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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질투는 남자를 눈멀게 한다. (19/459)

19. 질투는 남자를 눈멀게 한다.2018.02.14.

16550673725812.png“어째서 서장이 온 것일까요? 출동한 경찰들에게는 그 일을 덮으라고 당부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선우진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그러자 다카하시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선우진이 예상했던 답을 내놓는다.

16550673725819.png“실은 내가 불렀다네, 사이온지 군. 이라부 서장은 나와 막역한 사이거든.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모르는 척 넘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자, 들어오라고 해도 될까?”

그의 말들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이 일본인 사업가가 경철서장을 뒤에 낀 채 꽤나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그러면서 이권을 챙겨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경찰 서장 역시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금전적 보상을 받았을 터다.

16550673725812.png‘그래서 이렇게 급히 달려왔군, 이 너구리가…….’

선우진은 가짜 미소를 지은 채 다카하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혹시라도 이 사건이 경찰서장의 경질로까지 비화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든든한 뒷배가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가 내심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메구미 때문에 부상당한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16550673725812.png“아아…… 꼭 사과 같은 것을 받아야 할 만한 일은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면…… 메구미 양의 이야기는 묻어 두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죠.”

선우진은 마지못해 수락하는 척하면서도, 메구미를 보호했다. 차마 그것까지는 부탁하기 어려웠던 다카하시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16550673725819.png“아이고, 그래주겠나! 고맙네, 고맙네! ……어이! 들어오게, 이라부!”

유리창 안쪽만 주시하고 있던 경철서장은, 다카하시의 손짓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16550673725837.jpg“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인천경찰서장 이라부 하치로라고 합니다!”

16550673725812.png“노고가 많습니다. 사이온지 유우야입니다.”

선우진이 답을 했는데도 이라부는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16550673725837.jpg“식민지에서 당하신 불의의 사고에 얼마나 심려가 크십니까! 그러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 태산처럼 크다 하겠으나, 한 번만 너그러이 기회를 주신다면 저 이라부의 직을 걸고 반드시 범인들을 물색하여……!”

16550673725812.png“그만!”

선우진은 가볍게 손사래를 쳐서 그의 말을 끊었다.

16550673725812.png“인천부의 치안에는 매우 감탄하고 있던 바입니다. 이것은 경찰력과 무관하게 나의 젊은 혈기로 일어난 사고였으니 더 일을 키우지 마십시오, 이라부 서장.”

16550673725837.jpg“저, 정말이십니까? 사이온지 님!”

이라부는 그제야 굽혔던 허리를 반쯤 세우고 선우진의 얼굴을 살핀다.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16550673725812.png“경찰서장을 앞에 둔 이 엄중한 자리에서 어찌 허언을 하겠습니까. 이제 그 일은 서로 잊기를 원합니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들 역시 내 부탁을 받아 함구했던 것이니, 부디 처벌하지 말아 주시길.”

경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면 가장 귀찮아지는 것은, 불법으로 먹고 살고 있는 야마다다. 범인을 색출한답시고 도박장이나 유흥업소 등을 경찰이 뒤지고 다니면 얼마 안 가 돈이 말라 버리고 말 것이다. 선우진의 도박 자금으로 활용해야 하는 중요한 돈이……. 그리고 그 다음으로 피해를 볼 사람들은 당연히 조선인들이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아까의 그 스틱 걸들처럼 별것도 아닌 일들로 조사를 받고, 갖은 수모를 당하게 되리라. 거기에 더해서 자신에게 중간보고를 한답시고, 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하쿠에 들락거리게 되는 것도 싫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그저 이 경찰서장을 잘 구슬려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이런 선우진의 진심을 모르는 이라부는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된 것에 마냥 기뻐했다. 그는 얼른 제복 호주머니 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16550673725837.jpg“사이온지 님의 하해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봉투와 이라부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선우진이 물었다.

16550673725812.png“그게 뭡니까, 이라부 서장?”

16550673725837.jpg“송구합니다!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사죄의 마음을 담아 위로금을 조금 준비했습니다.”

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선우진은 짐짓 어조를 바꾸어 차갑게 내뱉었다.

