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0. 현상금 60만 원의 사나이. (250/459)

250. 현상금 60만 원의 사나이.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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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737242972.png“……뭐라고?”

김덕기의 얼굴이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었다.

16550737242972.png“60만 원이라고 하면…… 그놈밖에 없을 텐데?”

질문하는 김덕기의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상상치도 못했던 거물의 등장에, 술이 확 깨버린 모습이다. 문밖의 끄나풀이 곧바로 대답했다.

1655073724298.jpg“맞습니다. 그 김가 놈입니다.”

16550737242972.png“허…… 그래? 그 첩보는 믿을 만한 것이고?”

1655073724298.jpg“그쪽에 심어둔 세작의 말이니, 사실일 겝니다.”

16550737242972.png“후우……! 하늘이 이 김덕기를 돕는구만. 뭐가 어떻게 걸려들었다는 건지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김덕기의 상체는 이제 아예 복도 쪽으로 반쯤 나가있다. 노덕술도 선우진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그리로 다가간다. 그도 그럴 것이 현상금 60만 원이면…… 단순히 팔자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거금이다. 물론 민영휘나 이병길의 자산과 비교하자면 그저 초라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일개 형사에게는 평생 꿈꿔볼 수조차 없는 액수임에 틀림없다.

16550737242999.png“그렇구나. 역시 금으로 된 장식 빗 하나쯤은 있어야 게이샤의 체면이 서는 것일 테지? 후후, 이렇게나 귀여운 얼굴로 졸라대니 어째 내가 사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선우진은 옆자리의 게이샤와 농담을 주고받는 척하면서, 놈들의 조선말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16550737242999.png‘60만 원의 몸값이 걸린 조선인이라고? 누구를 이야기하는 건가?’

김덕기와 노덕술이 흥분한 만큼, 그 역시도 이 상황이 신경 쓰였다. 그 정도로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다는 것은, 이들이 말하는 그 ‘김가’가 조선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니까.

1655073724298.jpg“어머, 정말로 사주시는 겁니까? 아유, 친절하셔라! 정말 그렇게 해주신다면 너무도 기뻐서 하늘을 나는 기분일 거예요, 사이온지 님! 미츠코시에 보아둔 물건이 하나 있기는 한데, 너무 비싸서…….”

그의 곁에 앉은 게이샤는 욕심을 감추지 못하고 더욱 열심히 졸라댄다. 문가에서 조선인들이 조선말로 60만 원을 논하든 말든, 일본인인 그녀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다. 그저 이 기회에 머리에 꽂을 고급 장식 빗을 하나 새로 장만하고 싶을 뿐.

16550737242999.png“역시 미츠코시의 물건이 좋지.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기에 귀여운 네 마음을 이리도 사로잡았단 말이냐? 후후후.”

선우진이 게이샤의 턱 끝을 가볍게 쥐고 흔들며 웃었다.

1655073724298.jpg“아, 그것이…… 빗은 금이고, 몸통에는 자개로 된 꽃장식이 큼직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렇게 모란이…….”

게이샤는 자신의 머리에 꽂은 장식 빗을 짚어가며 설명을 계속했다.

16550737242999.png‘의열단의 김원봉일까?’

선우진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김원봉이었다. 그라면 일본이 충분히 그만한 거액을 내걸 만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김덕기가 의열단을 여럿 검거했다던 말이 연상 작용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지만.

1655073724298.jpg“상하이에서는 안 보인 지가 이미 꽤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세작의 말로는 아마 지금쯤은 국경을 넘었을 것이라고…….”

김덕기의 끄나풀이 속삭였다. 김덕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곧바로 언성을 높였다.

16550737242972.png“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놈이 국경을 넘었다고? 그럼 조선으로 기어들어왔다는 거냐?”

1655073724298.jpg“……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끄나풀이 대답했다. 하지만 김덕기는 어림도 없다는 듯 여전히 콧방귀를 뀌었다.

16550737242972.png“그럴 리가 있나? 그놈이 뭐가 아쉬워서 아랫것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운신한단 말이냐? 젊었을 땐 한가락 했다지만 이미 50이 넘은 놈이야! 예전처럼 몸이 날래지도 않을 텐데. ……분명 뭔가 잘못 전달이 된 첩보인 게지.”

1655073724298.jpg“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며 다른 자들이 만류하는 걸, 세작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김가 놈이 워낙에 완강하게 고집을 피웠다고…….”

16550737242972.png“……그래?”

문가에 기댄 채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덕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16550737242972.png“하긴, 그놈 고집이 보통 센 게 아니라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다만.”

