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화
14화 물밑 작업
밤이 되기 전에 블래디아 가문을 나온 카론.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질까 하여 들렀으나, 식상한 반응이자 곧바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메르샤로 복귀하는 중인 카론.
“괜찮으십니까?”
“뭐가?”
“그래도 친부이지 않습니까? 식사도 한 끼 하지 않고 온 것이 조금…….”
“난 이제 메르샤의 사람이고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런데 고작 혈육이란 이유로 내 약점을 만들 생각은 없어.”
“…….”
“좋은 인연이라면 몰라 악연은 끊어내는 게 맞아. 그것이 설령 피를 나눈 존재일지라도.”
카론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쿠와 레나스.
틀린 말이 하나 없는 말이었다.
메르샤를 이끌 존재라면 자잘한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수하의 입장으로 본다면 이 정도의 냉혹함은 오히려 좋았다.
물론 실제로 끊어낼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하는 일이겠지만.
한편 카론은 그런 하쿠와 레나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마차의 창문 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블래디아라…….’
과거의 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물론 과거의 악연도 말이다.
더는 연관되어 좋을 게 없는 곳.
연관되면 연관될수록 자신의 약점만 될 뿐이고 블래디아만 위험해질 뿐이다.
서로가 가까워져서 득이 될 게 없는 상황.
이제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았다.
“한데, 괜찮겠습니까?”
“또 뭐?”
“알렌워크 말입니다. 너무 자극한 건 아닌지……. 사할리나 님을 더욱 경계하고 견제할 것입니다.”
“마족을 토벌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야. 게다가 블래디아까지 와서 저러는 것을 보면 작정하고 내 뒤를 파겠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보여 줘야지. 마냥 헛소문으로 치부할 수는 없게.”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눈을 감는 카론.
지금부터 메르샤에 도착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못다 깬 이벤트 던전도 깨야 하고 리미티드 카드의 퀘스트를, 파멸자와 가오스를 마일리지샵에서 구매해 6성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지루한 이동길이 될진 몰라도 자신에게는 아주 바쁜 이동길.
그렇게 대충 레나스와 하쿠에게 깨우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곧바로 거대동굴로 들어와 이벤트 던전으로 향했다.
-켈하브람의 요새(어려움)에 진입하였습니다.
-요새 내에 존재하는 함정과 켈하브람의 수하들을 처치하고 보상을 쟁취하십시오.
우중충한 고성.
이 요새는 미로와도 같이 생겼으며 각각의 기믹이 존재한다.
여기서 가장 짜증 나는 존재는 바로 ‘켈하브람’ 자체.
켈하브람의 분노는 ‘레이드’라서 놈을 죽이면 되지만 이곳에서 놈은 무적 판정을 받으며 잠깐 나타나 공격을 퍼붓고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모든 방마다 속성이 존재하고, 그 속성에 맞는 구슬들을 파밍 해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곳.
속성에 알맞은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으면 대미지가 3배로 뻥튀기되어 들어오기에 여러 가지 머리를 써야 하는 이벤트 던전이었다.
“자, 어디 한번 보자고.”
미소와 함께 좌우에 있는 소환수들을 바라보는 카론.
대부분이 6성으로 변해 있었으며 아로아와 유키아라는 각성까지 돼 있다.
번쩍거리며 스파크가 튀기는 이펙트를 보이는 아로아와 붉은 바람의 칼날이 옅게 튀어 오르는 이펙트를 지닌 유키아라.
사실 성급을 올리는 것도 이 이펙트를 보는 뽕 맛에 올리는 것도 존재했다.
“일단 먼저, 가랏! 아로아!”
『오케이~!』
살짝 몸을 웅크리는 아로아.
번쩍이는 스파크와 함께 순식간에 이동해 버렸다.
그리고…….
콰아앙-
찰나의 순간에 앞에 있던 몬스터를 발로 걷어차 날려버리는 아로아.
그 파괴력이 얼마나 거센지 요새가 조금 흔들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빠르기로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아로아.
그 모습을 보며 카론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박수를 쳐 보였다.
“나, 나이스.”
당황하지 않은 척 박수를 쳐 보였으나 제법 놀라고 있는 카론.
두세 배 강해졌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전과는 완전 딴판이지 않은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제법 당황하고 있는 그때 갑작스럽게 켈하브람이 나타났다.
-크크크크크……. 어리석은 인간, 모두 죽……. 억!
콰아아앙-
드드드드드드…….
나타나자마자 공손히 엎드려 절하는 켈하브람.