16550673725812.png“……이라부 서장, 그대는 지금 나를 능멸하려는 겐가?”

16550673725837.jpg“아! 아니…… 아니 결코 그런 것은……!”

그때까지 친절하게 경어를 사용하던 선우진이 갑자기 하대를 하자, 이라부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는다.

16550673725812.png“후우…….”

경직되어 있는 그를 바로 앞에 두고 선우진은 열을 삭이는 사람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겨우 진정했다는 듯 작게 말했다.

16550673725812.png“이런 것 필요 없습니다. 이라부 서장. 우리가 앞으로 한두 번 볼 사이도 아니고.”

16550673725837.jpg“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라부는 연신 땀을 훔치고, 덩달아 긴장했던 다카하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댔다.

16550673725819.png“그래, 이 사람아! 가끔 구락부에도 놀러 와서 인사드리고, 또 같이 포커도 하고 그러면 되는 것 아니겠나!”

16550673725837.jpg“그, 그래야죠! 며칠 내로 꼭 찾아뵙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이라부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16550673725812.png‘참…… 잘 돌아가는군. 인천부라는 곳이 이 정도로 요지경이었던가…….’

두 사람을 보며 선우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엄연히 법으로 금지된 도박을 하러 오라고 경찰서장에게 권하는 다카하시나,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러겠노라 대답하는 경찰서장이나, 대단들 하다. 법을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도구라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짓들이다.

16550673725812.png“그런데 두 분이 바바를 만나 함께 오신 것이 의아하군요. 설마 미리 약속도 정하지 않으시고 제 숙소로 찾아가셨던 것은 아니겠지요?”

이쯤에서 한 번 경고를 해 둬야겠다는 생각에 선우진이 넌지시 물었다. 돌아가려던 두 사람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16550673725819.png“하하……! 사이온지 군도 참, 우리가 그 정도로 예절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나? 섭섭하구만.”

다카하시는 뻔뻔하게도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아마도 나가자마자 곧바로 야마다에게 연락을 해서 입단속을 시키겠지만, 이로써 이제는 아무 때나 불쑥 하쿠로 찾아올 생각 같은 건 결코 하지 않도록 만든 셈이다.

16550673725812.png“그럼 구락부에서 뵙겠습니다.”

두 사람과 헤어지고 난 뒤 선우진이 차에 오르자, 그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던 바바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16550673783918.png“하아…… 네놈은 대체……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라도 한 거냐? 그냥 대충 주는 대로 받고 보낼 것이지! 천하의 경찰서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갖고 놀면서 겁을 주질 않나…… 윽박을 지르지 않나, 보는 내내 조마조마해서 죽는 것만 같았다!”

16550673725812.png“어쨌거나 잘 처리되지 않았나, 바바. 그 정도 배짱도 없으면 도박으로 먹고 사는 일은 못한다. 이제 저 경찰서장은 내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언젠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다. 다카하시는 말할 것도 없고.”

16550673783918.png“큭,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처세도 말재주도 대단하구나. 그런 재주를 가진 놈이 며칠 전까지는 거지꼴을 하고 싸구려 하숙집에서 묵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야.”

16550673725812.png“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 밑천이 달라진 거지. 옛말에도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고 하지 않나. 빈털터리 조선인일 때는 처세고 화술이고 뭐고 다 의미 없는 거다. 대화라는 것은 일단 상대가 내 말을 들어줄 마음이 있어야 시작되는 것이니까.”

선우진은 달리는 자동차 뒷좌석에 등을 기대며 대꾸했다. 바바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16550673783918.png“으음…… 역시 돈과 뒷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세상인가.”

16550673725812.png“뭐, 그런 거지. 그런데 너희 오야붕은 경찰을 끼지 않고 어떻게 인천에서 이만큼이나 세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인가? 아야야…….”

질문을 하던 선우진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는 다급한 상황이어서 꾹 참고 있었지만, 두들겨 맞은 온몸이 점차 더 쑤셔 온다.

16550673783918.png“우리에게는 경찰보다 더 든든한 후견인이 있다. 드러내기는 좀 곤란하지만. 그나저나 네놈, 그 손으로 도박을 할 수 있겠나? 이제 조금 있으면 저녁인데 말이야.”

