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어라, 이놈들 봐라?2018.02.17.
“음! 의외인걸요!”
선우진은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긴장한 은행장은 콧김을 확확 내뿜으면서 물었다.
“뭐가 의외라 하시는 겁니까?”
“아아…… 이 정도라면 블러핑이 충분히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토 은행장이 콜을 하시니까.”
“블러핑? 그렇다면 사이온지 님은 에이스 투 페어를 누르지 못한다는 말이오? 대체 패가 뭐였기에…….”
물어보는 은행장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제 저 거금을 다 챙기면 되는 것인가 하는 기대 때문이다. 선우진이 천진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직 모릅니다.”
“모, 모른다고?”
“사실 제 손 패도 아직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4가 떨어졌을 때, 뭔가 완성된 척을 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그…… 그렇다면, 세 장 다 뭘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설마…… 그런 말은 아니겠지요?”
놀란 은행장이 재차 묻자, 선우진의 뒤쪽에 서 있던 구경꾼들이 대신 답을 해 준다.
“사이온지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분은 한 번도 패를 들춰 보지 않더라고요. 그저 처음에 슬쩍 한 번 손만 가져다 댔다가 뗐을 뿐.”
“왜…… 그런 비논리적인 행동을……. 허, 허허허! 참으로 기인이시군요.”
은행장은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는 한숨 크게 놓았다. 선우진의 바닥패는 8, 9. 퀸, 그리고 4. 그중 저 4 카드가 두려웠는데,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다니……. 자신이 쥔 에이스 투 페어가 새삼 꽤나 높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평균적인 포커에서라면 에이스 투 페어 이하의 패가 나올 확률은 84퍼센트에 육박할 정도이니까.
“뭐 그런 재미조차도 도박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논리적이라면 애초에 도박 같은 건 하지 않겠지요.”
선우진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대답하자, 구경꾼들 사이에서 칭송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이오이다!”
“그렇지요! 도박은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이 맞습니다. 하하하!”
이 판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은행장까지도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바보처럼 함께 웃어 댄다.
“사이온지 님, 이제 세 장의 카드 오픈을.”
콜 이후의 공백이 길어지자, 딜러가 무표정한 얼굴로 부탁했다.
“그러지. 나도 궁금하던 차네.”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첫째 장을 열어젖혔다.
“하트의 6!”
딜러는 패를 나지막이 읽어 모두에게 알렸다. 다섯 장 째를 오픈했을 때까지도 선우진의 카드가 아무 족보 없는 허접한 패에 머물자, 구경꾼들은 혀를 찼다.
“허허, 이건 어렵겠군.”
“너무 무모했던 걸까요? 아쉽습니다, 그려.”
“잠깐 재미를 보는 것치고는 날린 돈이 너무 크군요. 얼핏 이 판에만 근 5천 원 가까이를 몰아넣은 것 같은데…….”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선우진은 지체 없이 또 한 장을 깠다.
“클로버 10!”
딜러가 읊었다. 10이 나오자 좌중의 분위기는 이내 돌변했고, 이제 희망적인 분석이 간간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모르겠는데요? 이러면 다음 패에 7이나 잭이 뜰 경우, 스트레이트가 완성됩니다!”
“설마요! 그게 그리 쉽나요?”
“허, 무슨 소리입니까. 둘 중에 한 장만 뜨면 되는 것인데.”
“잭은 어려울 겁니다. 마츠이 소좌가 잭 투 페어였던 것을 잊었습니까?”
구경꾼들의 논란이 점점 더 커지는 동안, 선우진은 무심한 표정으로 마지막 히든카드를 확 열어젖혔다.
“7이요! 7!”
딜러보다 먼저 구경꾼들이 큰 소리로 외쳐 댔다. 딜러는 선우진의 카드 일곱 장 중에서 6, 7, 8, 9, 10의 다섯 장을 위로 끌어올려 나란히 놓으면서 무감정하게 말했다.
“사이온지 님의 패는 10스트레이트. 10스트레이트가 승자입니다.”
“어이쿠! 진짜 기가 막히는군!”
“이야! 멋지다! 진짜 이렇게도 돈을 따는 수가 있다니!”
구경꾼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포커테이블 주변에 가득 메워졌다. 모두가 들떠서 한마디씩 떠들어 대고 있지만 이 순간 단 한 사람, 가토 은행장만은 웃을 수가 없었다.
