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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는 꽃가마를 탄다 (20)화 (20/141)

보석에 보호 마법을 담는 건 그냥 구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나는 아직 보호 마법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원하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떠올려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다시 해보세요.”

샤이탄이 나한테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가벼운 공을 던지면, 내가 마법을 구현해 막는 식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나는 번번이 공에 머리를 맞고는 했다.

아무리 안 아프다고는 해도, 계속 머리에 공을 맞는 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점점 표정이 뚱해지는 내게 샤이탄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하시란 말입니다. 이렇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의 견고한 방어막이 펼쳐졌다. 이렇게 하라고 하면 바로 이렇게가 되냐고.

“수업을 잘 따라오셔서 재능이 넘치시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 기대만은 못하셨나 봅니다. 주세요. 그냥 제가 담아 드릴 테니까.”

게다가 저렇게 속을 긁는 말까지.

“…….”

나는 샤이탄이 내미는 손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그대로 시선을 올렸다. 지겹다는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자 한층 더 열이 올랐다.

“저한테 아이스 스피어를 쏴주세요.”

“예?”

아이스 스피어는 나도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날카로운 얼음을 창처럼 쏘아내는 마법으로, 꽤나 위력적인 마법이었다.

“원하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떠올려야 한다고 했잖아요. 저 공은 맞아도 기분만 나쁘지 별로 아프지도 않아요. 아이스 스피어 정도는 돼야 제대로 위협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러다가 공녀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전 작은 공녀님한테 다리가 부러지고 공작님한테 목이 잘리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목이 잘릴 일은 없을 테니까.”

“다리가 부러지긴 한다는 거잖습니까. 휴, 모릅니다. 저는 공녀님이 원하는 대로 한 겁니다. 두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들면 공녀님이 막아주시는 겁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샤이탄은 내가 오기로 무모한 짓을 벌인다는 얼굴이었지만, 나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파이어 볼을 쐈다가 잘못하면 방에 불이 날 거고, 라이트닝 볼트 역시 주변을 파괴할 위험이 컸다. 아이스 스피어는 그럴 걱정 없이 그냥 내 한 몸 다치면 끝이니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다. 다치면 샤이탄이 치료해주겠지.

……이름이 유치한 건 어쩔 수 없다. 직관적인 이미지가 중요하다나 뭐라나. 사실 마법을 구현하는 데엔 시동어도 딱히 필요 없으니 그냥 설명하고 듣는 사람끼리 부끄러울 뿐이었다.

샤이탄은 계속 다시 생각해보라며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저 인간, 공을 내 머리에 던지는 것에 점점 재미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상한 데서 고집불통입니다. 공녀님은.”

결국 샤이탄이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원래는 이런 동작조차 필요 없는데, 내가 반응하기 쉽도록 보여주는 것이었다.

“갑니다. ‘아이스 스피어’.”

시동어와 함께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한기가 모여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내게로 쏟아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샤이탄이 펼쳤던 방어막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떠올렸다. 몸에서 마나가 쑥, 하고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샤이탄의 아이스 스피어가 내 방어막에 닿는 순간 그대로 바스러졌다. 긴장이 풀린 나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미, 미친놈. 내 머리 쪽으로 쐈어.’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하도 머리를 노리는 게 버릇이 돼서 그만. 그래도 성공하셨으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

매섭게 노려보는 시선을 샤이탄이 요령 좋게 피했다. 확실히 고의는 아니었는지 샤이탄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바꾸어보려는 게 느껴졌다.

“자, 자! 이제 성공하셨으니 그 느낌을 확실하게 각인하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보석에 마법을 새기는 건 제가 도와드릴 테니 일이나 끝내죠. 다 제가 공녀님을 도와드리려다 일어난 일 아닙니까?”

맞긴 한데, 얼음으로 된 창을 사람 머리에 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했으면 몰라.

하지만 나를 정중하게 부축하며 일으켜주는 샤이탄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말리는 그에게 고집을 부린 것은 나였으니까. 결국 나는 한숨을 쉬며 준비해둔 장신구들을 꺼냈다.

