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안녕하십니까, 야구팬 여러분!]
[오늘도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마침내 오늘의 경기가 시작을 알렸다.
당연히 블레이드 헌터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144경기 체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일한 휴식일은 월요일이며, 그 외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는 한 경기가 속행되는 구조.
선수들의 체력 안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144경기 체제로 전환되고 나서는 특히 백업의 유무가 중요해졌다.
주전이 전 경기를 풀로 뛰면 아무래도 지치기 마련이니 말이다.
“흠, 오늘은 나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나강선은 거기에서 전적으로 예외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아직 추격조에 포함되어 있어서였다.
팀이 지고 있을 때 나가는 투수.
그게 현재 나강선의 역할이었다.
소드 윙즈와의 개막전 라이벌 매치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구원으로 2승을 따내기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승조 승격은 아무래도 너무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개막하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만 등판한 상태였다.
물론 성적은 깔끔하게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시즌 성적은 5이닝 무실점이었다.
-언제든 나갈 수 있게 준비는 해둬라. 러닝만 해둬.
박남천은 그러한 나강선을 향해 말했다.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언제쯤이면 필승조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나강선이 문득 물었다.
첫 번째 목표인 개막전 1군 엔트리 진입은 달성했다고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당연히 추격조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빠른 시일 내에 필승조로 승격되거나 선발로 전환해서 팀에 없으면 안 되는 핵심 선수로 거듭나고 싶은 게 나강선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개막전 라이벌 매치였던 소드 윙즈와의 3연전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곧 승격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는 박남천이 의외로 냉정한 말을 해주었다.
-좀 걸릴 거야. 나는 최소한 후반기로 보고 있다. 전반기에 추격조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전제 하에 말이지.
금방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아닌, 꽤 오래 걸릴 거라는 대답.
그건 일축하는 느낌도 강했다.
“후반기···?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요?”
당연히 나강선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늦어져도 전반기 내에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오히려 반대의 말을 듣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박남천이 말했다.
-그래. 이건 사실 어쩔 수가 없는 문제야. 사람은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게 쉽지 않거든.
“그 말씀은···?”
-아무리 블레이드 헌터스의 필승조가 좋지 않아도 곧바로 그 멤버에 손을 대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아끼고 싶은 마음도 클 거고. 자칫 잘못해서 애송이 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블레이드 헌터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손해거든. 모처럼 잘 던지는 애를 찾았잖아.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겠지. 신줏단지 모시듯이 말이야.
“흠···. 일리가 있네요.”
박남천의 설명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느끼는 나강선이었다.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걸 그르치면 망하는 셈이니까.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나강선은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막 1군에 올라와서 FA까지 남은 기간도 길고, 심지어 군대도 알아서 해결하고 왔다.
여기에 나이까지 젊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야구를 잘한다.
오히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블레이드 헌터스가 서두르는 게 이상한 거긴 했다.
좋은 투수 하나를 완성시키는 건 그만큼 매우 어려웠기 때문.
최대한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았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다른 투수들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잘했다고 나강선을 냅다 필승조에 편성시키면 괜히 아니꼽게 볼 가능성이 농후했으니 말이다.
“에이,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벤치나 지키겠네요.”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처음에는 원래 다 그런 거니까. 적어도 애송이 넌 팀 사정상 2군까지는 안 갈 테니···. 난 초창기에 별 이유도 없이 1군과 2군을 밥 먹듯이 왔다갔다 했어, 인마. 그때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엥? 선생님이 2군에 갔었다고요?”
우선은 벤치를 지키며 박남천과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나강선이었다.
퍼억!
-스트라이크!
“나이스 볼! 나이스 볼!”
물론 그러면서도 경기를 뛰는 선배들을 향한 응원은 잊지 않았다.
그게 막내의 역할이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
늘 그렇듯 나강선은 벤치만 신나게 달구며 시작된 새로운 3연전.
우선 이번 3연전의 시작은 블레이드 헌터스한테 있어 꽤 좋았다.
따악!
[쳤습니다! 라인···! 안쪽! 페어볼! 장타성 코스입니다! 주자들이 모두 홈으로 달립니다!]
[지금은 낮게 떨어지는 공을 기가 막히게 쳤습니다. 기술적인 타격의 승리라고 할 수 있어요.]
시작부터 장타를 터트리며 기분 좋은 선취점을 뽑아낸 것이다.
감독인 윤성진이 손현호를 2번 타순에 배치시킨 게 주효했다.
그가 강한 2번 타자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한 것이다.
덕분에 블레이드 헌터스는 4:1의 리드를 잡았다.
투수진이 약하긴 했지만 선발진은 그래도 그럭저럭 완성이 되어 있는 게 컸다.
선발 투수가 6이닝 1실점으로 퀄리트 스타트를 끊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거 오늘 경기는 무난하게 잡겠는데요?”
나강선은 블레이드 헌터스의 승리를 내심 확신했다.
그만큼 경기의 흐름이 순조로운 것이다.
선발 투수가 호투를 펼쳤고, 블레이드 헌터스 특유의 견고한 수비는 여전했다.
오늘도 손현호가 엄청난 하이 점프 캐치로 안타 하나를 훔쳤고, 외야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다이빙 캐치로 투수한테 힘을 실어주었다.