“허! 이…… 이럴 수가……. 이, 이게 뭐야?”
계속 이겼다고 생각하다가 뜻밖의 결과를 맞은 가토 은행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식간에 4천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는 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실은 패 한 장 보지 않고 그저 내키는 대로 질러 댔던 상대에게 패했다는 점이다.
“큭…… 큭큭큭. 그럼 저 4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거군요. 큭큭큭.”
잠시 망연해하던 은행장은 그제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엉망진창으로 휘말려 한 판에 밑천을 다 날리고 말았지만, 이런 이유라면 상대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저 이 상황이 황당할 따름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의 패가 우연히 잘 나왔던 것뿐이니까. 다음번에 제대로 붙기만 하면 얼마든지 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 지금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었군요. 하……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역시 도박은 운칠기삼. 사람의 몫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군요. 그렇다면 이제 나의 오늘 운은 이것으로 다 소진된 것일까요?”
딜러가 모아서 밀어 주는 칩을 정리하며 선우진이 말했다. 여전히 그에게서는 굉장히 기뻐한다거나 들뜬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라리 저 퀸이 떨어졌을 때부터 사이온지 님이 베팅을 세게 했다면, 이 판을 더 크게 키워 먹었을지도 모르는데. 카드를 보지 않은 것이 도리어 손해였군요.”
마쓰이 소좌가 나름 예리한 척하며 판을 복기한다.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섰다.
“네. 맞습니다. 마쓰이 소좌. 패를 보고 베팅을 했다면 그런 식의 전개였겠지요. 하지만 이리 좋은 패였을 줄 누가 알았나요.”
“어? 어디 가십니까? 설마 이대로 일어서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 지금 곧바로 새 칩을 지불받을 겁니다. 복수전을 할 기회를 주셔야지요, 사이온지 님!”
딜러에게 5천 원어치의 칩을 더 요청하던 은행장이 깜짝 놀라 묻자, 선우진은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 보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어차피 칩을 계산하는 시간도 있고 하니, 그사이 여기 계신 분들에게 술이나 한 잔씩 살까 해서요.”
“아…… 난 또! 그러면 우리도 잠시 목도 축일 겸 숨 좀 돌릴까요. 저는 위스키로 부탁드립니다.”
“위스키! 더블로 대접하겠습니다.”
은행장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선우진은 바 쪽으로 걸어가 바텐더에게 100원 칩을 하나 건넸다.
“여기 계신 분들에게 원하시는 걸로 한 잔씩 대접해 드리게. 아, 그리고 저기 사이토 사장께는 월계관 사케로, 나도 그걸로 주고.”
“알겠습니다, 사이온지 님.”
바텐더는 공손히 대답한 뒤, 월계관을 따라 선우진에게 먼저 건넸다.
선우진이 술잔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을 때, 야마다가 뒤따라 나와 조용히 속삭였다.
“어이 사이온지, 처음 사흘은 잃어 준다고 하지 않았나? 오늘부터 따기로 마음을 바꾼 건가?”
“훗, 야마다 선생. 도박장을 운영하시는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재미있군요. 지금 잠시 제 앞에 칩이 늘었다고 해서 제가 땄다고는 할 수 없지요. 따고 잃는 것은 도박이 끝났을 때 정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후에는 도로 다 퍼주고 일어나시겠다, 그런 말인가?”
“아직은 저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선우진은 월계관을 홀짝이며 대답했다. 두드려 맞은 곳마다 쑤셔 와서, 이렇게 술로라도 진정을 시키지 않으면 꼼짝 않고 앉아 도박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렇게 잃을 것을 이번에는 뭣 하러 땄나? 카드를 보지 않았다는 둥 쓸데없는 연극까지 해 가면서.”
야마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먼 곳을 보는 척하며 작게 물었다. 선우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 연극을 통해서 도박이란 운만 도와주면 언제든지 딸 수 있는 것이라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 준 겁니다. 그런 사건들이 다 이 구락부의 포커판을 흔드는 준비가 될 것이고요.”
“흔들다니?”
“야마다 선생은 테이블 주변의 공기가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지금 다들 들떠 있고, 씀씀이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하긴…… 저 신중하고 독사 같은 마츠이 소좌가 고작 잭 투 페어로 1,000원을 받을 정도니, 들떴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군.”
