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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기회가 온다, 돈을 잡아라! (41/459)

41. 기회가 온다, 돈을 잡아라!2018.05.02.

16550680275825.png“오오! 사이온지 군, 정말 고마우이! 정말이지…… 이 신세는 잊지 않을 걸세. 사흘 뒤, 금요일이니까 아직 여유는 있네!”

다카하시는 반색을 하며 선우진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쯤 되면 수상하기까지 하다. 선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16550680275831.png“다카하시 사장……. 대체 왜 그리 미츠코시 납품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16550680275825.png“에이, 사이온지 군. 다 알면서…… 쌀값이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다카하시는 눈웃음으로 애교를 부리면서 대답했다. 아하……! 그 말을 듣자마자 예전에 보았던 그 대형 곡물 보관창고가 선우진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빠른 속도로 계산이 이뤄졌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한 간척지 위에 즐비하게 펼쳐져 있던 수많은 창고 건물들, 그 내부에 가득 차 있을 미곡들. 정미소와 곡물 보관창고까지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는 다카하시에게 있어서, 쌀값 하락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쌀 한 석 가격이 10원 떨어지면 100만 석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순식간에 천만 원의 손해를 본다. 쌀값이 다시 오를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는 방법도 쓸 수 없는 것이, 쌀은 매년 새로 추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카하시로서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쌀을 이용하여 이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뭔가 다른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주조하는 양조장의 사케 판매량을 몇 배로 증대시킨다든가 하는 식의. 그런 이유로 초호화 매장인 미츠코시에 납품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성과 평양, 인천 같은 대도시에 유통망을 넓히는 일이, 지금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16550680275831.png“설마 쌀 가격이 이대로 계속 떨어지기야 하겠습니까? 7월쯤 되면 다시 오르지 않을까요?”

연내에는 쌀값이 오를 일이 없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선우진은 슬쩍 다카하시의 의중을 떠보았다. 다카하시는 도리질을 한다.

16550680275825.png“그러면야 오죽이나 좋겠나만 들리는 소문이 영 심상치가 않다네, 사이온지 군. 실은 말일세, 지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다카하시는 목소리를 낮춰 은근하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16550680275825.png“만주로 파병되어 있던 장성들과, 만주철도의 간부들이 다들 제 근무지에 없다는 거야, 그리고 또 들리는 소문은…… 이들이 배를 타고 도쿄를 향해 가고 있다더군. 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서 흘러나온 소식일세. 이게 무슨 의미겠는가.”

16550680275831.png“설마…….”

개뿔도 이해가 안 가는 큰 판의 이야기가 또 시작되었지만, 선우진은 국내와 국제 정세를 훤히 꿰고 있는 사람처럼 일단 입을 떡 벌렸다. 놀란 연기를 하는 그를 보며 다카하시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16550680275825.png“그래, 믿기지 않지. 나조차도 이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그랬네. 자네의 상식으로도 영 아닌 것 같을 테지만…… 그게 현실일세. 만주에 파병되어 있는 군과 관의 간부들이 싹 다 호출되었다는 것은, 신임 총리대신 다나카의 긴급호출이지. 근래 그들이 펼치고 있던 정책에 대해 내각에서 불만이 많다는 의미인 거야. 후우우…….”

다카하시는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친다는 듯 부채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16550680275825.png“아마도 근 시일 내에 뭔가 변화가 생길 텐데…… 사업하는 우리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네. 참…… 다나카 총리도 무르단 말이야. 내수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만주 침공을 하려면 좀 적극적으로 할 것이지……. 벌써 5월에 파병을 마쳐 놓았으면서 지금까지 아무 실적도 거두지 못하니 이렇게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 장쭤린을 꼭두각시로 쓰겠다는 계획은 영 실패일세. 차라리 일찍부터 장제스랑 손을 잡았어야지.”