바바가 뒤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녀석의 말대로 선우진의 주먹은 퉁퉁 부어올라 있다. 해군들의 얼굴을 있는 힘껏 후려쳤을 때 삐끗한 탓이다.

16550673725812.png“아아, 어쩔 수 없지.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사실 그곳에서는 손으로 기술을 쓸 일까지는 없고. 어쨌거나 그것도 일이니까 말이야. 오늘만 해도 이미 총 700원가량을 날렸는데, 숙소에서 가만히 쉬겠다고 하면 너희 오야붕이 좋아하겠나?”

선우진이 웃으며 묻자, 바바는 몸을 뒤로 돌려서 손을 내밀었다.

16550673783918.png“당연히 안 좋아하시겠지. 어디 손이나 좀 내놔 봐.”

16550673725812.png“남자 손은 별 취미 없는데…….”

16550673783918.png“흥, 그러실 테지, 바람둥이 자식. 오늘도 다카하시 딸년의 그 야들야들한 손을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 댔을 테니까……. 으음, 여기가 조금 어긋났군.”

툴툴거리며 선우진의 손등을 주무르던 바바가 힘을 꾹 주자,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짜릿한 통증이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픈 것은 잠시뿐, 이내 불편하던 부분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게 느껴진다.

16550673725812.png“으음, 확실히 나아졌다. 유도를 배운 모양이군. 하지만 바바 네가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다니 의외구나. 드디어 나에게 고분고분해지기로 한 거냐? 그렇다면 뒷자리로 옮겨 와서 어깨도 좀 주물러라.”

선우진이 손을 흔들어 보며 말하자, 바바는 콧방귀를 뀌면서 웃었다.

16550673783918.png“개똥같은 소리! 손은 그 재수 없는 경찰서장 놈이 쩔쩔 매는 꼴을 구경하게 해 줘서 낸 요금이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오늘 실수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 밤이 되어 구락부의 포커가 시작되었을 때, 선우진은 역시 빈틈이 없었다. 단순히 실수를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제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실력과 언변으로 판을 좌지우지하고, 상대와 구경꾼들의 마음을 통 속의 주사위처럼 마구 흔들었다. 덕분에 포커 테이블 주변의 구경꾼들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16550673725837.jpg“참으로 이상하군요. 저 사이온지라는 사람……. 냉정히 따져 보면 잃고 있는데, 어쩐지 계속 이기는 것 같이 느껴진단 말입니다.”

16550673725837.jpg“저도 그게 이상해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만, 도무지 모르겠군요. 이유가 뭘까요?”

16550673725837.jpg“제 생각에는 늘 유쾌하게 웃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작게 이기든, 크게 지든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린 적이 없어요. 게다가 상대방 패와는 무관하다는 듯 거침없이 해 대는 저 배팅이 특이하고요.”

16550673725837.jpg“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몇천 원이 대단히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잃으면 화가 나고, 따면 기분 좋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저 청년의 얼굴에는 도무지 그런 변화가 없어요. 그저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기만 합니다.”

구경꾼들은 저마다 손에 술잔을 들고, 한마디씩 떠들어 댔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게 매료되어 있는 것은 백발의 사이토 이사무 사장이다. 그는 지팡이를 짚은 채 바로 근처의 안락의자에 앉아, 스모라도 관전하는 자세로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촤라라락-! 칩이 굴러다니는 소리와, 자욱하게 피어나는 담배 연기 속에서 밤이 깊어간다. 테이블에 앉은 지 두 시간여가 지나갔을 때, 선우진은 또 한 번 구경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6구째의 카드를 받았을 때까지 마츠이 소좌가 잭 투 페어로 가장 앞서 있는 판이었다. 그의 옆에 앉은 일본인 은행장의 바닥 패는 에이스 원 페어, 야마다는 킹 원 페어. 다카하시는 이미 패를 꺾었고, 선우진은 8, 9, 퀸에 이어 4를 받았다.

16550673839517.jpg“잭 투 페어라, 운이 좋군요. 그럼 예의상 300원 정도만 걸어 볼까요?”

