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이대로 사우나에만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자니 너무 심심하다.
박남천은 이러한 나강선을 향해 꽤나 흥미로운 제안을 건넸다.
그가 가자고 한 장소는 바로···
“크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으리으리하다니까요.”
현재 나강선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JH 스포츠의 본사였다.
계약 당사자인 나강선은 당연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
JH 스포츠는 현재 한국에서 손꼽히는 에이전시답게 그 규모가 실로 으리으리했다.
그저 구경만 하러 가도 충분히 괜찮은 장소라는 뜻.
그리고 그건 지금 나강선한테 딱 맞았다.
비는 시간이 생겨나지 않았던가?
게다가 대표인 유준호부터 시즌이 끝나거든 언제든 좋으니 꼭 한 번 들러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나강선은 연봉 협상이라는 중대 사항을 앞두고 있는 만큼 들르는 게 맞았다.
따라서 그는 곧바로 JH 스포츠에 연락을 넣었다.
-환영합니다, 나강선 선수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전에 연락을 하자마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심지어 거의 즉답 수준.
역시 최고의 에이전시는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전에 계약했을 때처럼 데리러 오지는 않았다.
그건 나강선 역시 썩 바라지 않는 부분에 속했다.
너무 번거롭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
어차피 버스 하나만 타면 금방 도착이라, 나강선은 버스를 타고 현재 JH 스포츠에 도착한 상태였다.
원체 이런 쪽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터라 올 때마다 감탄하는 건 덤이었다.
JH 스포츠의 입구에 도착한 나강선은 이내 보게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강선 선수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JH 스포츠의 대표 유준호의 비서인 예휘령을 말이다.
그녀는 전에도 그렇듯 검은색의 정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외모가 매우 수려한 편에 속해서 그런지, 정장이 무척 잘 어울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아가씨도 참 미인이란 말이야~.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박남천은 예휘령을 보며 킬킬거렸고, 나강선은 이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위이잉-
둘은 그렇게 JH 스포츠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 언제 봐도 참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나강선 선수님, 죄송하지만 잠깐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현재 대표님께서는 회의 중이십니다. 물론 금방 끝날 겁니다.”
예휘령의 이야기.
당연히 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속했다.
“저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대표님이라면 바쁘신 게 당연할 테니까요.”
그렇기에 나강선은 금방 의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게다가 JH 스포츠에는 용건이 따로 있었다.
“그··· 혹시 잠깐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온 김에 꼭 보고 싶어서요.”
나강선이 금방 이어서 말했다.
약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예휘령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쪽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금방 나강선의 요청대로 안내에 나섰다.
예휘령이 그를 안내한 방향은 다름 아닌 JH 스포츠의 지하 쪽이었다.
대관절 건물 지하에 무슨 용무가 있느냐고 할 텐데, 당연하게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했다.
예휘령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온 유준호는 이내 볼 수 있었다.
“후우···!”
끼이익-!
현재 열심히 재활에 집중하고 있는 김철민의 모습을 말이다.
그렇다.
지금 김철민은 JH 스포츠의 협력을 받아 재활에 힘쓰는 중이었다.
팔꿈치 수술이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재활인 것이다.
거기에는 JH 스포츠가 도움을 주기로 했고, 김철민 역시 기꺼이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JH 스포츠는 No.1 에이전시답게 재활 쪽으로도 도가 텄다.
실제로 지금 김철민 한 명만 JH 스포츠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재활에 힘쓰는 중이었고, 그 결과는 아주 순조로웠다.
JH 스포츠의 재활 보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게 어찌나 대단하던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재기불능 판정까지 받은 선수들조차 재활을 성공적으로 끝마쳐 복귀하게 하여 나온 말이었다.
오늘 나강선이 김철민을 보러 오는 건 당연한 거였다.
같은 팀이었고, 같은 에이전시 아니던가?
“안녕하세요, 김철민 선배님. 오랜만에 뵙네요.”
나강선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괜히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
“···너도 왔구나, 나강선. 오랜만이다.”
김철민이 이내 대답했다.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은 재활 중에도 여전한 느낌이었다.
헌데 나강선은 다른 부분에 살짝 놀랐다.
“너도···라면? 저 외에 또 왔던 사람이 있나요?”
이처럼 다른 사람이 왔었다는 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예휘령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그저께에 윤성진 감독님과 조웅현 코치님이 오셨었고, 어제는 이찬혁 선수님이 오셨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선수님들도 선물과 함께 안부를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예휘령은 이 말과 함께 어제 방문객 목록을 보여주었다.
사실상 블레이드 헌터스의 거의 모두가 다녀간 느낌이었다.
오히려 나강선이 제일 늦은 거였다.
-큭큭, 엄청나게 사랑 받네, 이 친구.
박남천이 짧게 말했다.
이 정도면 지금의 말이 딱 맞는 것이다.
“그러게요. 재활이 절대 쉬운 게 아니라고 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나강선은 중얼거리다가도 이내 말끝을 흐렸다.
흔히들 재활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언제 끝이 날지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평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우울증을 앓는 선수도 굉장히 많았다.