1655073724298.jpg“마뜩지 않으시면 일본 경찰들에게 흘려서 그놈들이 처리하게 할깝쇼?”

끄나풀의 말에 김덕기는 펄쩍 뛰었다.

16550737242972.png“미쳤나? 이걸 왜 그놈들에게 알려서 공을 나눠? 자그마치 60만 원짜리다! 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가 독식해야지! 그 첩보가 진짜라면 말이야…….”

16550737297218.png“애들 풀어서 조사해 보십시다, 형님! 까짓 거 아니면 말고, 만에 하나 진짜라면…… 형님은 한 방에 경찰서장까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위까지 넘볼 수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별로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어느새 놈의 옆으로 다가간 노덕술은 놈과 함께 귀엣말로 쑥덕거렸다. 그래도 고민이 되는지, 김덕기는 연신 턱을 쓸었다.

16550737242972.png“물론 그렇기는 한데……, 이게 어째 사람을 골탕 먹이려고 흘린 가짜 첩보 같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도통 믿기지가 않아. 우리 정신을 그쪽으로 돌려놓고 뭔가 다른 짓을 벌이려는 건 아닐까?”

1655073724298.jpg“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당장 상하이에 사람을 보내서 하가 놈을 아주 죽여 놓아야지요.”

문밖의 끄나풀이 대꾸했다. 놈들은 멀찍이서 작게 속삭이고, 게이샤들은 바로 곁에서 웃으며 아양을 떨어대는 통에 집중하기가 녹록치 않았지만, 선우진은 놈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기억 속에 똑똑히 새기기 위해 애썼다.

16550737242999.png‘하가라는 자가 그 세작인 모양이군.’

선우진은 게이샤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들은 정보를 모두 종합해보자면, 상하이에 거주 중이던 60만 원 현상금의 50대 김씨 사내가,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정보는 역시 상하이에 거주하는 하씨 성을 가진 세작의 입을 통해 전해진 상황이다.

16550737297218.png“그놈이 어리긴 해도 제법 야무져서, 허튼 소리를 지껄일 놈은 아닙니다.”

노덕술이 ‘하가’의 편을 들고 나섰다. 놈을 상하이 어딘가의 세작으로 심은 것이 바로 노덕술인가 보다.

16550737242999.png‘김원봉은 상하이에 있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럼 설마…… 김구?’

선우진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 그 모든 조건이 부합하는 사람은 김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상하이 정부의 수반이 어째서 조선으로 온단 말인가. 그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16550737242999.png‘내가 모르는 다른 김씨 성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있을 테지.’

선우진은 판단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하고, 그는 독립운동조직의 간부들에 대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

16550737297242.png“저, 저…… 사이온지 선생. 제가 술 한 잔 따라드려도 되겠습니까?”

김덕기와 노덕술, 그리고 끄나풀의 대화가 길어지자, 이병길이 선우진의 눈치를 보며 다가와 문 쪽이 보이지 않도록 가리고 앉는다. 선우진은 태연히 술잔을 내밀었다.

16550737242999.png“그러시구려, 이병길 후작. 그나저나 어디에서 이렇게 귀여운 게이샤들을 찾아온 거요?”

16550737297242.png“하하! 특별히 신경을 좀 썼습니다. 그렇게 알아봐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병길은 식은땀을 흘리며 공손하게 두 손으로 선우진의 잔을 채웠다. 그러면서도 또 딱히 김덕기의 행동을 제지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것이 꽤나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을 아는 눈치다.

16550737242972.png“좋아. 한번 알아보는 것으로 하자. 어느 쪽으로 넘어온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나? 얼굴이 너무 알려진 놈이라 기차는 못 탈 테고……. 두만강도 요즘은 물이 불어서 건너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텐데.”

김덕기의 질문에, 끄나풀이 대답했다.

1655073724298.jpg“어디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왔는지는 압니다.”

16550737242972.png“그래?”

1655073724298.jpg“네! 그놈이…… 윤가 놈을 만나고 싶어 했다고…….”

16550737242972.png“윤가? 그놈이 만나고 싶어 할 만한 윤가는 누구지?”

잠시 앓는 소리를 흘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김덕기가 다시 물었다.

16550737242972.png“……혹시 그 충청도 놈을 말하는 게냐?”

1655073724298.jpg“네, 그놈이 맞습니다.”

문밖 끄나풀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장지문에 그림자로 비치는 순간, 콰창-! 선우진이 갑자기 집어던진 술잔이 김덕기의 바로 옆 벽을 때리며 박살났다.

16550737325138.jpg“흑……!”

