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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이분론
002
사람들을 짐승으로 만들어 부렸다는 마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독수리'를 뜻하는 단어를 이름으로 삼았고, 태양신 헬리오스와 오케아노스의 딸 페르세이스의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이능력에 관해서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가계를 뒤져보면 이아손과의 세드 앤딩으로 유명한 마녀 메데이아의 고모라고 한다.
키르케Kirke
그녀는 그리스의 대마녀로서 반신 반신에 해당되는 소녀였기 때문에 불멸의 가호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불로불사라는 뜻이다. 태양신 헬리오스는 아폴론에게 그 자리가 밀려났다고는 하나, 태양이 가지고 있는 가호는 영원하다. 그리고 그 가호는 딸인 키르케에게까지 전해졌다.
"여기는 또 무슨 일이냐."
"당연히 서방님을 보러 왔지! 나는 테살리아의 왕비님이기도 하고."
키르케는 지중해의 아이아이에 섬이라는 곳에서 홀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깊은 숲 속에 있는 키르케의 집 주위에는 그녀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 변한 사자며 이리들이 우글거리고, 키르케는 집 안에서 큰 베틀로 천을 짜거나 마법 시약을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물애호가이신지 사람들을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변신 마법(폴리모프)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대마녀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짚으면서 테살리아 왕궁에 등장했다.
왕궁의 근위병들은 "또 오셨나." "지난번에 차이고 또 등장하셨네."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안 오겠다." 라고 중얼거렸다. 만약 키르케가 그 말을 들었다면 아주 맛좋은 비계를 가진 돼지로 변해버렸으리라. 그리고 왕궁의 훌륭한 식재료가 되었겠지.
키르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뺨이 붉게 물들었다. 홍조를 띈다. 에메랄드처럼 녹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황홀함을 가득 담고서, 뺨을 두 손으로 가렸다.
"테살리아의 왕! 그리스 중북부를 다스리는 명예로운 군주이며, 나아가 그리스 최강대국을 이끄는 위대한 왕. 그리고 이 키르케의 서방님이기도 한 분이시지."
장대하게도 나에 대해서 설명한 키르케는 왕좌에 앉은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왕비님!"
".....나는 왕비를 들인 바가 없는데."
"하지만 여신들 말고는 딱히 이렇다고 할 상대고 없잖아? 여신님은 인간 세계의 왕비가 되지 못할 테니까 남은 히로인은 나 밖에 없지."
열거법으로 내 연애관계를 설명해 본다면 그것에는 틀린 것은 없지만. 지금까지 인간 여성 중에서 성관계를 나눈 여인들은 모두 여사제들이다. 신을 섬기는 여사제. 당연히 그 관계를 밝히기에는 껄끄러운 사이였다. 여사제를 왕비로 들이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고, 여사제들 또한 평생 신의 종으로서 살고자 했다.
그저 원나잇을 하는 관계라고 할까.
다시 말해서 나에게는 왕비로 들일만한 여성이 없다.
대마녀인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키르케는 아담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면서 자신을 뽐냈다. 밤색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미인은 에메랄드 눈동자를 빛내면서 "내가 바로 테살리아 왕국의 왕비님이야!" 라고 주장했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은 반신반인이니 딱히 신분상에는 문제될 것은 없다만.
아테나와 헤스티아는 그렇다고 쳐도, 만약 헤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불벼락이 떨어지겠군. 그녀는 독점욕이 강한 여자였으니까. 바람기가 심한 제우스를 쫓아가 끝까지 응징하고 마는 성격을 본다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나는 왕비를 들일 생각이 없다고."
"후아아앙! 그러지 말고 왕비로 삼아줘!"
"젠장! 다리에 매달리지 마!"
고양이처럼 귀여운 소녀가 내 다리에 엉겨붙더니 그대로 사정사정하면서 왕비로 삼아달라고 매달렸다.
아이아이에 섬에 홀로 살다가 식료품을 채우기 위해서 테실리아 왕국으로 발을 디뎠는데, 그 때 나를 처음 본 그녀는 첫 눈에 반해서는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게 되었다. 지금도 종종 테살리아 왕궁으로 놀러와서는 왕비로 삼아달라고 졸랐다. 아레스보다는 조금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어려보인다. 10대 중반 정도는 될까. 가슴도 아담하고 여러모로 성인 여성의 몸매는 아니다.