마츠이 소좌의 배팅에 나머지 사람들이 차례로 콜을 했다. 선우진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칩을 차곡차곡 쌓은 뒤 중앙으로 밀어 보냈다.

16550673725812.png“레이즈 하겠습니다. 배팅 금액을 1,300원으로. 이리 싱겁게 이 판을 흘려보낼 수는 없지요.”

선우진은 멍이 든 얼굴을 미소로 채우며 천 원을 더 던져 넣자, 구경꾼들의 입에서 가볍게 탄성이 터졌다.

16550673725837.jpg“오오! 저것 보라고! 저 호탕함이 멋진 거야!”

16550673839517.jpg“으음…….”

의외의 일격을 당한 마츠이 소좌가 가볍게 한탄하며 물었다.

16550673839517.jpg“오늘도 어지간히 흔들어 대는군요. 도대체 뭘 쥐었기에 그렇게 겁 없이 덤벼드는 겁니까? 사이온지 선생.”

아직 히든카드를 받기도 전에 그의 바닥 패는 이미 잭 투 페어. 잘해야 스트레이트밖에 쥐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선우진이 저리도 과감하게 레이즈를 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우진은 빙긋 웃었다.

16550673725812.png“글쎄요……. 그걸 알려 드린다면 이 게임에 무슨 묘미가 있겠습니까? 미지가 주는 두려움과의 싸움. 그것이 바로 도박의 재미인 법이 아니겠소?”

16550673839517.jpg“그렇게 하다가 내게 잭이 한 장 더 있으면 대체 어쩌시려고?”

마츠이 소좌는 칩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겁을 줘 봤다.

16550673725812.png“그것 또한 흥미로운 한 판의 승부가 아니겠소이까.”

선우진은 여전히 조금의 긴장도 없이 받아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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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대답에서 아무런 단서도 읽어 내지 못한 마츠이 소좌는, 다시 한 번 선우진의 바닥 패를 살폈다. 가장 마지막에 떨어진 카드는 하트의 4. 계속 콜을 하던 그가 저것을 받자마자 이렇게 과감한 레이즈라니…… 당최 그 이유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16550673839517.jpg‘4를 두 장 더 들고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퀸 투 페어? 그것도 아니면 이미 스트레이트가 완성되었나? 아니, 아니지……. 그렇다면 4가 떨어졌을 때 레이즈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전부터 공격적인 배팅을 했을 테지.’

마츠이는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을 긁적였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의 바닥 패에도 4는 깔려 있지 않다. 그러나 후하게 쳐 줘서 4 트리플이라고 해도, 결코 잭 풀 하우스는 이기지 못한다.

16550673839517.jpg‘차라리 나도 곧바로 맞레이즈를 했어야 했는데…….’

한 박자 늦은 후회에 입맛을 다시면서, 마츠이는 길게 고심을 했다. 언제나 안전한 게임을 추구하면서 최후의 한 방을 기다리는 그의 성향이라면, 당연히 여기에서 패를 꺾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사이온지라는 것 때문에 그 간단한 결정을 내리기가 망설여졌다. 의외로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으면서 블러핑을 하는 것일 확률도 높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사이온지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 줬으니까.

16550673839517.jpg“으음…… 좋소. 어디 콜을 해 봅시다.”

마츠이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천 원을 받았다. 일본인 은행장이 난감한 표정이 되어 또 갈등을 시작했다.

16550673725837.jpg“허허…… 참으로 탐스러운 떡임에는 분명한데, 그것을 먹으려면 나 또한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군요.”

순식간에 부피가 커진 칩 더미를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리자, 선우진은 웃으며 대꾸했다.

16550673725812.png“독을 먹으려면 접시까지…… 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도박이라면 크게 한 번에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16550673725837.jpg“하하하.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그러나…… 독을 함부로 먹기에는 또 딸려 있는 입이 있어서.”

은행장은 도리질을 하면서도 결국 1000원을 더 집어넣었다. 선우진의 신호를 읽은 야마다는 패를 꺾었고, 세 명을 위한 히든카드가 돌려졌다.

16550673725837.jpg“크군! 이 판 커!”