깜짝 놀란 김덕기와 노덕술은 비명조차 크게 흘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16550737242999.png“정도껏 해라, 이 무례한 것들.”

얼굴 가득 노기를 띤 선우진이 이를 꽉 깨문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상하이에서 출발한 김 모씨가 윤봉길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까지 다 엿들었으니 이제는 귀동냥을 그만두고, 이놈들을 잡아 흔들어야 한다.

16550737242972.png“사, 사이온지 님……! 그, 그것이 아니오라…….”

16550737242999.png“사람을 청해놓고 네놈들은 언제까지 문가에 모여서 계속 수다를 떨 참이냐? 그것도 나는 알아듣지도 못할 조선말로? 이것이 용서를 구하는 자의 태도인가?”

선우진이 언성을 높이자, 넓은 연회실의 분위기는 금세 차게 식어버렸다. 바로 직전까지 교태 가득한 웃음을 흘리던 게이샤들도 입을 꾹 다물고 선우진의 눈치만 살폈다.

16550737242972.png“그, 그게…….”

김덕기는 눈을 껌뻑이며 뭐라 변명할지를 궁리했다. 사실 그는 작당에 너무 열중하느라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16550737297242.png“사, 사이온지 선생……, 부디 고정하시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이병길이 손을 발발 떨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어떻게라도 이 상황을 무마해야 하는데, 과거부터 저질러놓은 실수가 워낙 많아서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기서 이 화족을 그냥 보내면, 그는 이제 한조 총독과 영영 이어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16550737325138.jpg‘어떡하지? 어떻게 하지?’

방 안의 네 놈과, 복도에 앉아있던 한 놈까지 총 다섯 놈의 매국노는 완전히 선우진의 기세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눈알만 굴려댔다. 선우진은 놈들에게 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한층 더 세차게 몰아붙였다.

16550737242999.png“좋은 일을 하려다가 공연히 기분만 더러워졌군. 가겠다!”

벌떡 일어선 선우진은 지갑을 열고 자신의 술친구였던 게이샤에게 100원 지폐를 건넸다.

16550737242999.png“미츠코시에 점찍어두었던 장식 빗을 사게. 우라사키 사장과는 친분이 있으니, 직원에게 내 이름을 대면 섭섭지 않게 대해줄 걸세.”

1655073724298.jpg“가…… 감사합니다.”

의외의 시점에 예상치 못했던 친절을 선물 받은 게이샤는 당황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사실 선우진은 이 한마디를 통해서 이 매국노들에게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전략은 언제나처럼 단박에 적중했다.

1655073724298.jpg“사, 사이온지 선생! 이렇게 가시면 저희가 너무 죄송스러워서…….”

민영휘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며 선우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면서도 감히 선우진의 몸에 손을 댈 엄두는 내지 못한다.

16550737242999.png“무슨 상관이오?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비키시오.”

선우진은 서릿발이 돋을 듯 차갑게 내뱉었다.

16550737325138.jpg“어억!”

다시 안 보겠다는 말에 민영휘와 이병길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시체처럼 얼어붙어버린 김덕기와 노덕술도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단순히 남남으로 데면데면하게 지내자는 말이 아니다. 앞으로 이 일본인 화족은…… 아주 못된 말을 꾸며내서 총독과 자신들과의 사이를 더욱 심하게 이간질할 게 분명하다고, 방 안의 네 매국노는 확신했다. 그들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므로.

16550737297242.png“사이온지 선생! 제가, 제가…… 이렇게 대신 잘못을 빕니다! 그리고 오해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이병길이 비호처럼 몸을 날려서 선우진의 발 앞에 납죽 엎드렸다. 그러는 사이 민영휘는 김덕기와 노덕술을 돌아보며 호통을 쳤다.

1655073724298.jpg“뭣들 하고 있는 게요? 빨리 사이온지 선생께 사죄하지 못하고! 아무리 중대한 공무였어도 그렇지! 안 그래도 내가 걱정이 돼서 자꾸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냈는데도 도통 말을 안 듣더니!”

민영휘는 이번에도 남의 탓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어떻게든 자신만은 빠져나가야 한다는 욕망이 다른 매국노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도 돋보이는, 정말로 최하의 인간이다.

16550737325138.jpg“……네! 네!”

다다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김덕기와 노덕술이 네 발로 기어와 선우진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16550737242972.png“사이온지 님, 제발 잠시만 제,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오해이십니다! 제가, 어찌 감히 사이온지 님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라, 워낙에 위급한 상황보고가 들어오는 바람에 잠시……!”

김덕기가 먼저 거짓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애원을 시작했고, 노덕술도 곧이어 한마디를 거들었다.

