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하이얀 속곳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전하, 소랑이가 들었사옵니다.”
문간에서 들려온 세장의 목소리에 헌의 귀가 쫑긋해졌다.
지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몸과 마음 모두가 소랑이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보기를, 그녀를 다시 눈앞에 마주하기를.
온몸에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웃옷을 모두 벗어던진 상태였다.
“들라 하라.”
곧 소랑이가 들어온다 말이지?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소랑이를 보아야겠다. 일단 그녀를 보고서……
그러나 한창을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문간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얘가 들어오려다 나갔나? 갑자기 무슨 일이지?
헌은 얇게 비치는 하얀 도포 한 자락만 걸치고서 손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문간 앞에 소랑이는 없고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 원녀와 세장의 뒷꽁지만 보였다. 헌은 별생각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야 소랑의 나풀거리는 치마가 보였다.
오늘도 그 붉은 색이로구나. 위험하도록 붉었던, 넋을 놓을 만큼 아리따웠던.
그런데…… 그런 소랑의 손목을 붙잡고 달려 나가는 이가 있었다.
이신원이었다.
대체 소랑이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지?
헌이 황망하게 신을 신고 그 뒤를 따랐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지?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확인해야만 했다.
쿵―
다른 전(殿)으로 들어가는 길목 앞.
저 멀리서 뭐라 손목을 뿌리치며 반항을 하는 소랑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곧 이어 모든 걸 덮어버릴 듯, 그녀에게 뜨거운 입맞춤을 퍼붓는 신원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덜커덩, 덜커덩, 가슴에서 돌덩이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
나 자신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 왈그락 달그락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내 오랜 동무인 신원이 네가, 세상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린다 하더라도 유일하게 내 곁을 지킬 것 같던 나의 충신이.
감히 소랑이를.
궁의 나인을.
어찌 이렇게.
입맞춤을 퍼붓고 있는 신원은 이미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내 것을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손에 바스라지도록 움켜쥔 짐승이었다.
가슴을 부여잡아야 할 만큼 충격이 컸다.
안 그래도 뜨거워진 몸에 더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원녀와 세장은 일차적으로 신원과 소랑의 입맞춤에 놀라고, 이차적으로 그걸 지켜보는 왕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룻밤 만에 머리가 다 하얗게 세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곧 왕 이헌의 뒤에 건장한 호위부사들이 우르르 붙었다.
그 발소리에 신원이 입술을 떼고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그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이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품 안에 있는 소랑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사가에 나갔을 때, 기를 쓰고서라도 멀리 멀리 도망을 갔어야 하나.
왕을 마주했을 때 애매한 말로 돌리지 말고, 간곡히 청을 했어야 하나. 소랑이를 내게 달라고.
아니, 처음부터 옥사에 잡혀온 소랑이를 이 궐에 들이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나.
왕 이헌이 그들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소랑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굳은 가운데, 신원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용서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문제다.”
궐 안의 궁녀를 희롱한 죄. 감히 무게를 달 수도 없는 중죄였다. 기분대로라면 방금 그녀에게 닿았던 이 혀를 잘라 버린다 하더라도 성에 차지 않았다.
소랑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만 거야.
오히려 헌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따라오너라.”
“……예?”
“이것도 따르지 않을 것이냐.”
헌이 당도한 곳은 후원의 무예 수련장이었다.
종종 둘이 함께 목검 수련을 했던 이곳.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려기에.
“세장아, 진검을 가져오너라.”
따라든 신원의 눈이 대번 가늘어졌다. 혹시 이곳에서 진검의 승부를 보려는 것인가.
“니가 나를 이기려 드느냐.”
“……!”
“그럼 이겨 보거라.”
“전하……!”
“이기고 가져가거라. 저 아이를.”
헌이 장검을 받아 들고서는 기합을 지르며 신원에게로 향했다.
