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첫 타석에서 초구를 통타하여 2루타를 터트린 야마다 카즈야.
요즘 블레이드 헌터스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철민을 공략해낸 건 확실히 대단한 부분이었으나, 그게 일본팀의 선취점으로 이어지지는 못 했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그대로 삼진! 잔루는 2루였습니다!]
[과감성이 돋보이는 피칭 아주 좋습니다. 역시 김철민 선수다운 피칭이에요.]
야마다 카즈야한테 허용한 건 어디까지나 2루타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앞서 1, 2번 타자들은 깔끔하게 범타로 처리한 터라 누상에 주자들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2루타를 맞았다고 한들, 추가타를 맞아서 적시타만 허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김철민은 곧바로 야마다 카즈야의 다음 타자를 삼진 처리했다.
몸쪽을 포심 패스트볼로 과감하게 찌른 게 먹혀들었다.
“젠장···. 변화구가 올 줄 알았는데···.”
일본팀의 타자는 이처럼 아쉬움을 금치 못 했다.
볼배합에서 역으로 찔러왔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
위기 상황인지라 보나마나 변화구로 손장난을 칠 줄 알았던 터라 더욱 의외였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1회 초 수비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요주의 타자인 야마다 카즈야한테 2루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실점은 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과인 셈.
“좋아! 잘했어, 철민아!”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블레이드 헌터스의 덕아웃은 그 결과를 반겼다.
모두가 덕아웃에서 나와 김철민을 맞이했다.
“투구수가 너무 적은데.”
“오늘은 1이닝 더 가도 되지 않을까요?”
블레이드 헌터스의 코치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김철민이 1이닝을 소화한 건 맞았지만 그 투구수가 겨우 10구에 불과한 까닭이었다.
일본팀의 1, 2번 타자가 빠른 카운트에 승부를 봤다가 각각 땅볼과 뜬공으로 물러났고, 유일하게 안타를 터트린 야마다 카즈야 역시 초구 공략으로 빚어낸 거였다.
그 다음 타자는 삼진이었지만 김철민이 1-2의 카운트에서 곧바로 승부를 나섰던 터라 투구수가 많지 않았다.
“1이닝 더 가고 싶습니다, 코치님.”
이어서 김철민은 그 자신도 내심 2이닝 소화를 바랐다.
정말 오래간만에 선발 투수로 돌아온 셈이었고, 프로 무대에서는 사실상 처음이었으니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 투구수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흠···.”
“좋아. 다음 이닝에도 나가라, 철민아. 대신에 투구수는 무조건 제한이야. 오늘은 20구까지만 던지자. 볼 카운트와 상관없이 무조건 내릴 거다.”
코치들의 판단은 이와 같았다.
이미 불펜에서는 이찬혁이 대기하고 있었으니 두 번째 투수 준비도 된 상태.
썩 나쁘지 않은 타협점인 셈.
물론 불펜에서 대신 소화하는 방법도 있긴 했는데, 실전에서 던지는 것보다는 역시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김철민은 코치들의 말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자신이 괜히 고집을 부린 건데 그걸 들어준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2이닝이라···. 이제 정말 준비하는 느낌이군.
“괜찮은 판단인 거 같은데요?”
박남천과 나강선은 그 광경을 보며 서로 말했다.
이어서 블레이드 헌터스는 1회 말 공격에 나섰는데, 이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따악!
-아웃!
[초구 공략에 나섰습니다만 그 결과는 평범한 2루수 땅볼이었습니다.]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네요. 상대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본 투수니까요.]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그대로 삼진! 2아웃!]
[어우, 이번 공은 진짜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따악!
[높게 뜹니다. 하지만 평범한 내야 플라이. 야수들이 모입니다.]
-아웃!
[그대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잡히며 블레이드 헌터스의 1회 말 공격이 삼자범퇴로 종료됩니다.]
[일본팀 투수도 김철민 선수처럼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요. 오늘 경기는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무기력하게 삼자범퇴로 물러난 것이다.
물론 다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나름 노림수를 갖고 휘둘렀건만, 전부 정타가 나오지 않았다.
구위가 상당하다는 뜻.
일본은 올해 도쿄 올림픽 금메달에 모든 걸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이번 연습 경기 또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실제로 지금 일본 언론은 이번 한국과의 오키나와 연습 경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다.
자신들이 전승을 거두며 좋은 결과를 내고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오늘은 좀 이겼으면 좋겠는데. 보니까 일본 애들 콧대가 너무 높아. 저런 건 좀 꺾어줘야 해.
박남천이 넌지시 희망사항을 밝혔다.
그 자신은 현역 시절에 일본 킬러로 활약했으니 지금 상황을 반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직 1회라서 속단하기는 좀 이르지만··· 오늘은 왠지 될 것 같아요.”
거기에는 나강선이 금방 말했다.
그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
블레이드 헌터스와 일본팀의 연습 경기는 그 수준이 제법 상당했다.
양팀 모두 호수비는 물론이요, 집중력 있는 모습을 선보였다.
덕분에 블레이드 헌터스는 다른 한국팀들과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따악!
[이 타구는 땅볼입니다! 하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군요! 드디어 블레이드 헌터스가 선취점을 올립니다! 스코어는 1:0!]
마침내 일본 팀한테 리드를 잡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계속 0:0의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다가 경기 후반에 1점을 얻었다.
지금 상황이 8회 말 공격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귀중한 1점인 셈.
하지만 그 결과를 마냥 반기기만 할 수는 없었다.
