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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성신 군주-93화 (9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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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들의 전쟁

올림포스의 많은 여신들이 인간 남성과의 사랑에 빠져서 여러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치명적인 종말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것이 아프로디테가 강한 이유였다.

아들 에로스를 이용해서 사랑과 정욕의 감정을 조종한다.

여성들은 가련한 존재였다. 겉으로는 제아무리 강한 척을 다해도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신들의 여왕 헤라도 테살리아의 왕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면서 빈틈이 많아졌다. 제우스를 버리고 한낱 하계의 인간에게 마음을 줘 버린 것은 아프로디테로서도 조금 놀라웠지만, 그만큼 그 라에가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 남성이 대단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탐욕을 느꼈다.

신들의 여왕이 총애해 마지않는 그 남자를 빼앗고 싶다.

황금 사과를 가로챘을 때처럼 분명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가장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원할 것이고, 성욕을 가진 남자라면 아프로디테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계에서의 전쟁.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역시 네년이 꾸민 짓이었구나.”

헤라가 말했다.

그리고 여왕의 말에 대해서 아프로디테가 깔깔 웃었다.

“그럴 리가요. 인간의 본성은 대립에 있고, 그 대립을 해소하는 방법은 전쟁이에요. 남자들은 모두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 드는 비열한 본질을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여자를 소유하고 눈부신 보물을 가지려는 탐욕에 그 본성을 두고 있죠.”

“결국 인간은 전쟁을 원한다… 그 뜻인가.”

“맞아요. 인간의 본성과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전쟁에 있으니까요. 저는 그저 그 전쟁의 불길을 부채질했을 뿐이에요. 그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죠.”

물론 인간들끼리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모르는 여신은 없었다.

인간은 언제나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탐욕과 욕심을 해소하려고 했다.

그들은 현명한 생물이 아니다. 살육을 통해서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고 했고, 언제나 정복을 통해서 부와 권력을 잡으려고 했다. 아름다운 미녀를 강간하여 자신의 씨를 잉태하도록 강요했고, 수많은 아녀자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려고 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전쟁에서 매번 이기는 자를 ‘정복자’라고 칭하지만, 그는 단순히 학살자일 뿐이다. 아무리 정복자라는 허명으로 그 살육을 정당화하려고 하나 결과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프로디테의 말에는 조금도 틀린 점이 없었다.

그저 미와 아름다움의 여신은 인간들의 탐욕을 부채질하여 전쟁의 규모를 더욱 크게 늘렸을 뿐이다.

* * *

그리스의 호사가와 음유시인들은 자기네들의 입맛에 맞는 전쟁 이야기를 지어내는 걸 좋아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서 비롯된 ‘황금 사과 일화’를 이용해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이 세 명의 여신들이 다툼을 펼쳤고, 그것의 대리전으로써 하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고 떠들었다.

전쟁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지만, 때로는 그 전쟁에도 로맨스와 일화가 필요한 법이다. 그저 남성들의 욕망이 겹쳐져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말한다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그것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었으니까.

“질투에 빠진 헤라와 아테나가 전쟁을 선언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의 편을 들고 나섰다더라.”

“테살리아는 헤라와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섬기는 국가이니 당연한 일이지.”

물론 그 의견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자신의 흥미에 동하는 이유를 지어내며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는가. 호사가와 음유시인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니 그리스인들도 곧이곧대로 믿었다. 황금 사과 일화는 그리스인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한낱 인간이 여신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품평하고 그 순위를 매긴 것은 꽤나 자극적인 이야기였다.

신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헤라.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들이 밀려나고 미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승리했다.

그것은 단순히 신들끼리의 세대 싸움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을 초월한 싸움이었다고 할까.

신격으로 따지자면 헤라가 지극히 높았고, 사람들의 인지도와 지명도에 대해서는 아테나가 높았다. 그런 쟁쟁한 스펙을 가진 여신들을 무시하고 아프로디테가 승리하였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부와 권력도, 명예도 아닌 짐승적인 정욕과 남녀 간의 애욕이 승리하였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은 원초적으로 애욕을 즐긴다. 정욕을 우선시하고 남녀끼리의 결합을 우선시했다.

그 본능이 승리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떠돌던 와중에.

미케네 왕궁에 직접적으로 미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된다.

“미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이름으로 전쟁을 윤허하겠노라. 그리스의 후예여, 테살리아를 멸망시켜라.”

고혹적인 매력을 가진 아프로디테가 직접 강림하여 전쟁 선포를 주장.

비록 아프로디테는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네임드가 높은 여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전쟁을 주장하자 어느 정도 신빙성을 얻었다. 게다가 눈부신 미녀가 아니던가.

아프로디테의 풍만한 가슴을 보고서 아랫도리를 주무르는 남성들도 많았다. 그녀의 앞에 서면 남성들은 발정 난 원숭이마냥 성욕에 끓어오르게 된다. 그녀의 명령을 받드는 노예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아프로디테는 메넬라오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면 헬레네의 마음을 얻도록 해주겠다고 속삭였고, 테살리아에 모든 숙원을 걸고 있었던 메넬라오스는 그것을 수락했다. 스파르타를 점령하고서 다시 그곳의 왕이 된 메넬라오스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케스토스 히마스를 잘록한 허리에 두르고 남성들의 앞에 나타나자, 모든 남성들을 매료시키는 마법 허리띠의 위력에 그리스 왕들이 빠져들고 말았다. 아프로디테의 용모와 매력만으로 남성들을 포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별 수단을 다 쓰는군. 우리들이 싸우는 모습이 그리도 보고 싶은가. 망할 여신 같으니라고.’

