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수가 되었다-49화 (49/88)

49화

짝짝짝-!

“정말 고생 많았다, 찬혁아!”

“우선 몸부터 좀 따뜻하게 해!”

“난로 없나!? 여기 난로 좀 가져와봐!”

블레이드 헌터스는 이찬혁의 귀환에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폭우 속에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지 않았던가?

게다가 도중에는 심판의 묘한 판정까지 있었다.

여러모로 악조건이 많았는데 그 모든 걸 딛고 무실점으로 막았으니 칭찬을 해주는 게 맞는 것이다.

“으아아···. 감사합니다···.”

이찬혁은 그들의 환영에 덜덜 떨면서 겨우 대답만 했다.

비를 쫄딱 맞았다 보니 상태가 좋을 수는 없었기 때문.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때는 몰랐는데, 덕아웃으로 돌아오니까 비로소 춥게 느껴졌다.

이찬혁은 그 과정에서 이내 듣게 되었다.

휙-

“정말 고생 많았어, 찬혁아.”

그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강선의 목소리를 말이다.

그는 이찬혁한테 수건을 내밀면서 말했다.

소드 윙즈의 마지막 타자 다음부터는 오른손 타자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나강선이 8회 2사부터 나가야만 했기 때문.

허나 이찬혁이 1이닝을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막아준 덕분에 그럴 일은 없어졌다.

이제 나강선은 9회에 등판해서 1이닝만 던지면 끝이었다.

그러니까 이찬혁이 여러모로 고마운 것이다.

슥슥-

“에이, 뭘요. 저도 가끔은 이렇게 좀 해야죠. 선배님이 제 승계 주자 막아준 게 몇인데요.”

-이야, 이 녀석도 넉살이 많이 좋아졌네.

박남천은 이찬혁의 대답에 킬킬거렸다.

꽤나 변화가 느껴진 것이다.

제구가 되지 않아 울상을 짓던 소심한 바보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중계진의 말마따나 이찬혁은 이번 경험을 발판삼아 내년에 더욱 성장하리라.

-남은 건 이제 너야, 애송이. 잘할 수 있지?

박남천이 물었다.

그의 시선은 그라운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무조건 잘해야죠. 이제 진짜 저한테 다 달린 거니까요.”

나강선은 거기에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의 시선 역시 그라운드를 향하고 있었다.

마무리 투수 특유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모습.

물론 이 다음에는 블레이드 헌터스의 공격이 남아 있었다.

딱히 나강선이 세이브를 올릴 필요는 없는 만큼 이번 공격에서 추가점을 뽑아내면 훨씬 안정적일 터.

하지만 블레이드 헌터스의 타자들은 그러지 못 했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 삼진! 과감한 피칭을 보여줍니다!]

[바로 승부에 들어가네요. 질질 끌지 않겠다는 것 같습니다.]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삼진 두 개째!]

[공이 참 좋네요. 이런 폭우 속에서 저런 식으로 던지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또다시 삼진-! 세 타자 연속 삼진! 이제 소드 윙즈의 마지막 공격이 이어집니다! 과연 오늘 경기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경기의 변수가··· 이건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처럼 세 명의 타자들이 모두 삼진을 당하며 무기력하게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현재 그라운드 상태가 최악 그 자체이니만큼 땅볼이라도 굴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건만, 그 누구도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 했다.

아쉽지만 이미 벌어진 일.

게다가 마냥 탓할 수도 없었다.

평소보다 쉽지 않은 조건이라는 건 타자 역시 같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까놓고 말해서 추가점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늘 그렇듯 내가 막아버리면 되는 거니까.’

나강선의 이 생각처럼 지금은 블레이드 헌터스가 어차피 2점차로 리드를 잡고 있었으니 막으면 이기는 것이다.

남은 건 고작 1이닝.

이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막아내면 끝이었다.

사실 조건도 나쁜 건 아니었다.

1점차의 살얼음판 터프 세이브도 아니지 않던가?

추가점이고 나발이고 그냥 막으면 승리였다.

게다가 2점차여서 조금은 여유도 있었다.

“후우···.”

스윽-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강선은 몸에 걸치고 있던 야구잠바를 벗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이미 몸은 다 푼 상태였다.

그는 원체 빨리 풀리는 체질 아니던가.

이후에 야구잠바를 걸쳐서 최대한 체온을 유지했다.

이제는 마운드에 등판해서 던지기만 하면 되었다.

“나강선 화이팅!”

“평소처럼만 해! 그러면 된다!”

“잘 던지고 와라!”

블레이드 헌터스의 덕아웃은 모두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장인 유격수 손현호와 포수 김창훈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쳐주기도 했다.

이번에 같이 한번 잘 막아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나강선은 마침내 마운드로 향했는데,

쏴아아아아-!

“우악···! X발! 이게 뭐야!”

그는 덕아웃에서 나가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거였다.

빗줄기가 생각보다 너무 거셌던 것이다.

-뭐야, 애송이. 생각보다 힘드냐?

“너무 심해요! 아예 그냥 폭포수 맞는 것 같아요!”

박남천의 물음에 잔뜩 우는 소리를 내는 나강선이었다.

그만큼 생각보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던 것이다.

오히려 이찬혁과 방금 소드 윙즈에서 등판한 투수가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이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건가 싶은 느낌.

거기에는 박남천이 이내 말했다.

-너무 호들갑 떨지 마, 애송이. 사람은 뭐든 금방 적응하기 마련이거든. 한번 가만히 있어 봐. 그러면 어느 정도는 나아질 테니까.

그는 이처럼 경험어린 조언을 건네주었다.