켈하브람이 보이자마자 아로아가 주먹으로 녀석의 머리를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강펀치를 맞고 그대로 머리가 땅속에 파묻힌 켈하브람.
그 충격으로 인해 주변 땅이 박살이 났고, 요새가 흔들리며 돌가루가 흘러내렸다.
‘요새의 켈하브람은 무적일 텐데…….’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는 카론.
어려움 난이도가 이렇게 쉬웠다고?
분명히 저번에 할 때는 보통도 간신히 깼는데?
물론 여느 게임과 같이 일레븐 나이츠에도 ‘레벨링 보정’이라는 게 존재한다.
단순히 공격력 차이뿐만이 아니라 성급과 격에 따라 가해지는 공격과 받는 공격이 판이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공격력이라도 5성을 데리고 다니는 것과 6성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까지 차이 난다고?
카론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켈하브람.
‘아직 초반부라 그런 거면 그럴 수도 있지.’
어느 정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론.
보통 난이도를 할 때도 초반에는 켈하브람의 난동이 약했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켈하브람도 강해지고 난동의 수위도 훨씬 강해진 것을 고려하면 인정할 수 있는 부분.
“아로아, 이제 됐어.”
『왜? 아직 몸 안 풀렸는데?』
“이제 얘들도 테스트해 봐야지.”
곧바로 옆에 있는 백금 소속과 칠미호를 가리키는 카론.
그를 보자 아로아가 아쉽다는 듯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긋이 카론을 바라보고 있는 유키아라.
말은 하지 않았으나 틀림없이 ‘나는 언제 나서는 거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눈길이 신경 쓰였으나 어색한 웃음으로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옮기는 카론.
죽은 몬스터들이 드랍한 속성 구슬을 주워 들었다.
번개 모양의 구슬, 뇌전 속성 방으로 들어가야 수월하게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요새의 함정들을 피해 가며 번개의 방을 찾아 헤매는 카론.
보통을 클리어 할 때도 이곳 기준으로 10일이란 시간이 걸린 것을 고려하면 어려움 또한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단순히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요새 자체가 엄청나게 크고 넓기 때문이다.
끼엑, 끼엑!
괴상한 소리로 울어대는 몬스터.
약 40마리의 몬스터가 미친 듯이 울어댔다.
그리고 그 뒤에는 구역 보스로 보이는 네임드 몬스터도 있었고.
본격적인 덱의 활용도를 살피기에 딱 좋은 상황.
그에 세네리아가 앞장서 덱 효과를 활성화하며 포메이션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건한 마음이 육체를 지키리라!”
세네리아의 외침.
그에 덱 효과가 활성화되며 모든 카드에게 쉴드가 생성됐다.
대미지의 40%를 경감시키는 고효율의 쉴드.
세네리아의 덱 효과였으며 세네리아가 전면에 존재하는 한 항상 활성화되는 효과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기에 다른 카드에 비해 방어력이 월등히 높기도 했고.
그렇게 시작되는 전투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카론.
‘역시 단순히 수치화할 수는 없는 건가?’
단순히 2배, 3배 이런 식으로 강해졌다고 볼 수 없었다.
무위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카드 하나당 2~3배 강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덱’이란 개념이 있는 조합의 싸움.
각각의 2~3배가 강해졌다고 해서 모두의 합이 2~3배 강해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 합이 6배가 될 수도, 10배가 될 수도 있는 노릇.
정확히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5성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졌다는 거다.
역시 6성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자, 마저 끝내보자고.”
옅은 웃음과 함께 옆에 있는 유키아라를 바라보는 카론.
그제야 유키아라가 옅은 웃음을 보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수없이 만들어지는 마법진들.
그것을 보며 카론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리미티드 카드의 각성은 반드시 성공해야겠노라고.
* * *
“리노에르의 약혼을 파해 주세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더냐?”
“전 용납할 수 없어요!”
피앙스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노인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약혼을 파해 달라니?
“무엇을 용납할 수 없단 말이냐?”
“다른 누구도 아닌 반푼이에요! 아무리 사할린 님의 선택을 받았다 하나 후대를 생각하면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요!”
“그러니 오히려 더 좋지. 네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지 않으냐?”
“그걸 제가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는 베르엣 파벌의 노인들.
피앙스가 왜 저러는지는 충분히 잘 알았다.
메르샤의 여인이라면, 특히 텐트라를 이은 티아라라면 당연한 반응일 테니.
자라오면서 얼마나 많은 비교를 당했던가?
그러니 쉽사리 인정할 수 없는 것이겠지.