[글쎄요. 최소한 희생 플라이가 나와야 했는데···. 병살타는 너무 아쉽네요. 물론 그래도 1점을 따낸 건 좋지만요.]
왜냐하면 무사 1, 3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통해 얻어낸 점수였기 때문.
물론 일본팀은 당연히 1점이 중요한 상황이니만큼 전진 수비에 나섰다.
허나 블레이드 헌터스의 3루 주자가 거의 타격도 하기 전에 스타트를 끊었고, 타구 역시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았던 터라 그냥 2루와 1루의 병살로 만족해야만 했다.
어쨌든 귀중한 1점인 건 맞았다.
드디어 0의 균형을 깬 셈이니 말이다.
“잘했어, 잘했어!”
“괜찮아! 이대로 이겨버리면 돼!”
실제로 블레이드 헌터스의 덕아웃은 그 결과를 크게 반겼다.
어쨌든 리드를 잡은 셈이니 당연한 것이다.
물론 아직 일본 팀은 9회 공격 기회가 있었다.
그래도 블레이드 헌터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뻐엉!
“굿! 아주 좋아, 나강선!”
그도 그럴 게, 불펜에서 나강선이 9회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
그라면 일본을 상대로도 분명히 잘 막아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군. 애송이, 자신 있지?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 없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선생님~.”
-큭큭, 확실히 너는 구단 우승주까지 훔쳐 마신 애니까 믿음이 간다.
나강선이 평소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모습을 보여주자 피식 웃는 박남천이었다.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니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악!
-아웃!
마침내 나강선이 등판할 때가 왔다.
블레이드 헌터스의 마지막 타자가 평범한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다.
“강선아, 평소대로만 하면 돼!”
“부담 갖지 말고 던져!”
이어서 나강선은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흙이 생각보다 푹신하네.’
마운드에 오른 그는 그라운드를 짧게 훑어봤다.
휙-!
그런 다음 연습 피칭에 나섰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모습.
역시 마무리 투수라는 느낌이 다분했다.
···헌데, 나강선의 그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드디어 저 녀석과 승부를 볼 수 있겠군···.”
그는 바로 야마다 카즈야였다.
야마다 카즈야는 말 그대로 이를 가는 중이었다.
나강선 앞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엎어지는, 꼴불견 그 자체인 모습을 보였으니 그럴 수밖에.
도대체 왜 나강선한테 그렇게나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거냐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또,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한국에서 지금 야마다 카즈야를 주시하는 것과 비슷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나강선을 주시할 수밖에.
그는 돌연 한국에 나타난 최고의 투수 아니던가?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을 수상했고, 거의 리그 MVP급 활약을 펼쳤다.
실제로 일본은 지금 나강선을 경계 대상 1호로 보고 있었다.
한국에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특급 투수이니만큼 당연한 것이다.
그게 운으로 거둔 성적이 아니라는 건 이미 트랙맨 데이터를 통해 깔끔하게 분석한 상황.
보나마나 올해 도쿄 올림픽에도 나오리라.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투구폼이 조금 독특하긴 하지만 나라면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어. 내가 오늘 쓴맛을 보여주지.’
속으로 한껏 자신감을 나타내는 야마다 카즈야였다.
그는 오늘 멀티히트를 터트렸다.
비록 팀은 무득점에 그치고 있었으나, 2루타만 2개를 쳐냈다.
부웅-!
야마다 카즈야는 나강선의 연습 피칭을 보며 똑같이 배트를 휘둘렀다.
미리 타이밍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참고로 나강선과 야마다 카즈야의 대결은 성사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팀의 타자들은 다시 1번부터 나오기 때문.
야마다 카즈야는 오늘 3번 타자였으니 앞의 타자들이 모조리 범타로 물러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 이닝에는 드디어 나강선 선수와 야마다 카즈야 선수가 붙겠네요.]
[야마다 카즈야 선수는 오늘 타격감이 굉장히 좋더군요. 저도 아주 기대가 됩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둘의 대결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 하는 건 중계진도 마찬가지였다.
겸사겸사 상황까지 1:0으로 엄청나게 박빙이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두고 보라지. 내가 크게 한 방 먹여줄 테니···.’
“카즈야.”
“네, 코치님?”
“조심해라.”
“예···?”
나강선한테 어떻게든 한 방을 먹여줄 생각으로 끓어오르던 야마다 카즈야였는데, 그는 그 과정에서 깜짝 놀랐다.
팀의 타격 코치가 대뜸 다가오더니만 의외의 말을 건넸기 때문.
그가 금방 다시 말했다.
“평범한 투수가 아니라는 건 보면 너도 잘 알겠지? 나도 옛날에 한국과 붙었을 때 저런 스타일의 투수한테 호되게 당한 적이 있거든. 쉽지 않을 테니 신중하게 붙는 편이 좋을 거다.”
타격 코치의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는 금방 등을 돌리더니만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코치님이 저런 말씀을···?’
야마다 카즈야는 지금 상황에 적잖이 놀랐다.
그가 지금처럼 말하는 건 여태까지 본 적이 없어서였다.
애당초 타격 코치는 현역 시절에 레전드로 불렸던 이였다.
통산 타율부터가 3할을 훌쩍 넘겼다.
그런데 비슷한 유형의 한국 투수한테 호되게 당했다고 하니 놀라는 게 당연한 것이다.
‘코치님이 괜히 저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는데···.’
야마다 카즈야는 나강선을 힐끔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