아까의 울분이 섞여 한이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채앵―
허공에서 두 칼이 번쩍였다.
신원이 본인도 모르게 왕의 칼날을 막아 낸 것이었다.
그가 든 것은 더 이상 칼집이 아니었다. 그 역시 날이 번쩍 선 진검을 든 채였다.
칼을 맞부딪치고 있는 둘 사이의 공기가 터져 버릴 듯이 팽팽했다.
연적감(戀敵感)은 두 남자들을 새빨갛게 응어리진 불덩이로 만들고 있었다.
진검의 긴장감이 두 칼날 끝에 섬뜩히 서려 있었다.
“봐주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헌이 잇새로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다시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번에 신원은 칼을 그냥 막지 않았다.
막아선 칼을 뒤집어 다시 헌에게 공격을 했다. 헌은 날래게 몸을 숙여 날아든 그 칼을 피했다.
“그래, 이렇게 해야지. 사내란 것들이 이 정도 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헌은 별다른 보호 장구도 없이 얇게 비치는 하얀 도포 하나만을 걸친 채였다.
감히 궐의 여자를 범하려 하다니.
가만히 있으려 해도 칼끝이 절로 추었다. 이미 그의 눈에선 용서가 없었다.
어둑한 달빛 아래, 그 반투명한 옷자락이 펄럭~ 휘날렸다.
헌의 칼끝이 신원의 가슴께로 향한 것이다.
다시 이어지는 날카로운 검날.
신원이 가슴을 공격하는 칼을 막아 내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헌은 휘청휘청 칼을 휘둘러 이를 막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번쩍 번쩍’ 소리가 날 때마다 소랑의 전신에 소름이 올랐다.
진저리가 처질만큼 섬뜩한 소리였다. 그녀는 그저 하얗게 굳어져 입을 막고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번의 죽을 위기가 왕 이헌과 신원의 사이를 지나갔다.
자칫 칼이 더 나갔으면 목이 베어졌을 것만 같은 아찔한 순간들.
실수라도 서로의 칼에 스러지는 비극이 생긴다면,
둘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잃게 된다면, 그건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쓰라린 눈가에 방울진 아픔이 아롱아롱 떨어졌다.
이때, 칼을 든 두 사람이 번쩍 날아올랐다.
‘채앵~’
나동그라진 건 다름 아닌 신원이었다. 그의 가슴에 길고 얇은 핏물이 배어들었다.
헌은 바닥에 누워 있는 신원의 곁에 섰다.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허나, 이대로 헌이 장검을 내리꽂기만 하면 이제 이 싸움은 끝을 보는 것이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헌이 검을 위로 들었을 바로 그때. 헌의 앞에 목검을 들고 덤비는 자가 있었다.
소랑이었다.
그녀의 손엔 서툴게 목검이 잡혀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신원에게 잠시 검을 배운 적이 있던 그녀였다.
“신원을 지키는 것이냐?”
배신감에 젖은 헌의 서슬 퍼런 눈빛이 날카로이 꽂혔다.
“신원의 편을 드는 것이냐!”
“전하를…… 지키고자 하옵니다.”
답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담뿍, 물기가 어려 있었다.
“전하로부터 전하를 지키고자 합니다.”
더욱더 굵은 눈물방울이 그녀의 앞을 가렸다.
“침전으로 가시지요. 오늘…….”
“…….”
“합궁의 일정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찢어지는 듯한 소랑의 목소리. 그 말에 헌은 얼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합궁이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오늘, 소랑과의 합궁 일정이 잡혔었다고?’
그제야 오늘 있었던 모든 이상한 일들의 답이 보이는 듯했다. 원녀와 세장은 한쪽에서 고개를 푸욱 떨구고 있었다.
저번처럼, 저 둘이서 오늘 일을 꾸민 것이었구나.
그것도 다름 아닌, 바로 소랑이와.
흙바닥에 누워 있던 신원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소랑이 왕을 이끌어 강녕전으로 향한 것이었다.