16550737297218.png“그렇습니다! 정말로 긴급하고도 중한 범죄자에 관한 첩보가 입수되어, 부득불 이렇게 미련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어찌하면 그놈을 잡을 수 있을지…… 그것을 고심하느라!”

16550737242999.png“내가 그런 어설픈 핑계에 속아 넘어갈 사람처럼 보였나?”

선우진은 놈들의 손을 뿌리친 후, 코웃음을 쳤다.

16550737242999.png“조선에 경찰이 몇 명이고, 또 군인은 얼마나 많은데 네놈들만 그런 걱정을 도맡아 한단 말이냐? 그것도 하필이면 나와의 술자리 도중에! 어쨌든 나는 먼저 일어설 테니 이제 마음 놓고 첩보에 관해 논하려무나.”

16550737242972.png“지어낸 핑계가 아닙니다, 사이온지 님! 제 어머니와 자식들의 목숨을 걸고 오로지 진실만을 말씀드린다는 걸 맹세해도 좋습니다!”

김덕기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쯤 됐으면 이제는 한풀 꺾이는 척해주는 수밖에 없다.

16550737242999.png“후우……!”

선우진은 억지로 화를 삭이는 사람처럼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0737242999.png“좋소. 어디 한번 들어나 보는 것으로 하지. 대체 어떤 범죄의 첩보가 입수되었기에, 그렇게 나를 앉혀두고 조선말로 떠들어댔던 것인가?”

16550737242972.png“지나로부터 대단히 위험한 불령선인들이 밀입국했다는 첩보입니다. 그…… 감히 일본 부자 사업가들을 암살하려는 임무를 부여받고 경성으로 잠입하는 중이라고…….”

16550737242999.png“……사업가를 암살하려고 해? 그들은 대체 몇이나 되는 게요?”

16550737242972.png“다섯 놈이 한 조로 움직입니다.”

방금 어머니와 자식들의 목숨을 걸고 맹세를 했으면서도, 김덕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이놈에게는 애초부터 진실을 말하는 능력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16550737242999.png“그 말이 사실이오, 노덕술 경부보?”

선우진은 놈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노덕술을 돌아보았다.

16550737297218.png“네! 그렇습니다, 사이온지 님! 미츠코시 백화점이나, 조선은행 같은 곳이 가장 위험할 것이라고,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무례를 무릅쓰고 긴급히 대처 방안을 강구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화급했기에……!”

노덕술도 질세라 거짓말의 향연을 벌였다. 선우진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이마를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

16550737242999.png“어째서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사업가를 죽이려 든다는 말이오?”

16550737242972.png“그것이 바로 불령선인들이 가진 무자비한 잔혹성입니다, 사이온지 님. 문명개화한 현대인의 상식 따위는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서, 그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약탈, 살인, 방화를 저지르려 들지요. 저희가 아무리 사람을 만들어보려고 몽둥이로 때리고 달군 인두로 지져도, 그저 그때뿐입니다. 이번에 이놈들은 잡으면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모의를 할 수 없도록!”

김덕기가 끔찍한 소리를 잘도 주워섬긴다. 선우진은 놈에 대한 분노를 꾹 눌러 감추고 입가를 쓸어내렸다.

16550737242999.png“그렇게 끔찍한 사람들이 다 있군그래. 으음…… 그렇다고 하면 그대들이 그리 당황해서 소곤댔던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야. 헌데…….”

겨우 충격을 추스른 것처럼 옷매무시를 바로 한 선우진이 김덕기에게 다시 물었다.

16550737242999.png“그런 중차대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도 괜찮겠소? 지금이라도 당장 총독부에 알려 그들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것이 옳을 성싶은데 말이오. 부유한 일본 사업가를 노린다고 하면…… 나도 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16550737242972.png“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이온지 님!”

선우진의 동요를 보고 이제야 조금 안심한 김덕기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16550737242972.png“놈들이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조선에 들어왔다는 의미이고, 조선에 들어온 이상 이 김덕기의 감시망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이미 감시가 붙어있으니, 사이온지 님께서는 부디 저를 믿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편안히 매일을 보내시면 됩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놈들의 체포라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다시 찾아뵈어 안심을 시켜드리겠습니다.”

16550737242999.png“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조선 경찰 전체에 비상을 거는 것이 옳지 않을까? 아무리 그대들이 우수한 경찰이라고 해도 단 두 사람에게만 그렇게 위중한 임무를 맡기는 것은 조금 가혹한 듯 여겨지네.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선우진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놈을 떠봤다. 노덕술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리질을 해댔다.

