 것인가.”
평생을 마법만 몰두해 왔기에 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저 아이들의 보아하니 확신이 들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저 아이들의 시대가 올 것을.
그리고 이는 로이튼의 입장에서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라 볼 수 있다.
한 시대에, 그것도 한 국가에 저런 천재성과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아이들이 나타나다니.
“신기한 일이군.”
피식 웃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아그네스.
그리고 양국의 군대의 중앙에서 병사들과 기사들을 서포트 하기 시작했다.
명성과 업적은 지는 해가 아닌 뜨는 해가 얻어야 하는 것이며, 또 병사들의 쓸데없는 희생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그네스가 양국의 군대를 서포트하고 있는 그때 카론은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다크 게이트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저 마력석 광산인 것 같은데.’
게이트를 유지하는 매개체.
아무리 봐도 마력석 광산이 유력했다.
하지만 매개체를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마법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에 가까우며 게이트와 같은 ‘차원’에 대한 영역은 엄청난 고위 마법으로 박해 다식한 현자들도 함부로 단언하지 못하는 영역이니까.
‘하지만……. 이래서는 끝이 없군. 빨리 놈이 도착해야 할 텐데.’
명성과 위명을 얻기에는 마족 놈이 최대한 오래 살아있으며 여기저기 개판 치는 게 훨씬 좋다.
그러면 왕국 내의 관심이 전쟁보단 모두 마족에게 쏠릴 것이고 국내외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테니.
하지만 그래서는 여기저기서 다 개입하고 결국 ‘독점’이라는 이득이 사라진다.
이 판은 메르샤가 독점으로 마족을 퇴치하고 그 영광을 모두 누려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입지가 공고해지고 앞으로의 일과 행동에 무게가 실리게 됨은 물론이고 칠현위의 업적도 더 부각하기 쉽다.
여러모로 날파리들이 끼어있지 않은 상태가 좋은 상황.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이 판을 짜고 메르샤에 영광을 안겨준 것만으로 자신의 입지는 공고해질 것이다.
그러니 굳이 무리해서 전투에 임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 판의 진짜 주인공은 칠현위들이니 말이다.
칠현위를 부각하려 하는데 자신이 더 주목받으면 안 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비장의 한 수가 있기도 하고.
한편 전장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4 왕자는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뭣들 하느냐! 좀 더 공격적으로 임하란 말이다!!”
“그러면 병사들의 희생이 심해집니다. 사령관님을 비롯한 주요 전력 모두가 앞에서 전투 중입니다.”
“이, 이……. 비키거라! 내가 직접 나서야겠으니!”
“위, 위험합니다! 이곳에 계시지요.”
“닥치고 비키거라!”
역정을 내며 부관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는 4 왕자.
이 전쟁에서 영웅이 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헌데 이게 뭐란 말인가? 오히려 돋보이는 건 마물들 한가운데서 싸우는 전혀 다른 놈들이지 않은가?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내가! 내가 주인공이란 말이다!”
앞으로 튀어 나가며 마물에게 달려드는 4 왕자.
그렇게 4 왕자가 마물들에게 달려드는 그때였다.
검은 안개가 스멀거리며 이내 폭풍이 되어 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검은 육체의 존재.
생전 처음 보는 존재였으며 그 존재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
【배고프구나. 모두 나의 양분이 되어라!】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치솟아 오르는 무수한 검은 창.
그것들은 땅에서부터 올라와 병사들을 꼬치로 만들어버렸다.
그와 함께 그들의 생기와 혼을 빨아먹어 버리는 검은 창.
“으, 으아아아악!”
4 왕자는 그를 보며 흥분과 분노는 사라지고 오직 공포만이 존재했다.
두려움에 굳은 몸은 이내 살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검을 버린 채 소리를 지르며 무작정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꼬치가 된 채로 모든 생기와 피, 영혼이 빨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기에 그 공포는 배가 되었다.
그렇게 가르칸킨스가 병사들의 생기와 혼을 흡수하며 배를 채우는 그때였다.
조용히 카론의 앞에 나타난 4번째 손가락.
“오랜만이로구나 꼬마야.”
“그러게, 보이질 않아서 죽은 줄 알았지 뭐야.”
“못 보던 사이에 몰라보게 성장했군. 말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야.”
“그러게, 그땐 당신이 두려웠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네.”
“그리 생각할 수 있겠지. 아직도 믿기진 않지만 홀로 우리의 아지트를 박살 냈다고 하니 말이야.”
4번째 손가락의 말에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카론.
그리고 그런 카론을 보며 4번째 손가락 역시 짙은 미소를 지어줬다.
“허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 깨어나신 지금은.”
“뭐가 이리 혀가 길어? 들어와~ 끝을 봐야지.”
“그리고 너를 포함한 이곳의 모든 존재는 모두 소멸할 것이며 이는 위대한 시작의 양분이 될 것이다.”
그 말과 함께 검은 마기가 폭주하기 시작한 4번째 손가락.
마족 가르칸킨스가 깨어나며 그로부터 받은 권능과 대량의 힘으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렇게 마기의 폭주가 지속되는 그때 순간적으로 카론에게 날아가는 무언가.
카론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비껴쳤다.
비껴쳤음에도 불구하고 왼쪽 어깨가 찢어지며 몇 걸음이나 뒷걸음치게 만드는 위력이다.
하지만 문제는 위력이 아니라 바로 속도였다.
눈에 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놈이 공격하려는 의지가 깃든 순간 이미 공격은 자신에게 닿아 있었으니.
‘빛이다.’
