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들의 왕국
006
그리스 남부의 도시국가 동맹과 에게 해 너머에 위치한 트로이 왕국은 이렇다고 할 마찰은 없었다.
왕중왕 아가멤논은 야심이 깊은 인물이라 훗날에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다수의 도시국가들을 모두 움직을 수 있는 명분도, 권한도 없었기 때문에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테살리아 왕국은 침묵.
인접국들과 원활한 외교를 펼치면서 동시에 그리스를 위협하는 마케도니아의 야만족들을 경계했다. 그들 부족들 중에는 원만한 관계를 가지면서 철광석을 수입하고 있었지만, 모든 부족들이 그리스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마케도니아는 아직까지도 농경생활로 진화하지 못한 수렵민족이었기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정복 전쟁을 펼쳐야 했고, 그 표적으로 노린 것이 바로 그리스였다.
"그래서 한가해 보이는구나."
금발의 여신이 턱을 괴고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엇이 불만인지 올림푸스에서 하계로 내려왔는데도 그 표정이 가관이다. 벌레 씹은 듯한 얼굴이다. 남편이 혹시 바람이라도 폈나. 물론 그 남편은 매번 바람을 피는 난봉꾼이니 크게 별다른 사건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렇게 눈부신 미녀를 아내로 두고 있음에도 바람이나 피는 놈팽이가 우습기는 하지.
그런 주신이 사실은 내 친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올림푸스 신화를 대표하는 주신 제우스. 외견은 노인네였지만 체력만큼은 젊은이들보다 왕성하여 리미트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양물을 뒤흔들면서 수많은 처녀들을 임신시켰다. 항상 처녀를 덮쳐서 임신시키는 그 취향이 놀랍다. 내 어머니는 알레우아드 가문으로 시집 온 소국의 공주님이었는데, 하계로 내려온 제우스와 동침하여 나를 낳았다.
반신반인.
나는 제우스와 인간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아서 태어났다. 그 덕분인지 테살리아 지역들을 통합시키고 하나의 왕국으로 발전시키는데 수월했다. 제우스의 가계라는 명분은 그리스인들을 정복시키고 지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보통 인간들보다 우월한 신체능력 덕분에 전쟁에서도 매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헤라가 말했다.
"그 노인네의 아들이라니..... 뭐, 처음에는 죽여버리려고 했지만."
"갓난아기한테 뱀을 풀어넣다니 어디 사시는 마귀할멈이십니까?"
"닥치거라. 요 근래에 들어서도 어린 네 녀석을 죽이지 못한 것을 가끔 후회하는 중이니 말이다."
겉으로는 독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헤라만큼이나 내 뒤를 봐주는 여신도 없을 것이다. 신들의 여왕이 직접 테살리아 왕의 후견인을 맡아주고 있었고, 덕분에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신들조차도 테살리아 왕국에서는 분탕질을 칠 수 없었다.
독기 오른 아내에게 눈치가 보였는지 제우스조차도 테살리아에는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 주신조차 두려워하는 신들의 여왕,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와 아레스보다 그 서열이 높았으니 그녀와 대등하게 그 격을 논할 수 있는 것은 데메테르 뿐일 것이다. 물론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가 없으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성격이라 헤라와 대적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제가 무슨 헤라클래스도 아니고 뱀을 어떻게 이깁니까?"
"....뭐, 네 녀석 같은 경우에는 그 놈팽이처럼 뱀을 때려죽이지는 않았지."
-----맹독을 품고 있던 독사를 복종시켰을 뿐이지.
어릴 적의 일이라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헤라가 말하기를 갓난아기였던 나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독사들을 강제적으로 복종시켰다고 한다. 무슨 방법으로 복종시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수단이라도 강구했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와 헤라는 테살리아의 수도인 라리사의 시가지에서 한가하게 차를 기울이고 있었다. 굉장히 깊은 단맛이 느껴지는 차였다. 이집트에서 건너온 차라고 알고 있는데, 그리스에 비해서 덥고 건조한 이집트의 기후 때문인지 그들이 마시는 차는 굉장히 달았다. 아마도 그만큼 영양분이 크게 소모되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퉤, 하고 다시 찻잔에 뱉었다.
대체 뭐냐. 이 더럽게 맛 없는 차는. 차라리 맹물을 마시는 쪽이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헤라는 꿋꿋하게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새하얀 뺨이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더럽게 맛 없는데도 참고 마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들의 여왕으로서 입에 머금은 찻물을 다시 뱉어낼 수 없다는 건가. 하계로 내려와서는 그 신분을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품위와 예법을 잃지 않았다.
과연 여왕님.
