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초콜릿과 캐러멜.2018.08.11.
“3만 5천 원을…… 쇤네에게 주신다고요? 저, 정말이십니까?”
여전히 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할멈이 물었다. 선우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네, 할멈.”
“어, 어째서…… 새, 새, 새, 생판 남인 저에게…… 그, 그런 호의를 베풀어 주려 하시는 것인지…….”
돈을 주겠다고 하는 중인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강도를 만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린다. 최근 들어 인기 있는 고급 게이샤를 속신시켜 주는 비용이 만 원까지도 치솟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돈 많은 고객의 호감을 이용하여 벗겨먹는 작업일 뿐. 실제 게이샤 한 명의 몸값은 그저 천 원 남짓이다. 그러니 3만 5천 원이라는 돈은, 평범한 료칸 주인에게는 꿈같은 액수일 수밖에 없다.
“이유가 중요한가?”
선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
“중요한 것은 그대가 이 돈으로 여생을 어떻게 살 수 있을지가 아니겠나? 한번 상상을 해 보게. 매일 고급 초밥을 먹은 뒤, 자동차를 타고 가부키를 보러 다녀도 되네. 커다란 진주목걸이를 걸고 있는 할멈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다들 귀부인이라고만 생각할 테지. 료칸을 관리하던 할멈이라고는 꿈에도 모를 게야.”
“야, 야마다 님에게 드, 들키면 죽임을 당할 겝니다…….”
야마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할멈의 얼굴은 금세 두려움으로 뒤덮였다. 선우진은 마치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즐거운 이야기만을 이어 갔다.
“할멈의 자식들은 더 이상, 남의 밑에서 손을 비비며 일하지 않아도 되네. 아오모리나 후쿠시마에 만 원 정도만 투자해서 논을 사면 대지주, 부농이라 불릴 테지. 넓게 뻗어 있는 논 사이를 자동차를 타고 달려 봐도 좋을 테고. 길의 양쪽으로 보이는 모든 초록색이 다 할멈 그대 소유의 논일세.”
선우진은 마치 드넓은 평야가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할멈의 눈앞에서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 환상에 잠시 사로잡혔던 할멈의 입에서 다시 떨리는 걱정의 말들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큰일을 가슴에 묻어 두고 사흘 동안이나 내색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야마다 님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분명 들통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야마다 님이 직접 이 늙은 것의 가죽을…….”
“손자, 손녀들은 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지. 영국이나 프랑스로. 알고 있는가, 할멈? 요즘은 신분과 무관하게 능력만으로 꽤나 높은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고위 관료로 취임하는 손자를 상상해 보게. 그때쯤 되면 야마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걸세. 어쩌면 총독부 관리로 다시 이곳에 파견을 나올 수도 있지.”
“총독부 관리……. 우리 타쿠야가…….”
마침내 할멈도 선우진의 환상에 제대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자가 제복을 입고 여러 사람 위에서 군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할멈의 입 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더는 설득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선우진은 다시 용건으로 돌아갔다.
“그래, 타쿠야는 평생 다른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살게 될 걸세. 부유한 할머니가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에. 사족 출신의 덕이 많은 손자며느리는 증손자를 몇이나 안겨 주고, 그 아이들도 다 의사, 변호사, 관료가 될 테지. 그만하면 사흘 정도는 모험을 해 볼 만한 미래이지 않은가? 자, 이제 돈을 받을 준비가 다 되었나?”
끄덕-! 할멈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쇤네가……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도련님?”
“좋아. 현명하구만, 할멈.”
선우진은 가방을 닫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은 츠바키의 여행허가증일세. 야마다가 그것을 그대에게 맡겨 두었겠지, 관리인이니까.”
“그렇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사흘 뒤,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나에게 츠바키의 여행허가증을 가지고 오게. 그러면 나는 이 가방을 넘겨주지.”
“그럼 쇤네는 어디로 숨어야 하는 겝니까?”
“할멈이 내키는 곳으로 가게. 일본으로 돌아가도 상관없고. 조선, 혹은 만주, 어디든 괜찮다네. 이 가방은 그리 무겁지 않아. 할멈의 가는 팔로도 충분히 들고서 여행할 수 있네. 경성의 조선은행에서는 일본으로 송금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말일세.”