“원래 보석에 마법을 담으려면 마나가 꽤 많이 필요합니다. 공녀님이 이제 막 각성한 것치고는 갖고 계신 마나가 많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죠. 하지만 동생과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니, 제가 특별히 도와드리는 겁니다.”

샤이탄은 보석 위에 내가 손을 얹게 한 뒤, 그 위로 자기 손도 얹었다. 어느새 로브에 달린 후드를 다시 뒤집어쓴 채였다.

“집중하세요. 공녀님은 보호 마법을 펼쳤을 때의 그 느낌만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는 다시 보석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보석은 안 보이고 내 손과 그 위를 덮은 샤이탄의 손만 보였지만.

손가락뼈가 두드러진 커다란 손을 보고 있자니 왠지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그냥 눈을 감았다.

“시작합니다. 집중하세요.”

나는 아까 전의 감각만을 생각하려 애썼다. 몸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강대한 마력이 내 손을 지나 보석으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강력한 마법사인 거지.’

“집중.”

샤이탄의 목소리가 평상시보다 몽환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다시 내 모든 정신력을 보석 위로 집중시켰다.

보호막을 펼쳤을 때의 감각이, 내 마력과 샤이탄의 마력이 손끝을 타고 보석의 안으로 들어가 웅크리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직감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다 됐습니다.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낮은 목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베리에게 선물할 귀걸이의 보석에, 남들에겐 보이지 않을 마력이 담겨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뭐 하십니까. 공작님 것도 해야죠.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 말에 나는 아주 잠깐, 정말로 아주 잠깐 후회를 했다. 그냥 남들 다 주는 선물로 고를걸. 그만큼 마법을 다른 것에 담는 작업은 사람의 진을 빠지게 했다.

샤이탄도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아까와 똑같은 자세를 하며 내게 한 마디 덧붙였다.

“오후에 있을 작은 공녀님 수업은 취소하는 게 나을 겁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잠만 주무셔야 할 테니까요.”

나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런 몸을 이끌고 베리를 가르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가뜩이나 베리는 생일날 양부모님을 공작저에 초대한다는 소식에 평소보다 더 기운이 넘치는 상태인데.

“자, 다시 갑니다.”

“…….”

그 말과 동시에 방금 전 느꼈던, 하지만 아직은 생경한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대부분의 마력은 샤이탄이 감당하고 있는데도,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끝났네요. 둘 다 아주 잘 마무리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공녀님.”

이미 한 번 해본 일이라 그런지, 처음보다는 더 익숙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게 끝나자마자 내게 당장 서 있을 힘도 없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샤이탄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쓰러지는 내 몸을 자연스레 부축해주며 말했다.

“제가 오늘 또 공녀님 목숨을 구해드린 겁니다? 혼자 하셨으면 돌아가셨을 겁니다. 농담이 아니라.”

그 말이 맞았다. 빈말이 아니라 지금 난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마력 폭주로 쓰러졌을 때랑 몸 상태가 비슷한 것 같았다.

샤이탄은 늘어진 나를 안아 들어 소파에 눕혀주고는,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제 어디 가서 당당하게 마법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다 배우셨네요! 이것 참, 개운합니다.”

사람을 무슨, 해치워야 할 과제처럼 말하고 있어…….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뜨려고 했지만, 시야가 자꾸만 흐려졌다. 흐려지는 시야로 보이는 샤이탄의 얼굴이 평상시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주무세요. 다른 분들께는 마법 연습을 하다 잠드셨다고 전해드릴 테니까.”

목소리도 조금, 다른 것처럼 들렸는데…….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가 없었다. 능력 이상의 힘을 사용한 대가는, 시간이었다. 비어버린 마나를 회복할 때까지 잠든다고 했었나.

“…….”

샤이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몸 위로 푹신하고 따뜻한 담요가 덮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곧, 완전히 수마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와 베리의 생일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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