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는 꽃가마를 탄다 (29)화 (29/141)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커다란 그림자가 내게 손을 들어 올리며 위협한다.

술과 기름에 찌든 옷소매가, 위협하듯 구르는 발소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큰 목소리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만든다.

하지만 저 손이 내게 닿을 일이 없다는 것만은 안다.

공작이 내 손을 잡고 고아원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원장이 날 직접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꿈……이지?”

눈을 뜨자 그 시절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천장화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이쪽이 꿈인지, 저쪽이 꿈인지.

‘제도로 떠나는 날이라고 공작저가 주는 선물인가.’

고아원에 있을 적, 툭하면 내게 손찌검을 하는 시늉을 하던 원장이 나오는 꿈이라니. 정말이지, 더럽게 상쾌한 아침이었다.

벽 너머로도 분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공작가의 모든 인원이 제도로 떠나는 건 처음이었으므로, 사용인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정신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난 마차 여행을 해본 적도 없으니 무슨 짐을 챙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한나가 없었으면 뭐 하나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이 정도만 챙겨가셔도…… 충분할 겁니다. 어차피 자잘한 건 제도에서 구해도 충분하니까요.”

중간에 짧은 침묵이 있었던 건, 아마 내 짐가방이 지나치게 단출했기 때문이리라. 제도로 챙겨갈 만큼 귀하고 값진 건 애초에 몇 개 있지도 않았다.

베리의 짐가방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나는 새삼스레 퐁파듀 부인이 마차 몇 대를 끌고 공작저를 찾아왔던 때를 떠올렸다.

나와 베리의 짐을 다 합쳐봤자 커다란 짐가방 네 개가 전부였다. 이걸 싸는 데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마담 퐁파듀가 드레스를 마차에 싣는 덴 대체 얼마나 걸렸을까. 드레스를 옮기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을 것 같았다.

사람 여섯이 마차 하나를 타고 가는 건 여러 의미로 무리였기에, 우리는 셋씩 나눠 마차를 타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공작과 베리와 같은 마차를 타기로 했다. 삼 형제가 타는 마차에 베리나 내가 끼는 건 여러 의미로 재앙이었으니 다행이었다.

다행이라고, 출발한 지 세 시간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짓을 매년 해야 된다고?’

마차의 승차감은 최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공작가에서 사용하는 마차가 싸구려일 리도 없으니, 다른 귀족들은 이보다 더 끔찍한 시간을 감내해가며 영지와 제도를 왕래한다는 소리였다. 아르뉴 부인을 다시 만난다면 박수라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가관인 건, 공작과 베리는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근본적인 이유조차 공감해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누가 그리젤 아니랄까 봐 선천적으로 튼튼한 몸을 타고난 그들은 이런 마차를 타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두 사람 다 말은 안 했지만 나를 툭 치면 죽을 정도로 연약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다.

“나는 말을 타고 사흘을 밤새 달린 적도 있어…… 네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 오데트. 마을에 도착하면 쿠션이라도 더 챙겨달라고 말해두마.”

“언니, 괜찮으세요? 저도 공작저에 올 때 마차를 타고 왔지만 괜찮았는데……. 진작 언니한테 물어라도 볼걸…….”

이런 두 사람과 한 마차를 타고 가려니 이젠 내가 비정상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괜찮, 아요. 그런데 마을까지는…… 얼마나, 남은 거죠?”

“한 세 시간 정도 더 가야 도착한단다. 늘 거기서 머물렀거든.”

세 시간이라는 말에 나는 조용히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대로 토를 할 것 같았다.

“…….”

공간 이동 마법은 아직 이르다는 샤이탄의 멱살이라도 잡고 배워둘걸, 하고 후회하기를 수천 번. 아침에 떠난 마차는 노을이 지는 저녁이 되고 나서야 공작이 늘 머무른다는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베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마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혼자 내렸다간 꼴사납게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마차에서 내린 삼 형제가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저 치가 떨릴 뿐이었다.

‘너희가 비정상인 거라고, 너희가.’

“공작님! 언니가 조금 괜찮아지면 마을을 좀 둘러보고 와도 될까요? 처음 온 곳이라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요!”

베리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난 지금 당장이라도 침대에 쓰러져서 의식을 잃고 싶은 마음뿐인데, 구경? 걸어서?

“……한 삼십 분 정도만 쉬면,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신나서 반짝거리는 베리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거야 상관없지만, 너희 둘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인데…… 미, 아니다. 한나와 수잔이라고 했던가. 시녀들과 기사 몇 명을 데리고 가도 괜찮다면 좋다. 대신 완전히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온다고 약속하려무나.”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런데 기사님들은 조금 멀찍이서 따라오시면 안 될까요? 이런 마을에서 기사를 데리고 다니면 모두 도망 다닐걸요.”

공작은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냐고 묻다가, 베리의 무력과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흔쾌히 그렇게 말해두겠다며 수락했다.

은근히 공작이 거절해주기를 바랐던 나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슬픔에 빠진 나를 건져낸 건 활기찬 베리의 목소리였다.

