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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의 안내자
테살리아 왕국과 트로이 왕국의 동맹.
사실상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서 성립된 두 강대국의 동맹은 남쪽에 위치한 그리스 동맹에 위협을 주고 있었다. 두 국가는 그리스에 적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무엇보다 두 강대국이 손을 잡고서 육로와 해로를 이용해서 협공을 가해버리면 미케네는 곧바로 점령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힘이 두 국가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오랫동안 그리스의 우방국이었던 이집트로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였다.
메넬라오스는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라고 불리는 람세스 2세 앞으로 나아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집트와 그리스 양국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성이 탄생했다며 그에게 간언했다.
“흐음, 히타이트의 주구들이 손을 잡았단 말이지……!”
람세스 2세에게 있어 테살리아와 트로이는 히타이트의 앞잡이나 다름없는 국가들이다.
테살리아는 적어도 이집트와도 교류를 나누고 있었기에, 히타이트와의 교역을 끊을 것을 이집트 측에서 강하게 요구했지만 그것을 거절했다. 파피루스 기술을 비롯해서 여러 문화를 테살리아에 전파해 주었던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괘씸한 일이었다.
그리스 북부에서 최강대국을 자칭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고, 무엇보다 이집트를 제치고 일등 국가를 주장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를 태양신의 후예라고 칭하는 파라오의 입장에서는 그저 하룻강아지가 왈왈 짖어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전쟁을 일으켜야 합니다! 오랜 숙적 히타이트의 영향력이 지나칠 정도로 광대해질 겁니다.”
“그렇습니다. 테살리아와 트로이를 막지 못하면… 그리스 전역은 히타이트의 영역으로 떨어집니다.”
“감히 아국을 두고서 동맹을 맺다니, 이런 괘씸한!”
메넬라오스의 말을 전해 들은 이집트의 무장들이 대거 일어나 반발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집트의 해군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이며 람세스 2세의 아들인 카엠와세트가 나서서 말했다.
“파라오, 적들의 오만함은 히타이트를 부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소아시아에서 아군은 히타이트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그 치열한 전선에 테살리아와 트로이가 히타이트의 편을 들어 버린다면… 아국은 소아시아에 확장하고 있는 영역을 모두 상실할 위험이 있습니다.”
카엠와세트는 최강의 해상력을 자랑하는 이집트의 해군이라면 무조건적으로 테살리아를 상대로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의 우방국인 히타이트에는 변변찮은 해상 병력이 없었고, 그것은 테살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해전이 벌어진다면 히타이트와 테살리아는 온전하게 전력을 동원할 수 없을 것이며, 사실상 그리스와 이집트 연합과 트로이의 대립 구도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
우선 해로를 끊어 그리스를 타국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야 했다. 게다가 에게해를 정복하고 있는 트로이의 존재가 이집트로서는 거슬리는 일이었다. 트로이는 오랫동안 히타이트와 교류하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너희 그리스는 뭘 했기에 트로이를 막아내지 못한 거냐! 테살리아와 트로이, 히타이트. 이 연합들이 결성되도록 방관하다니… 네놈들도 그 책임을 피하진 못할 것이다!”
파라오의 노여움을 들으며 메넬라오스는 고개를 숙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스 동맹이 번번이 테살리아에게 패배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아테네 점령전에서는 트로이 군단에게 패배하였다.
그리스 동맹이 연이어 패배하면서 그에 종속된 폴리스들이 모두 동맹을 이탈하여 테살리아로 전향하였고, 그것이 이어지자 그리스 동맹의 영향권이 크게 축소되고 말았다. 결국 자신들만의 힘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이집트에 도움을 요청하는 처지에까지 놓였다.
메넬라오스는 테살리아의 왕 라에가르에게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등장으로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돼버렸다.
동경하고 있었던 헬레네를 눈앞에서 빼앗겨야 했고, 그리스 동맹이라는 위대한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이것은 모두 그의 등장으로 인해 엉망이 된 것이다.
하계의 왕?
웃기지 말라지. 제멋대로인 신들이 지껄이는 예언 따위는 믿을 생각이 없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테살리아 따위에는 굴복할 생각이 없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곱게 물러나진 않으리라.
그렇기에 메넬라오스는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무릎을 꿇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카엠와세트, 이집트의 모든 해군을 동원하라. 반드시 테살리아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파라오.”
파라오의 명령에 해군 총독 카엠와세트는 아몬, 라, 세트, 프타의 네 개 함대들을 동원했다.
