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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수가 되었다-61화 (61/88)

61화

나강선이 찾아낸 변화는 피칭시 상황에 따라 팔의 각도를 조금 올려서 구속을 상승시키는 거였다.

자연스럽게 오프 스피드 효과까지 노릴 수 있는 만큼 타자들을 현혹시키기 좋으리라.

이건 박남천은 물론이요, 투수 코치와 조웅현도 적극적으로 공감한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투수들도 나강선처럼 변칙 투구를 연마하는 게 어떠냐고 할 텐데, 냉정하게 말하면 이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작년 블레이드 헌터스와 소드 윙즈의 최종전 때 해설위원이 말하지 않았던가?

한 가지 방식만으로도 잘 던지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솔직히 한 가지 방식으로만 잘 던져도 대단한 게 맞았다.

그렇다면 나강선은 도대체 뭐냐고?

간단했다.

조웅현의 말마따나 그는 천재가 맞았다.

변칙 투구는 무엇보다 손끝의 감각이 타고나야 가능한 거였다.

물론 투수 코치와 조웅현은 나강선의 변칙 투구를 철저하게 체크했다.

그걸 연마하는 도중에 투구 밸런스가 깨지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기 때문.

허나 그건 전부 기우에 불과했다.

나강선이 변칙 투구를 연마하면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최고의 제구력을 지닌 투수를 일컫는 아트 피처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뻐엉!

“나이스 보오오오올~!!!!!”

“구위는 어떤 것 같으냐, 창훈아.”

“좋습니다. 페이스도 적당한 게, 나쁘지 않아요.”

김창훈은 조웅현의 물음에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나강선이 한층 더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만족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변칙 투구는 앞서 청백전 때 몸소 겪었던 터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솔직히 타자들은 다 알아도 못 칠 것 같았다.

갑자기 구속에서 원체 큰 차이를 보이게 된 셈이니 말이다.

여기에 나강선은 120km대의 위로 솟구치는 커브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지는 작년 KBO 최고의 구종 가치를 지닌 싱커까지 소유하고 있는 상황.

농담이 아니라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잘할 것 같았다.

작년 성적을 감안하면 그게 가능하겠나 싶었는데, 실제로 공을 받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석에서 보기도 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스피드건에 찍힌 구속은 140km였건만, 체감 구속은 그보다 더했다.

그게 바로 오프 스피드 효과였다.

자고로 타격은 타이밍 싸움.

무려 160km대의 공도 얼마든지 칠 수 있는 게 바로 타자였다.

헌데 오프 스피드 피칭을 통해 투수가 이 타이밍을 절묘하게 빼앗으면 타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악몽 그 자체.

아이러니하게도 작년에 그토록 고생했던 수중전이 나강선한테는 엄청난 경험으로 다가온 셈이었다.

“어떻게 보십니까, 선배님?”

“넌 어떻게 보는데?”

“솔직히 강선이는 그냥 저대로 둬도 될 것 같습니다. 워낙 잘하니까요.”

“음, 나도 같은 생각이야.”

투수 코치와 조웅현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한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코치인데 마냥 가만히 있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이게 더 나았다.

좋을 때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국룰이었다.

타자의 타격폼도 비슷했다.

코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괜히 건드렸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선수들도 은근히 있었다.

타격폼이 아무리 우스꽝스럽건, 투구폼이 희한하건 그런 건 일체 상관 없었다.

몸에 무리만 가지 않는다면 가만히 두는 게 맞는 것이다.

-짜식들,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구만.

박남천은 투수 코치와 조웅현의 모습에 킬킬거렸다.

대화를 나누는 표정만 봐도 쉽게 예상이 되는 것이다.

“후우···.”

나강선은 그저 짧게 숨을 토해냈다.

피칭은 멈춘 상태였다.

그가 이내 말했다.

“코치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강선이 오늘 수고 많았다.”

“가서 편히 쉬어라. 웨이트는 해도 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말고.”

투수 코치와 조웅현은 금방 나강선을 보내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은 오전에만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

스프링캠프라고 해도 매일 죽어라 훈련만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모두가 두렵게 생각하는 부상 악령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휴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이야기로, 오늘이 바로 그 휴식을 부여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오전에만 가볍게 훈련이 잡혀 있었다.

오후에는 선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여도 괜찮았다.

“수고 많았다, 강선아.”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오늘 공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전부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그에 따라 나강선과 김창훈은 같이 숙소로 향했다.

물론 나강선은 그 과정에서 그한테 고마움을 나타내는 걸 잊지 않았다.

불펜 포수가 해도 되는 걸 일부러 김창훈이 받아주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단, 이 둘은 금방 헤어졌다.

오늘의 휴식일은 서로 일정이 미리 잡혀 있어서였다.

김창훈은 당연히 단짝인 손현호와 함께 움직일 예정이었다.

때마침 숙소 근처에 유능한 타격 코치가 있다고 해서 원 포인트 레슨을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

이러니까 자연히 나강선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이제 그는 타격과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강선은 오늘 그냥 마음 놓고 쉬기로 했다.

“앗, 오셨네요, 선배님.”

“내가 좀 늦었네. 미안해, 찬혁아.”

“에이, 아니에요. 저도 방금 나왔어요.”

이처럼 그는 오늘 이찬혁과 함께 주변을 관광할 예정이었다.

모처럼 편히 공기를 쐬며 휴식을 취해주면 좋은 것이다.