뭐든 끝이 보이지 않는 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김철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내년에 다시 같이 뛸 수 있으리라.
“힘내세요, 선배님. 얼른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나강선이 말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
나강선과 김철민의 만남은 무척 짧게 끝을 맺었다.
김철민의 원체 성격이 과묵한 점도 있었지만 역시 방해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의 재활 페이스는 현재 굉장히 순조로운 편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내년 스프링캠프에 곧바로 참가할 수도 있었다.
그걸 방해할 수는 없는 법.
따라서 나강선은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철컥-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나강선 선수님. 대표님께서 금방 오실 겁니다.”
이후에 그는 회의실로 이동, 유준호와의 만남을 앞두게 되었다.
한창 진행 중이던 회의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그 당돌한 친구 얼굴 좀 보겠군.
예휘령의 말에 나강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박남천은 일종의 만족감을 나타냈다.
유준호는 나강선의 동년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제법 비범한 구석이 있었으니 마음에 드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만나게 될 터.
헌데 나강선은 그러다가 이내 듣게 되었다.
“나강선 선수님, 괜찮으시다면 이거 한번 드셔보겠습니까?”
바로 이와 같은 예휘령의 제안을 말이다.
스윽-
이어서 그녀는 나강선한테 빵을 하나 내밀었다.
“엇, 감사합니다.”
나강선은 금방 그걸 받았다.
때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나강선은 그 빵을 입에 베어 물었는데,
“오···!?”
‘뭐가 이렇게 맛있지···!?’
그 순간 깜짝 놀랐다.
그만큼 맛이 엄청나게 뛰어났기 때문.
시중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빵이 아니었다.
장인의 작품이 분명했다.
-뭐야, 애송이. 갑자기 왜 그래?
“그게··· 빵이 너무 맛있어서요.”
-으이구, 난 또 뭐라고···.
“저, 혹시 하나만 더 먹을 수 있을까요?”
-엥? 그 정도냐?
박남천은 나강선의 요청에 깜짝 놀랐다.
그가 이처럼 식탐을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였다.
헌데 여기에는 또, 의외의 반응이 잇따랐다.
“하나 더··· 말씀이십니까?”
예휘령이 이러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문제는 그녀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했다.
“···? 혹시 제가 뭔가 실수라도···?”
그렇기에 나강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휘령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선 나강선은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스윽-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드시기 바랍니다.”
예휘령이 빵을 하나 더 꺼내서 건네준 것이다.
그런 그녀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가···?’
나강선은 예휘령의 그 모습에 의문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하나 더 받은 빵을 먹었다.
-야, 애송이. 먹는 것도 좋지만 신경은 좀 써. 겨울에 살찌면 안 돼.
이러한 박남천의 잔소리는 덤.
그러던 와중에 마침내 듣게 되었다.
“제가 많이 늦었군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강선 선수.”
유준호가 돌아온 것이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게,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온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거든요.”
나강선은 당연히 그러한 유준호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
지하에서 잠깐 김철민을 만나고 회의실로 이동하니까 유준호가 딱 맞춰서 온 셈이었다.
게다가 좀 기다린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오늘 자신이 갑자기 찾아온 거였으니 말이다.
“하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휘령 씨, 차 좀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유준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예휘령은 거기에 차를 준비하여 내놓았다.
“자···. 그럼, 우선 올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강선 선수. 개인적으로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나강선 선수가 올해 그토록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대성할 거라고 했었지. 역시 보는 눈이 있어, 이 친구.
박남천은 유준호의 말에 문득 중얼거렸다.
그가 올해 나강선과 계약할 때 했던 말을 떠올린 것이다.
나강선의 올해 성적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안목인 셈.
왜 JH 스포츠가 한국에서 No.1 소리를 듣는 건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나강선 선수, 올해 연봉은 얼마까지 원하십니까?”
대뜸 본론에 들어가는 유준호였다.
오늘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거 때문에 만난 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음···. 저는 한 8천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강선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빼어난 성적과는 별개로 인상률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올해는 최저 연봉으로 2700만원을 받고 있었으니 8000만 원을 받으면 인상률이 거의 300%니, 약간 욕심이라면 욕심인 셈.
-2년차에 8천이면 액수가 좀 큰데? 받을 수 있으려나?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JH 스포츠를 믿어봐야죠.”
나강선은 박남천의 말에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올해 연봉 이야기는 시즌 중에도 가끔 나왔으니 한번 믿음을 보내봐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JH 스포츠는 이쪽 방면으로 도가 트지 않았던가?
8천 정도는 능히 받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게 나강선의 계산이었다.
헌데, 여기에는 유준호가 꽤나 의외의 대답을 해주었다.
“조금 실망입니다, 나강선 선수. 금방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셔서 강심장이신 줄 알았는데···. 이런 부분은 영 아니군요.”
후루룩-
그는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표명하더니만 예휘령이 가져온 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이내 말했다.
“무조건 최소 1억입니다, 나강선 선수.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애당초 1억 미만은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만한 가치를 지닌 선수니까요.”
유준호의 대답.
여러모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