선우진은 할멈의 무릎 위에 잠시 가방을 올려놓아 주었다. 돈의 무게를 느끼며 희열의 한숨을 내쉬던 할멈의 얼굴에 문득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료칸의 종업원들은 점심을 먹으라고 내보낸다고 해도…… 기차역이나 부두에는, 야마다 님의 코붕들이 늘 지키고 서 있습니다. 그들이 저를 순순히 보내 줄는지…….”
“사흘 뒤 정오 사이렌이 울렸을 때쯤에는 그렇지 않을 걸세. 다들 바빠서 정신이 없을 테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막연히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도통 믿기지가 않습니다, 도련님. 좀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나를 믿지 말고, 이 돈을 믿게. 이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확신도 없는 일에 3만 5천 원을 턱 걸겠는가? 그렇지 않나?”
선우진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할멈은 바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생각할 때에도 3만 5천 원은 정말 믿음이 가는 액수이기는 한 모양이다.
“돌아가거든 인천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깨끗하게 기억에서 지우게. 그러지 않았다가는 할멈 역시 무사하기 어려울 게야. 돈은 모조리 빼앗기고, 할멈은 야마다에게 끌려와 험한 꼴을 당할 걸세.”
선우진은 슬쩍 엄포를 한 번 놓았다. 물론 그녀 역시 돈이 남아 있는 한은 절대로 이 일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설녀가 살려 주었던 사람처럼 말이지요…….”
할멈은 일본 민담의 이야기를 꺼내며,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음, 알고 있군. 그러면 됐네. 자, 이건 선불 5천 원일세.”
선우진은 가방에서 100원 지폐 한 뭉치를 툭 꺼내어 놓으며 말했다.
“5천 원!”
두툼한 지폐 뭉치를 두 손으로 꼭 붙잡은 할멈의 얼굴이 환희에 가득 사로잡혔다.
“앞으로 사흘 동안 떨리고 두려워질 때마다, 그 돈을 몰래 꺼내 보게. 조금만 더 참으면 그 일곱 배가 자네의 것이 되는 걸세. 명심하게.”
“예,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할멈은 자신의 옷 속에 재빨리 돈을 숨기고 열심히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좋아, 할멈. 이제 시키시마 유곽에 들러서 잠시 게이샤들을 둘러본 뒤 돌아가자고. 종업원들 앞에서는 딱히 치요보다 나은 아이가 없더라고 투덜댈 테니까.”
설득이 끝났다고 판단한 선우진은 다시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오늘 일은…… 야마다 님께 뭐라 보고를 드려야 하는 것인지요?”
선우진이 모는 다임러가 시키시마 부근에 도착했을 때, 할멈이 물었다. 선우진은 태연히 대꾸했다.
“오늘은 치요와 츠바키 모두 내 방에 들여보내고, 남은 이틀 동안 밤마다 새 게이샤를 한 명씩 넣어 주게. 야마다에게는 내가 오히려 좋아하면서 게이샤 둘을 모두 차지하고 싶어 하더라고 말하면 되네. 무지하게 밝히는 놈이라는 험담을 해도 좋고 말일세.”
“그런 음탕한……. 하지만, 그렇게 하시더라도…… 결국 야마다 님께서는 선택을 하라고 명령하실 겁니다.”
“며칠 비교를 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면 되지 않겠나? 할멈, 기껏해야 사흘이야.”
창문을 열어 후끈 달아오른 차 안의 공기를 식히며 선우진이 말했다. 하하하, 호호호호호! 홍등이 번쩍이는 시키시마의 유곽이 가까워질수록, 교태 가득한 게이샤들의 웃음소리와 주정뱅이들의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이런 곳에 츠바키를 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제게 돈을 쥐여 떠나보낸 뒤에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야마다 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실 것이 분명한데요.”
“별걱정을 다하는군, 할멈.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대는 그저 돈 생각만 하게.”
선우진은 할멈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그 여유 가득한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던 할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돌연 작게 도리질을 했다.
“그렇게나 츠바키 그 아이가 좋으신 겁니까, 도련님께서는? 이 많은 돈과 목숨을 아낌없이 거실 정도로?”
“아아…… 뭐 그렇다고 해 두세, 할멈.”