구경꾼들이 침을 삼키며 테이블 주변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다. 이미 깔려 있는 돈만 해도 5천 원이 넘기 때문에, 만약 선우진이 더 과감한 배팅을 한다면 만 원을 넘기는 것도 가능하다. 우연히도 남은 세 명 모두 다들 4,000원 이상의 판돈을 남겨 두고 있다. 물론 그 역시도 선우진이 설계한 것이지만.

16550673725837.jpg“포커 한 판에 만 원! 허! 말해 놓고 보니 기가 막히는군!”

구경꾼들은 괜히 자신들이 설렌다는 듯 탄성을 내질러 댔다. 조선인 노동자 40명의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 단 몇 분 만에 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는 상황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거덜이 나서 구경을 하고 있던 후지카와 사장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다.

16550673725837.jpg“분하구만! 이런 멋진 판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나도 좀 더 해 보는 건데! 이런 걸 먹어야 폼이 나는 건데……!”

적어도 오백만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후지카와이지만, 그 재산 규모와 무관하게 도박에서 큰 판을 싹쓸이했다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16550673725837.jpg“배팅 순서는 잭 투 페어부터입니다.”

딜러가 마츠이 소좌에게 말했다. 마츠이는 히든카드를 확인하기 전에 미리 100원 짜리 칩 하나를 던져 넣었다.

16550673839517.jpg“일단 100원을 걸어 두겠소. 이러면 레이즈가 와도 맞레이즈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그 그는 아주 신중하게 카드의 귀퉁이를 살짝 들어 패를 확인했다. 은행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16550673725837.jpg“100원이야 받지요.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16550673725812.png“그 100원을 받고 2,500원 더 얹겠습니다. 그래도 맞레이즈할 판돈은 또 조금 남는군요.”

선우진이 히든카드를 확인하지도 않고 칩을 탁탁 소리가 나도록 쌓기 시작하자, 마츠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6550673839517.jpg“허…… 2,500원이라고요?”

16550673725812.png“그렇소이다. 마츠이 소좌.”

선우진은 여전히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이는 수북하게 늘어난 중앙의 칩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패를 접었다.

16550673839517.jpg“나는 접었소이다. 두 분이 잘해 보시오.”

이미 에이스 원 페어를 쥔 은행장이 콜을 했으니, 바닥패만으로 굳어 버린 그가 이 판을 먹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잭 투 페어만으로 2,500원을 받고 레이즈를 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블러핑이다.

16550673725837.jpg“아…… 아니 잘하라고 해 봐야…… 이건 도무지…….”

은행장은 자신의 에이스 투 페어와, 선우진의 바닥패를 번갈아 보며 난감해했다. 사실 선우진의 바닥패만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저 육 구째에 떨어진 4. 저 4 카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16550673725837.jpg“이거, 참 어렵군요.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은행장은 자신의 칩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그의 돈은 대략 천칠백 원. 여기에서 접으면 그 돈을 날리고 끝이다. 바닥에 있는 판돈의 합계는 팔천 원 가량. 욕심이 날 만큼 큰돈이다. 그러나 저것을 먹고 싶다면, 일단 이천오백 원을 더 내놓고 나서 조마조마하게 선우진의 패가 트리플이 아니기만을 기대해야 한다. 결코 현명한 선택도 아니고, 안전하지도 않다.

16550673725837.jpg‘이렇게 고민스러운 판에 하필이면 에이스 투 페어밖에 못 쥐었다니……. 에이스 트리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저 사이온지라는 남자의 패, 정말로 트리플이 맞기는 한 걸까? 블러핑일 수도 있지 않나?’

은행장이 콧수염을 긁적이며 고민하는 동안 주변에서는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16550673725837.jpg“역시 사이온지만큼의 배짱은 없군.”

16550673725837.jpg“그렇게 호쾌하기는 쉽지 않지. 귀족의 피라는 것이 다르기는 한가 봐.”

그 말들은 은행장의 비위를 긁기에 충분했다. 자존심이 상한 은행장은 발끈하며 자신의 칩을 와르르 중앙으로 쏟아부어 버렸다.

16550673725837.jpg“좋소! 그 도발 받아 보지요! 나는 에이스 투 페어요! 사이온지 님, 당신의 패는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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