비록 그 자신은 추격조에 있어 오늘도 등판은 하지 못 했으나, 아무래도 경기의 흐름이 이런 식이면 정말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박남천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쯧쯧···. 아직 모른다, 애송이. 야구는 모름지기 해봐야 아는 법이거든. 괜히 9회 말 2아웃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야.
이처럼 그는 오늘의 경기를 줄곧 주시하고 있었다.
3점차는 충분히 가시권이라고 할 수 있어서였다.
큰 거 하나면 단숨에 역전까지도 가능했다.
앞서 블레이드 헌터스가 소드 윙즈와의 개막전 라이벌 매치 1차전에서 보여주지 않았던가?
방심은 금물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막아주시겠죠.”
나강선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 점수 차를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것 같네요.]
거기에는 이제 블레이드 헌터스가 본격적인 필승조 가동에 나섰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투수 교체!
그에 따라 불펜에서 새로운 투수가 나타나 블레이드 헌터스의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주전 포수인 김창훈과 함께 금방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연습 피칭에 돌입했다.
-흠···. 어떻게든 9회까지만 이대로 가면 될 것 같긴 한데.
박남천은 그 광경을 보며 신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 팀이 다른 건 몰라도 마무리는 확실하니까요.”
나강선이 대답했다.
지금 이 둘이 말하는 것처럼 블레이드 헌터스의 투수진이 열악한 건 맞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붕괴한 수준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강선의 말마따나 마무리 투수는 확실했다.
이름은 김철민.
마무리 투수답게 150km를 가볍게 찍고, 성적도 매년 준수했다.
문제는 이 김철민까지 어떻게 이어주느냐는 거였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필승조는 김철민을 제외하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상 김철민과 아이들 급.
실제로 김철민은 마무리 투수답게 좋은 구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거두는 세이브가 20개도 채 되지 않았다.
필승조가 열악한 탓에 등판 기회가 너무 적은 것이다.
매번 선발 투수가 8이닝을 소화할 수는 없는 법.
결국 필승조가 도중에 바통을 이어받아 김철민까지 이어줘야 할 텐데, 늘 이 과정에서 불을 지르기 일쑤였다.
그래도 올해는 다르기를 바랄 수밖에.
어찌 사람이 매번 못 하겠는가?
필승조 투수들이 올해에는 부디 작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었다.
“김철민! 불펜으로 가라! 몸 좀 풀고 있어!”
우선 블레이드 헌터스는 김철민이 움직였다.
리드를 잡았고, 경기 후반이니 몸을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탁탁탁-!
그는 불펜에서 가볍게 러닝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마운드를 힐끔거렸다.
부디 오늘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선 블레이드 헌터스의 필승조는 시작이 영 순탄치 않았다.
따악!
-와아아아아아아~!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안타!]
[선두 타자가 출루하는군요. 우선은 동점을 목표로 움직여야겠죠.]
곧바로 상대 팀의 선두 타자한테 안타를 허용한 것이다.
초구를 그대로 쳐서 깨끗한 안타를 만들어냈다.
무사 1루의 상황.
스코어는 4:1.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이건 병살 잡아야 좋을 텐데.
“병살 가자-!”
박남천과 나강선은 병살타를 바랐다.
병살타는 아웃 카운트 2개를 한꺼번에 잡으며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는 셈이니 무엇보다 최상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따악!
[잘 맞은 타구입니다-! 계속 뻗어갑니다-!]
파악!
[그대로 좌익수의 키를 넘기며 담장 직격! 주자들이 전부 달립니다!]
연속 안타를, 심지어 이번에는 장타를 맞은 것이다.
좌익수가 헐레벌떡 달려갔지만 너무 잘 맞은 타구라서 포구는 불가능했다.
휙-!
[다행히 중계 플레이가 좋았네요. 주자들은 무사 1, 3루에 묶입니다.]
[지금은 실점을 막았죠. 역시 블레이드 헌터스의 수비는 언제 봐도 참 좋아요.]
그 대신 펜스 플레이를 너무나도 잘해주어 1루 주자를 3루에 묶고, 타자 주자도 1루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1실점과 함께 무사 2루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걸 무사 1, 3루로 막아낸 셈.
-실점을 막은 건 좋은데, 이거 어째 흐름이 영···.
“음···.”
허나 박남천과 나강선은 그 광경에 서로 불안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필승조가 나오자마자 두들겨 맞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명불허전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건 이내 현실이 되었다.
따악!
[아앗-! 큽니다! 타구는 그대로 계속 날아갑니다-! 모든 야수 정지!]
터엉!
-와아아아아아아~!
[넘어갑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동점을 만드는 쓰리런! 경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아예 홈런을 맞은 것이다.
4:1의 스코어가 단숨에 4:4로 바뀌었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리드가 날아간 건 물론이요, 오늘 모처럼 호투한 선발 투수의 승리 투수 요건도 날아갔다.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따악!
[어어-! 또 갑니다! 그대로-!]
터엉!
[다시 한 번 넘어갑니다! 단숨에 역전!]
곧바로 그 다음 타자한테 홈런을 또 맞은 것이다.
백투백 홈런.
스코어는 이제 5:4.
“하아···.”
“어떻게 1이닝을 못 막냐···.”
그로 인해 블레이드 헌터스의 덕아웃은 초상집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줄곧 잡았던 리드를 눈 깜짝할 사이에 뺏겼을 뿐더러 역전까지 허용했으니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