감은 눈에 자신을 떠나는 둘의 발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결국은 왕의 칼에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었다.
허나, 더한 것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이 가슴이 모두……
사나운 갈퀴에 찢겨져 버린 것만 같았다.
침소에는 어둑한 촛불과 야릇한 향이 소랑과 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야 할 일을 마저 해야 한다는 것처럼 조용히 숨을 죽이고만 있었다.
그 촛불 앞.
소랑은 자리에 앉아 옆에 놓여 있는 술을 꿀떡 마셔버렸다.
‘하아’
그러고는, 두 손을 모아 툭, 조용히 옷고름을 풀었다. 복숭앗빛 저고리의 앞섶이 벌어져 하이얀 속곳을 드러냈다.
바로 이때.
헌이 거침없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번의 달콤했던 입맞춤과는 달리, 달려드는 헌은 그저 거칠기만 했다.
솟아오르는 분노를 모두 쏟아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나 헌에게 대들고 까불던 소랑은, 아주 조금의 반항도 없이 그에게 온 입술을 내맡기고 있었다.
헌은 될 수만 있다면 아까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만 싶다고 생각했다.
좁은 골목, 망설임 없이 소랑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던 신원의 모습을, 그 배신감을, 이 입맞춤으로 모두 덮어버리고 싶었다.
잠시 입술을 뗀 헌의 눈빛은 쾅, 하고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야성(野性)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는 고운 자수가 놓여 있던 복숭앗빛 저고리를 거친 손놀림으로 뜯어버렸다.
그 손길에 속을 감추고 있던 하이얀 속곳도 종잇장처럼 찢기고 말았다.
이미 헌의 몸은 하늘로 치솟는 붉은 불기둥이 되어 있었다.
몸의 중심부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강렬한 색기가 차올라,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헌이 소랑에게로 돌진을 하려는 바로 그때.
“하앗…….”
눈물로 잔뜩 얼룩진 소랑의 얼굴이 들어왔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쨍그랑― 깨져 버릴 것만 같은 그 모습에, 헌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느덧 소랑의 두 팔은 헌에게 완전히 제압되어 있는 상태였다.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밝혀 주었던 여자다.
안씨가 죽은 7년 이후로 가장 가까워진 여자였다.
다른 이에게 나비처럼 날아갈까, 조심스러웠던 이 여자를……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제정신을 찾은 헌이 몸을 움츠려 소랑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이미 헌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꽃과 같이 붉은 자욱이 피어나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색기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
조금 전의 자신은, 마치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헌은 돌연 목소리를 높여 밖에 있는 세장에게 명을 내렸다.
“세장아. 도승지에게 상서원(尙瑞院)에서 옥새를 가져오라 이르거라.”
밖에 있던 세장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옥새는 어인 일로……?”
헌에게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심장이 잔뜩 쪼그라들어버린 세장은 군말 없이 명에 따르기로 했다.
잠시 후,
헌이 문간에서 옥새를 받아 들었다.
번쩍이는 금붙이. 바로 왕의 인장이었다.
국왕의 행차 시에 가장 앞에 설 정도로, 옥새를 관리하는 관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진귀한 물건이었다.
헌은 그 옥새를 들고서 천천히 소랑에게로 다가왔다.
소랑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어디에도 가지 마라.”
그는 드러나 있는 소랑의 앞 가슴팍에 그 옥새를 찍었다.
소랑은 잔뜩 물기 어린 눈으로 그 자욱을 내려다보았다.
“그 누구에게도, 가지 마라.”
몇 번의 목간이면 지워질 듯한 자욱.
그러나 그 느낌만큼은 화인이 찍혀진 것처럼 강렬했다.
“왕을…… 섬기거라.”
온 속이 역하도록 쓰라렸다.
소랑은 잔뜩 상처받은 얼굴로 왕 이헌을 올려다보았다.