선우진은 코끝을 한 번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사실 이건 그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선우진은 싸움에 진 개처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이제 그 교훈을 동업자인 야마다에게도 분명히 각인시켜 줘야 하는 순간이 온 것뿐이다. *** 그 후, 이틀은 순조롭게 지나갔다. 그간 할멈은 두려움과 싸우느라 조금 야위었지만, 그래도 제법 태연하게 연기를 해냈다. 보상으로 받게 될 거금이 그녀를 강하게 만든 것이리라. 선우진의 예상대로 야마다는, 츠바키의 거취에 대해서 딱히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씩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다니 피곤하지 않은가? 아무리 젊은 몸이라지만 적당히 밝히게.’ 따위의 농담을 건네 왔을 따름이다. 그동안 선우진은 구락부에서 착실하게 돈을 따는 것으로, 야마다의 환심을 샀다. 안정적으로 돈이 되는 동안에는, 사소한 문제쯤은 그냥 지나가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마침내 사흘째의 아침이 밝았다. 선우진은 일찍부터 준비를 마치고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늘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던 바바조차도 한조로부터 명령받은 시위를 위해 고바야시와 함께 시내로 나간 터라, 료칸 하쿠는 어느 때보다도 한적했다. 치이이익-! 코끝을 찌르는 타는 냄새와 함께 주방에서 신호가 온 것은, 11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쿠, 이…… 이게 무슨 냄새야?”
미간을 찌푸린 종업원들은 서둘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하아…… 이것 참…… 곤란하구만. 모처럼 솜씨를 좀 발휘해 보려 했는데, 이렇게 냄비까지 다 태워 버리는 바람에.”
주방에서 나온 할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부채질을 해 댔다. 두 개의 냄비와 밥솥은, 모조리 다 타서 까만 연기를 내뿜는 중이었다.
“아니…… 탄 것도 탄 것이지만, 대체 뭡니까? 이 지독하게 매운 냄새가? 에에취! 에취!”
연신 기침을 하는 종업원들의 눈가에는 눈물마저 맺혀 있다. 땀투성이가 된 할멈도 행주에 코를 풀며 중얼거렸다.
“조선 고추가 타 버려서 이런 거다. 아이고, 매워라. 이래서야, 점심 식사는 늦어질 수밖에 없겠어. ……도련님, 죄송합니다. 이 미련한 것이 그만 깜빡 졸아 버렸지 뭡니까?”
할멈은 료칸의 유일한 고객, 선우진을 향해 거듭 고개를 숙였다. 선우진은 언제나처럼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지주머니에서 10원 지폐 두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됐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미 지나간 일로 괜히 속 끓이지 말고 초밥이라도 배달시켜 먹게.”
“황송합니다요. 도련님 것도 따로 주문을 할깝쇼?”
“아니, 나는 1시에 아사오카에서 약속이 있네. 그대들끼리 드시게.”
“초밥 배달!”
갑자기 고급 점심을 먹게 되자, 종업원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기뻐하며 짤깍짤깍 손뼉을 쳤다. 20원이면 특상 초밥을 실컷 먹고도 남을 액수다. 하지만 기뻐하던 그들은 이내 재채기에 몸서리를 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료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매운 냄새였다.
“……나가서 먹고 돌아올까?”
종업원들 중 한둘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할멈은 기다렸다는 듯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오냐, 오냐. 다 내 잘못이니, 너희들은 나가서 먹고 오려무나! 내 것과 츠바키 것도 좀 사 오고! 나는 일단 저 탄 냄비부터 닦아 둬야 속이 시원할 것 같구나. 내가 저지른 실수니까 책임도 져야지.”
할멈은 그럴듯한 연기를 선보이며, 종업원들을 모두 몰아냈다. 주인인 할멈이 지키고 있으니, 그들은 다들 별걱정을 하지 않고 모처럼의 자유를 즐기며 초밥 집으로 향했다.
“휴우…….”
종업원들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로소 할멈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난 뒤 이마의 땀을 닦았다.
“여기 있습니다.”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할멈이 누런 서류봉투를 건넨다. 선우진은 곧바로 봉투를 열어 츠바키의 여행허가증을 확인했다.
“도련님, 돈은……?”
할멈은 초조한 얼굴로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선우진은 다실에 두었던 서류가방을 그녀에게 건넸다.