야마다는 대강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마츠이라면 승리가 확실하지 않은 판에서 절대로 그만한 금액을 콜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향도 성향이지만, 자본금이 그리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짓 몇천 원쯤 언제든 내던져도 그만인 다른 부호들과 달리, 군인인 마츠이에게는 그 돈이 아주 크고 중요하니까.
“그런 겁니다. 어제보다 배팅의 액수가 훨씬 더 늘었습니다. 다들 처음 판돈을 다 날리고도 또 칩을 교환하려 합니다. 앞에서는 미친놈이 한 번씩 설쳐 대서 판을 키우지, 잔뜩 늘어선 구경꾼들은 또 그걸 보며 잘한다, 호쾌하다고 칭송해 대지……. 그런 이유로 지금 모두가 현실감각이 무뎌진 거죠.”
“음, 구경꾼들……. 그래 시끌벅적하더군. 바람잡이는 중요하긴 하지.”
도박장 운영자인 야마다도 그 부분에는 100퍼센트 동의한다. 바람잡이들이 떠들어 대면 구경꾼 전체가 동요하고, 구경꾼들이 동요하면 결국 도박하는 사람의 마음도 평정을 잃는다.
“두고 보십시오. 다음 주쯤 되면 판은 몰라보게 커질 테고, 사람들은 이제 점점 더 자신의 패가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돈을 걸게 될 겁니다. 아무개는 간이 작다는 둥, 아무개는 사이온지에 비하면 그저 겁쟁이 소인배라는 둥, 하는 따위의 평판을 듣기는 누구라도 싫은 법이니까요. 게다가 운만 좋으면 이길 수 있다는 어리석은 기대도 한몫을 할 테고요.”
선우진은 기지개를 쭉 펴며 자신만만하게 속삭였다. 그래도 여전히 의심이 남은 야마다가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며칠 연속 돈을 잃으면, 이내 제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이따금씩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판을, 실력으로 혹은 행운으로 먹게 되면 제 정신이 들기 전에 그 짜릿한 맛이 먼저 뇌리에 박혀들겠지요. 그걸 반복하는 동안…….”
“당신과 나는 부자가 되어 있을 테지, 듣기만 해도 짜릿하구만!”
의욕을 불태우며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쫙 마주친 야마다가 주변의 눈치를 슬쩍 살핀 뒤, 작게 물었다.
“근데, 사이온지. 오늘 나는 얼마 정도나 따도록 해 줄 건가? 왜 아직도 아무 신호가 없어?”
“생전 포커로 재미를 못 보던 야마다 선생이 내가 오자마자 이틀 연속 돈을 따면, 부자연스럽습니다. 오늘은 오히려 약간 잃는 걸로 갑시다. 본전에서 몇백 원 정도만.”
선우진이 답했다.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야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으음…… 그러나 아까운걸. 저리도 큰 액수의 눈먼 돈이 굴러다니는데 말이지.”
“그런 환상은 다른 사람들이나 갖도록 내버려두세요. 눈먼 돈이 아닙니다. 내가 이리저리 굴리는 통에 그렇게 보일 뿐이죠.”
“큭! 하여간 그 말솜씨는…….”
야마다는 그쯤에서 납득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다카하시가 강아지처럼 달려왔기 때문이다.
“사이온지 군! 재미있는 한 판이었네! 나도 언젠가는 한 번쯤 그런 방식으로 해 봐야겠어! 뭔가 대단한 걸 쥐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말이지!”
“하하하! 다카하시 사장께서 즐거우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가끔은 그런 모험으로 운을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선우진은 밝게 웃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당신에겐 무리야. 상대의 패가 무엇인지 읽지 못한 채 무작정 블러핑을 하면, 도리어 큰 코를 다칠 수도 있다고.’
“그나저나 그 자네가 선물한 기모노 옷감 말일세…….”
포커 이야기로 운을 뗀 다카하시는 갑자기 목소리를 죽여 은밀하게 속삭여 댔다.
“메구미에게 그걸 보여 줬더니, 아주 기뻐서 펄쩍펄쩍 뛰더군! 꼭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고 했어. 특히나 주황색 오비를 골라 준 것이 너무도 고급스럽고 자기랑 어울린다는 거야! 남색 기모노와 더없이 어울릴 거라나? 그걸 입고 자네를 만날 계획에 한없이 부풀어 있다네! 원래는 서양식 의복을 더 좋아하는 아이인데 말일세…….”