이 속도는 빛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공격이 대관절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느껴졌다.
그의 무위가 빛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임을.
그에 곧바로 엘리네르에 백화를 두르고 무위 천격의 겁화를 사용하는 카론.
콰쾅, 콰과과과과광!!
찰나의 순간에 무수한 폭발음이 들리며 화염이 몰아쳤다.
한 번의 폭발에 공격력이 증폭되고 또 한 번에 폭발에 공격력이 증폭되는 무위.
그런 것이 수천 번이나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천격의 겁화다.
그 공격에 담긴 무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최상위권의 무위라 볼 수 있는 그런 위력이었다.
“그리피스!”
마검 엘리네르 위로 씌워지는 반투명한 또 다른 검.
검의 무덤에 잠들어 있던 검 ‘카마스’와 같이 얼마 전에 검의 무덤에서 깨운 검이었다.
그렇게 그리피스가 엘리네르에 덧씌워지자 느껴지는 업의 무게.
그것은 비난 카론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 거대한 무게감이 공간을 짓눌러 숨을 쉬고 있어도 답답하며 그저 주저앉고만 싶은 압박감이었다.
그와 함께 곧바로 검을 휘두르는 카론.
그는 곧 수십 개의 검으로 나누어지며 이내 수백 개로 변해갔다.
그와 함께…….
콰광, 쾅쾅쾅쾅쾅…….
나누어진 모든 것에서 터져나가는 천격의 겁화.
순간 거대한 폭발이 모든 장내를 집어삼켰으며 그 폭발은 그 어떤 빛이 칼날이 어디로 날아오든 집어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론의 공격을 보고 당혹감에 빠진 알렌워크의 마법사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메르샤의 꼬맹이가 저 정도라고?”
마물들과의 전투 도중에 입을 떡 벌린 채 카론만 바라보고 있는 그들.
방금 그 공격의 위력은 둘째치더라도 도대체 지금 이 공간을 장악하고 짓누르고 있는 무게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낱 작은 애송이에 불과해 보이던 그가 이제는 거대한 산과 같은 거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왜 메르샤가 저런 반푼이를 데려다 이상한 짓거릴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는데,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는 부분.
그렇게 알렌워크의 마법사들이 놀라고 있는 그때 거대한 화염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4번째 손가락.
“그걸 정면으로 버티다니. 솔직히 놀라운데.”
“큭윽-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신이 아닌 이상 말이지.”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으며 카론을 노려보는 4번째 손가락.
버티긴 버텼으나 그의 몸은 그리 정상이라 보기 어려웠다.
마기로 인해 빠르게 회복되어 괜찮아 보일 뿐이지 내부가 진탕되어 있었다.
그에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전력으로 공격을 가하는 4번째 손가락.
무수한 빛이 찰나의 순간에 반짝이더니 온갖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를 느낀 카론이 황급히 분신으로의 이동을 연속으로 하며 공격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분신으로 이동하는 족족 마치 새장처럼 찰나의 순간에 조여오는 무수한 공격.
그에 카론의 몸에 작은 생채기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이내 제법 큰 상처들로 이어졌다.
이런 속도와 매개체가 빛이라면 단 한 번만 적중돼도 곧바로 어딘가는 절삭될 수도 있는 일.
그렇게 카론이 빠르게 피하는 그때였다.
흑의인 한 명이 나서며 그의 모든 공격을 쳐내버렸다.
“이런 곳에서 힘을 낭비하실 때가 아닙니다.”
그 말과 함께 턱짓하며 마족을 가리키는 그.
검을 천천히 4번째 손가락에게 겨누며 말을 이었다.
“가시지요. 이 잔챙이는 제가 붙들고 있을 테니.”
“죽이진 마. 그냥……. 숨만 붙여놔.”
“그리하지요.”
그와 함께 곧바로 마족에게로 튀어 나가는 카론.
그러나 어림도 없다는 듯 4번째가 카론의 발목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그때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 끝을 4번째 손가락에게 향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흑의의 호위.
그에 4번째 손가락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곧바로 그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기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직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명의 흑의의 호위 덕에 자리를 빠져나와 마족에게로 향하는 카론.
그의 앞에 도착한 카론이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천격의 겁화를 가르칸킨스에게 쏘아 보냈다.
콰과과광!
갑작스러운 충격에 뒤돌아보는 가르칸킨스.
그리고 분노어린 표정으로 카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식사를 끝내고 먹으려 했거늘, 알아서 찾아왔구나.】
“잘근잘근 씹어먹는다며? 배부르면 맛이 없어질 텐데?”
【크크크, 그렇지. 그래. 맛있는 건 먼저 먹어야지. 네놈을 포함해 알렌워크의 씨앗들마저 모조리 씹어먹어 주마.】
“나는 빼주고 쟤들부터 먼저 먹는 건 어때? 영 거슬려서.”
【걱정 마라. 찰나의 순간일지니.】
그와 함께 공격을 가하는 마족 가르칸킨스.
그에 카론은 할 수 있는 버프란 버프는 다 적용한 채 엘리네르를 치켜올렸다.
“이제 시작이다! 모여라! 칠현위!”
카론의 그 말을 시작으로 강한 위압감을 내뿜으며 곧바로 카론의 옆으로 집결하는 칠현위.
그리고 카론의 소환수들 또한 그 옆에서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볼 수 있는 싸움.
무대는 만들어졌고 관객도 모두 모였다.
그렇다면 이제 클라이맥스를 찍어 모두의 인상에 각인시켜 줘야 했다.
“잘 보아라. 우리들의 공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