아가멤논은 아프로디테에 대해서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제안을 거부하진 않았다. 어찌 되었건 테살리아를 침공하기 위한 발판 노릇을 해주겠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빌어먹을 년.’

미와 아름다움의 여신이라는 자가 직접 강림하여 남자들을 매료시키며 조종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탐탁지 않다. 그녀는 그저 유희를 위해서 하계에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고, 집념에 가까운 광기는 혐오를 일으켰다.

남자들은 국가라는 개념이 세워지기 전부터 아름다운 미녀를 아내로 삼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며 싸워 왔다. 미녀는 언제나 강자의 전유물이었고, 남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진 남정네만이 미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그것을 이용했다. 남자들이란 미녀를 얻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거는 어리석은 생물이었으니까.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 파리스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아름다운 여신이 내린 정욕에 미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그리스 왕들은 저주에 가까운 집착에 빠진 연약한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전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아까운 생명들을 희생시키겠지.

적어도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영웅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은 테살리아와의 전쟁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프로디테의 행동을 묵인했다. 전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쁠 건 없었다.

“한심해서 못 봐주겠네.”

벽에 기대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그리스 왕들을 보며 아킬레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저따위의 짐승들을 같은 전우로 여기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디오메데스를 포함해서 여러 영웅들은 아프로디테의 매력에 굴복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왕들이 그녀의 마수에 빠졌다. 분명 그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조국을 파멸시키겠지. 아까운 생명이 사라질 것이고, 그리스의 아까운 물자도 축나 버릴지도 모른다.

전면전.

아프로디테에게 빠져버린 가련한 왕들은 그녀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한 번 미소를 지어준다면 자신의 심장까지 꺼내 바치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나쁜 경우는 아니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오디세우스의 반문에 아킬레우스가 되물었다.

그리스 최고의 지장 오디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그리스 왕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싸울 테니까. 설령 자신의 조국이 파멸의 길을 걷게 될지라도.”

“최악이잖아.”

아킬레우스가 혀를 찼다.

그리스의 왕들이라고 하면 자신의 아버지 펠레우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영웅다운 기개를 보여 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각축장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허기를 느끼는 돼지들의 우리라고 할까.

적어도 영웅으로서의 고결함과 명예를 추구하는 아킬레우스에게 있어서는 두 눈 뜨고 못 볼 광경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도 제정신이 아닌 작자이긴 매한가지였다.

프티아 촌구석에서 살았던 시골 공주님은 이런 경우가 익숙하지 않았다.

더러운 술수와 책략이 난무하는 현장에는 그 어떤 고귀한 이상도 존재하지 않았고, 들끓는 것은 남성들의 더러운 욕망뿐이다.

욕망이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단초로 작용한다.

욕망이 있기에 전쟁이 펼쳐지고, 그 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인간들의 목숨이 사라진다.

그저 영웅담에 등장하는 일대기와 아버지 펠레우스에게서 들은 고귀한 괴물 토벌전에 대한 이야기만을 들어왔던 아킬레우스에게 있어,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전쟁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의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햇병아리나 다름없었다.

“그런가? 나는 꽤나 마음에 드는데. 적어도 위선은 없잖아. 더러운 욕망이 판을 치더라도, 결국 그런 욕망도 전쟁의 일환이지. 그 욕망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은 전쟁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본질에서 눈을 돌리는 것과 같아.”

아직 경험이 미숙한 아킬레우스에게, 디오메데스가 조언을 늘어놓았다.

칼리돈의 왕자 티데우스와 아르고스의 공주 데이필레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영웅. 디오메데스는 아킬레우스와 쌍벽을 이루는 군웅으로 불리는데, 그는 전쟁에 대한 경험이 많았고, 그에 익숙하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스의 영웅들 중에서 최연소인 아킬레우스와는 경험의 본질이 달랐다.

노련한 경험을 가진 디오메데스는 이것 또한 전쟁의 일환이라며 아킬레우스에게 말했다.

“나보다 약한 주제에.”

“그럴지도 모르지. 적어도 나에게는 불사신의 능력은 없어.”

아킬레우스가 투덜거리듯이 말했고, 디오메데스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분명 현재 그리스 최강의 무장은 아킬레우스가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경험이 없었다. 노련하기로는 디오메데스가 앞섰다.

디오메데스는 자신이 한발 물러나며 그녀의 무용을 칭찬하면서 자존심 강한 그녀의 성미를 달래주었다. 적어도 전쟁 전에는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프로디테가 뭐라고 지껄이건 그리스 영웅들의 고귀한 이상과 기개만큼은 바꿀 수 없으리라.

여신이 속삭이는 저주를 일탈한 강자들은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전쟁에 나선 이상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그것이 이유였다.

만약 그러한 이유가 없었다면 아프로디테 따위는 고귀한 영웅들을 부릴 수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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