“쩝, 김철민 선배님도 같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그 선배님은 원래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사실 김철민한테도 같이 가자고 말해봤지만 금방 거절당했다.

그는 모처럼 자유 시간을 보장받은 만큼 웨이트에 모든 걸 쏟을 요량이었다.

덕분에 코치들만 비상이 걸렸다.

그게 오버 트레이닝으로 이어지지 않게 곁에서 잘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어휴, 황금 같은 휴일에 사내놈 둘이서 같이 관광이라니···.

박남천은 지금 상황에 괜히 투덜거렸다.

모처럼 관광인데 영 모양새가 나지 않아서였다.

“차라리 이런 게 더 나아요, 선생님.”

-에잉, 이런 건 여자도 같이 있어야 재밌지.

“아니에요. 적어도 피곤할 일은 없거든요.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제가 선생님이랑 만나기 전에는 꽤 놀아봐서 잘 알아요.”

-그 경험담 참 무시무시하구나.

나강선의 대답에 저도 모르게 납득이 가는 걸 느끼는 박남천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강선은 이찬혁과 함께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다.

그 내용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애리조나는 작년에도 오긴 했으나, 그때는 지금처럼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주전은 당연히 확정이었고, 변칙 투구라는 새로운 돌파구까지 찾아낸 만큼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관광을 즐겼다.

“어, 어··· 이거 뭐라고 읽는 거지···.”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대.”

“아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달랑 둘이서 움직이는 거였지만 나강선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이찬혁은 비시즌 내내 호주 리그까지 소화했고, 나강선 역시 비시즌 때 괌으로 나가 개인 훈련을 소화했던 만큼 서로 너무나도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니 주변으로 나가 관광만 해도 재미있을 수밖에.

헌데 둘은 그 과정에서 문득 보게 되었다.

“와, 이건 또 뭐지?”

그건 웬 커다란 분수대였다.

어마어마하게 컸고, 그 아래에는 동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던지 동전들의 무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뭐, 보면 대충 알겠지만 동전 던지고 소원을 비는 분수대야. 효험은 제법 있다고 적혀 있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강선은 금방 분수에 적힌 설명을 해석해주었다.

“그럼 당연히 빌어야죠.”

휙-

이찬혁은 얼른 동전을 꺼내 분수대 쪽으로 던졌다.

역시 투수라서 그런지 그 방향은 아주 정확했다.

이어서 이찬혁이 외쳤다.

“···제발 군대 안 가게 해주세요!”

절실한 기도.

이찬혁의 목소리는 필사적인 느낌이 강했다.

-크크, 솔직하구만.

“군대는 되도록이면 안 가는 게 더 낫긴 하니까요.”

박남천과 나강선은 이찬혁의 소원에 이해가 가는 걸 느꼈다.

야구 선수는 물론이요, 운동선수는 군복무를 결코 반길 수가 없어서였다.

거의 2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하지 않던가?

시간도 시간이지만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돌아오면 그 자리가 어떻게 되어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기껏 따낸 주전 자리를 잃고 다시 백업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낫긴 했다.

아니면 그냥 빨리 해결하고 오거나.

나강선은 후자에 속했다.

그래서 그가 소드 윙즈에서 방출 당하자마자 현역으로 입대한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박남천의 가르침을 받고 모처럼 주전 자리를 꿰차도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차피 군대에서 꾸준히 실력을 연마했으니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셈.

물론 다시 가라고 하면 죽어도 안 갈 생각이었지만···.

그렇다면 이찬혁은 도대체 왜 지금 같은 소원을 빈 거냐고 할 텐데, 당연히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소원을 빈 게 아니었다.

‘올림픽이 올해 열리지···. 거기에 국가 대표로 발탁되고 금메달만 따면 되긴 해.’

이처럼 합법적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때마침 올해에 있었다.

도쿄 올림픽이 올해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옛날에 한 번 불의의 사고로 미뤄졌던 거라 일본이 더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

-이 친구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지. 좌타는 확실하게 잡고, 올해 호주 리그에서도 좋았으니. 내년에도 잘하면 데려갈 것 같은데.

“찬혁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죠. 잘하고 왔으면 좋겠네요.”

-무슨 남일처럼 말하고 그래. 분명히 애송이 너도 갈 텐데.

“네? 제가요? 전 이미 해결하고 왔는데?”

올림픽 이야기는 이번 스프링캠프 때 어렴풋이 들었지만 설마 군필자인 자신이 가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한 터라 놀라는 나강선이었다.

거기에는 박남천이 금방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미필들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든. 팀별로 미필을 어느 정도 배분하되, 잘하는 선수는 군필 상관없이 데려갈 거야. 애송이 너는 특히 희귀한 유형이니 작년처럼만 하면 무조건 데려가겠지.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거냐?

“전 원래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멀었잖아요. 만년 2군이었으니까요.”

-흠···. 혹시 가기 싫어?

“오히려 그 반대예요, 선생님. 태극 마크를 다는 건 제 오랜 꿈이었거든요.”

나강선은 박남천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국가 대표는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려 나라의 대표로 뛰는 거였으니 말이다.

군면제 이전에 그런 자리에서 뛸 수 있게 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소원 빌어야겠다.”

휙-

이내 나강선은 동전 하나를 분수대에 던졌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올해 제가 도쿄 올림픽 대표에 뽑히게 해주세요.’

대한민국의 대표로 나가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그런 만큼, 나강선은 속으로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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