모르는 이름들과 사정들이 잔뜩 나온다. 멀리 만주와 도쿄에서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사람들이 밥을 지어먹어야 하는 쌀값이 요동을 친다는 것이 신기하다. 단번에 맥락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선우진은 열심히 귀담아 들었다. 최근 그가 절감하고 있는 바는, 이런 지식들이 다 돈과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계산에 밝아도 정세를 모르면 결코 큰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가난한 식민지 고학생이었던 그에겐 그 ‘정세’라는 걸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듣고 정보를 모아야 한다. 다카하시가 거론했던 수많은 이름들 중 선우진이 들어본 적 있는 것이라고는 ‘장제스’뿐이다. 그 이름은 전에 지나마치에서 만났던 그 의열단 단원이 했던 이야기 중에 등장했었다. 현재 중국에서 일본군과 대치중인 국민혁명군의 수장.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알고 있는 부분은, 5월에 중국으로 파병되었다는 일본군. 그 산둥 출병 이야기는 마츠이 소좌로부터 전해 들었던 적이 있다. 선우진은 그 두 가지 얕은 지식을 적당히 얼버무렸다.

16550680275831.png“결국 산둥 출병은 국민혁명군에 막혀 실패하는 것인가요…….”

16550680275825.png“아아, 뭐…… 워낙 큰 이권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 완전 실패의 상황까지 내몰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네. 요는 아직 뭔가 여론을 끓게 할 만한 동력이 부족하다는 점 아니겠나. 내지의 국민들이 뭔가 눈이 뒤집힐 만큼 분노할 만한 일이 있어야 본격적인 전쟁도 하는 것이지.”

끔찍한 이야기를 태연한 표정으로 잘도 늘어놓던 다카하시가 다시 어조를 은밀하게 바꾸어 속삭였다.

16550680275825.png“그러니…… 사이온지 군 자네도 당분간은 미두에 관해서만은 좀 주의하게. 얼마인지 그 구체적인 규모를 묻지야 않겠지마는, 분명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을 테지?”

16550680275831.png“하하, 뭐 그야…… 그냥 재미삼아서.”

선우진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제로는 고작 20만 원 정도를 파는 쪽에 걸어 두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표정과 말투만 보아서는 수백만을 주무르는 거상의 자태 같다.

16550680275825.png“아니야, 아니야……. 이제 당분간 쌀 시세가 올라서 재미를 보기는 텄네. 너무 묻어 두지 말고 서서히 빼게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잃을 걸 빤히 아는 흐름에서 버티다가 고스란히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그런 손해는 저기, 저 미련한 중개꾼 녀석들에게 넘겨 버리고, 얼른 정리를 하시게.”

다카하시는 창문 너머로 멀리 보이는 미곡거래 중개소들을 가리키며 다정하게 말했다. 이럴 때의 그를 보면, ‘사이온지 유아야’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진심이 느껴진다.

16550680275831.png“고마운 말씀 새겨듣도록 하죠. 그런데…….”

선우진은 술잔을 기울인 뒤, 우려하고 있던 것을 물었다.

16550680275831.png“듣자 하니 경성은 도박에 대해 엄격하다고들 하던데, 혹시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테지요? 화족으로서 불미스러운 일에 얽히는 건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몇천 원을 따보겠다고 도박을 했다가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그로서는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신분을 속이고 있는 현재의 처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카하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16550680275825.png“하하, 자네도 참…… 의외의 것을 다 걱정하는군. 도박장을 단속한다고는 하지만, 그야 어디까지나 가난한 평민들의 이야기지. 조선은행장까지 와 있는데, 어떤 미친 경찰이 그곳에 들이닥치는 무례를 저지르겠는가? 게다가 조선인이기는 하지만, 이지용 백작은 엄연히 중추원의 고문일세. 반도에서는 꽤나 고위에 속한 인물이지. 경찰 쪽은 문제없네.”

16550680275831.png“그런가요? 듣자하니 그…… 이지용이라는 사람은 예전에, 도박혐의로 처벌까지 받았다던데 그건 그냥 헛소문이었습니까?”

16550680275825.png“아아…… 그거 말이지. 역시 그 사건의 충격이 크기는 컸나 보구만. 벌써 15년 전의 일인데, 본토의 자네도 소문을 들었다고 하니 말일세. 하긴 귀족에게 곤장이라니…… 조금 심하긴 했지.”

다카하시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내밀한 설명을 시작했다.

16550680275825.png“그런데 그건, 사실 도박 때문이 아니고…… 이지용 백작이 입을 함부로 놀렸기 때문에 징치의 일환으로 몇 대 때렸던 걸세. 도박 혐의 같은 건 그저 허울이었지. 그러니 좀 반성을 시킨 뒤에 작위도 다시 회복을 시켜 준 게 아니겠나.”

