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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수가 되었다-57화 (57/88)

57화

정말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이었다.

당연히 그건 유준호와 예휘령, 김철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헌데 이들이 마냥 난데없이 튀어나온 건 아니었다.

말이 휴가지, 복귀를 앞둔 김철민의 최종 점검을 위해 온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현재 그는 재활이라는 이름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한 끝에 달랑 출구만 남겨놓은 상황.

그 시작은 1군 스프링캠프 참가였다.

하지만 그 전에 통증이 재발하거나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만큼 보다 신중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역시 JH 스포츠가 아무리 우수한 시설을 자랑한다고 한들, 영하권의 추운 겨울인 한국에 계속 있는 건 별로 좋지 않은 법.

해외의 따뜻한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유준호는 그냥 괌을 선택했다.

더운 날씨여서 재활에 안성맞춤이었고, 무엇보다 같은 식구인 나강선이 먼저 가 있으니 딱 좋은 조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게 바로 유준호와 예휘령, 김철민이 이번에 괌까지 오게 된 경위였다.

허나 이걸 마냥 좋게 보는 건 솔직히 어려웠다.

“파국이다.”

김창훈이 툭 내뱉었다.

그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솔직히 저 둘은 지금 만나게 해서 좋을 게 없는데···.”

김창훈이 대뜸 파국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강선과 김철민은 지금 블레이드 헌터스에서 가장 애매한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

한 팀에 마무리 투수가 둘이나 될 수는 없지 않던가?

누군가 한 명은 양보를 하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물러나야 좋을까?

과연 이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김철민은 지금까지 블레이드 헌터스에서 고독한 파수꾼이라는 나름 멋진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공을 세웠고, 나강선은 작년 후반기에 갑자기 마무리 투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이드 헌터스의 뒷문을 완벽하게 잠가주었다.

-내년에는 다시 김철민 마무리 가야지.

-그냥 나강선한테 자리 주고 프라이머리 셋업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강선이 반짝한 걸 수도 있음.

-그렇게 잘 던지는 반짝이 본 적 있나?

-괜히 연봉이 1억 6천까지 올라간 게 아님.

-그래도 나강선은 김철민에 비하면 좀···.

-난 오히려 이제 나강선이 더 끌리던데. 진짜 약점이 없어.

-그래봤자 겨우 1년차. 소포모어 징크스도 우려해야 함.

이로 인해 사실 지금 블레이드 헌터스의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틈만 나면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했다.

스토브리그 때는 경기가 없었으니 팬들끼리 자주 의견 교환을 하기 마련인데, 이 문제는 진짜 정답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강선이냐, 김철민이냐.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불안 요소까지 한 가지씩 안고 있었다.

나강선은 역시 뛰어난 신인이 갑자기 나타나면 으레 듣기 마련인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김철민은 이제 막 수술을 끝마쳐서 몸상태가 아직 물음표라는 의견.

심지어 둘 다 일리가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블레이드 헌터스의 감독인 윤성진은 지금쯤 머릿속이 터지기 직전이리라.

행복한 고민인 건 맞는데, 동시에 어려운 문제인 것도 맞았다.

“저 대표···. 일부러 저런 것 같은데.”

손현호가 문득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현재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유준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행보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하는 말이었다.

“하기야···. 강선이가 괌에 갔다는 말을 듣고 따라서 왔다고 했었지.”

“게다가 JH 스포츠 측에서도 마냥 좌시할 문제가 아니야. 둘 다 같은 식구니···. 교통정리가 필요한 일인 건 맞아. 그렇다면 빠르게 하는 게 맞지.”

“흠, 일리가 있네. 1군 스프링캠프 전에 해결되면 딱 좋긴 해.”

손현호의 말에 납득이 가는 걸 느끼는 김창훈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해결 방안도 없이 무작정 만나게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란 말이야···. 혹시 뭔가 따로 생각한 게 있는 건가?”

그는 그러다가도 문득 중얼거렸다.

JH 스포츠는 한국 No.1 에이전시답게 그 능력이 비범했으니 자연히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

“후우, 천국이 따로 없네요.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에요~.”

한편, 유준호는 이번 휴가를 마음껏 즐기는 중이었다.

사실상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JH 스포츠의 대표답게 호화 그 자체.

얼핏 보면 그래도 명색이 한 회사의 대표인데 너무 대놓고 노는 거 아니냐고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준호가 올해 휴가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해 내내 죽어라 일만 하다가 12월에 겨우 짬을 내서 나온 거였다.

실제로 JH 스포츠의 직원들이 유준호한테 제발 좀 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더 나은 환경에서의 재활이 필요한 김철민한테 따로 신경을 썼으니···.

유준호는 워커홀릭이 따로 없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비서인 예휘령하고는 정말 찰떡궁합이었다.

“예휘령 씨도 같이 좀 노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표님. 하지만 저는 휴가 때문에 나온 게 아니니까요.”

이런 상황이 되면 그냥 즐길 법도 한데 예휘령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그녀는 유준호의 말에 손사래를 치는 게 전부였다.

사실 이미 즐길 건 다 즐겼다.

도착하자마자 괌에서만 파는 빵들을 싹 쓸어버린 것이다.