“언니, 언니. 조금 피곤하셔도 마차 때문에 피곤한 건 걸으면 빨리 나아진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바람도 쐴 겸 같이 산책해요!”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한 제안이었구나.’

방금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지만, 베리의 말을 들으니 잠깐 산책할 힘쯤은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아주 잠깐 다시 마차 안에 앉아서 쉬다가 베리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베리는 오랜만에 보는 마을 풍경이 반가운지 나를 반쯤 부축하며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공작님께서 시간이 되면 언제든지 부모님을 보러 가라고 허락해주시긴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야 말이죠! 새벽엔 공작님, 오전에는 보좌관, 오후에는 언니한테 시달…… 아니 언니랑 보내는 시간은 즐겁지만! 아무튼 그렇게 바쁜데 대체 언제 시간이 되냐고요.”

하긴, 베리의 가족들이 공작저에 초대된 적은 있어도 베리가 그들을 보러 나간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주장도 강하고 성격도 있는 아이가 지금까지 반항 한 번 안 하고 이런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는 게 기특할 정도였다.

즐겁게 말을 하던 베리가 별안간 목소리를 낮추며 내게 속삭였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도에 도착하면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진 못할 것 같거든요. 분명 보는 눈이 많으니 조심하고, 위험하니 조심하고,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을 것 같단 말이에요. 공작님은 안 그러셔도, 일단 소공작은 그럴 것 같아요.”

깐깐한 미하일의 성격을 생각하면 베리의 예상이 아예 틀린 건 아니었다. 마차에서 괴로워하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래, 베리 너는 다 생각이 있구나.’

제도에 도착하게 되면 알현식부터 데뷔탕트, 무도회로 정신없이 바쁠 것도 사실이고, 그러고 보면 난 이런 마을을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 공작저로 온 뒤로는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제가 자랐던 마을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며 웃는 베리를 보며 나도 함께 웃었다.

‘샤이탄이랑 갔던 곳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구나.’

‘여긴 다른 곳들보단 훨씬 풍요로운 편입니다. 아무래도 공작저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치안도 좋은 편이고 말입니다.’

샤이탄은 내 마법이 막힐 때마다 한 번씩 나를 밖으로 데려가 주고는 했다. 여러 사정이 있어 아주 멀리까지는 못 가지만, 자기가 원래 실력을 다 발휘하면 제국의 끝과 끝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는 말도 빼먹지 않으며.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제국의 끝과 끝이면 그 거리가 얼만데. 샤이탄이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사실이지만 책에도 그런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냥 허풍이었겠지.

“앗, 언니. 이것 보세요. 닭꼬치예요! 이런 데서 드셔보신 적 한 번도 없으시죠? 이게 은근히 맛있어요!”

‘샤이탄과 처음으로 먹었던 길거리 음식도 닭꼬치였는데.’

하지만 먹어본 적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처음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닭꼬치를 입에 물었다. 샤이탄과 함께 먹었던 닭꼬치의 맛보다는 못했다.

베리는 산책이 아니라 먹으러 나온 사람처럼 이곳저곳 음식 냄새가 나는 거리를 두리번거렸다.

“앗, 저기 츄러스도 파네요! 이건 파는 데가 많지 않은데, 기름이 또 비싸잖아요. 여긴 좀 여유로운 마을인가 봐요.”

그건 또 몰랐네. 샤이탄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했었는데. 그럼 샤이탄은 꽤 부유한 곳에서 자라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사이좋게 베리와 츄러스를 반으로 나눠 먹기로 했다.

이건 전에 먹었던 것보다 시나몬 맛이 더 강하게 났다. 원래 내 입맛에는 이게 더 잘 맞는데도, 어째 전에 먹었던 것보단 별로라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베리가 그런 나를 보고 물었다.

“앗, 언니. 별로 입맛에 안 맞으세요? 그럼 제가 다 먹을까요?”

“아냐. 맛있어. 그냥…… 음, 처음 먹어보는 거라 그렇단다. 공작저에서는 이런 걸 먹을 기회가 없잖니.”

베리는 내 말에 금방 수긍하고는 다시 매의 눈으로 간식거리를 파는 곳을 찾아 훑기 시작했다. 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왠지 양심이라고 부르는 곳이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어째 날이 가면 갈수록 거짓말만 늘어가는 것 같네.’

“헉, 저긴 샌드위치를 파네요. 원래 이런 시간엔 다 떨어져서 못 먹는데. 맛이 없는 덴가? 보기엔 맛있어 보이는데. 하지만 저걸 먹으면 저녁을 제대로 못 먹겠죠? 저야 괜찮지만, 언니는 양이 적으시니까…….”

“아냐.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츄러스처럼 우리 둘이 나눠 먹으면 되잖니.”

‘그때도 샤이탄이랑 나눠 먹었었지. 그것보단 크기가 작아 보이니까 괜찮을 것 같아.’

베리는 내 말에 신이 나서 자기가 가서 사 오겠다고 달려나갔다. 수잔이 급하게 아가씨! 하고 소리치며 쫓아가는 모습을 유쾌한 기분으로 바라보던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 틈이 날 때마다 샤이탄 생각만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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