신의 이름을 본떠서 지어진 이집트의 대함대. 적어도 500척이 넘어가는 대병력이다.
람세스 2세는 재위 2년 만에 바다 민족들을 모두 토벌하면서 인근 해안선들을 모두 세력권으로 두었다. 그렇기에 강제적으로 복속시킨 바다 민족들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해군 병력을 두고 있었는데, 이번 전쟁에 그것을 모두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히타이트 영향권의 국가들이 발호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집트의 의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소아시아에서 히타이트에게 번번이 깨진 탓에 독기가 오른 상태였는데, 그 밑에 있던 2등 국가들이 설치는 것에 분노했다.
히타이트에게 뺨을 맞고 다른 국가들에게 화를 푸는 격이라고 할까. 적어도 그리스가 히타이트에게 넘어가는 꼴은 막아야 했다.
한편 히타이트의 대왕 무와탈리스 2세는 테살리아와 트로이가 동맹을 맺는다는 사실에 축하 사절단을 보낼 것을 염려하고 있을 정도로 이번 동맹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적어도 이집트에 달라붙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그리스 동맹을 지워 버릴 좋은 기회였다. 이집트와 소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고 있는 히타이트로서는 물리적인 병력을 동원해서 그리스로 원정을 떠날 정도의 여유는 없었는데, 자신과 동맹을 맺은 트로이가 테살리아와 동맹하여 그리스를 압박한다는 것을 듣고는 아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대왕, 이집트가 몸이 달아올라서는 전전긍긍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동생 하투실리의 말에 무와탈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정세를 보면 최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와 히타이트.
이 두 강대국들은 소아시아에서 패권을 겨루면서 싸우고 있었는데, 예상하지도 못한 변수가 터지면서 묘하게 전운이 달아오르게 되었다. 요 근래에 들어서는 전쟁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으나, 이집트가 먼저 반응하면서 히타이트까지도 전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그리스에 개입할 수는 없겠지만, 테살리아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북방의 마케도니아의 야만족들 정도는 견제해 줄 수 있다. 테살리아가 전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북방의 근심거리를 덜어주고자 했다.
“하투실리! 전차병대를 이끌고 나아가 마케도니아를 토벌해 버려라! 포로는 필요 없다. 다 죽여라.”
“알겠습니다.”
히타이트는 동방 지역으로 진출하여 여러 소국들을 두고 있었다. 서부에 있는 소왕국들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했고 아르자와의 동맹국 중 하나인 윌루사를 공격해 종속국으로 삼았다.
지금의 히타이트는 과거 전성기 수준으로까지 회복하였고, 광활한 영토를 점령하고 관리하느라 병력을 동원하기 벅찬 상태에서 테살리아와 트로이를 동원하여 세력을 넓히고자 했다. 적어도 그리스 동맹이 멸망하면 이집트의 오랜 동맹국이 사라진다. 이집트와 오랜 숙적이었던 히타이트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트로이와 테살리아. 이제 우리 히타이트는 소아시아에서 이집트를 완전히 몰아낼 것이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세계의 패자이며, 태양의 후예를 자칭하는 파라오를 몰아내겠다!”
무와탈리스의 말에 모든 히타이트 부족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세를 평정하고 각 부족들을 모두 모은 대왕 무와탈리스는 반신반인으로서 추앙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의 명령은 곧 신의 의지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무와탈리스가 이집트와의 전면전에 대한 재개를 명령한 이상 그를 따라야 했다.
* * *
저승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꽤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라에가르는 왕궁으로 도착하자마자 일 삼매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본인이 원한 것은 아니다. 트로이와의 동맹을 비롯해서 그리스 동맹과의 전선, 그리고 히타이트와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한과 공문서들이 집무실로 들이닥친 통에 조금의 여유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산더미와 같은 업무였다.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형부, 차 더 드릴까요?”
“좋지.”
산들산들한 시녀복을 차려입은 알렉토가 큰 가슴을 출렁거리면서 요란스러운 몸짓으로 차를 타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나 즐거운 모양이다.
알렉토를 포함해서 에리니에스의 삼녀 메가이라 역시 언니와 같은 시녀복을 입고서는 업무를 보고 있던 라에가르의 무릎 위에 앉아서는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아리따운 두 미소녀에게 둘러싸인 라에가르는 눈이 즐겁다고 생각했다. 푸른 머리카락과 빨간 눈동자를 가진 미녀들이 자신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내주면서 수발까지 들어주는데 불평할 인간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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