16550737297218.png“불령선인 놈들이 노리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이온지 님! 세 놈이 소동을 일으켜 경찰들의 혼을 빼놓는 사이에 또 다른 두 놈이 무고한 일본인들을 살해하는 것이지요! 이건 저희의 방식으로 은밀하게 처리해야만 제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16550737242972.png“그렇습니다! 저희가 귀신도 모르게 놈들의 멱을 따버릴 테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손에 잡혀 죽거나 갇힌 놈들만 자그마치 500입니다! 이런 일은 부디 전문가에게 맡기시고 사이온지 님께서는 그저 즐겨주시기를!”

김덕기도 호언장담을 지껄여대며 어떻게든 이 일이 총독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김 모’라는 이름조차 전혀 거론하지 않는 걸로 미루어보건대, 그마저도 혹시 다른 일본 경찰들이 알게 될까 봐 조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긴 어차피 김 모라는 이의 목표는 경성을 찾는 것도, 또 일본인 살해도 아니니, 그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애당초 없다. 그런데도 이놈들은 새빨간 거짓말을 지껄여 위기를 모면함과 동시에,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마치 자신들의 공적인 양 미리 예비해 두기까지 한다. 사악함과 교활함이 잘 맞는 옷처럼 아주 몸에 뱄다.

16550737242999.png“그런가……? 경찰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올바른 대처 방안이라고 하니, 나로서는 또 어리둥절한 일이군. 하지만 전문가인 그대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일 테지.”

선우진은 납득이 됐다는 표정으로 놈들을 안심시켰다. 한숨 크게 돌린 이병길이 식은땀을 닦고 다가와 선우진의 소매를 붙들었다.

16550737297242.png“자, 자! 이제 오해가 풀리셨으니 다시 앉아서 한잔하시지요, 사이온지 님.”

1655073724298.jpg“네에! 저희가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민영휘의 눈짓을 읽은 게이샤들도 애교를 피우며 선우진을 다시 끌어 앉힌다.

16550737242999.png“그렇게 해도 되겠나? 나야 여유가 있다지만, 저 두 사람은 공무에 바쁠 듯 보이는데?”

선우진이 못이기는 척 새 술잔을 받아들자, 김덕기가 비굴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16550737242972.png“이미 감시역이 붙어서 놈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다 보고 받는 중입니다, 사이온지 님. 다른 경찰들이 끼어들어 공연히 방해만 하지 않으면 절대로 놓칠 일이 없습니다. 범죄의 증거가 충분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일망타진할 터이니, 마음 푹 놓으십시오! 자, 제가 한 잔 바치겠습니다!”

16550737242999.png“흐음……, 그럼 한번 믿어볼까.”

선우진은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는 듯 얼굴에서 노기를 거두었다. 그 엷은 미소가 신호라도 되는 양, 요정의 연회실 내부는 즉시 아부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 그날 새벽, 이병길 일행과 헤어진 선우진은 남촌 자신의 건물에서 프린스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16550737464188.png- 으음, ……모시모시.

자다가 깬 목소리의 안경 남자가 일본어로 전화를 받는다.

16550737242999.png“날세.”

16550737464188.png- 아, 자네인가? 무슨 일인가, 이런 시간에? 으음…… 지금 몇 시인 거지?

안경 남자가 걱정스레 물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2시 40분,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랄 만한 시간이기는 하다. 선우진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16550737242999.png“현상금 60만 원이 걸린 조선인이 누구인가?”

16550737464188.png- 60만 원? 그 정도면 엄청난 거액이로군……. 지금까지 일본이 60만 원 이상의 현상금을 내걸었던 조선인은 단 둘뿐이네. 한 사람은 약산 김원봉. 그런데 그의 현상금은 계속 더 오르는 중일세. 무력으로 저항을 계속하는데, 체포를 못하고 있으니 일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 얼마 전에는 100만 원까지 올랐다는 소식이 경찰 관보에 실렸네…….

막 잠에서 깬 상황인데도 안경 남자의 설명은 여전히 막힘없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러나 100만 원이라면 이 ‘김 모’는 김원봉이 아니다. 놈들은 분명 ‘60만 원짜리’라고 몇 번이나 말했으니까. 마음이 급해진 선우진이 재차 답을 재촉했다.

16550737242999.png“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인가?”

16550737464188.png- 그야 백범이지.

안경 남자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투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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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0737242999.png“다른 사람은 없나? 60만 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비슷한 언저리라도?”

16550737464188.png- 음, 없네.

대답하는 안경 남자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이쯤 되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설이라고 해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16550737242999.png“후우…….”

선우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16550737242999.png“버스터를 깨워서 좀 바꿔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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