한낱 하계의 왕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고결함을 가지신 분이시다.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질 것 같던데요."
"으읍..... 그, 그래.... 무슨 일이더냐."
갑작스럽게 무거운 주제를 꺼내들자, 헤라는 입에 머금고 있던 찻물을 꿀꺽하고 마시고는 내 말에 대답했다. 새빨간 눈동자가 반짝인다. 만약에 이 자리에 이집트인이 있다면 이 더럽게 맛없는 차를 테살리아 왕국에 수입한 죄로 여왕님에게 처형당할 듯하다. 차마 무기물에게는 화를 낼 수 없었는지 헤라는 화를 식히면서 찻잔을 쥐었다.
와그작, 하고 찻잔이 부서졌다.
변상하려면 금화 한 닢은 필요할 텐데. 누가 봐도 힛타이트 지역에서 수입한 물건처럼 보였으니까.
"그래, 어디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것이냐?"
"힛타이트와 이집트는 매번 쥐어터지면서 싸우고 있는 족속이니 제쳐두고서.... 그리스와 트로이.... 이 두 세력이 신경 쓰인단 말이죠."
"흐응."
헤라가 콧소리를 가볍게 내면서 내 말에 응수했다.
매번 거론하는 말이지만, 힛타이트와 이집트는 최강의 강대국으로서 세계의 패권을 판돈으로 내걸며 장기적인 전쟁을 일으켜왔다. 서로 공주를 교환하여 친분을 쌓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이 두 국가는 결코 서로의 존재를 용인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이 세계에서는 '신비'가 존재한다. 아직 신들의 시대가 유지되고 있었고, 전쟁터에서도 직접 병사와 싸우는 신의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이집트와 힛타이트.
그 전쟁에 각 신화계의 신들까지도 전쟁에 개입하면서 그 규모가 너무도 커졌다.
그리고 그 전화의 불길은 그리스와 트로이에도 전해졌다.
그리스 남부의 동맹은 이집트의 라인에 속했고, 소아시아의 트로이는 그 주변에 위치한 힛타이트와 동맹을 맺었다. 이집트와 힛타이트의 전쟁. 그 전쟁의 속편이라고 할까. 그리스와 트로이가 두 국가의 대리전처럼 전쟁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리 노골적이지 않다.
아직 도시 국가의 왕들도 그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고, 트로이와 언젠가는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견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아테네의 왕인 아가멤논과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정도일까. 계속 거론한다면 몇 명 정도는 더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이름은 그 정도 뿐이다.
따로 날짜를 잡아서 이타카의 왕과 회담을 열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이타카 왕국은 아테네와 인접한 소국이라 아가멤논의 부하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언변은 훌륭했고 아가멤논 또한 그 재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국의 왕들 중에서는 가장 상석으로 대접했다.
"뭐, 앞으로 몇 년이나 지나야 하겠지만요. 신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있어 전쟁은 그리 쉽게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목숨은 하나로 끝이니."
"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신도 인간처럼 한 번 죽으면 끝난다.
물론 죽음을 깨고 다시 부활한다는 전개도 종종 보이지만, 괴물이나 용사의 손에 쓰러진 악신들은 그 목숨이 다하면 인간처럼 얄짤없이 저승으로 끌려나간다. 다시 눈을 떠보면 하데스의 면전에서 탭댄스나 추고 있겠지.
헤라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답했다.
신도 불멸은 아니다. 신들의 여왕이 직접 그것을 고백했다.
"만약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테살리아는 어떻게 나올 것이냐?"
"글쎄요. 간교하게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이득을 챙긴다거나, 서로 멸망하도록 방관하면서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토를 모두 차지한다는 방법도 있겠네요. 저에게 정석을 기대하진 마세요. 워낙에 교활하고 간악한 인간이라 정의라는 것은 이미 잊어버렸거든요."
"흥. 네 녀석다운 발언이구나."
여왕님께서는 내 말에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겠다는 반응을 표출했다.
그녀는 철저히 방관자로서 관전할 것이며, 전쟁의 결말이 어찌되든지 그것을 지켜볼 생각인 것 같았다. 전쟁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녀는 가정과 평화의 여신이기 때문이다.
====================
Sikieiki 님, 쿠폰 13장 감사합니다.
(쿠폰을 주시면 바로 코멘트를 써주세요. 그래야 어느 독자분이 보냈는지 압니다.
쿠폰을 보낸 시각과 갯수는 뜨는데 정작 아이디가 안 뜬다.)
=============================
원고료 쿠폰10개 = 연재 하나.
설차/아리냥의 작품 하나를 선정하면 1연재 가능.
어느 작품이든 상관 ㄴㄴ
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유통기한: 2018/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