“잊어서는 안 된다. 니가 왕의 여자라는 것을.”
“……!”
소랑은 다시 모로 누워 하염없이 남은 눈물을 쏟아 냈다. 원앙침이 소리 없이 젖어들어 갔다. 헌은 더 이상,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촛불을 끈 뒤 이어진 것은 한없는 어둠, 그리고 적막이었다.
오전, 편전으로 가는 길.
헌은 뒤에 따라든 원녀와 세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보았다.
“저번에 톡톡히 혼나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냐.”
세장이 깨갱하여 뒤로 물러났다.
“저번엔 신원이가 너를 구해 주더니, 이번엔 신원이가 일을 더 커지게 만들었구나.”
왕의 심기가 여전히 곱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이신원 도사가 처벌을 받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우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세장은 헌의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신원 도사는 파직하실 생각이옵니까?”
헌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처리를 생각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던 것이다.
“다 저희가 괜한 일을 꾸며서 폭발하신 것이지요. 그만큼 칼부림을 했으니, 이제 그만 용서하셨으면 합니다.
“사실 소랑이가 저번 사가에 다녀와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원녀가 전한 이야기는 뜻밖의 것이었다.
“실은…… 누군가 소랑이의 목숨을 노린다 하였습니다.”
“뭐라?”
헌은 가는 길에서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속에서부터 쓴물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헌이 가장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었다.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가 죽는 것. 대체 왜, 소랑이의 목숨을 누가, 왜!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일까요. 사가에서 나가자마자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이 소랑이를 쫓아,”
“……!”
“이신원 도사가 이를 구해 주었다 합니다.”
헌의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신원이가, 그녀를……?!
궁녀를 희롱한 죄, 그 죄가 가볍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이신원만큼 그녀를 완벽하게 지켜낼 사람은 없었다. 벌써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이 여러 번이지 않은가.
어제의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 손이 떨려왔지만, 헌은 신원을 멀리 둘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신원을 소랑이의 곁에 가까이 두어야 했다.
헌의 고민이 깊어져 왔다.
이신원이라.
대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
.
.
향원정 앞, 걸음을 옮기던 신원과 소랑이 눈앞에서 딱, 마주쳤다.
평소엔 이 넓은 궐에서도 잘 마주치는 일이 없더니, 갑자기 이렇게.
신원은 안타까운 눈으로 다가오는 소랑을 빤히 보았다.
“왜 그랬어?”
가시돋힌 그녀의 목소리.
그날의 일에 대해서 묻는 소랑이었다.
“궐은 위험한 곳이라며, 자칫하면 모가지가 뎅강 날아갈 수 있는 곳이라며.”
그 말을 듣는 신원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했다.
“엄청 위험할 뻔했잖아. 갑자기 칼부림 나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그 합궁…….”
“……!”
“들어가려 그랬어?”
질문은 칼침만큼이나 예리했다.
소랑이 따끔하니 통증이 밀려온 가슴을 애써 숨기고서는 말했다.
“들어가서도, 아무 일 없었거든?!”
“그럼 니 맘은 뭐야?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엄청 놀랐지. 완전 목숨 내건 미친 짓이었잖아.”
“너 지금 그냥 한 대 맞은 게 억울한 사람처럼 굴잖아. 그게 그렇게 너한텐 별일이 아니야?”
그때 이후로 한참 동안 심장이 떨려 잔뜩 졸아드는 가슴을 안고 살았던 소랑이었다.
당시의 입맞춤에 많이 놀라고 흔들렸던 게, 분명 사실이었다.
“그치만……우린 동무잖아. 니가 잘못한 거…… 맞잖아.”
“한 가지만 묻자.”
신원은 한번 침을 꿀꺽 삼키고서는 말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묘한 열기가 피어올라 있었다.
“너, 내가 남자로 보인 적 한 번도 없었어?”
소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대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