“세어 보게. 약속했던 것보다 조금 더 넣었네. 계산이 끝나거든 곧바로 떠나게나.”
할멈에게 짧은 대답을 남긴 선우진은 곧바로 계단을 뛰어올라 2층으로 향했다. 드르륵-! 방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그리운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츠바키가 그를 맞는다.
“……도련님.”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서글프다. 지난 사흘간 선우진이 다른 게이샤와 함께 동침했던 까닭이다.
“츠바키, 소풍을 가세.”
선우진은 쾌활하게 말하며, 그녀를 잡아 일으켰다.
“소, 소풍이라고 하셨습니까, 도련님?”
츠바키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에게는 운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츠바키는 일단 걱정부터 앞세웠다.
“바깥출입을 하려면 일단 료칸의 허락을 맡아야…….”
“이미 할멈에게 허락은 받아 두었네.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저는 여행허가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 이게 그대의 여행허가증일세. 잊어버리면 안 되니 꼭 품고 있게.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니 갈아입을 옷도 몇 벌 넣고.”
선우진은 츠바키에게 여행허가증을 건네준 뒤, 그녀의 양산과 가방을 대신 챙겼다.
“아…… 도련님…….”
줄곧 남에게 맡겨져 있던 자신의 여행허가증을 눈으로 확인한 츠바키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는…… 도련님께서 이제 제가 지겨워졌나 보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절하시게도 이렇게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해 주시다니…….”
츠바키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우진은 그녀의 볼을 쓸어 주며 웃었다.
“지겨워지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리 고운 사람인 것을.”
타타탁-! 아래층에서는 할멈이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60이 넘은 노파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힘찬 발소리였다.
“설마…… 경성으로 가는 것인가요?”
“경성도 좋고, 평양도 좋지.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츠바키의 질문에 답하며 선우진은 그녀의 팔목을 가볍게 잡아끌었다. 정오 사이렌이 울리고 난 직후에 승부를 봐야 하니, 서두르는 편이 좋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도련님!”
선우진의 손을 뿌리치고 방 안으로 달려간 츠바키는, 궤짝 안에서 애지중지 보관해 온 초콜릿과 캐러멜을 꺼내 가방에 함께 넣었다.
“경성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것을 도련님과 함께 먹을 생각에, 늘 설렜습니다! 이제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군요. 후후후후!”
종종걸음으로 되돌아온 츠바키가 포장도 뜯지 않은 초콜릿을 들어 보이며 행복하게 웃었다. 선우진이 처음 제물포 구락부에 갔던 날 집어왔던 바로 그 초콜릿과 캐러멜을, 그녀는 지금까지도 보물처럼 아껴 왔던 것이다.
“그것도 좋겠지.”
선우진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벌써부터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 걱정을 안겨 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해 봐야 공연히 그녀를 허둥대게 만들 테니까…….
“오카상, 다녀오겠습니다! 저, 도련님과 함께 나들이를 가게 되었어요.”
1층으로 내려온 츠바키가 할멈을 찾는다. 선우진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할멈은 지금 없네. 은행에 들러야 된다더군. 타게.”
선우진이 다임러의 조수석 문을 열어 주자, 그제야 츠바키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도련님…… 지금…….”
그녀는 료칸을 다시 돌아보며 말끝을 삼켰다. 종업원도, 주인도, 심지어는 망을 보던 야마다 파의 코붕들까지도 깨끗이 사라진 료칸의 풍경은 분명 어딘가 낯설고 어색하다.
“츠바키, 나를 믿는가?”
선우진이 물었다. 츠바키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도련님!”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 말고 내 말을 따라 주게. 자, 어서 가세.”
선우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츠바키는 모종의 결심을 내린 단호한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았다. 선우진이 시동을 걸고 자동차를 출발시키자, 츠바키가 조심스레 물었다.
“도련님……. 설마 지금 저와 함께 도주하시려는 것인가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네.”
선우진은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하아……. 이를 어째.”
츠바키의 커다란 눈은 당혹감에 젖었다. 하지만 그녀는 딱히 선우진의 행동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부우우우웅-! 그가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자, 다임러의 시속은 금세 30킬로미터까지 치솟았다. 에에에에엥-! 정오 사이렌이 울린다. 이제 승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