다카하시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내막을 일러주었다. 선우진으로서는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16550680275831.png“이상한 일이군요, 다카하시 사장. 대체 무슨 일이었기에, 입을 함부로 놀렸다고 귀족을 매질한단 말입니까? 조선인이라고 해도 엄연히 작위까지 하사받은 사람을요.”

16550680275825.png“그럴 만한 일이었네, 사이온지 군. 스기우라 공작에 대해 험담을 한 거였으니 말일세.”

16550680275831.png“스기우라 공작의 험담을?”

그 정도는 선우진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왕가를 제외하면 일본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귀족이 바로 스기우라일 테니까. 매력적인 외모에 막대한 부, 현란한 대화술, 넓은 인맥에 가히 신의 솜씨라 평가받는 포커 솜씨까지……. 사이온지 긴모치가 정치계에서 최고의 힘을 가진 귀족이라면, 나머지 분야 전부는 스기우라 공작이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중적 명성과 인기도 면에서는 비교조차 안 된다.

16550680275825.png“그래, 소문에 의하면…… 이건, 그냥 자네만 알고 있어야 하는 거지만…….”

다카하시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16550680275825.png“이지용 백작이 당시 술에 취하면, 스기우라 공작은 포커 최고수가 아니다, 진짜 최고는 따로 있다, 그 진짜에 비하면 스기우라는 어린애에 불과하다…… 라고 말도 안 되는 음해를 지껄여 댔다는 게야.”

16550680275831.png“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답니까?”

선우진이 물었다. 그 역시 스기우라는 대단한 도박사로 알고 있으므로 그 이유가 궁금했다. 특히 1910년 이후 단 한 판도 져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놀라운 전적은, 도박사를 꿈꾸는 이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중이다. 그런 스기우라가 최고수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최고수라는 말인가. 다카하시는 코웃음을 쳤다.

16550680275825.png“큭! 모르지! 일본이 낳은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라는 평판에 질투가 났을지도. 아니면 조선최고수니 뭐니 하며 주변에서 치켜세워 주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감히 스기우라 공작의 왕좌를 넘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고 돌아다니는 놈을 어떻게 방치할 수가 있겠는가. 곧바로……!”

다카하시는 손바닥 날을 세워 내려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16550680275825.png“따끔한 맛을 보여 준 거지. 그 후로는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산다고 하니까…… 나름 매질이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단속 같은 건 걱정할 일이 없네. 경찰청장이 그 방에 들어와도 허리 숙여 인사나 하고 나갈 걸세.”

16550680275831.png“흠! 기인이로군요, 그 이지용이라는 사람도. 어쨌든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럼…….”

나눠야 할 대화는 이제 다 나온 듯하여 선우진은 먼저 일어섰다.

16550680275825.png“아, 그래! 그래! 나야말로 고맙네, 사이온지 군. 금요일 정오에 인천역에서 만나세. 포커 판돈을 포함한 준비 일체는 이쪽에서 할 테니, 자네는 그저 갈아입을 옷가지 정도만 바바에게 들려서 와 주면 되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던 다카하시가 찡긋 눈짓을 하며 씩 웃었다.

16550680275825.png“선학 판매이익의 10퍼센트를 양도한다는 계약서도 그날 어김없이 지참할 테니까. 알지? 우린 이제 한 배를 탄 걸세. 잘 헤쳐 나가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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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50680360623.png“미츠코시 백화점 지점장! 거기에다가 조선은행장? 허어! 정말인가?”

다카하시 사장의 제안을 선우진으로부터 전해 들은 야마다는 반색을 하며 탁자를 내리쳤다. 터엉-! 조용하던 야마다 상회의 내실에 나무 탁자 울리는 소리가 크게 메아리친다. 그러든 말든 야마다는 큰소리로 떠들며 혼자서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16550680360623.png“새 양복이라도 좀 맞춰야 할까? 음…… 멋 내다가 죽는다는 교토 출신으로 되어 있으니 말일세. 구두랑 넥타이, 가방. 아…… 기한이 너무 촉박한데…….”

선우진은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16550680275831.png“옷은 이미 충분합니다. 그보다 너무 흥분하는 것 아닙니까, 야마다 사장? 거물이니 뭐니 해도, 전부 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인물들뿐인데.”