하지만 귀엽고 갸름한 얼굴에 둥글둥글한 눈매까지.
대마녀께서는 테살리아 왕국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마법 시약을 만들었고, 그것은 올림푸스에서 하계로 온 신들에게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 신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은 조금 위험성이 다분하지만, 아무튼 신들은 비싼 가격에 시약을 구입했다. 남신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주로 부족한 정력을 채워주는 미약이었고, 여신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피부 미용 같은 화장품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키르케는 그 이익들을 모두 테살리아 왕국에 제공했다.
물론 그를 대가로 요구한 것은------
"자꾸 거절하면 다른 남자한테 가버릴 거야!"
팔짱을 끼고서 키르케가 말했다.
딴에는 도도한 여왕님처럼 헤라를 따라하는 것 같았지만,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귀여운 소녀가 투정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에메랄드 눈동자를 뜨고서 나를 직시하는 마녀에게 친절히 대답했다.
"그러면 가던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있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아."
"으....응? 나, 나를 포기하겠다고? 거짓말...이지? 죄송해요, 제가 너무 깐죽거렸어요! 용서해주세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내게 매달리는 키르케를 안아주었다.
포옹을 해주자 기쁜 기색을 보이는 키르케. 대마녀라는 어마어마한 호칭답지 않게 쑥쓰러움이 많고 소녀처럼 기뻐한다. 흥흥, 콧노래까지 불렀다. 키르케는 테살리아 왕국에서 수많은 제자를 두고 있었다.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마녀는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들이 이능력을 사용할 줄 알았다. 일반인을 마법사로 만들 수 있는 키르케는 전력적으로도 가장 필요한 인재였다.
키르케는 본인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동시에 본인이야말로 테살리아의 왕비님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키르케, 트로이에서는 별다른 일은 없어?"
"으, 응.... 살펴본 바로는."
독수리들을 사역마로 삼고 있는 대마녀는 트로이를 비롯해서 그리스의 여러 국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훌륭하게도 그 역할을 다해주었고, 왕궁에 있으면서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미노타에서 테세우스가 미궁의 괴물을 베어죽였다던지, 태양신 아폴론이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에게 차였다던지. 물론 인간사에 크게 관여되는 일들은 없었다. 용사가 괴물을 죽이는 것은 그리스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신들이 인간과 깊게 교류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일도 많았다. 그만큼 인간과 신의 교류는 잦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그리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와 아이를 가지는 거야!"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헤라처럼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가 취향이다.
적어도 10대 중반의 외견을 가진 꼬맹이한테는 흥미 없다. 물론 키르케가 실제로 나이가 어디라는 것은 아니다. 키르케는 사실 그 나이가 제법 많다.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 타우리스 왕 페르세스.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들이었는데 그들은 키르케와 같은 친남매지간이다. 다시 말해서 키르케도 그만큼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지. 하지만 외견은 10대 중반의 소녀였다. 다른 남매들보다도 친부 헬리오스의 핏줄을 가장 깊게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지나도 키르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영원히 어린 외견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마법 시약 중에는 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도 있다지만, 반신반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우선 나를 위해서 일해!"
"응! 그러니까 곁에 두고만 있어줘, 나를 버리지만 말아줘!"
키르케의 앞에서는 항상 나쁜 남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무조건적인 애정을 다하는 아내에게 애정을 빙자한 노동을 요구하는 악당. 누가 봐도 내가 나쁜 놈으로 보인다. 만약 내가 평민이었다면 매번 술이나 마시는 주정뱅이가 되어서는 아내에게 "어서 몸을 팔아서 돈이나 벌어와!" 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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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 님, 쿠폰 27장 감사합니다.
(쿠폰을 주시면 바로 코멘트를 써주세요. 그래야 어느 독자분이 보냈는지 압니다.
쿠폰을 보낸 시각과 갯수는 뜨는데 정작 아이디가 안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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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품이든 상관 ㄴㄴ
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유통기한: 2018/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