예휘령 본인 입장에서는 이미 필요한 건 다 챙긴 느낌이었다.

뭐, 이 둘은 이런 식으로 이번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

나강선과 김철민은 어떠냐고 할 텐데, 이쪽은 평범했다.

“다리 쪽 보강 훈련이라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더 좋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이처럼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마무리 투수 자리를 놓고 대적하는 입장 이전에 서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김철민은 평소에도 과묵한 성격답게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강선은 이미 소드 윙즈 시절에 다 즐겨서(?) 운동 이야기로 한창 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재활을 해봐서 그런지 이쪽은 나보다 더 박식하네. 역시 마음에 들어, 이 친구.

박남천은 그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김철민을 인정했다.

매번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니 마음에 쏙 드는 것이다.

“후우···. 이제 잠깐 쉬었다가 하시죠, 선배님.”

나강선은 그 과정에서 김철민을 향해 말했다.

이제 휴식을 가져줄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넌 가서 쉬고 와. 난 여기에 있을게.”

김철민이 고개를 저었다.

워낙 휴식하고는 거리가 먼 성격이라 본능적인 거부였다.

허나 이번에는 김철민이 한수 접어야만 했다.

“에이, 계속 이러고 있는 것도 안 좋아요. 몸에서 힘을 빼주는 것도 중요하다니까요.”

꽈악-

“어··· 난 정말로 됐는데···.”

나강선이 막무가내로 끌고 간 것이다.

결국 김철민은 나강선의 손에 이끌려서 바다로 가게 되었다.

“여기 빙수가 참 맛있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그래···. 잘 먹을게.”

이어서 둘은 같이 빙수를 먹게 되었다.

제법 인기가 많은 가게로, 나강선 역시 한 번 먹고 나서는 꽂혔다.

물론 자주 먹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살이라도 찌면 일부러 괌까지 개인 훈련을 온 의미가 없었으니 말이다.

사각-

“어떠세요?”

“응, 맛있어.”

-이 친구의 유일한 흠이라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건가.

박남천은 김철민을 보며 중얼거렸다.

물론 야구 선수로만 보면 아주 사소한 단점에 불과했다.

김철민은 가장 중요한 야구를 잘하지 않던가?

실제로 그가 과묵하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게 멋지다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하, 저도 추천 받아서 먹어본 건데 꽤 맛있더라고요.”

나강선이 히죽 웃었다.

그는 그러면서 김철민과 마찬가지로 빙수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문득 듣게 되었다.

“나강선, 너··· 내가 만약에 마무리 투수 자리 다시 달라고 하면 줄 거야?”

바로 이와 같은 김철민의 목소리를 말이다.

갑자기 날아온 돌직구였다.

-어우, 이 친구 갑자기 훅 들어오네. 깜빡이는 좀 켜주지.

박남천은 김철민의 말에 진땀을 흘렸다.

둘의 지금 상황을 놓고 보면 굉장히 민감한 주제인데 아무렇지 않게 꺼내니 당황할 수밖에.

허나 나강선은 여기에 꽤나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요. 그럴 수는 없죠.”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본래 어떤 보직이건 더 잘하는 선수가 뛰어야 하는 거잖아요. 선배님이 마무리 투수 자리를 원하신다고 해도 순순히 내놓을 생각은 없어요. 스프링캠프에서 저랑 경쟁하시죠. 정말로 원하신다면 저한테서 한번 뺏어보세요.”

참으로 위풍당당한 목소리.

그래도 지금의 발언이 바로 나강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김철민이 지금까지 블레이드 헌터스에서 굉장히 많은 활약을 펼친 건 맞았고, 잘 아는 부분이었지만 그건 이제 별개의 문제였다.

다시 출발하는 입장으로,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는 게 맞았다.

마무리 투수를 다시 하고 싶으면 말이다.

어찌 보면 후배가 날린 선전포고인 셈.

그런데 또, 김철민은 여기에 꽤나 의외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역시 너다운 대답이야, 나강선.”

불쾌해하거나 언짢은 기색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김철민은 나강선의 대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만족한 느낌이 더 강했다.

여기에는 다른 이가 대신 말을 이어주었다.

짝짝짝-

“멋지군요, 나강선 선수. 역시 마무리 투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준호였다.

대뜸 나타난 그는 박수와 함께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 이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보다도 대표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역시 일부러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저한테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나강선은 때마침 유준호가 나타나자 본론에 들어갔다.

어떻게 봐도 그런 식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건 아주 정확했다.

“맞습니다. 나강선 선수도 알다시피 이제는 교통정리가 필요해졌으니까요.”

“하하···. 우산 장수와 소금 장수를 아들로 두신 기분이시겠네요.”

나강선이 중얼거렸다.

이번 일은 JH 스포츠 입장에서 보면 뭘 어떻게 해도 손해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헌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딱히 나강선 선수와 김철민 선수를 경쟁시킬 생각이 없거든요. 단지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자리··· 마무리 투수를 앞으로도 계속 맡아주실 생각이 있는지.”

유준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만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방금 하신 말마따나 나강선 선수는 앞으로도 계속 블레이드 헌터스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해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주셔야 서로가 더 편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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