당대를 보는 것이 아닌, 후대를 위한 메르샤의 전통을 생각하면.
“어리광부리지 마라. 그는 타르틴 파벌에서 밀고 있으며 무엇보다 리노에르의 선택이다. 너도 티아라이니 잘 알지 않더냐? 배필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티아라 본인의 권한이라는 것을.”
“그러니 타르틴 파벌을 설득해달란 말이에요. 그쪽도 대체재는 있을 것 아니에요? 가령 레나나 시리아 같은 애들요!”
“하……. 피곤하구나. 돌아가거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축객령을 내리는 노인들.
사할리나에 줄을 대는 것은 베르엣 파벌에서도 준비해야 할 일이다.
타르틴 파벌처럼 리노에르와 같이 최고의 정통성을 지닌 아이를 붙일 순 없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통성을 지닌 아이는 붙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니.
후대를 기약할 수 없는 반푼이이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모를 일이었다.
사할린이 선택한 존재인 이상 만에 하나의 일까지 생각해야 했으므로.
그렇게 쫓겨난 피앙스는 이를 갈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카론……. 카론!”
메르샤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막을 수 없다면 이 분노를 카론이란 남자에게 다 쏟아붓고 싶었다.
자신의 라이벌이자 목표인 리노에르를 가로채 간 존재였으니.
한편, 태상가주전에서는 한 사람이 예를 갖춘 채 태상가주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붉은매의 단장 메르샤 인타일러. 태상가주님을 뵙습니다.”
“왔는가?”
“예! 어인 일로 찾아 부르셨는지…….”
말끝을 흐리며 살짝 고개를 들어 태상가주를 바라보는 인타일러.
태상가주 그래그리는 조용히 난을 가꾸고 있었다.
한참을 침묵 속에서 난을 가꾸는 그래그리.
그에 인타일러는 두 눈을 감으며 올 게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긴장감이 감도는 그때 조용히 말문을 여는 그래그리.
“레나스에게 보고 받았다. 검은 숲에서 모두 보았다지?”
“…….”
“보아하니 가주께는 보고하지 않았더군.”
“…….”
덤덤히 말을 잇는 그래그리였으나 그 말속에는 묵직한 중압감과 날카로운 예기가 함께 섞여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는 인타일러.
“그래,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그게 무슨…….”
“섣불리 둘러댔다간 뒷감당이 안 될걸세.”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인타일러.
그와 함께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감히 여쭙겠습니다. 혹시 그자가 그입니까? 제가 본 것이, 상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붉은 매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치켜세우는 인타일러.
설마 했지만, 이 반응은 정말 그때 본 그것이 수라라는 말이 아니던가?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수천 년간의 염원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입이 바짝 마르며 두 눈을 끔뻑이다 이내 빠르게 고개를 숙이는 인타일러.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예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메르샤의 존재 의의. 메르샤의 부흥이자 수천 년간 바라왔던 염원. 능히 받들어야 하며, 그 어떤 일에서라도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각 파벌을 비롯한……. 가주를 죽여야 한대도?”
“그건……. 물론입니다!”
잠깐이나마 머뭇거리다 이내 격앙된 감정을 내보이는 인타일러.
그래그리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적막감이 감돌다 조용히 말을 잇는 그래그리.
“적당한 때를 위해 모른 척해야 할 게야. 붉은매 단원 모두.”
“존명! 목숨을 다해 받들겠나이다!”
“좋군.”
그와 함께 조용히 하나의 목함을 내미는 그래그리.
그리고 인타일러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다 이내 두 눈을 감았다.
만약 사할리나가 정말 메르샤르라면 극비를 다루는 것.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게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때 천천히 말을 잇는 그래그리.
“그대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 허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해해 줘야 할 것이다.”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에 조용히 목함을 열어 그 안에 든 것을 섭취하는 인타일러.
그리고 갖가지 제약에 대한 맹세와 함께 맹독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끝이 날 수 있었다.
제약에 위반되는 행위나 말을 꺼내려 할 때 즉사할 수 있는 그런 맹독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그래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검은 숲에 있던 모든 붉은 매를 불러 모아라. 외부에 알려져서도 안 되며, 메르샤에도 알려져선 안 되는 일이다.”
“그리하겠습니다.”
“진정한 메르샤르로 거듭나는 날, 붉은 매가 선두에 서서 그를 영접할 것이다. 그러니 때를 기다리며 그 아이의 충직한 개가 되어라. 메르샤의 날개가 더욱 아름답게 자랄 수 있도록.”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