박남천은 아무래도 육신이 없는지라 나강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비를 맞는 건 아니었으나, 상황 자체는 똑같이 인지할 수 있는데다가 현역 시절에 겪은 무수히 많은 경험이 있는 만큼 제법 깊이가 있는 조언이었다.

“후우···.”

나강선은 박남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짧게 숨을 토해내기만 하는 게 전부였다.

쏴아아아아아-!

여전히 빗줄기는 전신을 강타하는 상황.

“좋아···. 이제는 좀 괜찮은 느낌이네요.”

그래도 계속 가만히 있으니까 나아지기는 했다.

박남천의 말마따나 계속 비를 맞아서 그런지 적응이 되었다.

비 때문에 추운 거만 빼면 괜찮았다.

이것도 공을 계속 던지다 보면 어느 정도 상쇄가 되리라.

‘빗물 때문에 그립감이 조금 어색하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겠다.’

곧 나강선은 피칭을 준비했다.

연습 피칭을 하며 감각 조율에 나섰다.

[블레이드 헌터스는 당연하게도 나강선 선수를 등판시켰습니다. 올해 성적이 아주 대단합니다. 방어율이 고작 1점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인왕 유력 후보로 꼽히기도 합니다.]

[저도 나강선 선수를 올해 신인왕으로 봅니다. 아예 적수가 없거든요. 압도적입니다.]

[그렇다면 나강선 선수는 오늘도 역시 좋은 피칭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글쎄요···. 그건 또 모르겠네요. 오늘 경기에는 워낙 큰 변수가 있으니까요.]

[위원님, 그 말씀은···? 그저 비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해설위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캐스터였다.

해설위원이 말했다.

[나강선 선수도 어디까지나 사람이니만큼 완벽한 건 아니거든요. 특히 오늘은 매우 불리합니다. 정통파 언더핸드 투수여서 그라운드가 이처럼 군데군데 물이 고일 정도로 젖어버리면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올해 막 데뷔한 투수이니만큼 경험이 일천하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제가 아까 8회가 끝날 때 말씀드리려고 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셨죠.]

해설위원의 말에 뒤늦게 조금 전의 8회를 떠올리는 캐스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강선 선수는 역시 호투를 펼쳐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하는 선수인 건 맞으니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해설위원의 말은 여기까지였다.

헌데 공교롭게도 그의 우려는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차박차박···.

“망할, 생각보다 까다롭네요.”

실제로 나강선이 꽤나 애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의 릴리스 포인트는 투구폼 특성상 지면 근처에서 형성되기 마련인데, 오늘은 그라운드가 거의 물에 젖어 있어서 이따금씩 손이 살짝 스치는 것이다.

덕분에 제구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김창훈한테 연습 피칭 때 던진 공 대부분이 제구가 되질 않았다.

평소처럼 던지면 쉽지 않을 듯했다.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야, 애송이. 한번 침착하게 생각해 봐.

거기에는 박남천이 말했다.

그는 무작정 도움을 주기만 하지는 않는 성격답게 우선은 나강선 스스로가 해결책을 찾게 했다.

‘방법···. 방법이라···. 사실 선생님 말씀대로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

나강선은 이내 담담하게 생각에 잠겼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그가 이내 말했고,

-플레이 볼!

동시에 심판이 경기 재개를 알렸다.

그에 따라 나강선은 피칭에 나섰는데, 거기에는 살짝 변화가 생겨났다.

스윽-

그건 바로 릴리스 포인트였다.

릴리스 포인트가 살짝 위로 옮겨졌다.

던지는 팔의 각도를 바꿨다고 해도 무방한 느낌.

덕분에 나강선이 던지는 팔이 고인 빗물을 스치는 일은 이제 없었다.

여기에 좋은 효과는 하나가 더 있었다.

뻐엉-!

-스트라이크!

[나강선 선수의 초구! 140km를 기록합니다! 올 시즌 최고 구속이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군요!]

그건 바로 구속 상승이었다.

팔의 각도가 조금이지만 높아졌으니 그만큼 구속이 빨라지는 것이다.

[역시 나강선 선수는 대단하네요. 그 사이에 해결책을 찾았어요.]

[위원님, 그 말씀은···?]

[간단합니다. 던지는 팔의 각도를 올린 거예요. 지면에 고인 빗물과 스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사실 말은 쉽지만 이게 행동으로 옮기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게 일종의 변칙 투구거든요.]

[오버핸드로 던지는 투수들이 도중에 가끔 사이드암으로 던지는 걸 본 적이 있긴 한데요, 그런 걸까요?]

[바로 그겁니다. 헌데 그게 정말 어려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도 잘 던지기가 굉장히 벅차니까요. 그런데 두 가지 방법으로 던지는 겁니다. 이건 선수 본인의 재능도 굉장히 중요해요. 하지만 나강선 선수가 그걸 해주고 있네요. 역시 올해의 신인왕 유력 후보다워요.]

중계진은 지금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해설위원은 나강선의 변칙 투구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호오···. 이걸 이렇게 한단 말이지···.

지금 상황에 놀라는 건 박남찬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비교적 잘 들어가는 구종을 찾은 다음, 그 구종 위주로 던지는 걸 추천하려고 했다.

헌데 나강선은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사실 이게 더 좋긴 했다.

최대 변수는 바로 제구인데, 그건 여전히 좋았다.

심지어 구속도 상승하지 않았던가?

“사실 일종의 도박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들어가네요. 오늘은 이렇게 던지면 될 것 같아요.”

나강선이 말했다.

은은한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에이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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