말을 하는 동안, 다카하시는 계속 누가 듣지 않을까 주변을 힐끔댔다. 원래대로라면 온 구락부가 다 알도록 큰 소리를 질러 댔겠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딸이 허름한 댄스홀에 드나들었다는 소문까지 나게 될까 봐 나름 자제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메구미 양께 제 마음이 전해졌다면 다행입니다. 오늘 많이 놀라셨을 테니, 다카하시 사장께서 제 대신 위로를 전해 주시길.”
선우진이 고개를 꾸벅하자, 그의 멍든 눈을 보던 다카하시는 입맛을 다셨다. 빠른 시일 내에 메구미와의 약속을 또 잡자고 제안하고 싶은데, 차마 그만큼 뻔뻔해지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자! 술도 한 잔 마셨겠다, 이제 다시 게임 하시죠. 오늘은 복수전입니다, 다카하시 사장.”
선우진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그의 어깨를 안고 같이 포커 테이블로 돌아갔다.
“하하하! 쉽지 않을 걸세! 조금 전 자네는 오늘의 운을 다 쓴 참 아닌가? 반면에 나는 어제의 포 카드 이후 계속 상승세이고!”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은 다카하시가 판돈을 집어넣자, 딜러가 새 판을 위한 카드를 배분했다. 그새 플레이어가 하나 늘어서 6인 포커로 바뀌었고, 다들 칩을 넉넉히 지급받아 놓은 상태였다. 열기가 번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에는 패를 확인하시는군요.”
선우진이 카드 귀퉁이를 들어 패를 살피자, 가토 은행장이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복수를 멋지게 하고 싶다는 의욕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 운은 다 썼으니, 철저하게 계산을 하면서 싸워야죠.”
“계산이라…… 후후후.”
은행장은 한 장의 카드를 오픈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거라면 제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이온지 님. 저는 돈을 두고 이익을 따지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이니까 말입니다.”
“과연!”
선우진은 맞장구를 쳐 주며 다른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도박판에서 너희 같은 얼치기들의 돈을 따는 것이 업인 사람이지.’
“자, 한도 내에서 베팅하겠습니다!”
3과 킹을 깔아 놓은 은행장이 본격적으로 10원 칩을 쌓아 판을 키운다. 별것도 아닌 판에서 4,000원 이상을 한 방에 잃은 데다, 그 직후 선우진이 게임을 않고 뜸을 들였느니 마음이 급할 만도 하다.
“살살 합시다, 가토 은행장. 무서워지려 합니다.”
야마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콜을 했고, 선우진은 거기에 레이즈를 더하면서 불을 붙였다.
“가토 은행장의 계산이 얼마나 정확한지 어디 한 번 볼까요? 50원 더 레이즈 합니다.”
“계산도 좋지만, 나의 기세는 당할 수가 없지! 200원으로 만들겠네!”
덩달아 신이 난 다카하시까지 판을 키운다. 놀라운 것은 마츠이 소좌도 레이즈를 했다는 사실이다. 4구만에 배팅 금액은 300원으로 치솟았다. 늘 도사리는 마츠이의 성향으로 볼 때,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무리 에이스 원 페어를 안에 감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의 불장난에 오히려 기름을 부어 대다니……. 마츠이 소좌, 당신도 슬슬 간이 붓기 시작했군. 아무리 구락부에서 챙긴다고 해도, 군인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판돈일 텐데…….’
선우진은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포커테이블의 흥분한 일본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자들은 이전까지의 자극 정도로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다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예전보다 훨씬 더 큰 돈을 걸고, 여러 구경꾼들의 칭송과 찬사를 듣지 않으면, 두근거리지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그만큼 이성적인 판단력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차작-! 착-! 착-! 5구째의 카드가 돌아갔다. 가토 은행장은 손 안의 두 장을 합쳐 이미 네 장이나 다이아몬드를 모았다. 킹 플러시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으음, 한도가 얼마지? 900원인가? 자, 900원을 걸겠소! 다른 분들은 몰라도 사이온지 님만은 따라오시겠지!”
은행장은 허둥대며 칩을 던지고, 도발적인 시선으로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포커페이스의 재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나 가토 은행장의 우려와 달리 패를 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베팅 순서인 마츠이 소좌는 도리어 거기에 레이즈까지 했다.
“거기에 얹어서 1,500원으로 만들어 보겠소!”