16550680360623.png“아니지! 그게 아닐세, 젊은 선생! 그 둘과 한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인 게야. 하물며…… 이건 밤을 밝혀 가며 늦도록 함께 포커를 하는 자리 아닌가? 하아,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지……. 흔하게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데…….”

마음이 바빠진 야마다는 초조하게 손을 비비며 고민에 빠졌다. 혹여 그가 경성에 나들이를 가는 것에 반대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잠시 했었으나, 지금 보니 그것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16550680275831.png“미츠코시 백화점 사장이라고 해도 사이토 사장보다 돈이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물며 이쪽은 지점장이고 말입니다.”

16550680360623.png“종류가 다르지, 젊은 선생.”

야마다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16550680360623.png“사이토가 가진 화물선이나 여객선이 아무리 많아도, 나나 당신이 그걸 가지고 뭘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광산이나 땅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미츠코시는…… 그 넓고 높은 건물 중에서 다다미 한 장 넓이만 얻어 쓸 수 있어도 돈이 돼. 거기에 뭔가를 사고 싶어서 돈을 다발로 싸들고 오는 인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는 말이네. 물론…… 젊은 선생, 당신이 사이토 딸과 결혼을 하면 그런 푼돈 따위 거들떠 볼 필요도 없지만.”

16550680275831.png“미츠코시에서 매장을 내준다고 해도 대체 뭘 판다는 겁니까, 야마다 선생. 팔 만한 물건도 딱히 쥐고 있지 않고, 만들어 낼 재주도 없으면서.”

16550680360623.png“에헤이…… 참…… 이렇게 순진하다니까. 하여간 도박밖에 모르는 사람일세. 너무 성실해도 탈이군.”

야마다는 혀를 쯧쯧 차며 설명을 시작했다.

16550680360623.png“시대가 바뀌었잖은가, 젊은 선생. 이제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고, 뭐가 꼭 필요해서 사는 것도 아니지. 예를 들어서 이 팔뚝시계!”

야마다는 유카타의 손목을 걷으며 번쩍이는 금장 손목시계를 드러내 보였다.

16550680360623.png“요즘 젊은 놈들이나 늙은 놈들이나, 돈 좀 있고 유행을 안다는 놈은 다 이걸 하나씩 차고 다니지. 그러면서 하루에도 열댓 번씩 이렇게 팔을 들고 시계를 들여다보는 거야. 어허, 이거 지금 몇 시나 되었지……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면서.”

16550680275831.png“흠, 확실히 유행인 것 같더군요. 이화성이나 다른 놈들도 다 그걸 차고 있었습니다.”

16550680360623.png“그렇다니까! 아니, 생각을 해 보게. 대체 제깟 놈들에게 이딴 팔뚝시계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가게마다 다 커다란 벽시계가 비치되어 있고, 정오와 여섯 시 정각에 딱딱 맞춰서 시보 사이렌도 울려 주는데……. 회중시계는 얼른 내다 버리고 이런 걸 50원이나 주고 새로 사? 이게 다, 유행 때문일세. 딱히 필요해서가 아니라 미츠코시에 전시가 되어 있기에 사는 거라고. 그야말로 골이 텅텅 빈 인간들이라고나 할까?”

야마다는 손목시계의 유리를 툭툭 두드려 가며 손목시계 구매자들을 싸잡아 매도했다. 그의 바보 소리에 지친 선우진이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며 답을 재촉했다.

16550680275831.png“그래서 요점이 뭡니까, 야마다 선생?”

16550680360623.png“중요한 건 어떤 물건이냐가 아니라 판로와 자본이 확보되었는가에 달렸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다카하시가 마련한 그 자리에는, 그 둘이 동시에 오기로 되어 있어. 얼마나 좋은가? 조선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물건을 잔뜩 사들인 다음에, 그걸 몇 배나 이문을 남기고 미츠코시에서 팔면, 나는 한 푼도 안 들이고 그저 들어오는 지폐만 헤아리면 된단 말일세.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지.”

16550680275831.png“만약 물건이 안 팔리면? 그러면 재고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매달 이자까지도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16550680360623.png“미츠코시에는 불황이라는 게 없어! 그런 건 경성의 위쪽인 종로에나 있는 이야기일세. 귀족의 첩들이나 기생들이 매일 뭔가를 뜯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비싼 물건은 일단 팔려! 쓸모를 따지는 건, 일단 뜯어낸 다음이란 말이지. 하지만 그때 우리는 이미 돈을 받았는걸.”