판은 순식간에 격렬한 욕망의 전쟁터로 변했고, 야마다가 패를 꺾었어도, 그때까지 6명이 내놓은 판돈의 합은 5구째에 이미 만 원을 훌쩍 넘었다.
“어째…… 지금까지와는 다른데요?”
“그렇습니다. 뭔가…… 마구잡이 진검승부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구경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거칠어질 정도로, 제물포 구락부 포커 테이블의 열기는 초여름 밤의 기운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이 정도라면 기획한 선우진의 계산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런데…….
‘어라?’
6구째의 카드를 받을 때, 선우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서거걱-! 딜러가 손에 쥔 덱에서 카드를 뺄 때, 맑지 않은 소리가 울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선우진에게는 그 차이가 분명히 느껴진다.
‘이건 맨 위의 카드를 빼는 소리가 아닌데?’
그리고 곧이어, 딜러는 선우진의 앞에 여섯 번째 카드로 9를 던져 놓았다.
‘분명히 에이스가 올 차례였는데…… 9가 들어왔어?’
선우진이 읽었던 판의 추세대로라면, 이번에 그가 받기로 되어 있던 패는 하트의 에이스였다. 9는 옆자리의 다카하시가 받았어야 하는 패다.
‘내 패를 한 번 건너뛰었단 말이지?’
선우진은 마츠이의 패를 보는 척하며 바로 옆의 딜러를 유심히 살폈다. 에이스는 여전히 가장 위쪽에 있고, 카드 덱을 잡고 있는 놈의 손이 어정쩡하다. 속임수를 쓰는 까닭이다.
‘왜지?’
선우진은 사람들의 패를 빠르게 훑으면서 딜러가 속임수를 쓴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미리 에이스를 알고 감췄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짓을 했느냐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니까. 딜러가 손장난을 쳐서 에이스가 빠진 바람에, 판 전체의 판세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현재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다카하시 사장이다. 9 대신에 킹을 받은 다카하시는 이제 손안에 든 패까지 합쳐서 킹 트리플이 되었다. 원래부터 모험을 좋아하고 성격이 급한 그는, 벌써부터 자기의 배팅 차례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그 다음으로 좋아진 것은…… 마츠이 소좌였다. 원래대로라면 킹을 받았어야 할 그이지만, 이번에 카드가 바뀌면서 퀸 원 페어를 바닥에 깔게 되었다. 선우진은 도리어 나빠졌고, 나머지 세 사람은 아직 바뀐 패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문제는 마츠이가 손안에 두 장의 에이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히든에서 저 딜러 놈이 원래 선우진의 것이었어야 할 에이스를 마츠이 소좌에게 준다면, 그것으로 놈의 에이스 풀 하우스가 완성된다. 그리고 광기로 키워진 이 판을 먹게 될 것이다.
‘딜러가 내 에이스를 빼서 마츠이에게 주려는 게, 놈이 혼자 결정한 일일까? 아니면 두 놈이 미리 짜고…….’
선우진은 막 불을 붙인 담배의 뿌연 연기로 자신의 시선을 가린 채, 곁눈으로 딜러와 마츠이를 주목했다. 미리 짠 관계라면 곧 뭔가 신호를 주고받을 테니까.
“퀸 원 페어가 현재 가장 앞섭니다. 베팅 해 주십시오.”
모두의 바닥패를 살핀 딜러가 마츠이에게 말했다. 마츠이 소좌는 능청스럽게 500원만을 던져 넣었다.
“자아…… 이번에는 500원씩만 더 보태 볼까요? 마지막 배팅은 히든에 하기로 하고? 히든카드는 보아야 또 맛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는 안 됩니다. 제 계산과 본능이 이번에는 크게 지르자고 권하는 중이어서요. 500원에 천 원을 더 합시다.”
2 다이아몬드 카드로 이미 플러시를 완성시킨 가토 은행장이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칩 더미를 던진다. 촤라라락-! 칩들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바로 그때, 마츠이의 바로 옆을 짚고 있던 딜러가 칩을 당겨 오는 척하면서 손끝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톡- 톡-! 아주 작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선우진의 빠른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에이스가 준비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레이즈 하라는 신호다. 차락-! 차라락-! 입을 꾹 다문 마츠이는 칩을 정돈하면서 베팅할 준비에 나섰다. 이 정도면 둘이 한 패라는 건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허!’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기도박 커넥션을 발견한 선우진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놈들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