야마다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선우진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16550680275831.png“어째, 야마다 사장도 나와 같이 경성으로 가겠다고 할 기세군요. 다카하시 사장에게 말을 해서 한 자리 끼워 달라고 할까요?”

16550680360623.png“아니, 아니…… 그렇게는 못해.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극도의 세계에는 자신의 나와바리라는 것이 있으니까. 내가 지금 경성으로 가서 남의 세력권을 침범하면 곧 전쟁을 하자는 것과 다름없네.”

야마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마도 경성을 장악하고 있는 야쿠자가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16550680275831.png“흐음…….”

야마다의 세력권 밖이라는 점과 조선은행의 대출이 더해지자, 경성이 어딘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선우진은 턱을 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이토 사장 같은 거부도 길회선 철도 부지를 매입했을 때, 미츠비시 은행의 자본을 이용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는 것은…… 대출이야말로 사업의 핵심적인 밑천 중 하나라는 뜻이다.

16550680275831.png“조선은행의 규모가 그 정도로 큰가요? 구락부의 가토 은행장은 비교도 안 됩니까?”

16550680360623.png“그거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조선은행은 발권은행인데? 돈을 찍어 낼 수 있는 곳이라고. 아마 지금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규모만 해도 몇 억 단위일 테지. 그 은행의 총수가 밀어 주기로 마음만 먹으면…… 그야말로 커다란 배를 타고 대양에 나가는 기세라고나 할까. 물론 지금 당장은 한, 백만 원 정도만 대출을 받을 수 있어도 원이 없겠지만.”

돈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탐욕적인 야마다가 눈을 빛내며 목청을 높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계산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훤하게 짐작이 된다. 백만 원을 대출 받아, 미두 시장에서 몇 달만 굴리면 연내에 열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자본금 천만 원을 손에 쥔다면, 정말 미두 시장의 오오데 반열에 등극하는 것이다. 불과 보름 정도 전만 해도 여유 자금을 모두 합친 것이 10만 원도 되지 않았던 식민지 거점의 야쿠자에게는, 꿈처럼 느껴질 액수일 터다. 물론 그렇게 되면 선우진도 순식간에 몇백만 원에 달하는 부를 얻는다.

16550680360623.png“어떤가, 젊은 선생. 미츠코시 지점장과 조선은행장을 한 번 잘 구워삶아 볼 자신은 있나? 물론 단번에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야. 차츰, 차츰, 거리를 줄여 가고 그 사람과 친분을 쌓아 보세. 가능성만 보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대 보겠네.”

야마다가 노골적인 기대를 담아 물었다. 아마도 지금 그의 눈앞에는 번쩍이는 황금과 나풀대는 지폐의 환상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으리라…….

16550680275831.png“야마다 선생, 그냥 성실하게 제물포 구락부의 돈을 터는 것만으로 부족한 겁니까? 이미 꽤나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야마다는 두 팔을 벌려 보인다.

16550680360623.png“어차피 목적이 돈이라면 더 큰 덩어리 쪽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사이토의 사위가 되려고 해도, 일단 번듯한 집과 사업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무슨 중매 이야기가 오갈 수 있지. 그러려면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놓아야 한다네.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거든.”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결국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뿐이다. 하긴…… 사방에서 비현실적인 액수의 눈먼 돈이 정신없이 오가고 있으니, 야마다도 욕심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6550680360623.png“그렇게 비싸게 굴지 말고, 뭐라고 좀 약속을 해 주게, 젊은 선생. 경성에 가서 큰 건, 물어올 거라고 기대해도 되겠나?”

야마다가 독촉이라도 하듯 재차 물었다.

16550680275831.png“글쎄요…… 어떤 인간인지 일단 만나 봐야 답을 할 수 있겠지요. 만약 정말로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선우진은 특유의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던 트럼프 중 한 장을 뒤집었다.

16550680275831.png“……영혼까지 다 빨아들일 수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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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잉-! 선우진이 뒤집어 던진 카드가 테이블 중앙에서 빙그르르 돈다. 중앙에 커다란 스페이드 마크가 새겨진 에이스 카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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